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re:日本料理 - 飴

요리와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일본인들의 조선 기피증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 생각해서 소개한다.
料理と少し距離があるが日本人たちの朝鮮忌避症を見せてくれる良い事例だと思って紹介する.

 

  朝鮮飴(ちょうせんあめ)とは、熊本県の銘菓である。餅米と水飴と砂糖を独自の製法で捏ね合わせ、片栗粉を塗した求肥飴の一種である。食感は餅に近い。

16世紀、園田屋の開祖、園田武衛門により作られた当初は長生飴と呼ばれていたが、文禄・慶長の役での出兵の際、当時の城主加藤清正の軍はこれを携行して篭城中の兵糧として役立てた為、朝鮮飴と呼ぶ様になった。江戸時代中期までこれは藩の買い上げで、製法は管理されて市販が許されていなかった。代々の肥後藩主がこれを江戸幕府、朝廷への献上品、諸大名への贈答品として用いた。
当初は黒砂糖と玄米を使用した淡褐色の黒朝鮮飴しか無かったが、現在は白砂糖と精白米を用いた白朝鮮飴が大半を占めている。

조선엿이란, 쿠마모토현의 명과이다.떡미와 물엿과 설탕을 독자적인 제법으로 빚어 맞추어 녹말을 묻힌 한 求肥飴의 일종이다.먹을 때의 느낌은 떡에 가깝다.

16 세기, 소노다 가게의 개조, 소노다 타케시 에몬에 의해 만들어진 당초는 장생엿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문녹・게이쵸의 역으로의 출병때, 당시의 성주 가토 기요마사의 군은 이것을 휴대 해 농성중의 자금으로 해서 도움이 된 때문, 조선엿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되었다.에도시대 중기까지 이것은 번의 수매로, 제법은 관리되고 시판이 용서되지 않았었다.대대의 히고 지방 영주가 이것을 에도 막부, 조정에의 헌상품, 제영주에게의 증답품으로서 이용했다.
당초는 흑설탕과 현미를 사용한 담갈색의 흑조선엿 밖에 없었지만, 현재는 백설탕과 정백미를 이용한 흰색 조선엿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江戸時代以前には、飴といえば殆どが水あめであった。 それらは暗褐色の純度の低いものが多かった。 江戸時代になると米(もち米)と麦芽(大麦の芽)を使って、 それまでより純度の高い水あめを作る技術が発達した (米以外の穀物も色々と使われた。 今でも地方ごとの特産物として残っているものがある)。 また砂糖を混ぜて加熱することにより、固形の飴が作られるようになった (注1)。 砂糖を加えて加熱中に赤くなったものを冷ますと赤飴ができる。 冷却前に伸ばす作業を繰り返すと、気泡により白い飴ができあがる。
에도시대 이전에는, 엿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물엿이었. 그것들은 암갈색의 순도의 낮은 것이 많았다. 에도시대가 되면 미(찹쌀)와 맥아(보리의 싹)를 사용하고, 그것까지보다 순도의 비싼 물엿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다(미 이외의 곡물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지금도 지방마다의 특산물로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또 설탕을 혼합해 가열하는 것으로써, 고형의 엿이 만들어지게 되었다(주 1). 설탕을 더해 가열중에 붉어진 것을 식히면 적이가 생긴다. 냉각전에 늘리는 작업을 반복하면, 기포에 의해 흰 엿이 다된다.

