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흠경각옥루


朝鮮時代の科学技術 -欽敬閣 玉漏

欽敬閣 玉漏는 지금 설계도가 전해지지 않으나 조선실록에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欽敬閣 玉漏は設計図が伝わってか、または朝鮮実録に詳細に描かれている。
その内容を紹介する。

 

 

世宗 80卷, 20年(1438 戊午 / 명 정통(正統) 3年) 1月 7日(壬辰)
欽敬閣成。 大護軍蔣英實經營之, 其規模制度之妙, 皆出睿裁, 閣在景福宮燕寢之傍。 上命右承旨金墩, 作記曰:
흠 경각(欽敬閣)이 완성되었다. 이는 대호군 장영실(蔣英實)이 건설한 것이나 그 규모와 제도의 묘함은 모두 임금이 마련한 것이며, 각은 경복궁 침전 곁에 있었다. 임금이 우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기문을 짓게 하니, 이에 말하기를,
欽敬閣が完成した。これは、大護軍 蔣英實が造られたことや、その規模と制度の妙はすべて王が用意したもので、閣は景福宮 燕寢の付近ていた。王が右承旨 金墩に命じて記文を造っなので、これによると
 
 若稽帝王發政成務, 必先於明曆授時, 而授時之要, 在於觀天察候, 此璣衡儀表所由設也。 然考驗之方, 極精至密, 非一器一象所能取正。我主上殿下命攸司制諸儀象, 若大小簡儀、渾儀、渾象、仰釜日晷、日星定時、圭表、禁漏等器, 皆極精巧, 夐越前規, 猶慮制度未精, 且諸器皆設於後苑, 難以時時占察, 乃於千秋殿西庭, 建一間小閣
“상고하건대, 제왕이 정사를 하고 사업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먼저 역수(曆數)를 밝혀서 세상에 절후를 알려 줘야 하는 것이니, 이 절후를 알려 주는 요결(要訣)은 천기를 보고 기후를 살피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기형(璣衡)과 의표를 설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상고하고 징험하는 방법이 지극히 정밀하여 한 기구 한 형상만으로는 능히 바르게 할 수 없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 이 일을 맡은 자에게 명하여 모든 의기(儀器)를 제정하게 하였는데, 대소 간의(大小間儀)·혼의(渾儀)·혼상(渾象)·앙부일구(仰釜日晷)·일성정시(日星定時)·규표(圭表)·금루(禁漏) 같은 기구가 모두 지극히 정교하여 전일 제도보다 훨씬 뛰어나 오직 제도가 정밀하지 못하고, 또 모든 기구를 후원(後苑)에다 설치하였으므로 시간마다 점검하기가 어려울까 염려하여, 이에 천추전(千秋殿) 서쪽 뜰에다 한 간 집을 세웠도다.
 詳考してみると、帝王が政事にして業を達成するまでには、必ず先に曆數を言っても世の中に節候を伝えているはずだから、この節候を示す要訣は、天氣を見、氣候を観察することなので、璣衡と儀表をインストールするようになるのだ。したがって、これを上告して徵驗する方法が極めて高精度して、一器一象だけでは正しくすることができない。我の主上殿下ごこの仕事を担当する者に命じて、すべての儀器を制定しましたが、大小間儀·渾儀·渾象·仰釜日晷·日星定時·圭表·禁漏のような器具がすべて極めて精巧して、前日の制度よりもはるかに優れており、ただの制度が分解されず、また、すべての器具を後苑にインストールしていますので時間ごとに確認するのが難しいか心配して、これに千秋殿 西に一間の家を建てた。
 
