전통문화

활옷은 궁중의 공주나 옹주의 대례복이었으나 

조선후기에는 민간에서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결혼식에 한하여  혼례복으로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조선이 신분사회였지만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라고 해서 예외로  적용하였다 


활옷의 특징은  옷의  앞쪽보다 뒤쪽에 문양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결혼식의  신부의 자세는  결혼식이 거행되는 동안에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어야 한다 

신부의  이런 자세 때문에 활옷의 넓고 긴 소매가 앞을 가리게 된다 


그래서 소매로 가려지는  옷의  앞  보다 뒤쪽에 화려한 문양을 장식하는 것이다 


옷  앞에는 양쪽 어깨와 아래 자락에  繡를 놓고   옷 뒤에는 등이나  소매 끝에 繡를 놓아 장식한다 


활옷에 刺繡되는 문양은 건강 長壽 不死 행운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 ..행운과 권위를 상징하는 봉황  

소생을  의미하는 나비  부부를 의미하는 원앙 .長壽를 상징하는 십장생 등이다 


활옷은 옷의  겉은 붉은색  안쪽은 청색인데 이것은 남녀와 우주의 음양의 조화를  의미한다 



석주선 기념관 소장 

근대 1900년 활옷 (앞)

 




석주선 기념관 소장  활옷 (뒤)




다홍색 비단에 가슴 등 소매에는 長壽와 복을 상징하는 봉황 모란 백로 연꽃  물결 무늬 괴석 등이 

刺繡되어 있고

뒤에는 二性之合 百福之源이라는 길상문이 쓰이고 있다 남녀의 화합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라는 의미의 

결혼을 축하하는  덕담이다 

양반 가문의 혼례복으로 입었던 활옷이다 


활옷을 입을 때는 먼저 빨강 치마와 노란 저고리를 입고 활옷 위에 大帶라는 큰 띠를 두른다 


활옷 이라는 명칭은  조선왕조 기록에서는 없는데  


가례도감의례 국혼조례 궁중발기  (嘉禮都監儀軌  國婚定禮   宮中撥記)  등  문헌을 통해 

홍장삼(紅長衫)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활옷은 금박이나 직금 (織金)의 장식 .刺繡의 장식 2가지가 있는데 


宮中撥記 기록에 의하면  직금 홍장삼  다홍 별문 갑사 수천 만세 등 명칭이 있어 

조선후기  궁중의 홍장삼은 직금이나 금박으로 장식했던 것을 알 수 있고 


덕온 공주 혼례를 위해 1837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본 (繡本)중에  홍장삼 수초 저동궁 이라고 

묵서로 쓴 수본이 있어 궁중의 홍장삼은 자수 (刺繡)로 장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 . 한국의  조선시대 활옷  (유물)


이 활옷은 클리 블랜드 미술관을 대신하여 아시아 연구 현장 에이전드로 활동했던 랭턴워너가 


1915년에 한국에서 입수한 것이라고 한다 


어느 양반 가문에서 입었던 활옷인데 동네에서 결혼식이 있을때 이 활옷을 빌려 주었다고 한다 



이  활옷의 목 둘레에는 한지를 둥근 모양으로   덧붙이고  있는데 

이것은 新婦의 머리 단장을 위해  머리에 바른  기름이 옷에 닿아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 소매 부분이나 목 부분이 훼손되면  한지를 덧붙여 계속 물려 입었다 


활옷의 뒤 쪽에  손잡이는 

혼례식 때에 활옷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手母(신부의 단장을 도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가 잡아 주기 위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활옷이라는 명칭은 근대 이후  한글로 쓴 소설이나 잡지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서민들은 근대 이전 부터 이미 활옷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왕실이나 양반 계층에서는 紅長衫이라는 한자어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구한말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紅長衫이라는 명칭은 사라지고   민간에서 사용했던 활옷이라는 

명칭이 대중화 되었던 것이다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찍은 것이다 

혼례 연회 장례 등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 필요한 물품을 대여해 주던 세물전(貰物廛)이다 



근대 이후  조선왕조가 몰락한 이후에도 활옷이 민간에서 전통적인 신부의 혼례복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궁중의 공주 예복을 서민들의 혼례복으로 입을 수 있게 허용한 섭성(攝盛)의 풍습과 

 手母( 신부의 몸 단장을 도와 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자)를 중심으로  

혼례식 연회 장례 등에 필요한 물건을 빌려 주는 풍습 때문이었다 



화려한 刺繡의 활옷은 비싼 옷이기 때문에 주로  왕실이나 양반 계층에서 혼례복으로 입었고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싼  원삼(圓衫)을 혼례복으로 입었다 


