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는 한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의 산에 의지하여 거하니, 무릇 백여개 국이나 되었다.[”驛”은 마땅히”譯(통역하다)”이니 위지에도 “譯”이라 한다.] “무제”가 “조선”을 멸하자 사자를 “한”으로 30여개 국이나 통하였다.
”건무중원” 이년 “왜노국”이 받들어 조공하고 하례하였다. 사자는 스스로를 “대부”라 칭하니 “일본” 제일 남쪽지역이다. “원무” 가 인수를 주어 하례하였다. “안제” “영초” 원년 일본왕 “수승”등이 백성 백육십인을 바치며 만나기를 청하였다.
(후한서)
”경초”이년 유월 “왜여왕”이 대부 “난승미”등을 보내어 군에 이르러, 천자에게 조헌하기를 구하자 태수 “유하”가 서울에 사신을 보냈다. 그해 십이월 조서를 내려 “왜여왕”에게 말하길 ” “친위왜왕 비미호” “대방태수 유하”가 당신이의 대부 “난승미”와 다음사신”도시우리”를 보내와 남자 4명과 여자 육명, 포 두필이장을 받치니 이에 이르렀다. 당신이 있는 곳이 먼데도,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치니 당신의 충효가 이와 같아, 내가 슬프기까지 하다. 이제 당신을 “친위왜왕”을 삼는다. 그리고 금으로 만든 인과 붉은 빛 인끈을 봉해서 “대방태수” 에게 보내는 것이니, 당신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힘써 효도하고 잘 순종하도록 하라. 당신이 보낸 사신 “난승미”와 “도시우리”는 길이 먼데 수고가 많았기로, 이제 “난승미”를 솔선중랑장을 삼고, “우리”를 솔선교위를 삼아 은으로 만든 인과 푸른 인끈을 주고 불러 보고 위로한 다음 돌려 보내는 바이다.
(삼국지)
일본”은 “고려”의 동남쪽 큰 바다중에 있다. 대대로 공직을 받았다. “고조 영초”이년 고하여 말하길 ” “왜찬”만리를 닦아 조공하니, 멀지만 그 정성이 가마와 같다. 제수함이 마땅하다.” “태조 원가” 이년, “찬”이 또한 사마 “조달”을 보내어 표들 받들고, 방물을 받쳤다. “찬”이 죽고, 동생 “진”이 니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받쳤다. (송서)
오래부터 백여개의 소국이 서로 접해있는데, “위”때에 이르러 삼십국이 통하여 좋게 지내고 있다. 선제가 공손씨를 평정하고(??) 그 여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대방에 이르러 조견하였다. 그 후로 조공이 끊이질 않았다. “문제”가 제상이 되어도 또한 여러번 이르렀다. 태시초에 사신과 통역관을 보내어 공물을 받쳤다.
(진서 동이전)
”위 경초” 삼년 “공손무의”를 주살한 후에 “비미호”가 조공을 받쳤다. “위주”가 금인과 자수를 내렸다. “정시”중에 “비미호”가 죽자 다시 남자가 왕에 섰다. 나라에서 복종하지 않더니 다시 서로를 죽이자 “비미호”의 딸 “대여”를 왕위로 삼았다. 그 후 다시 남자 왕이 서고, 중국에서 작위를 받았다. “강”의 좌측에 “진, 송, 제, 양”이 서고 조공이 끊이질 않았다.
”대업”삼년, 그 왕 “다리사비고”가 조공을 받쳤다. 사신이 말하길 바다 서쪽의 보살인 천자께서 불법을 일으키니 고로 조배합니다. 아울러 승려 수십명을 보내어 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했다. 국서에 이르기를 태양이 나오는 곳의 천자가 태양이 지는 곳의 천자에게 서를 보낸다. 걱정이 없으니.... 운운하니 제가 보고 기뻐하지 않자. 홍려경이 이르러 말하길 만이의 서에는 예가 없는 것이 있다. 다시는 가르침을 받지 말라. 하였다.
