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은 계획적으로
조선의 도공을 포로로 잡아 갔다
조선 도공에 의해 전수된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혁명 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발전이 있었다
조선의 도공들은 집단을 이루고 살았는데 그 대표적 지역은
九州의 有田 이라고 하는 곳이다
실제 有田에서 조선 도공에 의해 생산된 도자기는 1651년 부터 네덜란드 東印度 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 되었는데
1653년 2200개 .1664년 45000개 수출 되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1653년 부터 100년 동안 유럽으로 수출한 도자기는 100만점
일본 有田에 있는 조선의 도공 李參平 기념비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일본의 茶道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청화 백자 .조선시대 백자의 盞
千利休
千利休는 일본의 茶道 정신의 본류를 형성한 사람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茶道를 관장하는 책임자가 된 그는 조선의 그릇을 와비茶에
어울리는 茶 도구로 높이 평가했다
일본의 茶道 문화는 조선의 도자기 기술의 유입으로 한층 더 운치있게 발전하고 있었다
壬辰の乱 以後に日本は計画的に
朝鮮の陶工を虜に捕えて連れ行った
朝鮮陶工によって伝授された日本の陶磁器技術は革命と言っても良い位の
発展があった
朝鮮の陶工たちは集団を成して暮したがその代表的地域は
九州の 有田 と言う所だ
実際 有田で朝鮮陶工によって生産された陶磁器は 1651年からオランダ 東印度 会社を通じて
ヨーロッパで輸出になったが
1653年 2200個 .1664年 45000個 輸出になって莫大な利益をあげた
1653年から 100年の間ヨーロッパで輸出した陶磁器は 100万点
日本 有田にある朝鮮の陶工 李参平 記念碑
朝鮮の陶磁器技術は日本の 茶道 文化にも影響を与えた
朝鮮時代青化白磁 .朝鮮時代白磁の 盞
千利休
千利休は日本の 茶道 精神の本流を形成した人だ
豊臣秀吉の 茶道を 管掌する 責任者になった彼は朝鮮の器をワビ茶に
似合う 茶 道具で高く評価した
日本の 茶道 文化は朝鮮の陶磁器技術の流入でいっそうもっと風情ありげに発展してい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