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通典』百濟
 晉時句麗既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
 自晉以後、呑并諸國、據有馬韓故地。其國東西四百里、南北九百里、南接新羅、北拒高麗千餘里、西限大海、處小海之南。(中略)自晉代受蕃爵、自置百濟郡。

『唐会要』百済伝
 百濟者。本扶餘之別種。當馬韓之故地。其後有仇台者。為高麗所破。以百家濟海。因號百濟焉。大海之北。小海之南。東北至新羅。西至越州。南渡海至倭國。北渡至高麗。其王所居。有東西兩城。
 百済。元は扶余の別種。馬韓の故地にいたが、後に仇台は高句麗に国を破られ、百家で海を済(渡)る。ゆえに百済と号する。大海の北、小海の南、東北に新羅、西に越州、南の海を渡れば倭国に至る。北には高麗。王の居城は東西に両城あり。

백제라는 국가 이름은 百家濟海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百家濟海 부분에서 南渡海至倭國라고 되어 있군요.
백제의 영토가 倭國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네요.
百済という国家名前は 百家済海から出たとなるあります.
ところで 百家済海 部分で 南渡海至倭国となるありますね.
百済の領土が 倭国まで伸びるあったのですね.

그렇다면 倭國에 百家済海 의 흔적은 어느 정도 남아 있을까요?
それなら 倭国に百済の跡はどの位残っていましょうか?

淳陀太子
2001年12月23日、日本の今上天皇は、桓武天皇の生母が武寧王の子孫であるとしている「続日本紀」の記録に韓国とのゆかりを感じると会見し、韓日両国に大きな反響を起こした。また「日本書紀」には武寧王が日本福岡の加唐島(かからしま)で生まれたと伝えており、その島には現在もその伝説を語る様々な証拠が残っている。その後武寧王は日本の島で生まれたことから、島の音を借りて”斯麻”とも呼ばれていたといわれている。しかし武寧王が加唐島(加羅島)で生まれた後、百済の武寧王に即位した40歳になるまでの行跡は知られていない。一方「続日本紀」や「日本書紀」に武寧王の息子と書かれている淳陀太子は、武寧王の20代の初婚で産んだ息子と考えられる。また淳陀太子は父武寧王が52歳であった513年に死亡したと伝える記録から、死亡当時、30歳を越えていたと推定されている。つまり、武寧王は日本で子孫をもうけた可能性が高いと考えられる。
それでは武寧王の日本での子孫たちは、どこで生活していたのだろうか。「続日本紀」によると桓武天皇の生母、つまり光仁天皇の皇太后の高野新笠は、姓は”和”で名前は”新笠”であった。日本貴族の族譜「新撰姓氏録」によると、”和氏”は武寧王人で、はじめは久度神社(大阪と奈良の間の神社)で祀られたが、後に平城京(奈良)の宮闕に移し、皇太子が直接祭祀を行ったという。8世紀桓武天皇によって平安京(京都)へ遷都した後は、平野神社に移され、今も平野神社では百済系渡来人を祀っている。京都には現在も桓武天皇の生母、高野新笠の墓がある。
순타태자
2001년 12월 23일, 일본의 금상 천황은, 간무 천황의 생모가 무령왕의 자손이다고 하고 있는「속일본기」의 기록에 한국과의 연고를 느낀다고 회견해, 한일 양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또「일본 서기」에는 무령왕이 일본 후쿠오카의 加唐島에서 태어났다고 전하고 있어 그 섬에는 현재도 그 전설을 말하는 여러가지 증거가 남아 있다.그 후 무령왕은 일본의 섬에서 태어난 것으로부터, 섬의 소리를 빌려”斯麻”라고도 불리고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무령왕이 加唐島(加羅島)에서 태어난 후, 백제의 무령왕에 즉위 한 40세가 될 때까지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한편「속일본기」이나「일본 서기」에 무령왕의 아들이라고 쓰여져 있는 순타태자는, 무령왕의 20대의 초혼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또 순타태자는 아버지 무령왕이 52세에 있던 513년에 사망했다고 전하는 기록으로부터, 사망 당시 , 30세를 넘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즉, 무령왕은 일본에서 자손을 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무령왕의 일본에서의 자손들은, 어디서 생활하고 있 것일까.「속일본기」에 의하면 간무 천황의 생모, 즉 고닌 덴노의 황태후의 다카노노 니이가사는, 성은”화”로 이름은”신삿갓”(이었)였다.일본 귀족의 족보「新撰姓氏録」에 의하면,”화씨”는 무령왕인으로, 처음은 久度神社(오사카와 나라의 사이의 신사)에서 모셔졌지만, 후에 平城京(奈良)의 궁궐로 옮겨, 황태자가 직접 제사를 실시했다고 한다.8 세기 간무 천황에 의해서 平安京(京都)에 천도 한 다음은, 평야 신사에 옮겨져 지금도 平野神社에서는 (쿠다라)백제계  도래인을 모시고 있다.쿄토에는 현재도 간무 천황의 생모, 高野新笠의 무덤이 있다.

