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게시물에서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者가 누구인지
알아 보았습니다
지진 당시 내무대신 水野鍊太朗
3.1독립운동 당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도쿄부지사 宇佐美勝夫
조선총독부 내무장관
군사 참의관 宇道宮太郞
3.1운동 당시 조선 주둔군 사령관으로 민간인 약7.000명을 살해한 인물
군사참의관 大庭二郞
1922년 간도 사건 당시 민간인 3.000명을 살해한 침공군 사령관
이 외에도 많다
水野鍊太郞
지진 당시 일본의 내무대신이었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었다
1920년 서울 남대문역에서 항일 독립운동가가 폭탄을 던졌으나 다치는데 그쳤다
병합 이전 피 비린내나는 의병 전쟁 병합 후 3.1운동 간도 참변 등 조선을 경험하고 일본으로
귀국한 者가 일본 정부의 중요한 요직에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조선에 대한 경계심 또는 적개심으로 한국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린 장본인이다
피복 공장터의 한국인 시체
일본에서는 피난민 시체라고 주장하지만 피난 와서 단체로 죽은 사람의 시신으로 보기 어렵다
아라카와江 요쓰기바시 부근 하천에 매몰된 한국인 유골을 파내고
어디론가 가져 갔다는 증언도 있고
이곳에서 한국인 시체를 불태웠다는 증언도 있다
일본에 이미 쌀 폭동 사건(1918년)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지진 재해로 민중들의 불만이
커져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민중의 불만의 대상자로 한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조선에서의 항일 저항운동 또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사건 등 한국인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그들
일본 정치인이 일본 민중을 부추겨 한국인 민간인을 학살한 것이다 라고 추측된다
한국인에 의한 방화 살인 등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일본 민중이 그대로 믿었던 배경에는
일본 사회지도층의 조선 역사에 대한 날조 한국인에 대한 비하 발언이 있었다
지진 당시 일본 경시청이 뿌린 불령 鮮人에 관한 전단지
내무성 경보국장 사이타마현 내무부장의 한국인 경계 지령
서발 제8호 다이쇼 12년 9월 2일 사이타마현 내무부장 군정 촌장 앞
불령 鮮人의 폭동에 관한 건
사이타마현 내무부장이 내무성에서 가져 온 지령에 기초하여 사이타마현 內의 정촌 역장에
보낸 지령
내용
이번 진재에 도쿄에 있는 불온한 한국인들의 망동이 있다 또한 그 사이 과격 사상을 갖고 있는
무리 사회주의자와 연계하여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 독수를
휘두를 것 같다는 염려가 있다
이에 정촌의 당국자는 재향군인회 소방대 청년대와 일치 협력하여 그에 대한 경계에 임하고
만약 유사시에 신속하게 적당한 방책을 강구하도록 시급히 준비해야 한다
내무성 경보국장 사이타마현 내무부장의 한국인 경계 지령 건은
일본 정부가 국민을 부추겨 한국인을 학살한 증거가 된다
1923년말 국회에서 2명의 국회의원이 한국인에 대해 사죄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질문하지만
당시 山本 수상은 조사중 이라고 답변했을 뿐
일본 정부는 한국인 조사단의 한국인 유체 처리 방법 신청에 대해서도 거절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 학살 조사에 대한 (在東京罹災 한국인 임시 구제회 해산 등 )활동도 금지해 버렸다
이런 결과로 일본 민중들은 한국인에 대한 편견으로 오염되어 갔다
위 삽화는 당시 화가 竹久夢二 그린 1923년 9월 19일 미야코(都)신문의 삽화이다
아이들이 군인 경찰 자경단 역할을 나누고 한국인 아이 역할을 하는 아이를 찔러 죽이는 것을
흉내내고 있다
竹久夢二는 東京 재난 畵信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萬이야 네 얼굴은 일본인이 아니야 네 얼굴은 아무래도 일본인이 아니야 한 아이가
두부가게 아이 萬이를 붙잡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교외의 아이들도 자경단 놀이를 시작했어 萬이를 적으로 하자
싫어 그러면 나는 죽창으로 찔리잖아
아니야 우리는 단지 흉내내는 것이잖아
골목대장이 萬이에게 적이 되지 않으면 맞아 죽을 것이라고 협박을 했기 때문에
萬이는 억지로 적이 되었고 아이들은 萬이가 울때 까지 때렸다 어른들도 군인 순사 흉내를
내며 몽둥이를 휘드르며 萬이를 괴롭히는 것을 보았다
지진 재해로 한국인 학살을 일본정부가 날조 조작 은폐를 했기 때문에
한국인 학살 문제는 일본 국내외로 잘 알려지고 있지 않았다
일본을 돕자는 미국인들
당시 문학가 永井荷風의 일기를 보자
이날 도쿄 日日 신문의 석간을 보니
오사카의 어느 선착장에 있는 아동 보호소에 모인 일본의 아이들이 한국인 아이가 물건을
훔쳤다 라고 하면서 그 아이를 붙잡아 거꾸로 매달아 때린 다음 이불로 싸고 밟아
죽인 기사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10세가 안된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경찰서에서 형사가 拷問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이것을 실행하니
이 무슨 일인가
또한 이불을 싸고 밟아 죽이는 것은 에도시대 덴마초의 감옥에서 죄수들이 행하던 것이다
이것을 지금 쇼와시대 아이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슨 일인가 ....아아 무섭다
1936년 4월 13일
자경단 놀이는 아직 진행중 일까요?