糊紙爲山, 高七尺許, 置於其中。內設玉漏機輪, 以水激之。 用金爲日, 大如彈丸。 五雲繞之, 行於山腰之上, 一日一周, 晝現山外, 夜沒山中, 斜勢準天行, 去極遠近出入之分, 各隨節氣與天日合。日下有玉女四人, 手執金鐸, 乘雲而立於四方。 寅卯辰初正, 在東者每振之; 巳午未初正, 在南者振之, 西北皆然。 下有四神, 各立其傍, 皆面山。 寅時至則靑龍北向, 卯時至則東向, 辰時至則南向, 巳時至則還復西向而朱雀復東向, 以次向方如前。
풀 [糊]먹인 종이로 일곱 자 높이의 산을 만들어 집 복판에 설치하고, 그 산 안에다 옥루기(玉漏機) 바퀴를 설치하여 물로써 쳐올리도록 하였다. 금으로 해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탄자만 하고, 오색 구름이 둘러서 산허리 위를 지나도록 되었는데, 하루에 한 번씩 돌아서 낮에는 산 밖에 나타나고 밤에는 산 속에 들어가며, 비스듬한 형세가 천행에 준하였고, 극의 멀고 가까운 거리와 돋고 지는 분수가 각각 절기를 따라서 하늘의 해와 더불어 합치하도록 되어 있다. 해 밑에는 옥으로 만든 여자 인형 넷이 손에 금 목탁을 잡고 구름을 타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서 있어 인·묘·진시 초정(初正)에는 동쪽에 섰는 여자 인형이 매양 목탁을 치며, 사·오·미시 초정에는 남쪽에 섰는 여자 인형이 목탁을 치고, 서쪽과 북쪽에도 모두 이렇게 한다. 밑에는 네 가지 귀형(鬼形)을 만들어서 각각 그 곁에 세웠는데 모두 산으로 향하여 섰으며, 인시가 되면 청룡신(靑龍神)이 북쪽으로 향하고, 묘시에는 동쪽으로 향하며, 진시에는 남쪽으로 향하고, 사시에는 돌아서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동시에 주작신(朱雀神)이 다시 동쪽으로 향하는데, 차례로 방위를 향하는 것은 청룡이 하는 것과 같으며, 딴 것도 모두 이와 같다.

紙粘土に7尺の高さの山を作って家の真ん中に設置して、その山の內に玉漏機の車輪をインストールして水力に運行していた。金に太陽を作成しましたが、その大きさは彈子の大き、五色の雲が山腹位経ってもされたが、1日1回回しても日中は山にしか表示され、夜には山の中に入り、、斜めの形勢が天行に準する、極の遠く、近くと太陽の出沒の分數が、それぞれの季節に沿って、空の太陽と合致するようになっている。太陽の下には玉作成した女性の人形の4個が手に金木魚をとり、雲に乗って、東西·南北いたる所にそれぞれ立っている寅卯辰初正には東に立った女性の人形が每番木魚をたたい、巳午未初正には、南に立った女性の人形が木魚を打ち、西、北の場合もそうする。下では、4つの鬼形を作って、それぞれ、その動力を立てたのにすべての山に対して立し、寅時になると靑龍神が北に向かって、辰時には東に向かって、巳時には、南に向かって、住むには、回って再び西に向かうと同時に朱雀神が再び東に向かうが、順番に方位に向かうことは青龍がするのと同じであり、ちなんだものもすべて同様だ。

 