다음해 문림랑 “배세청”을 “일본”의 사신으로 보냈는데 “백제”를 건너서 “죽도”에 이르러, 남쪽으로 “탐라국”을 향하고, “도사마국”에 이르러 멀리 큰 바다의 가운데에 있었다. 또 동으로 “일지국”에 이르고, “죽사국”에 이르렀다. 또 동으로 “진왕국”에 이르렀는데, 사람들은 “중국인”이니, “이주”로 삼자 능히 밝지 않아 의심하였다. 또 십여국을 지나 바닷가에 이르렀다. 스스로 “죽사국”의 동쪽으로 모두 “왜”를 따르고 있었다. “왜왕”이 소덕 “아배대”와 수백인을 보내어 의장을 베풀고 북과 각을 불며 맞이 하였다. 십일 후 또 대례 “가다비”와 이백여 기병을 보내어 성밖에서 힘쓰니, 이미 그 도읍에 이르러 왕이 “세청”을 맞았다. 와서 방물을 받쳤다. 이후로는 이르지 않았다.
(북사 열전)
”진”“안제”때에 “왜왕”“찬”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송”“무제”“영초”이년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 말하길, “왜”“찬”은 먼 정성이 가마와 같이 뜨거워 가히 제수한다. “무제”“원가”이년 “찬”이 또 사마 “조달”을 보내어 표를 받들어 방물을 받쳤다. “찬”이 죽자, 아주 “진”이 섰는데, 사신을 보내와 공물을 받쳤다.
(남사 열전)
조공바치는라 정신없는 일본 중원의 패자가 바뀔때마다 조공
그것도 고대에는 바칠게 없어 사람을 바침
なぜは漢方医東南の方大きい海の中ある. 島の山に頼ってことしたら, 凡そ百あまりのものお吸物もなった.[¥"駅¥"は適切に¥"訳(通訳する)¥"だからウィジにも ¥"訳¥"という.] ¥"無題¥"が ¥"朝鮮¥"を滅ぼすと獅子を ¥"たいてい¥"で 30余個お吸物や通じた.
¥"ゴンムズングワン¥" 2年 ¥"ウェノ−グック¥"が奉じて朝貢して祝賀会こんにちはだった. 買おうという自らを ¥"貸し付け¥"だと称したら ¥"倭国¥" 一番南側地域だ. ¥"円舞¥" が引受を与えて祝賀会こんにちはだった. ¥"アンゼ¥" ¥"霊草¥" 元年 倭国王 ¥"首僧¥"などが民百六十人を捧げながら会うのを請じた.
(後漢書)
¥"勁草¥"2年六月 ¥"ウェヨワング¥"が貸し付け ¥"ナンスングミ¥"などを送って軍に至って, 天子に朝憲するのを求めるとテス ¥"柳河¥"がソウルに使臣を送った. その年十二月調書を下げて ¥"ウェヨワング¥"に言うのを ¥" ¥"親衛倭王非Miho¥" ¥"大房太守柳河¥"があなた異意貸し付け ¥"ナンスングミ¥"と次使臣¥"都市私たち¥"を送って 男 4人と女ユックミョング, 砲ドピルイザングを差したらここにのぼった. あなたのいる所が遠いのに, 使臣を送って供え物を差したらあなたの忠孝がこれと同じで, 私がスルプギまでする. もうあなたを ¥"親衛倭王¥"をする. そして金で作った因果赤い光インクンを封じて ¥"大房太守¥" に送ることだから, あなたは民をよく治めて力をつくして親孝行してよく順従するようにしなさい. あなたが送った使臣 ¥"ナンスングミ¥"と ¥"都市私たち¥"は道が遠いのに手数がマンアッギで, 今 ¥"ナンスングミ¥"を率先チュンラン場を三考, ¥"私たち¥"を率先教委をして銀で作った因果青いインクンを与えて呼んで見て慰めた後返すところだ.
