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설립된 배제 학당은, H.G.아펜젤러(1858∼1902)의 지원으로 설립된 사립 기관이며
이것은 상식과도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아프리카에 슈바이처가 의료 기관을 설립한 것을 보고,아프리카는 훌륭한 의료 선진국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19세기 학교는 극소수였으며,물론 거기에서 배제학당은 조선 최초의 학교였습니다.
이것을 보고,조선의 근대화 교육은 훌륭했다 ! 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우선, 관련된 글들을 몇가지 나열합니다.
...成均館 四學 鄕校 書院 書堂 명색이 전통 초등교육기관이지만 서당은 양반자제 전유물 千字文 끼고 서당 오르는 학동들 부러워 샘내는 눈길도...
김구(kim goo)의 자서전 ↓
이 말을 듣고 나는 서당에 보내 달라고 아버님께 졸랐다. 아버님은 주저하셨다. 서당에서는 상놈을 잘 받지도 않거니와 혹 받아 주더라도 멸시만 당할 터이니 그 꼴을 보기도 싫다고 하셨다. 결국 아버님은 문중과 인근의 아이들을 몇 명 모아 서당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주기로 하고 이생원이라는 선생님을 모셔 왔다. 그는 양반이지만 글이 넉넉지 못하여 우리 같은 ‘상놈의 선생’이 된 것이다.
그 밖의 인용구 ↓
...주로 양반 자제들이 서당이나 공부하는 곳에서 제한되게 했기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고 한자보다 한글이 주로 사용되면서 함께 사라진 놀이로 보인다...
...그 자신도 어린 시절 서당에서 글공부하며 양반사대부가의 아이들에게 차별의 서러움을 겪었고...
물론 저 사진에도 이미 결혼을 해서, 양반의 갓을 쓴 아이가 보이는군요.
제 생각엔 서당이 모든 계층을 위한 교육시설이였다면,조선의 문맹률은 그렇게 낮지 않았을 것입니다.서당은 양반의 전유물이였고,교육은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1885年設立された排除学堂は, H.G.アペンゼラー(1858〜1902)の支援に設立された私立機関で
これは常識とも同じ事です.
これはまるで,アフリカにシュバイツァーが医療機関を設立したことを報告,アフリカは立派な医療先進国だ,と言うことのような脈絡です.
19世紀学校は極少数だったし,もちろんそこで排除学堂は朝鮮 最初の学校でした.
これを報告,朝鮮の近代化教育は立派だった ! と言えますか?
まず, 係わる文等をいくつ並べます.
...成均館 四学 郷校 書院 書堂 名色が伝統小教育機関だが 寺小屋は 両班自制専有物 千字文 立ち込めて 寺小屋 上がる学童たち羨ましくて妬む雪道も...
キムク(kim goo)の自敍伝 ↓
が言葉を聞き終わる寺小屋に送ってくれとお父さんにせがんだ. お父さんはためらった. 寺小屋では常民をよく受けるのもアンゴニともしか受けてくれても蔑視だけあうはずだからその体たらくを見るのも嫌いだと言った. 結局お父さんは門中と隣近の子供達を何人集めて寺小屋を新たにするか作った. 受講料で米と麦を与える事にして利生院という先生を連れられた. 彼は両班だが文がタップリ誌できなくて私たちみたいな ‘常民の先生’になったのだ.
その外の引用句 ↓
...主に両班自制たちが寺小屋や勉強する所で制限されるようにしたから広く知られなかったし漢字よりハングルが主に使われながら一緒に消えた遊びで見える...
...その自分も幼い時代 寺小屋から勉強して 両班事大付加の子供達に差別の悲しさを経験したし...
もちろんあの写真にももう結婚をして, 両班の冠を使った子供が見えますね.
私の考えには寺小屋がすべての階層のための教育施設だったら,朝鮮の文盲率はそんなに低くなかったはずです.寺小屋は両班の専有物だったし,教育は平等ではなかったで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