그러면 백제계 도래인을 모시고 있다는 平野神社를 찾아가 봅시다.
それでは百済係到来人が仕えるあるという 平野神社を尋ねる見ましょう.

平野神社
1871年(明治4年)に官幣大社に指定された。
 創始以来、皇室の崇敬あつく、天元4年(981年)に円融天皇がはじめて行幸して以来、歴代の天皇が行幸し、その数は少なくなかったといわれている。
 창시 이래, 황실의 숭경 두껍고, 만물생육의 근원 4년(981년)에 원 토오루 천황이 처음 행차한 이래, 역대의 천황이 행차해, 그 수는 적지 않았다고 한다.
   
祭神は、以下の4柱である。
    * 今木神(第一殿)—染織・手芸・衣の神
    * 久度神(第二殿)—竈・台所・食事の神
    * 古開神(第三殿)—斉火の神
    * 比売神(第四殿)—不明。光仁天皇の妃高野新笠とする説もあった。
今木神の今木は今来のことで、渡来人を意味する。

異 説
江戸時代に国学者の伴信友が著作『蕃神考』で、「今木神は百済王なり」との説を、根拠となる史料を改竄(自説に都合よく変える)して唱えました。今でもこの説を敷衍した説が時折出されますが、学問上では否定されています。
에도시대의 국학자 伴信友가 저술한 蕃神考에서 “今木神은 백제왕이다”라는 설을 근거로 되는 사료를 개찬하여 주장하였다. 지금도 이 설을 따라오는 주장이 시시 때때로 나오지만 학문상으로 부정되고 있다.

今木은 今来라고 하여 도래인이라고 설명을 하고 “今木神은 百済王이다 “는 아무 근거없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보려고 하는 의지가 곳곳에서 보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今木神은 百済王이다 “는 내용을 살펴 봅시다.
今木は 今来と言って渡来人だ説明をする “今木神は百済王だ “はどんな根拠なしに不正だあります. 手の平で空を遮る意志があちこちで見えます.
より積極的に “今木神は百済王だ “と言う内容をよく見ましょう.

伴信友 : 1773~1846
蕃神考/伴信友全集5

“今木神은 百濟聖明王
久度神은 土師氏始祖 土師部臣某
古開神은 桓武天皇外曾祖父大江朝臣某.”

伴信友는 蕃神考에서 今木神은 百濟聖明王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였네요.

京都帝國大學의 內藤湖南(1866~1934) 씨는 그의 저서 『近畿地方に於ける神社』에서 다음처럼 고증했다.
近畿地方に於ける神社
内藤 湖南 
兎に角朝鮮から滿洲地方の國々の開闢の傳説の一番最初の王が東明であるか沸流であるかどつちかである。皆古い時には此の説を持つて居つたので、古關の古といふのも其の「ふる」だと申してよいのです。それから「關」は何か。之を肖古王に持つて來る。姓氏録では「速古」とも書いてあります。「肖古(せうこ)」「速古(そこ)」といふのは「塞(そこ)」で、滿洲語のヂヤハ、日本で「關」といふものと同じ意味で同じ言葉であります。それで肖古といふ王は百濟を起した人で有名な者でありますから、關の字を肖古王へ持つて行かうといふのであります。尤も肖古王を近肖古王に對して古肖古王といつたとすれば、滿洲でも古(ふる)をフオと申しますから、古關は古肖古王だとして、一つの王として手數がかゝらぬ片付方をしてもよいのです。
어쨋던 조선으로부터 만주지방의 국들의 개벽의 전설의 제일 최초의 왕이 東明일까 비류로 인가이다.모두 낡을 때에는 이설을 가지는이라고 주거지의 것으로, 고관의 고의 것도다른「후루」이라고 말씀드려도 좋습니다.그리고「關」은 무엇인가.之를 초고왕에게 가지는이라고 래.성씨록에서는「速古」라고도 써 있습니다.「肖古」「速古」라고 의 것은「塞」로, 만주어의 지야하, 일본에서「關」이라고 것과 같은 의미로 같은 말입니다.그래서 초고왕은 백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關의 글자를 초고왕에게 가지는이라고 행 사면  것입니다.尤도 초고왕을 近肖古王에 대해 古肖古王이라고 하면, 만주에서도 古(후루)를 후오라고 하기 때문에, 古關은 고초고왕이라고 하고, 하나의 왕으로서 수순을 밟아 정리해도 괜찮습니다.