궁중의 활옷은 침방의 나인이 만들고 刺繡는 繡房 나인이  수놓았다 




福溫 공주(1818년~1832년)    활옷( 유물)

활옷의 앞 쪽이다 

福溫공주 활옷은 목 둘레에 하얀 동정을 달았다  왕실의 활옷은   목 부분에 하얀 동정을 달았다 

여러 꽃 무늬와 보배 무늬가  자수( 刺繡)되어 있고 원앙 금원문을  금박으로 장식하였다 




福溫공주 활옷 앞 

하단 아래  부분의 일부 


궁중의 활옷과 민간의 활옷은 구분이 되는데 

민간의 활옷에 비해  궁중의 활옷은 소매가 넓고 길며 또  刺繡의 문양이  더 세밀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것은  궁중   화가들이  刺繡의  기본이 되는 繡本을  그렸고  繡房에 소속된  나인들이 刺繡를 놓았기 때문이다 


활옷은  모두 刺繡의 기법으로  장식했고  홍색으로 했다는  점에서 신분에 관련없이 모든 계층에서 향유한 

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민간의 활옷이나  궁중의 활옷에도 모두 刺繡로만 되어 있는 활옷이 있는데 

福溫공주 활옷은 刺繡와 금박 장식이 모두 되어 있다 



福溫공주  활옷 뒤 ( 복원 )




공주는 13세에 혼례식을 올렸기 때문에  활옷이 129cm로 다소 작은 편이다 


福溫공주의 활옷에는 모란이 가득하다 

꽃의 왕이라고  지칭되는  모란 뿐 아니라 연꽃 복숭아 매화 국화 석류 불로초 국화 나비 등 

문양이 세밀하게 장식되어 있다 




 모란 연꽃 복숭아  국화 석류 등 여러 꽃 무늬와 금박 장식이 있는  활옷  부분 


福溫공주  활옷을 복원하는데

5~6명이  함께 공동 작업을 해서   5개월이 걸려 완성했다고 한다  

공주가 13세에 혼례식을 올렸기 때문에  활옷의  길이가  129cm로 다소 작은 편이었는데 

복원은 132cm로 했다고 한다 




伝統婚儀の時着る礼服ホアルオッ

ホアルオッは宮廷の王女や翁主の大礼服だったが

朝鮮後期には民間でも身分を選り分けないで結婚式に限って婚儀の時着る礼服で着ることが許容された


朝鮮が身分社会だったが結婚は人倫地帯社(人倫之大事) として例外で適用した


ホアルオッの特徴は服の先方より裏側に文様が集中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だ

伝統的結婚式の花嫁の姿勢は結婚式が挙行される間に頭を下げて両手をこれから集め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花嫁のこんな姿勢のためホアルオッの広くて長い小売値の前を選り分けるようになる


それで袖で選り分けられる服の前より裏側に派手な文様を飾ることだ


服の前には両肩と下の裾に 繍をおいて服後にはなどや袖あげく 繍をおいて飾る


ホアルオッに 刺繍になる文様は健康 長寿 不死 幸運君子を象徴する蓮華 ..幸運と権威を象徴する鳳凰

蘇生を意味する蝶夫婦を意味するおしどり .長寿を象徴する十長生などだ


ホアルオッは服の表は赤色内側は青色なのにこれは男女と宇宙の陰陽の調和を意味する



石柱船記念館所長

近代 1900年ホアルオッ (前)




石柱船記念館所長ホアルオッ (後)




紅絹に胸など袖には 長寿と福を象徴する鳳凰牡丹白露蓮華波柄怪石などが

刺繍になっていて

後には 二性之合 百福之源というギルサングムンが使われていて男女の和合はすべての幸せの根源という意味の

結婚を祝う徳談だ

両班家門の婚儀の時着る礼服で着たホアルオッだ


ホアルオッを着る時は先に赤スカートと黄色いチョゴリを着てホアルオッの上に 大帯という大きい帯をかける


ホアルオッでありなさいという名称は朝鮮王朝記録ではないのに


家礼図鑑儀礼国婚条例宮廷発起 (嘉礼都監儀軌 国婚定礼 宮中撥記) など文献を通じて

洪長禳(紅長衫)で祈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


ホアルオッは金箔や織金 (織金)の飾り .刺繍の飾り 2種があるのに


宮中撥記 記録によれば織金洪長禳深紅ビョルムン甲糸数千万歳など名称があって

朝鮮後期宮廷の洪長禳は織金や金箔で飾ったことを分かって


ドックオン公州婚礼のために 1837年に製作したことに推定される手本 (繍本)中に洪長禳水草低東宮と

ムックソで書いた手本があって宮廷の洪長禳は自首 (刺繍)で飾ったということが分かる





アメリカクリーブランド博物館 . 韓国の朝鮮時代ホアルオッ (遺物)


