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행주대첩

 

지휘관 비교: 권율 VS 우키다 히데이에
병력 비교: 2,300명 VS 30,000명
피해 상황: 일본측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

 

상세내용: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로서 전라도순찰사 이광(李洸), 방어사 곽영(郭嶸)과 함께 서울을 회복하기 위해 북진했다. 용인에서 일본군과 마주치자 권율은 우선 임진나루를 확보할 것을 건의했으나 묵살되었고, 결국 일본군의 매복에 걸려 패전했다. 이후 광주에 되돌아갔다가 전라좌도도절제사로 임명되어 금산군 이치(梨峙)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의 정예부대를 크게 이기고 호남을 지켰다. 이 공으로 전라도순찰사로 승진했다. 이해 12월 병마절도사 선거이(宣居怡)를 부사령관으로 삼아 1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로 진격하다가 수원 독왕산성(禿旺山城)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일본군의 보급로를 끊었다.

이 소식을 들은 왜장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가 대군을 보내 성을 공격했으나, 수비를 굳게 하면서 유격전술로 맞서 이를 격퇴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은 서울에 고립되었다. 1593년(선조 26) 2월에 선거이에게 5,000의 병력을 나눠주어 시흥 금주산(衿州山)에 진을 쳐 도성의 왜적을 견제하게 하고, 자신은 관군 2,300명과 처영(處英)의 승병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 주둔했다. 이때 왜장 우키다가 지휘하는 3만의 적군이 7대로 나뉘어 맹렬히 공격했으나, 관민이 일체가 되어 싸워 적을 격퇴하고 크게 이겼다. 조선 군사들은 육박전을 벌여 왜군을 마구 쓰러뜨렸다. 이치령에서 내려다보이는 80리 들판에는 왜군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그 수는 3만명에 가까웠고  살아남 은 왜군은 1천여명 밖에 안 되었다. 조선 군사는 선봉장 황진과, 육박전을 지휘하던 정담 등의 장수들과 수십 명의 전사자를 내었을 뿐이다. 권율 장군은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재를 올려주었다. 때는 1592년 7월이므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 대첩을 이루었을 무렵이다.


朝鮮軍 2300人 VS 倭軍 30000 兵力けんか

幸州大捷

 

指揮官比較: 権慄 VS ウキだヒデイに
兵力比較: 2,300人 VS 30,000人
被害状況: 日本側ほとんど全滅に近い被害

 

詳細内容: 1592年壬辰の乱が起きると光州牧師として全羅道巡察使李光(李洸), 防禦使グァックヤング(郭〓)と一緒にソウルを回復するために北進した. 竜仁にで日本軍とでくわすと権慄はまず壬辰渡り場を確保することを建議したが黙殺されたし, 結局日本軍の待ち伏せにかかって敗戦した. 以後光州に帰ってからゾンラズァドドゾルゼサに任命されて錦山郡理(梨峙)でゴバヤカとダカカなの[小早川隆景]の精鋭部隊を大きく勝って湖南を守った. この球で全羅道巡察使に昇進した. 理解 12月兵馬節度使宣居怡(宣居怡)を副指令官にして 1万名余の軍事を従えてソウルで進撃している途中水原ドックワングサンソング(禿旺山城)に堅固な陣地を構築して日本軍の補給路を切った.

が消息を聞いた倭将ウキだヒデイに[宇喜多秀家]が大軍を送って城を攻撃したが, 守備を固くしながら遊撃戦術で対立してこれを撃退した. この戦闘で日本軍はソウルに孤立した. 1593年(先祖 26) 2月に宣居怡に 5,000の兵力を配って始興金主山(衿州山)に陣を張って都城の外敵を牽制するようにして, 自分は官軍 2,300人とチォヤング(処英)義僧兵 500人の兵力を導いて漢江を渡って幸州山城に駐屯した. この時倭将ウキに指揮する 3万の敵軍が 7台に分けられて猛烈に攻撃したが, 官民が一体になって争って少ない撃退して大きく勝った. 朝鮮軍事たちは肉薄戦をして倭軍をでたらめに倒した. 理領で見下ろされる 80里野原には倭軍たちの死骸で覆い被せた. その数は 3万名に近かったし  生き残った倭軍は 1千名余しかならなかった. 朝鮮軍事は急先ぽう黄塵と, 肉薄戦を指揮した鼎談などの長寿たちと数十人の戦死者を出しただけだ. 権慄将軍は倭軍と戦っている途中戦死した兵士らの魂を慰める灰をあげてくれた. 時は 1592年 7月なので, 李舜臣将軍が閑散大勝を成した頃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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