各地の事例をみれば、砂糖が国内のすみずみまでに普及してゆくのは明治二七年(一八九四)の日清戦争後、日本が台湾を領有したのち、具体的には明治三三年に台湾総督府の要請で三井財閥が台湾製糖株式会社を設立して以降のことだ。その後、明治製糖・大日本製糖などがあいついで進出した。
 日清戦争が「砂糖戦争」だったといえば、豊臣秀吉の朝鮮出兵を「やきもの戦争」とよぶのと同様の乱暴なきめつけとなるが、結果として砂糖の普及につながったことは事実である。いずれにせよ、大多数の日本人と砂糖との本格的なかかわりは、たかだか近代の百年間にすぎない。砂糖にかんする民俗や信仰がほとんどないことも、これをうらづけている。
각지의 사례를 보면, 설탕이 국내의 구석구석까지 보급해 가는 것은 메이지27년(1894)의 청일 전쟁 후, 일본이 대만을 영유 한 후, 구체적으로는 메이지3삼년에 대만 총독부의 요청으로 가 대만 제당 주식회사를 설립한 이후의 일이다.그 후, 메이지 제당・다이니혼 제당등이 연달아 진출했다.
 청일 전쟁이「설탕 전쟁」(이었)였다고 하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한국 출병을「구이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난폭한 단정해되지만, 결과적으로 설탕의 보급으로 연결된 것은 사실이다.어쨌든, 대다수의 일본인과 설탕과의 본격적인 관련은, 고작 근대의 백년간에 지나지 않는다.설탕에 관 하는 민속이나 신앙이 거의 없는 것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唐人飴売りの姿をよく見ると、その多くは中国人風ではない。鳥の尾羽の帽子や衣装の特徴は、むしろ朝鮮通信使のそれである。江戸期を通じて一二回におよぶ通信使の来日は、鎖国下の日本に大きな文化的影響をあたえたことが知られており、通信使の装束を模した行事や品々は、その通過地にとどまらず、ひろく各地にのこる。
중국인  엿장사의 모습을 잘 보면, 그 많게는 중국인풍은 아니다.새의 새의 깃과 꽁지의 모자나 의상의 특징은, 오히려 조선 통신사의 그래서 있다.에도기를 통해서 일이회에 미치는 통신사의 일본 방문은, 쇄국하의 일본에 큰 문화적 영향을 내렸던 것이 알려져 있어 통신사의 의복을 본뜬 행사나 물건들은, 그 통과지에 머무르지 않고, 넓게 각지에 남는다.


三官屋の三官飴について『小倉市誌』では三官は即ち三韓にして、朝鮮人より製法を傳へたりといふとあるが、前述のごとく、すでに延宝年間には江戸の芝において「陳三官唐飴」が売られており、朝鮮起源説は考えがたい
三官 가게의 三官엿에 대해小倉市誌에서는 三官은 三韓이다.  한국인에게 제법을 전해 받았다. 라고 하지만, 전술과 같이, 벌써 延宝年間에는 에도에「陳三官唐飴」이 팔리고 있어 조선 기원설은 생각하기 어렵다.


英一蝶の『一蝶画譜』に登場する「唐人飴売り」は、先端に房飾りのある尖った帽子を被り、腰にフリルの付いた短い上着にズボンを履き、手には軍配状の団扇を持つという朝鮮人ともポルトガル人ともとれる奇妙な「唐人」の格好をしいずれにせよ近世には日本古来の糯米・麦芽を原料とする水飴に漢方の原料である地黄を加え、煉り固めるというおそらくは中世以来の唐人がもたらした中国系の技術を用いた飴と、長崎来航のポルトガル人により招来された南蛮菓子の系譜に連なる砂糖を原料とする飴との二種の堅飴が「唐人飴」「唐飴」として存在したといえよう。
英一蝶의「일접화보」에 등장하는「唐人飴売り」은, 첨단에 방장식이 있는 날카로워진 모자를 써, 허리에 프릴이 붙은 짧은 윗도리에 바지를 신어, 손에는 군배장의 부채를 갖는다고 하는 한국인과도 포르투갈인과도 취할 수 있는 기묘한「외국인 」의 모습을 해 어쨌든 근세에는 일본 고래의 나미・맥아를 원료로 하는 물엿에 한방의 원료인 지황을 더해 련굳힌다고 하는 어쩌면 중세 이래의 唐人이 가져온 中国系의 기술을 이용한 엿과 나가사키 래항의 포르투갈인에 의해 초래 된 남만 과자의 계보에 늘어서는 설탕을 원료로 하는 엿과의 2종의 엿이「唐人 엿」「외국엿」로서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자.

http://www.kitakyu-u.ac.jp/gkj/files/bh007401yk.pdf


近世における飴の製法と三官飴   八百啓介

八百啓介 이 사람은 상기 논문의 내용에 조선으로 부터 엿만드는 방법을 전해 받았다는 사실이 무척 아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조선기원설에 대해 부인하는 논리가 정연하지 못하다.