御祭神の今木神以下四座については諸説ある。今木は「今来」すなわち新しく渡来したの意とされ、百済系の渡来人の神と考えられている。
今木神については桓武天皇の母・高野新笠の遠祖である百済の聖明王、久度神はその祖である仇首王、古開神は沸流王と肖古王とする説を伴信友が唱えた。
『和漢三才図会』では今木神を日本武尊、久度神を仲哀天皇、古開神を仁徳天皇、比売大神を天照大神とする。
御祭神의 今木神이하 4좌에 대해서는 제설 있다.今木는「今来」즉 새롭게 도래한 것 뜻으로 여겨져 백제계의  도래인의 신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今木神에 대해서는 간무 천황의 어머니・高野新笠의 먼 조상인 백제의 성명왕, 쿠도신은 그 선조인 구수왕, 고개신은 비류왕과 초고왕으로 하는 설을 伴信友가 주창했다.
「일한삼재도회」에서는 今木神신을 日本武尊, 久度神을 仲哀天皇, 古開神을 닌토쿠 천황, 比売大神을 天照大神으로 한다.

이전 저런 주장들이 상당히 많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은 今木神이 渡来人이라는 것입니다.
잠시 화제를 일본서기로 옮겨 봅시다.
以前あんな主張などがよほど多いが誰も不正ではないことは 今木神が 渡□人というのです.
しばらく話題を日本書紀で移す見ましょう.

欽明 二年 夏四月 百濟聖明王謂任那旱岐等言…昔我先祖速古王貴首王之世 安羅加羅卓淳旱岐等 初遣使相 通厚結親好 以爲子弟”(『日本書紀』欽明天皇 2年)
백제와 가야는 마치 형제처럼 가까우니 가야사람들도 백제에 대하여 아버지나 형처럼 대하세요.”
”昔我先祖速古王貴首王與故旱岐等始約和親 式爲兄弟 於是 我以汝爲子弟 汝以我爲父兄”(『日本書紀』欽明天皇 2年)
”과거 우리의 선조 근초고왕, 근구수왕께서 가야에 계신 여러분들과 처음으로 서로 사신을 보내고 이후 많은 답례들이 오고가 관계가 친밀해져서 마치 부자나 형제와 같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封建任那 更造夫婦 惟如舊日 : 『日本書紀』欽明天皇
 ”가야연맹(임나)을 회복시켜 예전처럼 부부(夫婦)와 같은 관계를 회복하라”

이렇게 日本書紀에 백제의 역사가 당당하게 소개되어 있고 있는 이유는 이 시기에 일본왕실이 이미 백제와 같았다는 반증이겠지요?
다시 상기해 봅시다. 百家濟海!
こんなに 日本書紀に百済の歴史が堂堂と紹介されるあるある理由はこの時期に日本王室がもう百済のようだったという反証でしょう?
また思い出して見ましょう. 百家済海!


日本文明の開化 - バックゼシン(ハングル版)

『通典』百済
 晉時句麗



TOTAL: 9021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2061
No Image
일본 문명의 개화- 불교의 전래(한글....... Marich 2010-04-12 1785 0
2060
No Image
반도에는 없다고 생각되는 문화 tairan 2010-04-12 2898 0
2059
No Image
반도에는 없다고 생각되는 문화 tairan 2010-04-11 2774 0
2058
No Image
벼농사 전래전의 조선 sumatera 2010-04-11 3190 0
2057
No Image
도다이사, 그 4 2010-04-10 8251 0
2056
No Image
열도와 반도에도 존재하는 문화 tairan 2010-04-10 4508 0
2055
No Image
밀리판으로 sumatera 2010-04-10 2821 0
2054
No Image
아마츄어 카메라맨 dkool 2010-04-10 2789 0
2053
No Image
반도에는 없다고 생각되는 문화 tairan 2010-04-10 3193 0
2052
No Image
한국의 노거수[老巨樹] wjddlsrb1159 2010-04-09 2587 0
2051
No Image
반도에는 없다고 생각되는 문화 tairan 2010-04-09 3502 0
2050
No Image
re:Marich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가설. shellyshelly 2010-04-10 2454 0
2049
No Image
일본 문명의 개화 - (쿠다라)백제신 Marich 2010-04-09 5012 0
2048
No Image
일본 문명의 개화 - 백제신(한글판) Marich 2010-04-09 1824 0
2047
No Image
수도 전래전의 반도의 농업 sumatera 2010-04-08 3166 0
2046
No Image
일본인 교육 - 3 Marich 2010-04-08 2766 0
2045
No Image
항의만인가? dkool 2010-04-08 2795 0
2044
No Image
조선인의 조상은 이민족이군요. shellyshelly 2010-04-09 4042 0
2043
No Image
사마일국(3 세기) 이전의 산업, 문화 sumatera 2010-04-07 2979 0
2042
No Image
고려시대 생활 瓷器 namgaya33 2010-04-07 253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