がホアルオッは大きいわけブランド美術館の代わりをしてアジア研究現場エイゾンドで活動したレングトンウォノが


1915年に韓国で手に入れたことだと言う


どの両班家門で着たホアルオッなのに町内で結婚式がある時このホアルオッを貸してくれたと言う



がホアルオッの首まわりには韓紙を丸い模様で付け加えているのに

これは 新婦の頭団長のために髪に塗った伸ばせることが服に触れて汚染することを防止するためのことだ

またこの袖部分や首部分が毀損されれば韓紙を付け加えてずっと飽きて着た


ホアルオッの後の方に取っ手は

婚礼式の時にホアルオッが地にひかれないように 手母(花嫁の団長を助けることを職業にする女)が取ってくれるためのことだ



国立民族博物館




ホアルオッという名称は近代以後ハングルで書いた小説や雑誌で捜すことができる


これは庶民たちは近代以前からもうホアルオッという名称を使っていたことに推測される

すなわち王室や両班階層では 紅長衫という漢字語の名称を使っていたが

旧韓国末身分制が崩れながら 紅長衫という名称は消えて民間で使ったホアルオッという

名称が大衆化になったことだ



写真は日帝強制占領期間に取ったことだ

婚礼宴会葬礼など家に行事がある時必要な物品を貸与してくれた貰物廛(貰物廛)だ



近代以後朝鮮王朝が沒落した以後にもホアルオッが民間で伝統的な花嫁の婚儀の時着る礼服と伝わっていたが


これは宮廷の王女礼服を庶民たちの婚儀の時着る礼服で着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許容したソブソング(攝盛)の風習と

手母( 花嫁の身団長を助けてあげることを職業にする女)を中心に

婚礼式宴会葬礼などに必要な品物を貸してくれる風習のためだった



派手な 刺繍のホアルオッは高い服だから主に王室や両班階層で婚儀の時着る礼服に着たし

庶民たちは相対的に値段が安い円禳(円衫)を婚儀の時着る礼服で着た


宮廷のホアルオッは寝房のナインが作って 刺繍は 繍房 ナインが刺繍した




福温 公州(1818年‾1832年) ホアルオッ( 遺物)

ホアルオッの前の方だ

福温公州ホアルオッは首まわりに白い同情をつけた王室のホアルオッは首部分に白い同情を甘かった

多くの花柄と財宝柄が自首( 刺繍)になっていておしどり金原文を金箔で飾った




福温公州ホアルオッ前

下端の下部分の一部


宮廷のホアルオッと民間のホアルオッは仕分けになるのに

民間のホアルオッに比べて宮廷のホアルオッは小売値広くて長くてまた 刺繍の文様がもっと細密で派手に飾られている

これは宮廷画家たちが 刺繍の基本になる 繍本を描いたし 繍房に属したナインたちが 刺繍をおいたからだ


ホアルオッは皆 刺繍の技法で飾ったし紅色にしたという点で身分に関係なくすべての階層で享受した

複式だと言える


民間のホアルオッや宮廷のホアルオッにも皆 刺繍にだけなっているホアルオッがあるのに

福温公州ホアルオッは 刺繍と金箔飾りが皆なっている



福温公州ホアルオッ後 ( 復元 )




公州は 13歳に婚礼式をあげたからホアルオッが 129cmでちょっと小さい方だ


福温公州のホアルオッには牡丹が一杯だ

花の王だと指称される牡丹のみならず蓮華桃梅菊石榴不老草菊蝶など

文様が細密に飾られている




牡丹蓮華桃菊石榴など多くの花柄と金箔飾りがあるホアルオッ部分


福温公州ホアルオッを修復するのに

5‾6人が一緒に共同作業をして 5ヶ月がかかって完成したと言う

公州が 13歳に婚礼式をあげたからホアルオッの長さが 129cmでちょっと小さい方だったが

復元は 132cmにしたと言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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