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일본의 양계에 대해(에도시대편)




주의!!

이 스렛드가 쓰여진 내용은, 일부 한국인의 망상을 현저하게 파괴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울화병은, 본문을 읽기 전에, 우선 의사에 상담해 주세요.





조선 통신사의 닭도둑이 입증되려고 하면, 변함 없이 들리는「에도시대에 양계를 하고 있던 자료를 내라!」라고 하는 한국인의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이것, 상당히 옛날에 결착을 붙이게 해 받은 생각도 듭니다만 ….
일본은 옛부터 양계는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예, 낡고로부터입니다.일부의 한국인의 망상에서는, 메이지에 시작한 것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전혀 다릅니다.
일본 서기의 수인조에는 톳토리, 조양부를 정했다고 있고, 또 백과 홍 성쇠기에는 7죠 수리 옛날의 관위라고 하는 인물이 핫케 1000마리를 기르고, 4500마리에 증가하고 전답을 망쳤다고 하는 기술이 있습니다.이와 같이 일본에서는, 양계가 옛부터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 조선 통신사가 온 에도시대는 어땠어요의지요?
네, 양계를 하고 있었습니다.겐로쿠 9년(1696년), 미야자키 야스사다에 의해서 쓰여진 농업 전서에는 양계의 방식까지 기재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닭은 인가에 반드시 없으면 협물이든지…」라고 쓰여져 있어 닭이 농가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써 가리키고 있습니다.


농업 전서 겐로쿠 9년(1696년) 미야자키 야스사다・저


그러면 기른 닭은 무엇에 사용하고 있었겠지요?
물론, 먹고 있었습니다.단지 육식이 너무 번성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고기로서 먹는 것보다도 알을 뽑는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에도의 계란 요리는 다채롭고「만보요리 비밀상자」에는 란백진(알의 드문 요리를 백 종류 이상 엄선한 것)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만보요리 비밀상자(1785년)


덧붙여서, 당시의 알의 가격은 1개 20문.이것은 소바가 16문이었던 무렵의 가격이므로, 상당한 고가입니다.알은 행상등에 의해서 팔려 그 모습은 모리사다만교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계란의 물로 조린 것을 판다.가대약입문(에 총도 ).사(말)에「여승 」라고 말한다.반드시 2소리만, 일성도 역(또) 3소리도 말하지 않고.

모리사다만교보다



아, 그래그래.이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통신사들의 향응으로 나온 요리에도 알은 사용되고 있네요.
카스테라등이 그렇습니다.
연향5년의 한국인 좋아하는 것의 각서에 거와 소・멧돼지・사슴・가 저・닭・꿩・오리, 삶은 국수를 간장에 데친 요리, 곁절, 만두, 떡류, 양갱, 유평당, 남만과자의 일종, 용안, 여주, 얼음 사탕, 백설탕, 빌려주는이라고들 , 설탕지, 밀지등을 들 수 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식품 재료는 부근의 마을로부터 모아져 향응에 소비되었습니다.


결론

겐로쿠 9년(1696년)의 농업 전서로 보여지도록(듯이), 또 그 이외의 기록으로부터도 볼 수 있도록(듯이) 양계는 보통으로 행해지고 있었습니다.또 에도기는 계란을 활용한 요리 문화가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네…, 조선에서도 양계하고 있어 모여들어 …?

모르겠네요.

뭐, 야인과 같이 털첨부인 채 열심히 먹는만큼, 좋아하는 것이었다로부터 아마 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日本の養鶏について

   日本の養鶏について(江戸時代編)



ご注意!!

このスレッドの書かれた内容は、一部韓国人の妄想を著しく破壊するものが含まれています。
鬱火病の方は、本文を読む前に、まず医師に御相談下さい。





朝鮮通信使の鶏泥棒が立証されようとすると、相変わらず聞こえる「江戸時代に養鶏をしていた資料を出せ!」という韓国人の叫び声。これ、随分昔に決着をつけさせて貰った気もするのですが…。
日本は古くから養鶏は行われていました。
ええ、古くからです。一部の韓国人の妄想では、明治に始まったことになっているようですが、全然違います。
日本書紀の垂仁条には鳥取、鳥養部を定めたとありますし、また源平盛衰記には七条修理太夫という人物が白鶏1000羽を育てて、4500羽に増え、田畑を荒らしたという記述があります。このように日本では、養鶏が古くから行われておりました。


では朝鮮通信使が来た江戸時代はどうだったのでしょう?
はい、養鶏をしておりました。元禄9年(1696年)、宮崎安貞によって書かれた農業全書には養鶏のやり方まで記載されています。
それによれば、「鶏は人家に必ずなくては叶はぬ物なり…」と書かれており、鶏が農家にとって必ず必要なものだったと書き示しています。

農業全書 元禄9年(1696年) 宮崎安貞・著


それでは育てた鶏は何に使っていたのでしょう?
勿論、食べていました。ただ肉食があまり盛んではない日本では、肉として食べるよりも卵を採ることが多かったようです。
江戸の卵料理は多彩で「万宝料理秘密箱」には卵百珍(卵の珍しい料理を百種類以上厳選したもの)が記載されています。

万宝料理秘密箱(1785年)


ちなみに、当時の卵の値段は1個20文。これは蕎麦が16文だった頃の値段ですので、かなりの高値です。卵は行商などによって売られ、その様子は守貞漫稿にも描かれています。

鶏卵の水煮を売る。価大約廿文(にじゅうもん)。詞(ことば)に「たあまご たあまご」と言う。必ず二声のみ、一声も亦(また)三声も言わず。

守貞漫稿より


ああ、そうそう。この人たちも忘れてはいけません。通信使たちの饗応で出された料理にも卵は使われていますね。
カステラなんかがそうです。
延享五年の朝鮮人好物の覚え書に拠ると、牛・猪・鹿・家猪・鶏・雉・鴨、煮麺、そば切、饅頭、餅類、羊羹、有平糖、金平糖、龍眼、茘枝、氷砂糖、白砂糖、かすてら、砂糖漬、蜜漬などが挙げられています。
これらの食材は付近の村から集められ、饗応に費やされました。

結論

元禄9年(1696年)の農業全書に見られるように、またそれ以外の記録からも見られるように養鶏は普通に行われていました。また江戸期は鶏卵を活用した料理文化が発達していました。

え…、朝鮮でも養鶏していたかって…?

知りませんねえ。

まあ、野人のように毛付きのままバリバリ食べる程、好物だったんだから多分していたんじゃないで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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