他倣此。 山之南麓有高臺。 司辰一人具絳公服, 背山而立。 有武士三人, 皆具甲冑, 一執鍾槌, 西向立於東; 一執鼓桴, 東向立於西近北; 一執鉦鞭, 亦東向立於西近南。 每時至則司辰回顧鍾人, 鍾人亦回視司辰, 乃擊鍾。 每更, 鼓人擊鼓; 每點, 鉦人擊鉦, 其相顧亦如之。 更點鉦鼓之數, 竝如常法。
산 남쪽 기슭에는 높은 축대(築臺)가 있어,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산을 등지고 섰으며, 인형 무사 셋은 모두 갑옷 차림인데 하나는 종과 방망이를 잡고서 서쪽을 향해서 동쪽에 섰고, 하나는 북[鼓]과 부채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섰고, 하나는 징[鉦]과 채쭉을 잡고 동쪽을 향해서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가까운 곳에 서 있어서, 매양 시간이 되면 시간을 맡은 인형이 종 치는 인형을 돌아보고, 종 치는 인형도 또한 시간을 맡은 인형을 돌아보면서 종을 치게 되며, 매경(每更)마다 북과 부채를 잡은 인형이 북을 치고, 매점마다 징과 채를 잡은 인형은 징을 치는데, 서로 돌아보는 것은 종 치는 인형과 같으며, 경·점마다 북 치고 징 치는 수효는 모두 보통 시행하는 법과 같다.
山の南麓には、高い築臺があり、時間を務めた人形の1つが赤い絹の服姿で山を背に立し、人形武者3個は、すべての鎧姿だが、1つは、鐘とばちを持って西に向かって東に立し、 1つは、鼓とばちを持って東に向かって西から少し北に近いところに立し、1つは、鉦とばちを持って、東に向かって西から少し南に近いところに立って、每番時間になると時間を務めたの人形が鐘を打つの人形を振り返り、鐘を打つ人形もまた、時間を務めた人形を巡りながら、鐘を打つようにされており、每更ごとに鼓とばちをとった人形がドラムをたたき、每點あたりどらままをとった人形はどら打つために、お互いに振り返ることは鐘を打つの人形と同じであり、更點毎に太鼓打ち、どら打つ數はすべて、通常施行される法のようにおなじだ。
 
又其下平地之上, 十二神各伏其位, 十二神之後, 各有穴常閉。子時至則鼠後之穴自開, 有玉女執時牌出而鼠起於前, 子時盡則玉女還入, 其穴還自閉鼠還伏; 丑時至則牛後之穴自開, 玉女亦出, 牛亦起, 十二時皆然。 午位之前又有臺, 臺上置欹器, 器北有官人執金甁以注之, 用漏之餘水, 源源不絶, 虛則欹, 中則正, 滿則覆, 皆如古訓。又山之東則作春三月之景, 南則夏三月之景, 秋冬亦然。 依《豳風》之圖, 刻木爲人物鳥獸草木之形, 按其節候而布之, 《七月》一篇之事, 無不備具。 閣名曰欽敬, 取《堯典》欽若昊天敬授民時之(之)義也。
또 산 밑 평지에는 열두 방위를 맡은 신들이 각각 제자리에 엎드려 있고, 열두 방위 신 뒤에는 각각 구멍이 있어 상시에는 닫혀 있다가 자시(子時)가 되면 쥐 모양으로 만든 신 뒤에 구멍이 저절로 열리면서 인형 옥녀(玉女)가 자시패를 가지고 나오며, 쥐 모양으로 만든 신은 그 앞에 일어선다. 자시가 다 가면 옥녀는 되돌아서 구멍에 들어가는 동시에 구멍이 저절로 닫혀지고 쥐 모양의 신도 제 위치에 도로 엎드린다. 축시가 되면 소 모양으로 만든 신 뒤의 구멍이 저절로 열리면서 옥녀가 또한 나오며, 소 모양의 신도 일어나게 되는데, 열두 시간이 모두 이렇게 되어 있다. 오방위(午方位) 앞에는 또 축대가 있고 축대 위에는 기울어진 그릇을 놓았고 그릇 북쪽에는 인형 관원이 있어, 금병(金甁)을 가지고 물을 따르는 형상인데 누수 남은 물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흐르며, 그릇이 비면 기울고 반쯤 차면 반듯해지며, 가득 차면 엎어져서 모두 옛말과 같이 되어 있다. 또 산 동쪽에는 봄 3개월 경치를 만들었고, 남쪽에는 여름 경치를 꾸몄으며, 가을과 겨울 경치도 또한 만들어져 있다. 《시경 빈풍도(詩經豳風圖)》에 의하여 인물·조수·초목 여러 가지 형용을 나무를 깎아 만들고, 절후에 맞추어 벌려 놓았는데 칠월 한 편의 일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집 이름을 흠경이라 한 것은 《서경》 요전(堯典)편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 하여, 백성에게 절후를 알려 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는 데에서 따온 것이다.
また、山の下の平地には、12の方位を担当する神々がそれぞれ所定の位置にうつぶせになるが、十二神の後には、それぞれの穴があり、通常は閉じているかにより、子時になると、マウスの形で作成された神の後ろの穴が自然に開き、人形の玉女が執時牌を持って引かれ、マウスの形で作成された神は彼の前に立ち上がる。子時が過ぎ去れば玉女がはおりかえし穴に入ると同時に穴が自然に閉じられてマウスの形の神も元の場所にうつぶせになる。丑時になると、牛の形で作成された神の後ろの穴が自然に開き、玉女がまた引かれ、牛の形の神も起こるようにされるが、12時間がすべてそうなっている。午方位の前には、もう1つの築臺があり、築臺の上には、欹器を置き欹器の北側には人形の役員があり、金甁を持って水を注ぐの形状だが漏水の残りの水を使用して、絶えず流れ、欹器が空なら傾いて半分になると、水平にされ、いっぱいになると倒れてすべて古訓のようになっている。また、山の東側には、春の3ヶ月の景色を用意しており、南には夏の景色を用意しており、秋と冬の景色もまた作られている。詩經豳風圖によって人物,鳥獸,草木、いくつかの形容の木を削って作成して、節候に合わせて配置しておいた《七月》一篇の事が整っていないことがない。家の名前を欽敬こしたのは書經堯典の欽若昊天 敬授民時ところから引用する。