前掲示物で関東大地震当時朝鮮人に対するデマを言いふらした 者が誰なのか
見知りました
地震当時内務代わり 水野錬太朗
3.1独立運動当時朝鮮総督府政務総監
東京副知事 宇佐美勝夫
朝鮮総督府内務長官
軍事参議官 宇道宮太郎
3.1運動当時朝鮮駐屯軍司令官で民間人約7.000人を殺害した人物
軍事参議官 大庭二郎
1922年間島事件当の時民間人 3.000人を殺害した 侵攻君司令官
が外にも多い
水野錬太郎
地震当時日本の内務代わりだったし朝鮮総督府 政務総監だった
1920年ソウル南大門役で抗日独立運動家が 爆弾を投げたが けがをするのに止めた
併合以前血生臭いがする義兵戦争併合後 3.1運動間島惨変など朝鮮を経験して日本で
帰国した 者が日本政府の重要な要職にあったことだ
これらは朝鮮に対する警戒心または敵がい心で朝鮮人に対するデマを言いふらした張本人だ
被服ゴングザングトの朝鮮人死骸
日本では避難民死骸と主張するが避難来て団体で死んだ人の死体で見にくい
アラカと江 ヨスギバシ近所河川に埋沒された朝鮮人遺骨を掘りだして
どこかに持って行ったという証言もあって
こちらで朝鮮人死骸を燃やしたという証言もある
日本にもう米暴動事件(1918年)があったから日本政府は地震災害で民衆たちの不満が
大きくなって暴動が起きると判断してその民衆の不満の対象者で朝鮮人を見代わりで
したことだ
朝鮮での抗日抵抗運動また伊藤博文の暗殺事件など朝鮮人に対する悪感情を持った彼ら
日本政治家が日本民衆をけしかけて朝鮮人民間人を虐殺したことだと推測される
朝鮮人による放火殺人など根拠ないデマを日本民衆がそのまま信じた背景には
日本社会指導層の朝鮮歴史に対する捏造朝鮮人に対する卑下発言があった
地震当時日本警視庁が振り撤いた 不逞 鮮人に関する 散らし
内務省警報局長埼玉県内務部長の朝鮮人境界指令
序劣第8号大正 12年 9月 2日埼玉県内務部長軍政村長前
不逞 鮮人の暴動に関する
埼玉県内務部長が内務省から持って来た指令に基礎して埼玉県 内のゾングチォン駅長に
送った指令
内容
今度震災に東京にいる不穏な朝鮮人たちの盲動があってまたその間過激思想を持っている
無理社会主義者と連携して彼らの目的を果たそうと思うということを聞いたらその毒牙を
振り回すようだという心配がある
ここにゾングチォンの当局者は在郷軍人会消防隊青年台と一致協力してそれに対する境界に林して
もし有事時に速かに適当な方策を講ずるように急に準備しなければならない
内務省警報局長埼玉県内務部長の朝鮮人境界指令件は
日本政府が国民をけしかけて朝鮮人を虐殺した証拠になる
1923年末国会で 2人の国会議員が朝鮮人に対して謝罪しなければならないじゃないかと質問するが
当時 山本 受賞は調査中でありなさいと返事しただけ
日本政府は朝鮮人調査団の朝鮮人流体処理方法申し込みに対しても断っただけなく
朝鮮人虐殺の調査に対する (在東京罹災 朝鮮人臨時救済回解散など )活動も禁止してしまった
こんな結果で日本民衆たちは朝鮮人に対する偏見で汚染して行った
上の挿し絵は当時画家 竹久夢二 グリーン 1923年 9月 19日ミヤコ(都)新聞の挿し絵だ
子供達が軍人警察自警団役目を分けて朝鮮人子供役目をする子供を突いて殺すことを
真似っている
竹久夢二は 東京 災難 画信で次のように言っている
万だ君の顔は日本人ではないの顔はどうしても日本人ではなくなければならない子供が
二付加なの子供 万これをつかまえながらこんなに言う
郊外の子供達も自警団遊びを始めたの 万これを時でしよう
嫌いでそれでは私は 竹窓で突かれるんじゃないの
ではない私たちはただ真似ることじゃないの
餓鬼大将が 万人に敵にならなければ叩かれて死ぬと脅迫をしたから
万これは無理やりに敵になったし子供達は 万これが泣くまで殴った大人たちも軍人巡使真似を
して 棒をフィドルであり 万これを苦しめることを見た
地震災害で朝鮮人虐殺を日本政府が捏造操作隠蔽をしたから
朝鮮人虐殺問題は日本国内外でよく知られていなかった
日本を助けようというアメリカ人たち
当時文学家 永井荷風のおこるのを見よう
この日 東京 日日 新聞の夕刊を見たら
大阪のどの船場にいる児童保護所に集まった日本の子供達が朝鮮人子供が品物を
盗んだと言いながらその子供をつかまえて逆にぶら下げて殴った後布団で安くて踏んで
殺した記事がいた子供達は皆 10歳にならない子供達だった
しかしその子供達は警察署で刑事が 拷問をする方法が分かっていたしこれを行ったら
が何の事か
も布団を包んで踏んで殺すことは江戸時代デンマチォの監獄で罪囚たちが行ったのだ
これを今昭和時代子供達が分かっていることは何の事か ....ああ恐ろしい
1936年 4月 13日
自警団遊びはまだ進行中でありましょう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