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오늘은 인신 공양의 이야기에서도...

 

 

 

일본에는, 신이나 요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젊은 딸(아가씨)들을 생지로서 내민, 이른바 인신 공양이 옛날 행해졌다, 라고 전해지는 지역이 산견됩니다.

오사카부하의 요괴의 발자국을 조사하고 있던 참, 오사카 북부나 효고현에도 좋게 개인가 그러한 토지가 있었으므로 소개를.

 

우선,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이 오사카시 니시요도가와구 노자토 스미노에신사.
여기는 지금도 키사이 「하룻밤 궁녀」가 거행해지고 있습니다.

경내에 지어지고 있는 유서 쓰기를 발췌하면 이하와 같습니다.

 

회사의 경내의 한쪽 구석에 있는 「폭포의 연못」의 철거지에 아가씨총이 지어지고 있다.거기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나카츠카와에 접한 옛 노자토는, 계속되는 풍수해와 악역의 유행에 의해서 비참한 항상으로, 근린의 마을사람들은 노자토를 「울음마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마을을 구하기 위해는, 매년 정해진 날에 한 명의 자녀를 신에 바쳐라라는 신탁이 있어, 마을을 구하는 일념으로부터 마을사람의 총의로 이것을 실행하고 있었다.
인신 공양의 자녀는 매년 1월 20일 오밤중시에 장롱에 넣어지고 신사에 옮겨져 방치되었다.
꼭 7년째의 행사를 준비해 있을 때, 한 명 무사가 들러, 마을사람으로부터 일의 상세를 (들)물어,
「신은 사람을 구하는 것으로 인간을 희생하는 것은 신의 생각은 아니다」
(와)과 아가씨의 대신으로 장롱에 스스로 들어가고 신사에 옮겨졌다.
이튿날 아침, 거기에는 무사의 모습은 없고, 큰 「비비」가 깊은 상처를 입어 절명하고 있었다.
이 무사야말로 당시 , 무사 수행중의 이와미겹타로이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 후 평안무사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이것을 후세에 길게 전하기 위해, 같은 형식에서 같은 1월 20일에 마을의 재액 없애의 축제를 해 그 밖에 예를 볼 수 없는 기재를 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메이지 40년부터 2월2 10일로 고칠 수 있었다.

 

 

유서 쓰기에서는, 「비비」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만, 큰뱀이라고 전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사카시로부터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직선 거리라면 10 km 정도) 니시노미야시언덕 오가사에도 같은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무대를 언덕 오가사로 옮긴 것만으로, 쏙 빼닮다의 것입니다.
이쪽은 니시노미야시의 HP에도 소개되고 있어 그 쪽에서 보셔 받을 수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언덕 오가사에서는 그 일을 「일시상납」이라고 하는 축제로 나타내, 현재도 거행해지고 있습니다.

 

또 스이타시 키시부 신사에서 행해지는 「진흙 제비 축제」도 같습니다.
이쪽은, 신 혹은 요괴는 비비는 아니고 큰뱀으로 여겨져 퇴치한 것은 이와미겹타로로부터 키시 토시나리로 변하고 있습니다만, 이야기의 대략은 같은 것입니다.

 

또 오사카 전승 지지 집성에 의하면, 시마모토쵸척대에 있는 스와 신사에서 거행해지는 제사를 맡는 두인의 교대 「두도」의 제사가 하룻밤 궁녀의 풍습이라고 되고 있습니다.

 

 

라고 한신 지역에서 현재 조사가 대한 것만으로, 3내지 4의 인신 공양의 전승이 있는 지역이 있어, 내가 조사 되어 있지 않은 것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그러한 지역에 전해지는 전승은, 모두이야기의 대략은 같은 것이다는 것도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실은 이러한 이야기는, 원신퇴치라고 하는 민화로 전국적으로 산견되어 이 한신 지역에 한정한 것이 아닙니다.

이와미겹타로 전설 만약 빚.일본의 여기저기에서 지극히 유사하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떠한 사건을 구전하고 있다고 하는 것보다도, 어떠한 일을 은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조사를 진행시켜 보면, 노자토 스미노에신사의 「하룻밤 궁녀」도 「일시상납」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시기가 있는 것 같다는 것.
그렇게 말한 일을 생각했을 경우, 이것들 축제의 「뿌리」에는 같은 것이 있겠지요.
언덕 오가사의 「일시상납」의 「상납」이란 「녀낭」, 즉 「유녀」를 가리키는 말같습니다.

 

아카마츠 케에스케등의 저서를 다룰 것도 없게 일본은, 원래는 모계 사회였습니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봐도, 남성이 여성의 집에 「이 분을 아내로서 장가가고 싶다」라고 신청하는 장면이 있는 것은 유명하지만, 그러한 「데릴사위제」도 일반적이었습니다.
또, 모계 사회이지만 고 , 남성의 혈통이라고 하는 것은 중요시되지 않고, 고귀한 희인의 피를 받아 들이기 위해, 「하룻밤아내」라고 하는 풍습도 있던 것 같습니다.
「하룻밤녀 츠카사」 「일시녀 츠카사」, 이것들은 「하룻밤아내」를 가리키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현대에 사는 우리로부터 보면 기묘하게 옮기는 그러한 풍습도, 모계 사회라고 하는 시선으로부터 보면, 뛰어난 피를 도입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물건이었겠지요.
그러한 시선으로부터 보면, 「하룻밤 궁녀」 「일시상납」이라고 하는 축제의 배경에는, 모계 사회로부터 남자계 사회에 변천해 가는에 따라, 없게 여겨져 간 그러한 풍습이 있던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주역으로서 그려지는 사람은 남자계 사회의 상징인 무사가 되어, 그리고 남자계를 주축으로서 보았을 경우, 아내를 빼앗는 희인은 요괴 「비비」로서 깍아 내릴 필요가 있던 것은 아닐까요.