又其下平地之上, 十二神各伏其位, 十二神之後, 各有穴常閉。 子時至則鼠後之穴自開, 有玉女執時牌出而鼠起於前, 子時盡則玉女還入, 其穴還自閉鼠還伏; 丑時至則牛後之穴自開, 玉女亦出, 牛亦起, 十二時皆然。 午位之前又有臺, 臺上置欹器, 器北有官人執金甁以注之, 用漏之餘水, 源源不絶, 虛則欹, 中則正, 滿則覆, 皆如古訓。 又山之東則作春三月之景, 南則夏三月之景, 秋冬亦然。 依《豳風》之圖, 刻木爲人物鳥獸草木之形, 按其節候而布之, 《七月》一篇之事, 無不備具。 閣名曰欽敬, 取《堯典》欽若昊天敬授民時之(之)義也。
또 산 밑 평지에는 열두 방위를 맡은 신들이 각각 제자리에 엎드려 있고, 열두 방위 신 뒤에는 각각 구멍이 있어 상시에는 닫혀 있다가 자시(子時)가 되면 쥐 모양으로 만든 신 뒤에 구멍이 저절로 열리면서 인형 옥녀(玉女)가 자시패를 가지고 나오며, 쥐 모양으로 만든 신은 그 앞에 일어선다. 자시가 다 가면 옥녀는 되돌아서 구멍에 들어가는 동시에 구멍이 저절로 닫혀지고 쥐 모양의 신도 제 위치에 도로 엎드린다. 축시가 되면 소 모양으로 만든 신 뒤의 구멍이 저절로 열리면서 옥녀가 또한 나오며, 소 모양의 신도 일어나게 되는데, 열두 시간이 모두 이렇게 되어 있다. 오방위(午方位) 앞에는 또 축대가 있고 축대 위에는 기울어진 그릇을 놓았고 그릇 북쪽에는 인형 관원이 있어, 금병(金甁)을 가지고 물을 따르는 형상인데 누수 남은 물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흐르며, 그릇이 비면 기울고 반쯤 차면 반듯해지며, 가득 차면 엎어져서 모두 옛말과 같이 되어 있다. 또 산 동쪽에는 봄 3개월 경치를 만들었고, 남쪽에는 여름 경치를 꾸몄으며, 가을과 겨울 경치도 또한 만들어져 있다. 《시경 빈풍도(詩經豳風圖)》에 의하여 인물·조수·초목 여러 가지 형용을 나무를 깎아 만들고, 절후에 맞추어 벌려 놓았는데 칠월 한 편의 일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집 이름을 흠경이라 한 것은 《서경》 요전(堯典)편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 하여, 백성에게 절후를 알려 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는 데에서 따온 것이다.
また、山の下の平地には、12の方位を担当する神々がそれぞれ所定の位置にうつぶせになるが、十二神の後には、それぞれの穴があり、通常は閉じているかにより、子時になると、マウスの形で作成された神の後ろの穴が自然に開き、人形の玉女が執時牌を持って引かれ、マウスの形で作成された神は彼の前に立ち上がる。子時が過ぎ去れば玉女がはおりかえし穴に入ると同時に穴が自然に閉じられてマウスの形の神も元の場所にうつぶせになる。丑時になると、牛の形で作成された神の後ろの穴が自然に開き、玉女がまた引かれ、牛の形の神も起こるようにされるが、12時間がすべてそうなっている。午方位の前には、もう1つの築臺があり、築臺の上には、欹器を置き欹器の北側には人形の役員があり、金甁を持って水を注ぐの形状だが漏水の残りの水を使用して、絶えず流れ、欹器が空なら傾いて半分になると、水平にされ、いっぱいになると倒れてすべて古訓のようになっている。また、山の東側には、春の3ヶ月の景色を用意しており、南には夏の景色を用意しており、秋と冬の景色もまた作られている。詩經豳風圖によって人物,鳥獸,草木、いくつかの形容の木を削って作成して、節候に合わせて配置しておいた《七月》一篇の事が整っていないことがない。家の名前を欽敬こしたのは書經堯典の欽若昊天敬授民時ところから引用する。

