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이제 우리는 일본서기를 제외한 제한적인 자료에서
실제 일본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추론했습니다

이것을 하기 위한 궁극적인 목적은 후지이 사다모토의 표현,
실제 열도의 역사가 마한 진한에서 시작된 것을 안 이후에 일본서기
고사기를 읽어야 비로소 읽었다 할 수 있다는 그 표현대로 일본서기
고사기를 이해하기 위한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일본서기 고사기의 위작 체계를 그림으로
표현해본 것인데요.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일본서기 고사기를
읽을 때에 僞史 창작자들인 記紀 저자들이 만들어둔 인위적인
시계열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의미의 열도 역사의 시작은 연오랑 세오녀라고 불리던
세력이 개척했을 열도의 신라에 고구려를 제압하면서 전성기를
누렸던 백제 근초고왕 근구수왕 시기에 근구수왕의 아들을
열도 신라의 후왕으로 파견하는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백제인은 본국 백제보다는 자신이 통치하던 담로의
민중들의 생존 자체를 중요시했던 인물로 보여집니다.

고구려 전쟁에 부역하던 열도의 신라인들 편에 선것으로
보입니다. 본국 백제의 입장에서는 배신자라고 보여질 수도 있는
인물.. 열도 신라인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감사하고 섬겨야
할 인물 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열도 신라는 광개토대왕의 남하로 백제가 아닌
가야의 속국이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413년 고구려와 倭는 중국에 조공하러 가는데 倭는 스스로 고구려의
하위 국가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 비문에 남겨진
安羅人을 반도 남부 ( 혹은 열도?)에 배치했다는 비문 기록..

( marich님 큐슈가 남북을 경계로 신라 유물과 백제 유물이 나온다는 기록
  고고이 산성 관련 자료를 보심은 어떨까 합니다. 저 산성.. 어떻게 보아도
  고구려 산성이라고 보여집니다만 )

그리고 열도 신라가 가야의 속국이 된 이후 이 열도의 신라왕이 된 백제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시 우리가 記紀를 올바로 읽어야 알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이나믹한 역사는 시계열 상으로보면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닙니다
369년과 고구려가 倭을 자신의 하위 국가로 중국에 인식시킨 413년까지 불과 50년 남짓 ...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 했듯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각각의 사건도
신라인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 백제인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
각각 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僞史를 만든 사람들은 이 각각의 입장에서 쓰여진 기록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반도의 史料들도 물론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신화 시대부터 실제 역사 시대까지 여러 시간적 공간을
만든 후에 분산시켜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가공의
천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실수도 합니다 w
여기에 나라가 있는가? 라고 神이 질문하는 형태의 신화는 실수로
신화 시대가 아닌 역사 시대에 景行記에 반복 기록되기도 합니다
장례식에 찾아 갔는데 죽은 사람과 닮아서 유족들이 보고 ”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온 것 같다” 라고 하니까 화를 냈다는 이야기도 신화 시대
역시 시대 반복 기록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이나믹하고 박진감 넘치지만 매우 짧았던 역사를 여러 시대로
분산하다 보니까 주인공들의 생존 연령이 120살입니다.

그리고 일본武尊의 경우 죽은 사람이 낳은 왕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국 史書를 복사해서 넣는 경우.. 이들이 실제 역사를 시계열로
분산시키면서 어쩔수 없이 다른 역사라도 삽입해야 하는 그런 경우

이런 이들의 실수를 통해서도 이들이 실제로 사용했을 원래 자료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어떤 한 시각 백제인의 시각이나 신라인의 시각에
편중되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 모두의 시각을 다 포용해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僞史를 만들었던 것일까요
역시 흥미진진..


지난번에 한번 던졌던 話頭 다시한번 올려 드립니다.

 

한반도의 백제 기록 삼국사기

近仇首王 10年 입니다.

 

春二月 日有 三重 宮中大樹自 夏四月 王薨

 

태양에 三重 해무리 ( 태양을 둘러싼 circle )가 생겼다.. 宮의 큰 나무가 스스로 뽑혔다. 여름 4월 왕이 죽었다

 

 

그리고 열도의 백제 기록(??) 古事記 에서 같은 인물을 motive로 해서 창작한 야마토타케루(倭建命) 그의 죽음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到三重村之時。亦詔之吾足如三重 勾而甚疲

 

삼중촌에 도착했을 때에 다리가 3겹으로 구부러지는

것처럼 매우 피곤하였다

 

위인의 죽음이 공통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metaphor가 三重...

