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古代 국가 형성 초기에 야요이 시대를 열었던 도래인이 한국계가 아니라
중국인이다 라고 믿고 있는 일본인이 있는것 같다
古代부터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일때 한국은 단순한 경유지 또는 중국으로 부터 직접
전파를 강조 하는데
이런 역사 논리로 해석해 볼까요 ?
古代 중국인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일본으로 이동했을까?
베이징 -롼허江-山海關-鴨綠江-淸川江-大同江-
漢江에 도착한다
태백 산맥의 험한 산을 넘어서 洛東江 까지 간다
낙동강 하류 부산에 도착한다
베이징에서 부산까지 이 길을 무슨 수단을 이용해 갔나
걸어서 갔을까요?
가는 도중 쉬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합니다
1日도 쉬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마라톤으로 베이징에서 부산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馬를 이용하거나 수레를 이용했다면 馬 역시 음식과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음식과 휴식을 제공 받으려면 경제적 활동이 있어야겠지요?
인간의 기본적 본능을 모두 취소하고 베이징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습니까?
그래서 중국인이 부산에 왔다
일본에 가야 한다
일본에 가기 위해 역시 1日도 쉬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한다
배가 필요하다 배는 어떻게 마련할까?
인심 좋은 부산 사람이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고 생각해도
베이징에서 부산까지 와서 1日도 쉬지 않고 곧 바로 일본으로 떠났을까?
그럼 바닷길 ?
古代에 海路를 이용 하려면 풍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한다
어느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날 사람을 모집해 단체로 일본으로 건너는 그런?
古代에 있어 문화 전파는 사람과 함께 전파 되었다
전파된 문화가 全 국토로 퍼지고 그 문화가 각 지역의 특징으로 지역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국가의 독자적 문화로 형성 되려면 오랜 세월이 소요 된다 古代는 더욱 그렇다
학자들은 야요이 시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 약 600년 동안의 변화를 보면
죠몬 시대 1000년에 1회 변화가 있었다면 야요이 시대는 100년에 1회 변화가 있었다 라고 한다
그만큼 古代 도래인이 일본의 古代국가 형성에 기여한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야요이 초기 유적에서 발견 되는 한반도 관련 유적과 유물은
분명 6세기 일본의 중심적 문화를 이끌었던 세력 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주 보았겠지만
왼쪽 倭國人 오른쪽 신라인
6세기 그림 이지만 현대 일본인의 얼굴은 차라리 오른쪽 신라인을 닮고 있다
새로운 야요이 시대 문화가 죠몬 문화를 압도하고 주변으로 보내 버린 것이다
7세기 분명하게 나타나는 일본의 문화는
도래인의 문화를 계승했는지 죠몬 문화를 계승했는지 판단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죠몬은 농경 민족이 아니었다
야요이 초기 벼농사 유적으로 현격하게 차이가 있는 문화적 변화를 주변화 된 非주류
요소에 집중해 해석 하고 일본의 역사를 묻는 것은 모순이다
日本の 古代 国家形成初期に彌生時代を開いた到来人が韓国係ではなく
中国人だと信じている日本人がいるようだ
古代から大陸の文化を受け入れる時韓国は単純な経由地または中国にから直接
電波を強調するのに
こんな歴史論理で解釈して見ましょうか ?
古代 中国人がどんな経路を通じて日本に移動しただろうか?
北京 -ルァンホ江-山海関-鴨緑江-清川江-大同江-
漢江に到着する
太白山脈の険しい山を超えて 洛東江 まで行く
洛東江下流釜山に到着する
北京から釜山までこの汲む何の手段を利用して行ったか
歩いて行ったんでしょうか?
行く途中休まなければならないし眠らなければならないしご飯を食べなければなりません
1日も休まないで ご飯も食べないでマラソンで北京から釜山まで駆け付けることができるか?
馬を利用するとか車を利用したら 馬 も食べ物と休息を提供しなければならない
食べ物と休息を提供受けようとすれば経済的活動があるべきでしょう?
人間の基本的 本能を皆取り消して北京から釜山まで行くことができますか?
それで中国人が釜山へ来た
日本へ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日本へ行くためにも 1日も休まないでご飯も食べないで日本に発つ準備をする
お腹が必要だ滲むどんなに用意しようか?
人心良い釜山人が無料で提供してくれたと思っても
北京から釜山まで来て 1日も休まないですぐすぐ日本に発っただろうか?
それでは海岸道路 ?
古代に 海路を利用しようとすれば豊かな辞書知識がなければならない
ある日急に
日本に発つ人を募集して団体で日本で渡るそんな?
古代において文化伝播は人と一緒に伝えた
伝えた文化が 全 国土で広がってその文化が各地域の特徴で地域の文化として
席を取って国家の独自的文化で形成になろうとすれば長年の歳月が必要となる 古代はもっとそうだ
学者たちは彌生時代B.C. 3世紀で紀元後 3世紀約 600年の間の変化を見れば
縄文時代 1000年に 1回変化があったら彌生時代は 100年に 1回変化があっただと言う
あれほど 古代 到来人が日本の 古代国家形成に寄与した影響力はすごいことだった
彌生初期遺跡で発見される韓半島関連遺跡と遺物は
確かに 6世紀日本の中心的文化を導いた勢力と言っている
よく見たが
左側 倭国人 右側新羅である
6世紀絵であるが現代日本人の顔はかえって右側新羅人に似ていている
新しい彌生時代文化が縄文文化を圧倒して周辺に行かせてしまったことだ
7世紀明らかに現われる日本の文化は
到来人の文化を受け継いだのか 縄文文化を受け継いだのか判断しなければならない
重要なことは縄文は農耕民族ではなかった
彌生初期稲作遺跡で格段に差がある文化的変化を周辺化になった 非主類
要素に集中して解釈して日本の歴史を問うことは矛盾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