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日本水軍の胎動 - 海賊

짧은 지식으로 임진왜란의 해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자세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하나씩 챙겨보자.
우선 일본의 수군에 대해서 조사해 본다.
일본의 수군은 약간 놀라운 일이지만 해적 즉, 일본인의 역사로 부터 시작된다.
短い知識で壬辰の乱の海戦に対して言及することは無理がある.
歴史を勉強するという姿勢に少しずつ控え目に近付きながら一つずつ取りそらえる見よう.
まず日本の水軍に対して調査して見る.
日本の水軍はちょっと驚きべきだが海賊すなわち, 倭寇の歴史から始まる.


倭冦
始めに
日本は島国であり外国より侵略や日本人が海を渡って戦を行ったことを御存じの方はどれだけいるであろうか?
 『元冦』や『秀吉朝鮮出兵』などはみな思い付く範疇の事件かも知れない。
 しかし、実際は日本人は幾度も朝鮮半島や中国大陸に海を越えて劫略・略奪をくり返した。それを『倭冦』と呼ぶ。
 日本人が財を求めて命をかけて海を越えた海賊達の物語である。

『倭冦』とは
 日本人が朝鮮半島や中国大陸に渡り謀略を働いたものは大概この倭冦の内に入れてかまわないであろう。つまり朝鮮側から見ると秀吉の『朝鮮出兵』も倭冦にあたるのである。 先に「志々伎神社」において述べた『神功皇后遠征記』などもこの倭冦と言えるであろう。
 この倭冦に当たる主な一族としては対馬の宗一族や五島列島を根拠とした五島氏、そして九州西海岸を走り回っていた松浦氏などの他西国の海賊集団が主であったが朝鮮・中国・ヨーロッパ人なども含めて倭冦と言っている場合も多い。瀬戸内村上水軍の倭冦との関係については主に記述されているのが江戸時代以降に作られた物語が多いらしく、若者と朝鮮の女人の恋物語などまことしやかに掛れているが、中国・朝鮮側の倭冦に関する記述が村上水軍に関しては余りにも少ないため架空の物語として流して良いと思われる。
일본인
일본은 섬나라이며 외국보다 침략이나 일본인이 바다를 건너고 전쟁을 실시한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원구나 히데요시 한국 출병등은 모두 생각나는 범주의 사건일지도 모르다.
 그러나, 실제는 일본인은 몇번이고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 바다를 넘어  강탈・약탈을 반복했다.그것을 일본인라고 부른다.
 일본인이 재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를 넘은 해적들의 이야기이다.

일본인란
일 본인이 한반도나 중국 대륙에 건너 모략을 행한 것은 대개 이 일본인중에 넣어도 상관없을 것이다.즉 조선측이 보면 히데요시의「한국 출병」도 일본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먼저 시지키 신사에 대해서 말한 신공황후원정기 등도 이 일본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본인에 해당되는 주된 일족으로서는 대마도의 소우이치족이나 오도 열도를 근거로 한 고토씨, 그리고 큐슈 서해안을 돌아다니고 있던 마츠우라씨등의 타서쪽 지방의 해적 집단이 주지만 조선・중국・유럽인등도 포함해 일본인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세토우치 무라카미수군의 일본인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 에도시대 이후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서, 젊은이와 조선의 여인의 사랑 이야기 등 아주 그럴듯 하게 속이고 있지만, 중국・조선측의 일본인에 관한 기술이 무라카미수군에 관해서는 너무도 적기 때문에 가공의 이야기로서 흘려 좋다고 생각된다.


『倭冦』の形態
倭冦のイメージとして定着している「裸足・半裸で刀を担いだ荒くれ男」というイメージは元禄6年(1693年)刊行された『異称日本伝』という書物より引用されたもので、明治・大正期に歴史教科書などに引用されたものからきている(上図)。
 この『倭冦』像は明で書かれた書物である『学府全編』という書物より模写されたものでありかなり倭冦について誇張して掛れている節がある。
 現在、比較的正確に倭冦の様子を描いているとされるものは『明仇十洲台湾奏凱図(倭冦図巻)』が結一といわれている。
 この様子からすると船は7人から10人における平底の網代らしき帆をかかげた漁船のような格好をしており着物を見にまとい弓・長槍・刀を帯同している。またこの『倭冦図巻』には上陸・略奪・放火・戦闘など事細かな描写により倭冦の様子を伝えているのだ。