아카마츠 케에스케가 그 현지조사의 무대로 하고 있던 것은, 히메지로부터 코베로 걸쳐가 중심이었다고 (듣)묻습니다.

적어도 상기의 축제가 거행해지는 한신 지역의 얼룩짐 사회에서는, 모계 사회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이지요.
한신 지역에게 전할 수 있는, 이러한 축제의 뿌리로서 그렇게 말한 성 풍속의 변천이 있던 것은 아닌지, 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까요?


阪神地域における人身御供について

本日は人身御供の話でも。。。

 

 

 

日本には、神や妖怪を鎮めるために若い娘たちを生贄として差し出した、いわゆる人身御供が昔行われた、と伝えられる地域が散見されます。

大阪府下の妖怪の足跡を調べていたところ、大阪北部や兵庫県にもいくつかそのような土地がありましたのでご紹介を。

 

まず、おそらく最も有名なものが大阪市西淀川区 野里住吉神社。
ここは今でも奇祭「一夜官女」が執り行われています。

境内に建てられている由緒書きを抜粋すると以下の通りです。

 

社の境内の片隅にある『瀧の池』の跡地に乙女塚が建てられている。それには悲しい物語りが伝えられている。
中津川に面した昔の野里は、打ち続く風水害と悪疫の流行によって悲惨な明け暮れで、近隣の村人たちは野里のことを『泣き村』と呼んでいた。
この村を救う為には、毎年定まった日に一人の子女を神に捧げよとの託宣があり、村を救う一念から村人の総意でこれを実行していた。
人身御供の子女は毎年一月二十日丑三つ時に唐櫃に入れられて神社に運ばれ放置された。
丁度七年目の行事を準備している時、一人の武士が立寄り、村人からことの詳細を聞き、
『神は人を救うもので人間を犠牲にすることは神の思し召しではない』
と乙女の身代わりに唐櫃に自ら入って神社に運ばれた。
翌朝、そこには武士の姿はなく、大きな『狒狒』が深手を負い絶命していた。
この武士こそ当時、武者修行中の岩見重太郎であると伝えられている。
村ではこの後安泰の日々を送るようになった。
これを後世に長く伝えるため、同じ形式で同じ一月二十日に村の災厄除けの祭りをして他に例を見ない記載が行われ、今日に至ったものである。
明治四十年より二月二十日に改められた。

 

 

由緒書きでは、「狒狒」とされていますが、大蛇だと伝える話もあります。

 

さて、大阪市からさほど離れていない(直線距離なら10km程)西宮市 岡太神社にも同様の伝承が残されています。
話の内容は舞台を岡太神社に移しただけで、瓜二つのものです。
こちらは西宮市のHPにも紹介されており、そちらでごらんになっていただける事ができます。
岡太神社ではその事を「一時上臈」という祭りで表し、現在も執り行われています。

 

また吹田市 吉志部神社で行われる「どろくじ祭り」も同様です。
こちらは、神もしくは妖怪は狒狒ではなく大蛇とされ、退治したものは岩見重太郎から吉志俊成へとかわっていますが、話の大筋は同じものです。

 

また大阪伝承地誌集成によると、島本町尺大にある諏訪神社で執り行われる祭事を司る御頭人の交代「御頭渡」の神事が一夜官女の風習であるとされています。

 

 

と、阪神地域で現在調べがついたものだけで、3ないし4の人身御供の伝承がある地域があり、私が調査できていない物もある可能性が在ります。
また、それらの地域に伝わる伝承は、全て話の大筋は同じものであるというのも興味深いものがあります。
実はこのような話は、猿神退治という民話で全国的に散見され、この阪神地域に限ったものではありません。

岩見重太郎伝説もしかり。日本のあちらこちらで極めて類似する話が語り継がれています。

こうなれば、何らかの事件を語り継いでいるというよりも、何らかの事柄を暗喩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調査を進めてみると、野里住吉神社の「一夜官女」も「一時上臈」と呼ばれていた時期があるらしいとのこと。
そういった事を考えた場合、これら祭りの「根」には同じものがあるのでしょう。
岡太神社の「一時上臈」の「上臈」とは「女郎」、即ち「遊女」を指す言葉のようです。

 

赤松啓介等の著書を取り上げるまでも無く日本は、もともとは女系社会でした。
「竹取物語」を見ても、男性が女性の家に「この方を妻として娶りたい」と申し出る場面があることは有名であるが、そのような「妻問婚」も一般的でした。
また、女系社会であるが故、男性の血筋と言うものは重要視されず、尊い稀人の血を受け入れるため、「一夜妻」という風習もあったようです。
「一夜女郎」「一時女郎」、これらは「一夜妻」を指して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現代に生きる我々からみれば奇妙にうつるそれらの風習も、女系社会と言う視線から見れば、優れた血を取り入れる極めて合理的なものであったのでしょう。
そうした目線から見てみれば、「一夜官女」「一時上臈」と言う祭りの背景には、女系社会から男系社会へ移り変わっていくに従い、無くされていったそのような風習があ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よって、主役として描かれる者は男系社会の象徴たる武士となり、そして男系を主軸としてみた場合、妻を奪う稀人は妖怪「狒狒」として貶める必要があ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赤松啓介がそのフィールドワークの舞台としていたのは、姫路から神戸にかけてが中心であったと聞きます。

少なくとも上記の祭りが執り行われる阪神地域のムラ社会では、女系社会独特の風習があったというのは間違いないことでしょう。
阪神地域に伝えられる、このような祭りの根としてそういった性風俗の変遷が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のは無理がある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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