(三国志)
倭国¥"は ¥"高麗¥"の東南の方大きい海中にある. 代代に公職を受けた. ¥"高まり霊草¥"2年告げて言うのを ¥"ウェチァン¥"万里を磨いて朝貢したら, 遠いがその真心がお御輿のようだ. 除数することが当然だ. ¥"太祖原価¥" 2年, ¥"おかず¥"がまた司馬 ¥"調逹¥"を送って切符たち奉じて, 小間物を差した. ¥"おかず¥"が死んで, 弟(妹) ¥"チン¥"がお前使臣を送って供え物を差した. (ソングで)
長くから百あまりのものの小菊がお互いに接しているのに, ¥"上¥"時に至って三十国が通じて良く過ごしている. 先制が公孫さんを平定して(??) その女王が使臣を派遣して大房に至って早見こんにちはだった. その後で朝貢が絶えなかった. ¥"問題¥"が除喪になってもまた何回のぼった. 太始初に使臣と通訳官を送って供え物を差した.
(珍書東夷伝)
¥"上の勁草¥" 三年 ¥"公孫無義¥"を誅殺した後に ¥"非Miho¥"が朝貢を差した. ¥"主¥"が金印と自首を下げた. ¥"定時¥"中に ¥"非Miho¥"が死ぬとまた男が王に立った. 国で従わなかったのにまたお互いを殺そう ¥"非Miho¥"の娘 ¥"貸し下げ¥"を王位にした. その後また男王が書庫, 中国で作為を受けた. ¥"川¥"の左側に ¥"チン, ソング, 私の, 羊¥"が書庫朝貢が絶えなかった.
¥"大業¥"三年, その王 ¥"足私費で¥"が朝貢を差した. 使臣が言うのを海西の方の菩薩である天子が不法を起こしたらゆえにゾベします. 同時に僧侶数十人を送って不法を教えてください. した. 国書に早いのを太陽が出る所の天子が太陽が沈む所の天子に西を送る. 心配がないの.... 話したら私が見て喜ばないで. ホングリョギョングがのぼって言うのをだけがの西には例のないことがある. 二度と教えることを受けないでね. した.
翌年ムンリムラング ¥"ベセチォング¥"を ¥"倭国¥"の使臣に送ったが ¥"百済¥"を渡って ¥"竹刀¥"に至って, 南に ¥"耽羅国¥"を向けて, ¥"ドサマグック¥"に至って遠く大きい海の中にあった. また東で ¥"日誌国¥"に至って, ¥"竹糸国¥"に至った. また東で ¥"濃い王国¥"に至ったが, 人々は ¥"中国人¥"だから, ¥"移住¥"にすると充分に明るくなくて疑った. またシブヨグックを経って海辺に至った. 自ら ¥"竹糸国¥"の東に皆 ¥"なぜ¥"に付いていた. ¥"倭王¥"がソドック ¥"アベデ¥"と数百人を送って議長を施して北と各を吹きながら迎えた. 十日後また大礼 ¥"仮多肥¥"と李白で騎兵を送って城外で力をつくしたら, もうその都邑に至って王が ¥"セチォング¥"を当たった. 来て小間物を差した. 以後では早くなかった.
(ブックサ熱戦)
¥"チン¥"¥"アンゼ¥"時に ¥"倭王¥"¥"おかず¥"が使臣を送って朝貢こんにちはだった. ¥"ソング¥"¥"無題¥"¥"霊草¥"李年に至って調書を下げて言うのを, ¥"なぜ¥"¥"おかず¥"は遠い真心がお御輿と同じく熱くて優に除数する. ¥"無題¥"¥"原価¥"2年 ¥"おかず¥"がまた司馬 ¥"調逹¥"を送って切符を奉じて小間物を差した. ¥"おかず¥"が死ぬと, 阿洲 ¥"チン¥"が立ったが, 使臣を送って供え物を差した.
(ナムサ熱戦)
ゾゴングバチヌンラ気が抜ける日本中原の敗者が変わる度に朝貢
それも古代には捧げるのがなくて人を捧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