『前期倭冦』と『後期倭冦』
 主に倭冦について語られる時、14世紀~15世紀の朝鮮半島において行われたものを『前期倭冦』、16世紀に中国において行われたものを『後期倭冦』として記述されるものが多い。
 厳密にこのような分別の仕方をするのはいかがなものかとも思うが、ここでは簡潔にまとめるためこの二つに大別して語っていきたいと思う。
일본인의 형태
왜 구의 이미지로서 정착하고 있는「맨발・반나체로 칼을 담 있어다 난폭하게 굴어 남자 」라고 하는 이미지는 겐로쿠 6년(1693년) 간행된「별칭 일본전」이라고 하는 서적에서 인용된 것으로, 메이지・타이쇼기에 역사 교과서 등에 인용된 것으로부터 오고 있다(윗 그림).
 이 일본인상은 명에서 쓰여진 서적인「학부 전편」이라고 하는 서적에서 모사된 것으로  일본인에 대해 과장해 속이고 있는 마디가 있다.
 현재, 비교적 정확하게 야마토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명구십주대만주개도(일본인도권)가 말해 주고 있다.
  이 모양을 보니 배는 7명에서 10명에 있어서의 평저의 망대 같은 돛을 단 어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옷을 휘감아 활・장창・칼을 대동하고 있다.또 이 일본인도권에는 상륙・약탈・방화・전투 등 자세한 묘사에 의해 일본인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전기일본인와 후기일본인
 주로 일본인에 대해 말해질 때, 14 세기~15 세기의 한반도에 있어 행해진 것을 전기일본인, 16 세기에 중국에 있어 행해진 것을 후기일본인로서 기술되는 것이 많다.
 엄밀하게 이러한 분별의 방법을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하고도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간결하게 정리하기 위해 이 둘로 크게 나누어 말해 가고 싶다.


倭寇図巻  明末清初・17世紀
  中国沿岸を荒らしまわった倭寇を中国人画家が描いたものです。
  月代(さかやき)を剃った日本人として描かれたこの姿は、
  海賊・倭寇のイメージとしてあまりに有名です。
  歴史教科書にも登場するこの絵巻をぜひお見逃しなく!
 중국 연안을 망쳐 돈 일본인를 중국인 화가가 그린 것입니다. 월대를 깎은 일본인으로서 그려진 이 모습은, 해적・일본인의 이미지로서 너무나 유명합니다. 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이 그림 두루마기를 꼭 놓치지 맙시다!
http://www.japanology.cn/japanese/book/nihonzo/07/2.htm

中世武士の興亡と能美水軍
中世は武士の時代であり、中央においても地方においても武士勢力が興亡を繰り返した戦乱の時代である。
瀬戸内海においては、荘園年貢の輸送を中心とする内海水運が発達し、沿岸や島々に根拠地をもった豪族の勢力を伸長させた。彼らは強大な海上勢力をもち、水先案内料や通過料を強要したり、沖合を航行する船を襲撃した難破船と称して押領したりしたので、海賊衆と呼ばれ恐れられた。
海賊衆は内海航行者と契約し代償を得て警固に当たったので、警固衆とも呼ばれた。更に海賊衆のなかには遠く外洋に出て、いわゆる「倭寇」として、朝鮮や中国の沿海を騒がしたものも少くなかったようである。
http://www.kyosai.or.jp/~jyuaboku/gun.html
중세 무사의 흥망과 능미수군
중세는 무사의 시대이며, 중앙에 있어도 지방에 있어도 무사 세력이 흥망을 반복한 전란의 시대이다.
세 토내해에 대해서는, 장원 연공의 수송을 중심으로 하는 내해 수운이 발달해, 연안이나 섬들에 근거지를 가진 호족의 세력을 신장 시켰다.그들은 강대한 해상 세력을 갖고, 도선료나 통과료를 강요하거나 앞바다를 항행하는 배를 습격한 난파선이라고 칭해 압수하거나 했으므로, 해적중으로 불려 두려워 했다.
해적사람들은 내해 항행자와 계약해 보상을 얻어 경호를 맡게 되었으므로, 경고중이라고도 불렸다.더욱 해적사람들 속에는 멀게 외양에 나오고, 이른바 「일본인」로서, 조선이나 중국의 연해를 시끄럽게한 것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貞応2年(高宗10年・1223年)『高麗史』に『倭、金州に冦す』と表れ、嘉禄元年(高宗12年・1225年)慶尚道沿海の州県、翌年には慶尚道沿海州郡と金州を冦したという記述がある。

 日本側で資料を調べていくと藤原定家『明月記』にこう書かれている。
 『対馬と高麗国とが闘争しているという巷説があるが、前代未聞のことであろうか』(嘉禄2年・高宗13年・1226年10月16日)
 『松浦党という鎮西の凶悪等が数十艘の兵船でかの国の別島に行って合戦し、民家を焼き資財をかすめ取った。行ったものの半分は殺されたが、残りのものは銀器などを盗んで帰ってきたという。朝廷のためにははなはだ奇怪のことである』(10月17日)
 ただしこれは定家が風説を聞き書いたもので信憑性は低いがそのような事が京まて伝わっていた事を伺わせる記述である。
죠오 2년(고종 10년・1223년)「고려사」에「야마토, 금주에 구」과 나타나 가로쿠 원년(고종 12년・1225년) 경상도 연해의 주현, 다음 해에는 경상도 연해주군과 금주를 약탈 했다고 하는 기술이 있다.