 

三重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韓日古代史 (12) 日本書紀 偽作 体系に対する理解

 

 

もう私たちは日本書紀を除いた制限的な資料で
実際日本歴史がどんなに始まったのか推論しました

これをするための窮極的な目的は藤井サダモトの表現,
実際列島の歴史が馬韓辰韓で始まったことが中以後に日本書紀
古事記を読むと初めて読んだできるというその表現どおり日本書紀
古事記を理解するためなのです.

上の絵は日本書紀古事記の偽作体系を絵で
表現して見たのですよ. 強調させていただきたいことは日本書紀古事記を
読む時に 偽史 創作者たちである 記紀 著者たちが作っておいた人為的な
時系列に抜けないのです.

実質的な意味の列島歴史の手始めはヨンオとセオニョと呼ばれた
勢力が開拓した列島の新羅に高句麗を圧しながら全盛期を
享受した百済近肖古王クングス王時期にクングス王の息子を
列島新羅のフワングで派遣するのが始発点でした

しかしこの百済人は本国百済よりは自分が統治したダムロの
民衆たちの生存自体を重要視した人物に見えます.

高句麗戦争に賦役した列島の新羅だって便にソンゴッで
見えます. 本国百済の立場(入場)では背信者だと見えることもできる
人物.. 列島新羅人の視覚で見れば当然感謝して仕えると
する人物でもあります

そしてこの列島新羅は広開土大王の南下で百済ではない
伽揶の属国になる道を選択します

413年高句麗と 倭は中国に朝貢しに行くのに 倭は自ら高句麗の
下位国家なのを認めるようになります. そして広開土大王碑文に残された
安羅人を半島南部 ( あるいは列島?)に配置したという碑文記録..

( marich様九州が南北を境界で新羅遺物と百済遺物が出るという記録
  故五井酸性関連資料を見ることはどうかなします. 私酸性.. どんなに見ても
  高句麗酸性だと見えますが )

そして列島新羅が伽揶の属国になった以後この列島の新羅王になった百済人の運命はどうなったんでしょうか
やはり私たちが 記紀を正しく読むと分かることです

ところでこんなダイナミックな歴史は時系列サングウロボならそんなに長い期間ではないです
369年と高句麗が 倭を自分の下位国家で中国に認識させた 413年までわずか 50年余り ...

しかし上で話したようにあまりにも多い事があったしそのそれぞれの事件も
新羅人の立場(入場)で見る視覚百済人の立場(入場)で見る視覚
それぞれ異なったはずです.

そして 偽史を作った人々はこのそれぞれの立場(入場)で書かれた記録たちを皆
持っていたはずです. 半島の 史料らももちろん持っていました

彼らはそれを神話時代から実際歴史時代まで多くの時間的空間を
作った後分散させて記録しておきました. この過程で不可欠に加工の
天皇を作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です. もちろん間違いもします w
ここに国があるか? と 神が質問する形態の神話は間違いで
神話時代ではない歴史時代に 景行記に繰り返し記録されたりします
葬式に尋ねたが死んだ人と似ていて遺族たちが見て死んだ人が
住んで帰って来たようだと言うから怒ったという話も神話時代
やはり時代繰り返し記録されたりします

そしてダイナミックで迫力あふれるが非常に短かった歴史を多くの時どおり
分散して見るから主人公たちの生存年齢が 120歳です.

そして日本武尊の場合死んだ人の生んだ王子になったりします.

そして中国 史書をコピーして入れる場合.. これらが実際歴史を時系列で
分散させながら仕方なく他の歴史でも挿入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んな場合

こんな人々の間違いを通じてこれらが実際に使った元々資料を
推正することができます.

しかし面白いことはどんな一視覚百済人の視覚や新羅人の視覚に
偏重されるように使われたのではなくこの皆の視覚をすべて包容して記録したという
のです. この人々はどんな考えを持ってこんな 偽史を作ったことでしょうか
やはり興味津津..


この前に一度投げた 話頭 もう一度あげます.

 

韓半島の百済記録三国史記

近仇首王 10年 です.

 

春二月 日有 三重 宮中大樹自 夏四月 王薨

 

太陽に 三重 海霧里 ( 太陽を取り囲んだ circle )が生じた.. 宮の大きい木が自ら抜かれた. 夏 4月王が死んだ

 

 

そして列島の百済記録(??) 古事記 で同じ人物を motiveにして創作した ヤマトタケで(倭建命) 彼の死はこんなに記録されています..

 

 

到三重村之時。亦詔之吾足如三重 勾而甚疲

 

三重村に到着した時に足が 3重で曲がる

のように非常に疲れた

 

偉人の死が共通そしてその死に対する metaphorが 三重...

 

三重 これはどんなに解釈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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