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부산 동삼동 모래 무덤에서 일본 규슈 지방의 죠몬 토기가 발견되었고
약 5000년전으로 추정되는 쓰시마와 北규슈 유적지에서 한반도 계통의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었다
당시에는 국경이 없었으니까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야요이 시대라고 말하는 기원전 4세기경 일본 규슈 일대에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벼농사는 관개수로와 논을 만들어 기후에 따라 장기간의 집단 노동으로 수확해 얻는 고도의
기술이다 따라서 벼농사의 전파는 벼농사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전파되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벼농사의 원류는 중국 양쯔강 하류의 강남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 벼농사는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일본에 전해졌을까 ?
중국에서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說에 따르면
중국 강남지방에서 산동반도를 지나 란하 요하 압록강 청진강을 지나서 한반도 남부에 전해지고
정착된 벼농사는 다시 일본 규슈로 전해졌다는 이론이 되고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접 전해졌다는 說에 따르면
중국 남부에서 일본의 남쪽 크고 작은 섬들을 지나 규슈로 전해졌다는 것이 되는데
그러면 오키나와나 그 외 일본의 섬들에서 중국남부에서 海路를 따라 집단 移住한 사람들에 의한
벼농사의 유적지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중국 강남지방에서 일본 규슈로 직접 전파되었다는 주장이라면
당시의 항해술로 가능했을까요?
고대에 海路를 이용하려면 활발한 교류를 통한 풍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중국 남부와 죠몬시대 규슈를 잇는 공통된 문화가 거의 없으므로 이 주장은 별로
설득력 없다고 하겠습니다
왼쪽 일본 요시노 마을 야요이 초기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입니다
오른쪽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입니다
北九州 唐津灣 일대에 移住해 온 남한 無文 토기 人들의 취락지들과 거기에서 남한제의
토기 석기 청동기와 함께 탄화미가 발견되고 있다
즉 남한의 농경 청동기 人들이 신석기 만기 단계에 北九州로 건너 지금의 福崗 지방에서
稻作을시작하고 청동기 문화를 넓혔다
今川 유적지에서는 남한식 주거지에서 남한제 동촉 마제석촉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들은 경남 김해 지방에서 移住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이마가와 (今川) 유적의 발견은 청동기가 이미 야요이 초기에 한반도에서 들어간 것으로
입증되었다
1969年釜山東三洞砂墓で日本九州地方の縄文土器が発見されたし
約 5000年前に推定される対馬と 北九州遺跡地で韓半島系統の串紋土器が
発見された
当時には国境がなかったから韓半島と日本列島の人々が自由に往き来していた
証とできる
日本の彌生時代だと言うB.C. 4世紀頃日本九州一帯に稲作が始まった
稲作は潅漑水路と田を作って気候によって長期間の集団 労動で収穫して得る高度の
技術だしたがって稲作の電波は稲作技術を持った人々によって伝えたことだ
韓国と日本の稲作の源流は中国揚子江下流の江南地方と知られている
それでは 稲作はどんな経路を通じて日本に伝わっただろうか ?
中国から韓半島を経由して日本と伝わったという 説によれば
中国江南地方から山東半島を経ってランハ腰下鴨緑江チォングジンガングを経って韓半島南部に伝わって
定着された稲作はまた日本九州で伝わったという理論になって
中国で日本で直接伝わったという 説によれば
中国南部で日本の南側多様な島々を通って九州で伝わったということになるのに
それでは沖繩やその外日本の島々で中国南部で 海路に付いて集団 移住一人々に の一
稲作の遺跡地が発見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に 発見されなかったです
それでは中国江南地方から日本九州で直接伝えたという 主張なら
当時の航海術でできたんでしょうか?
古代に 海路を利用しようとすれば活発な交流を通じる豊かな辞書知識があると可能なことなのに
中国南部と縄文時代九州を引き継ぐ共通された文化がほとんどないのでこの主張は別に
説得力ないとします
左側日本吉野村彌生初期遺跡で掘り出した遺物です
右側慶南昌原茶壷里遺跡で掘り出した遺物です
北九州 唐津湾 一帯に 移住して来た南韓 無文 土器 人らの蝕落地たちとそこで南韓制の
土器石器青銅器とともに炭化米価発見されている
すなわち南韓の農耕青銅器 人らが新石器満期段階に 北九州で向こう今の 福崗 地方で
稲作乙時作して青銅器文化を広げた
今川 遺跡地では 南韓式住いで南韓制ドングチォック磨製石塩が発見されているし
これらは慶南のりして脂肪で 移住して来たことで見ている
が李馬加と (今川) 遺跡の発見は青銅器がもう彌生初期に韓半島で入って行ったことで
立証され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