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朝鮮時代の科学技術 - 測雨器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국책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절기와 천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관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궁궐 안에 논을 만들고 농사를 직접 체험하면서 농민의 고달픔을 조금이라도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절기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하여 우수한 천문 관측 기구를 만들고 정확한 시계를 만들었으며 측우기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측우기의 의의는 통일된 척을 사용하여 우량을 측정하고 기록에 남겼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農者天下之大本を国策としてていた朝鮮時代には節氣や天気の重要性を把握し、これを管理するために多くの努力を払っています。
朝鮮時代の王は宮廷の水田作り、農業を直接体験しながら、農民の困憊を少しでも知っているために努力しています。
このような努力の結果として、節氣を正確に測定するために優秀な天文観測器具を作成し、正確な時計を作成し、雨量計を作成するに至ります。
雨量計の意義は、統一された尺を使用して、雨量を測定し、記録に残したのにある。

 

세종 때 만들어진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서양에서는 1639년에 이탈리아 과학자인 카스텔리(B. Castelli)가 우량계를 처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측우기는 서양의 우량계보다 약 200년 앞서 발명되었던 것이다.
世宗に作成された雨量計は、世界初の雨量計に対応する。欧米では、1639年にイタリアの科学者である B. Castelliが、雨量計を初めて作った。韓国の雨量計は、欧米の雨量計よりも約200年前に発明されたのである。

 

世宗 96卷, 24年(1442 壬戌 / 명 정통(正統) 7年) 5月 8日(丁卯)
丁卯/戶曹啓: “測雨事件, 曾已受敎。然有未盡處, 更具條列。 一, 京中則鑄鐵爲器, 名曰測雨器, 長一尺五寸、(經)〔徑〕七寸, 用周尺。 作臺於書雲觀, 置器於臺上, 每當雨水後, 本觀官員親視下雨之狀, 以周尺量水深淺, 具書下雨及雨晴日時、水深寸分數, 隨卽啓聞置簿。
호조에서 아뢰기를,
 “우량(雨量)을 측정(測定)하는 일에 대하여는 일찍이 벌써 명령을 받았사오나, 그러나, 아직 다하지 못한 곳이 있으므로 다시 갖추어 조목별로 열기(列記)합니다.
 서 울에서는 쇠를 주조(鑄造)하여 기구(器具)를 만들어 명칭을 측우기(測雨器)라 하니, 길이가 1척(尺) 5촌(寸)이고 직경(直徑)이 7촌입니다. 주척(周尺)을 사용하여 서운관(書雲觀)에 대(臺)를 만들어 측우기를 대(臺) 위에 두고 매양 비가 온 후에는 본관(本觀)의 관원이 친히 비가 내린 상황을 보고는, 주척(周尺)으로써 물의 깊고 얕은 것을 측량하여 비가 내린 것과 비오고 갠 일시(日時)와 물 깊이의 척·촌·분(尺寸分)의 수(數)를 상세히 써서 뒤따라 즉시 계문(啓聞)하고 기록해 둘 것
戶曹に報告する為、
  "雨量を測定の仕事については、かつて、すでにコマンドを受け取った買って来るか、しかし、まだ果たすことができないところがあるため、再備え、箇条書きごとに列記です。ソウルでは鐵を鑄造して、器具を作し、名称を測雨器と呼ばれなので、長さが1尺5寸、直径が7寸です。周尺を使用して、書雲觀に台を作し、測雨器の台の上に置き、いつも雨が降ると、本觀の役員が自ら雨が降ったの状況を見ては、周尺ことで、水の深く、浅いことを測定して、雨が降ったと雨止みの日時と水の深さの尺.寸.分の数)を詳しく書いて続いてすぐに啓聞し、記録して置くこと

英祖 114卷, 46年(1770 庚寅 / 청 건륭(乾隆) 35年) 5月 1日(丁丑)
命倣世宗朝舊制, 造測雨器, 置昌德慶熙兩闕。 令八道兩都皆造置, 俾審雨澤多少, 以測雨器尺寸幾何, 馳啓以聞。 仍敎曰: “此卽體昔年一風一雨命審之聖意, 何敢放忽? 聞實錄以爲, 測雨器設石以置。 今者兩闕兩雲觀, 皆造石臺, 高布帛尺一尺, 廣八寸, 臺上造圓穴安之, 穴深一寸, 用庚申新製尺。” 蓋庚申取三陟府在所世宗朝布帛尺, 參考《大典》, 新製尺式也。
세종조(世宗朝)의 옛 제도를 모방하여 측우기(測雨器)를 만들어 창덕궁(昌德宮)과 경희궁(慶熙宮)에 설치하라고 명하였다. 팔도(八道)와 양도(兩都)에도 모두 만들어 설치하여 우수(雨水)의 다소를 살피도록 하고, 측우기의 척촌(尺寸)이 얼마인가를 치계(馳啓)하여 알리도록 하였다. 이어 하교하기를,
 “이는 곧 옛날에 일풍 일우(一風一雨)를 살피라고 명하신 성의(聖意)를 본뜬 것이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는가? 듣건대,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측우기는 석대(石臺)를 만들어 안치(安置)하였다고 하였다. 금번 두 궁궐(宮闕)과 두 서운관(書雲觀)에 모두 석대를 만들되 높이는 포백척(布帛尺)으로 1척이요, 넓이는 8촌이며, 석대(石臺) 위에 둥그런 구멍을 만들어 〈측우기를〉 앉히는데, 구멍의 깊이는 1촌이니, 경신년17598) 의 신제척(新製尺)을 사용하라.”
하였다. 대체로 〈경신년의 신제척은〉 경신년에 삼척부(三陟府)에 있는 세종조 때의 포백척을 취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참고해서 자[尺]의 규식(規式)을 새로이 만든 것이다.
世宗朝の旧制度を模倣して、測雨器を作し、昌徳宮と慶熙宮にインストールするように命じた。八道と兩都の場合も作成してインストールして、雨水の多少を意するようにして、雨量計の尺寸がいくらかを馳啓して通知するようにした。続いて下校する為、
  "これは、すぐに昔に一風一雨の調査するように聖意を模したはずだから、どうしてあえて無視するのか?調べてみると、"世宗實錄"への雨量計は、石台を作して安置したとしている。今回の2つの宮闕と2つの書雲觀の両方に石台を作して高さは布帛尺で1尺、広さは8寸、石台の上に丸い穴を作し、"雨量計をインストールして、穴の深さは1寸、庚申年(1759)の新制尺を使ってください。"している。だいたい"庚申年の新制尺は、"庚申年に三陟府の世宗朝時の布帛尺を取り、"經國大典"を参照して尺の規式を、新たに作成された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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