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을 통합하기 위하여 ‘기기(記紀: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조작했듯이 메이지 쿠데타 세력들은 그들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모순과 모순을 숨기고 국민들을 다잡기 위하여 역사를 재차 조작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정부 3류 사무라이들은 “역사를 조작하면 그 나라가 망한다” 라고 주장했던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의 이야기는 먼 나라 전설로 치부했다.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 보다 큰 거짓말에 쉽게 속는 법이다’ 라는 히틀러식 역사조작 수법을 우매한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하여 역사조작 판도라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국수적 학자들과 언론을 총동원했다.
역사조작은 1. 고대 일본이 한반도 속국이었다는 열등의식에서 탈피하고, 1. 이웃나라 민족의 조상, 역사, 신까지 조작하여 가치를 격하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일왕의 가치를 높여 조작된 황국사상과 국가신도에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1. 이로 인하여 국민들을 과거를 모르는 역사치매에 걸리게 하여 3류 사무라이들의 충견으로 만들어 1. 3류 사무라이들에게로 향한 칼끝을 돌려 이웃을 침략하는데 사상적 근거로 활용하기 위하여 조작하였다. 이들의 역사조작은 난징대학살보다 더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3류 사무라이들의 인간 광기가 서린 역사조작에 의거 일본인들은 역사치매에 걸려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자 일본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의 광풍은 붉은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들게 되었다. 역사조작은 일본열도에 과거는 있으되 역사가 없는 땅으로 만들고 말았다. 역사조작의 위력은 핵폭탄 수만 개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조작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일본이 조작한 역사는 바로 한반도의 역사이자 일본의 역사였으며, 일본의 모든 것이었다. 일본이 저지른 역사조작의 서막(序幕)은 ‘기기’이지만 최종적으로 희대의 역사조작 걸작품을 만든 자는 바로 메이지 쿠데타를 일으킨 비열한 3류 사무라이들이다. 일본은 조작된 역사를 일본인은 물론 전세계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역사조작을 하면 단시일에 유명해지는 곳이 오늘날 일본이다. 2005년 7월 한국을 헐뜯고 조작된 내용으로 가득 찬 ‘혐한류 (マンガ 嫌韓流)’라는 단행본 만화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듯이 역사조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제2 분서갱유 이들이 조작한 역사를 별도의 ‘역사조작’ 카테고리에서 일부 정리하였지만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일본열도로 패주한 백제인들이 신라에 패한 역사를 지우기 위하여 조작.기술한 일본서기에서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단어를 찾아내어 이를 확대 재생산 2. 1874년 조작된 임나일본부를 측면지원하기 위하여 이소노카미신궁(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던 칠지도 발굴 및 조작 3. 1879년 300여 년 전 한반도를 침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악랄한 전쟁혼을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하여 도요쿠니신사(豊國神社) 및 코무덤(鼻塚) 중건 4. 1880년대 광개토태왕비를 조작하여 임나일본부가 실존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 5. 고대 일본열도가 “한반도 속국” 이었음을 나타내는 흔적을 지우기 위하여 일본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한반도 관련 단어.지명.신사의 이름을 ‘일본어의 비밀’에서 언급했듯이 범 국가 차원에서 일본식 발음으로 개칭 작업 착수 6. 일본 왕가(王家)의 뿌리가 가야.백제 왕족이었음을 숨기기 위하여 일왕가를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조작하면서 황국사상을 확대 포장 7. 이들이 조작한 역사가 모순으로 충돌하자 일본을 신의 나라라고 조작하면서 일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조작하여 이를 신봉하는 국가신도를 조작하였다. 그리고 일왕의 만수무강을 기리는 노래 “기미가요”를 만들어 지금까지 일본의 국가로 사용하고 있다. 8. 이를 뒤받침하기 위해서 한반도.일본.대마도.중국에 보유하고 있던 단군조선을 비롯한 고대역사서 수십만 종 기록들을 불태워(焚書)버렸다. 9. 일본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반도와 관련된 고대역사를 지우고. 조작했으며, ‘삼국사기 및 고대 한국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조작서임으로 절대로 보지도 말고 참고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또 한반도인들에게 선조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어 열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최대 역점으로 여겼다.(1927년 조선총독부 대외비 조사자료 제20집을 근거로 세종출판사 하종근著 “일제식민관료가 분석한 한국인”참조) 하지만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하여 神은 진실을 선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하라타 사카에루(原田榮)는1981년 4월 그의 저서 <역사와 현대>에서 다음과 같이 폭로하고 있다. “1923년 7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찬위원회 고문인 구로이다 가쓰미(黑板勝美) 동경제국대학 교수가 대마도에 사료 탐방을 하였을 때 한국과 관계가 있는 문서, 고기록 등이 대마도 번주(藩主) 家에 있는 것을 알고, 고문서류(古文書類) 66,469매, 고기록류(古記錄類) 3,576권, 고지도 34매, 두루마리 고화류(古畵類) 18점, 그림 53점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했다”. “조선총독부가 1926년 12월부터 1938년 3월까지 사이에 조선에서 탈취한 수집사료 4,950책, 사진자료 4,511매, 문서기록, 초상화, 긴 액자 등 4,513점에 달한다.” 또 그는 분서의 사유를 “백제. 가야의 제왕(諸王)이 일본의 일왕이 되었다는 것이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에 경악(驚愕)하여 동종(同種)의 문서를 대마도 종(宗)씨로부터 거두어 들이지 않으면 위험(향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 두려워)하다는 판단에 달한 것이다”
☞ 사시요시히코(佐治芳彦)는 <야마타이국말살(邪馬台國抹殺)의 미(謎)- 어느 누구도 몰랐던 한국문서>(1981년 9월)에서 “일제 때 일본은 한국사의 뿌리를 말살하기 위해 단군역사와 야마타이국에 관련한 역사를 말살,변조하는 것을 최초의 과업으로 삼았다. 일견(一見) 조선 민족의 역사를 탈취하고 그 혼을 고갈(枯渴)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동시에 일본민족의 뿌리까지 말소하여, 장차 일본제국의 붕괴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분서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 광복 후 발간된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 씨의 저서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에서는 일본이 1910년 8월 한국을 폭거적이고, 불법적인 강제병합 이후 1911년 12월까지 1년 2개월 동안 제1차 전국 서적 색출에서 단군조선 및 고대역사서 등 51종 20여 만권 분서했다”고 밝히고 있다.
☞ 또 1938년 6월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에서는 한국사 조작 편찬 배경을 말하고 있으며,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5년 동안 압수 분서한 사료가 무려 4950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