八百啓介 この人は上記論文の内容に朝鮮から飴 作る方法を伝えて受けたという事実がすごく痛く感じられたようだ.

朝鮮祈願説に対して否認する論理が整然としていることができない.


여기까지 유심히 살펴 보면 朝鮮飴는 에도 시대 이전에 이미 일본에서 만들고 있었다는 위키의 소개와 에도시대 이후에 엿이 만들어 졌는데 중국이나 포르투칼로 부터 전해졌다는 주장이 양립한다.

ここまで注意深くよく見れば 朝鮮飴は江戸時代以前にもう日本で作るあったというウィキの紹介と江戸時代以後に飴が作ったが中国やポルトガルから伝わったという主張が両立する.


朝鮮飴를 임진왜란 출병시 비상식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 갔다는 황당한 주장은 그 당시 조선시대에 이런 엿이 없었다면 정당화 될 것이다. 에도 시대 이전 한국에 엿이 있었을까?

조금 조사해 보자.

朝鮮飴を壬辰の乱出兵の時非常食糧で使うために持って行ったという荒唐な主張はその頃朝鮮時代にこんな飴がなかったら正当化されるでしょう. 江戸時代以前韓国に飴があっただろうか?

少し調査して見よう.

 

箕山  김준근(金俊根)

우리나라 엿의 유래는 문헌상으로 東國輿地勝覽, 고려사 등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엿이 있었으며 감주나 음식의 조미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나라 문화의 유입과 함께 삼국시대이후 상류계층의 감미료로 사용된 식품으로 엿을 나타내는 "餳"자는 과자류를 말하며 유밀과와 함께 불교의 전형적인 음식으로 발달해 왔다고 한다.
我が国の飴の来由は文献上に 東国輿地勝覧, 高麗史などによれば高麗時代に飴があったし甘酒や食べ物の調味料で使われたと言う. しかし唐文化の流入とともに三国時代以後上流階級の甘味料で使われた食品で飴を現わす "餳"字はお菓子類を言って油蜜果とともに仏教の典型的な食べ物で発達して来たと言う.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행당맥락(杏餳麥酪)"이라 하여 당은 엿이고 락은 감주를 말하며, 쌀엿의 제조방법에 대한 기록은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의 (1815)에 광주(光州)의 흰엿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으며,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등 한의학 서적에는 "이당(飴糖)"이라 하여 엿의 특징과 성질, 사용처가 기록되어 있고, 조선만화(1909)에는 엿을 파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高麗時代 李奎報の東国輿地勝覧に "杏餳麥酪"といって餳は飴だ酪は甘酒を言って, 米で作られた飴の製造方法に対する記録は憑虚閣李氏の (1815)に光州の白飴作り方が記録されるあり, 許浚の東医宝監,李時珍の本草綱目, 郷薬集成方 など漢方医学書籍には飴糖といって飴の特徴と性質, 使用先が記録されるある, 朝鮮マンガ(1909)には飴を売る光景が描写されるある.

백산엿(白饊飴)

세종 11권,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1월 13일(병자) 4번째기사
禮曹啓: “進上物目內
예조에서 각도 진상 물품의 허실에 대해 아뢰다

白饊飴糖, 惟産於全州
백산(白饊)엿은 오직 전주(全州)에서만 만드는 것인데,

世祖 33卷, 10年(1464 甲申) 8年) 4月 20日(壬寅) 5번째기사
백관이 전문을 올려 감로를 하례하다
百官進箋賀甘露

糖飴羞其甘美, 醴漿讓其潔芳。
사탕과 엿도 그 감미(甘美)에 뒤지고, 단술과 장도 그 깨끗한 방향(芳香)에 뒤집니다.


일본 엿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은 연립방정식의 해가 성립한다.

日本飴の歴史を手探りする見れば次のような連立方程式の解が成り立つ.


福岡県:九州地方北部의 県:三官飴--->三韓飴--->朝鮮飴
熊本県:九州地方中央의 県:朝鮮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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