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먼저 이 글은 임진왜란의 해전에 대해 망상을 늘어 놓는 倭人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작성된 것임을 밝혀 둔다.
일본수군의 태동 - 해적에 이어 임진왜란 직전의 일본 수군의 규모를 파악해 보기로 한다.
일본의 수군은 해적이 모태가 되었다는 것을 전회에서 소개하였다.
海賊衆은 秀吉의 海上賊船禁止令에 의해 와해되고 영주에 복속되게 된다.
先にこの文は壬辰の乱の海戦に対して妄想を列べる 倭人らを教育させるために作成されたことなのを明らかにする置く.
日本水軍の胎動 - 海賊に引き続き壬辰の乱直前の日本水軍の規模を把握して見る事にする.
日本の水軍は海賊が母胎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前回で紹介した.
海賊衆は 秀吉の 海上賊船禁止令によって瓦解される領主に服属されるようになる.

中世末期から近世の初頭にかけて日本の海上勢力は自立した海賊衆から大名の統制に服して公権力の海上における軍事力である水軍に転化させられてゆく。
織田信長は勢力拡大の過程で志摩の守護九鬼氏出身の九鬼嘉隆を臣属させ九鬼氏を主体とした水軍を編成した。嘉隆率いる織田氏の水軍は長島一向一揆の征伐や石山合戦に参加して活躍し、信長の死後には豊臣秀吉に引き継がれる事となる。秀吉はさらに淡路や四国を領有するとその沿海部の領主として子飼いの仙石秀久、小西行長、加藤嘉明、脇坂安治らの武将を送り込み、それぞれに水軍を編成させて九州征伐や小田原征伐に参戦させた。
중세 말기부터 근세의 초두에 걸쳐 일본의 해상 세력은 자립한 해적사람들로부터 영주의 통제에 복종해 공권력의 해상에 있어서의 군사력인 수군으로 변화해 간다. 오다 노부나가는 세력 확대의 과정에서 志摩의 수호 쿠키씨 출신의 구키 요시타카를  신하로 복속시켜 쿠키씨를 주체로 한 수군을 편성했다.가륭 인솔하는 오다씨의 수군은 長島一向一揆의 정벌이나 이시야마 전투에 참가해 활약해, 노부나가의 사후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인계되었다.히데요시는 한층 더 아와지나 시코쿠를 영유하면서 그 연해부의 영주로서 어릴때부터 길들여진 센고쿠 히데히사, 고니시유키나가, 가토 요시아키, 와키사카 야스하루등의 무장을 보내, 각각 수군을 편성시켜 큐슈 정벌이나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시켰다.

秀吉は九州征伐翌年の 1588年8月29日(天正16年7月8日)、秀吉は刀狩令とともに海上賊船禁止令を発布し、海賊衆の財源であった通過商船の有償警護などの活動を海賊行為として禁圧、海上の土豪たちに領主の支配に服することを命じた。この命令以降、村上水軍の能島氏は毛利氏の家臣となって毛利水軍を率いることになり、秀吉に直接服属した来島氏は秀吉直属の大名に取り立てられて豊臣氏のための水軍を負担することを命ぜられたように、かつての海賊衆たちは豊臣氏を頂点とした大名権力の水軍に再編を強制された。こうして編成された豊臣政権の水軍は、1592年に始まる朝鮮出兵(文禄・慶長の役)大々的に投入されることになる。
히 데요시는 큐슈 정벌 다음 해의 1588년 8월 29일(덴쇼(연호) 16년 7월 8일), 히데요시는 도수령과 함께 해상적선 금지령을 발포해, 해적사람들의 재원인 통과 상선의 유상 경호등의 활동을 해적 행위로서 금압, 해상의 토호들에게 영주의 지배에 복종하는 것을 명했다.이 명령 이후, 무라카미수군의 노우지마씨는 모리씨의 가신이 되어 모우리수군을 인솔하게 되어, 히데요시에 직접 복속한 와 시마씨는 히데요시 직속의 영주가 등용할 수 있어 도요토미씨를 위한 수군을 부담하는 것을 명령받은 것처럼, 한 때의 해적사람들들은 도요토미씨를 정점으로 한 영주 권력의 수군에 재편을 강제당했다.이렇게 해 편성된 도요토미 정권의 수군은, 1592년에 시작하는 한국 출병(문녹・게이쵸의 역 ) 대대적으로 투입되게 된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 수군의 규모는 小田原의 반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壬辰の乱直前日本水軍の規模は 小田原の反乱を通じて分かる.

小田原の役
小田原平定(おだわらへいてい)は、1590年(天正18年)に豊臣秀吉が後北条氏の居城小田原城を包囲し、北条氏政・北条氏直父子を降した戦役。
오다와라 평정은, 1590년(덴쇼(연호) 18年)에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고호죠우시의 거성 오다와라성을 포위해, 호조 우지마사・호조 우지나오 부자를 항복시킨 전쟁.

豊臣連合軍
本隊 161,135
船手衆(水軍)20,630
北国衆 35,000

北条軍
82,000

豊臣方の水軍編成とその兵力は、次のとおりであった。

    九鬼嘉隆(志摩・鳥羽城主) 一千五百
    加藤嘉明(淡路・知志城主) 六百
    菅 達長(淡路・客将) 二百三十
    脇坂安治(淡路・洲本城主) 一千三百
    来島通総(伊代・来島城主) 五百
    長宗我部元親(土佐・岡豊城主) 二千五百
    羽柴秀長(大和・郡山城主) 一千五百
    宇喜多秀家(備前・岡山城主) 一千
    毛利輝元(安芸・吉田城主) 五千

参加諸将は水軍の将ではないため、正規の軍船主体ではなく、各家の保有していた大小様々な兵站用の運送船を流用したものと考えるのが妥当と思われる。当時の和船は船体の構造的には軍船と運送船との大きな違いはなかったが、当然ながら上部の楯板などの装甲の有無という違いがある。
참가 여러 장군은 수군의 장은 아니기 때문에, 정규의 군선 주체가 아니고, 각 집안의 보유하고 있던 대소 여러가지 병참용의 운송선을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이라고 생각된다.당시의 일본식 목조선은 선체의 구조적으로는 군선과 운송선과의 큰 차이는 없었지만, 당연히 상부의 순판등의 장갑의 유무라고 하는 차이가 있다.

豊臣은 北条軍을 정벌하기 위해 本隊 161,135,船手衆(水軍)20,630,北国衆 35,000을 동원했다.
임진왜란에 동원된 병력 규모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豊臣は 北□軍を征伐するために 本隊 161,135,船手衆(水軍)20,630,北国衆 35,000を動員した.
壬辰の乱に動員された兵力規模を理解するのに多くの役に立つ.


一番大きいのが安宅船。櫓が乗ってます。
信長は、この安宅船の大きい奴に鉄板張って鉄甲船としたとか、してないとか。(いろいろ説があるようです。)
제일 큰 것이 아타카선.방패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노부나가는, 이 아타카선의 큰 놈에게 철판을 씌워 철갑선으로 했다든가, 하지 않는다든가.(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関船。

小早船。


日本水軍の規模(ハングル版)

先にこの文は壬辰の乱の海戦に対して妄想を列べる 倭人らを教育させるために作成されたことなのを明らかにしておく.
日本水軍の胎動 - 海賊に引き続き壬辰の乱直前の日本水軍の規模を把握して見る事にする.
日本の水軍は海賊が母胎になったということを全会で紹介した.
海賊衆は 秀吉の 海上賊船禁止令によって瓦解されて領主に服属されるようになる.
先にこの文は壬辰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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