 일본측에서 자료를 조사해 가면 후지와라노 사다이에「명월기」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대마도와 고려국이 투쟁하고 있다고 하는 뜬소문이 있지만, 전대미문으로 있으리라」(가로쿠 2년・고종 13년・1226년 10월 16일)「마쓰라당이라고 하는 규슈의 흉악등이 수십소의 병선으로인가의 나라의 별섬에 가서 전투해, 민가를 태우고 자재를 탈취했다.도적떼의 반은 살해당했지만, 나머지의 것은 은그릇등을 훔쳐 돌아왔다고 한다.조정을 위해서는 매우 기괴이다」(10월 17일) 다만 이것은 사다이에가 풍설을 듣고 쓴 것으로 신빙성은 낮지만 그러한 일이 京에 까지 전해지고 있던 일을 듣고 기술한다.

中世の海辺の小土豪が結合して軍事力をもつようになった海上勢力を海賊衆といい、九州や瀬戸内海、紀伊半島、伊勢湾、東京湾など日本各地で見られた。海賊衆は陸の悪党と同様に徒党を組んでの略奪行為や金銭を代償に取った船舶航行の警護を行い、幕府などの公権力の統制を無視して海上で独立した軍事力と権力をふるった。
중세의 해변의 소토호가 결합하여 군사력을 가지게 된 해상 세력을 해적중 이라고 하여, 큐슈나 세토나이카이, 기이반도, 이세만, 도쿄만 등 일본 각지에서 볼 수 있었다.해적사람들은 육지의 악당과 같게 도당을 짠 약탈 행위나 금전을 대상에 받은 선박 항행의 경호를 실시해, 막부등의 공권력의 통제를 무시해 해상에서 독립한 군사력과 권력을 발휘했다.

彼ら海賊衆は14世紀には活動を活発化させ、南北朝の動乱には南北それぞれの側に分かれて戦った。その後、室町時代になると陸の権力が海にも次第に及ぶようになり、守護大名は周辺の海賊衆を、領内の田畑を警固料の名目で所領として給する代償に警固衆に編成、海上軍事力に利用した。
그들 해적사람들은 14 세기에는 활동을 활발화시켜, 남북조의 동란에는 남북 각각의 측에 나뉘어 싸웠다.그 후,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 육지의 권력이 바다에도 점차 미치게 되어, 守護大名은 주변의 해적사람들을, 영내의 전답을 경호료의 명목으로 영지로서 지급하는 대상에 海賊衆으로 편성, 해상 군사력에 이용했다.

続く戦国時代においては、軍事力・兵站輸送力の観点より戦国大名の側から積極的に水軍の編成に対する働きかけを行い、警固衆を陸上の土豪や国人と同じように家臣団に組み入れていった。また、農村に対する動員とともに漁村に対する水軍への動員も行われた。後北条氏では、相模田浦や武蔵本牧の漁民に対して、葛船と呼ばれる大型漁船での操業を許可すると言う漁業上の特権を与える代わりに有事に際して水軍としての動員が行われた。彼らは平時には漁業に従事していたが、その際にも彼らは後北条氏の必要に応じて水産物を上納する義務を負うなど、平時の漁業と有事の水軍は表裏一体の関係にあった。当時、大量の海産物を新鮮な状態で調達することは困難であり、後北条氏は家臣団や他国からの使者・客人に対して上納された水産物を用いて饗応したり、その加工品を外交上の贈呈品とすることによって自らの政治力を誇示することに努めたのである。
계속 되는 전국시대에 있어서는, 군사력・병참수송력의 관점보다 전국 다이묘의 옆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수군의 편성에 대한 움직임을 실시해, 海賊衆을 육상의 토호나 국민과 같이 가신단에 집어 넣어 갔다.또, 농촌에 대한 동원과 함께 어촌에 대한 수군에의 동원도 행해졌다. 後北条氏에서는, 相模田浦나 武蔵本牧의 어민에 대해서, 갈선으로 불리는 대형 어선으로의 조업을 허가한다고 말하는 어업상의 특권을 주는 대신에 유사에 즈음하여 수군으로서의 동원을 했다.그들은 평시에는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지만, 그 때에도 그들은 後北条氏의 필요에 따라서 수산물을 상납할 의무를 지는 등, 평시의 어업과 유사의 수군은 표리 일체의 관계에 있었다.당시 , 대량의 해산물을 신선한 상태로 조달하는 것은 곤란하여, 後北条氏는 가신단이나 타국으로부터의 사자・손님에 대해서 상납된 수산물을 이용해 향응 하거나 그 가공품을 외교상의 증정품으로 하는 것에 의해서 스스로의 정치력을 과시하는 것에 노력했던 것이다.

このようにして、中世末期から近世の初頭にかけて日本の海上勢力は自立した海賊衆から大名の統制に服して公権力の海上における軍事力である水軍に転化させられてゆく。
이와 같이 하고, 중세 말기부터 근세의 초두에 걸쳐 일본의 해상 세력은 자립한 해적사람들로부터 영주의 통제에 복종해 공권력의 해상에 있어서의 군사력인 수군으로 변모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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