 

夫自唐、虞, 測候之器, 代各有制, 唐、宋以來, 其法寖備。 若唐之黃道遊儀、水運渾天, 宋之浮漏表影、渾天儀象, 以至元朝仰儀簡儀, 皆號精妙, 然大率各成一制, 未得兼考, 而運用之機, 多借人爲。今則天日之度、晷漏之刻與夫四神十二神鼓人鍾人司辰玉女凡百機關, 以次俱作, 不由人力, 自擊自行, 若神使然, 觀者駭愕, 莫測其由, 而上與天行不差毫釐, 制作之規, 可謂妙矣, 而又用漏之餘水作欹器, 以觀天道盈虛之理; 山之四方, 陳《豳風》, 以見民生稼穡之艱。此則又前代所無之美意也。 于以常接于左右, 每警於宸慮, 亦寓夫憂勤宵旰之節, 豈但成湯沐浴之盤、武王戶牖之銘而已哉! 其法天順時欽敬之意, 至矣盡矣, 而愛民重農仁厚之德, 當與周家竝美而傳於無窮矣。 閣旣成, 命臣書其事, 謹述梗槪, 拜手稽首以獻。
대저 당·우 시대로부터 측후(測候)하는 기구는 그 시대마다 각자 제도가 있었으나, 唐、宋이후로 그 법이 점점 갖추어져서 당나라의 황도유의(黃道遊儀)·수운혼천(水運渾天)과 송나라의 부루표영(浮漏表影)·혼천의상(渾天儀象)과 원나라의 앙의(仰儀)·간의(簡儀) 같은 것은 모두 정묘하다고 일렀다. 그러나 대개는 한 가지씩으로 되었을 뿐이고 겸해서 상고하지는 못했으며, 운용하는 방법도 사람의 손을 빌린 것이 많았는데 지금 이 흠경각에는 하늘과 해의 돗수와 날빛과 누수 시각이며, 또는 사신(四神)·십이신(十二神)·고인(鼓人)·종인(鍾人)·사신(司辰)·옥녀(玉女) 등 여러 가지 기구를 차례대로 다 만들어서,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저절로 치고 저절로 운행하는 것이 마치 귀신이 시키는 듯하여 보는 사람마다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서 그 연유를 측량하지 못하며, 위로는 하늘 돗수와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으니 이를 만들은 계교가 참으로 기묘하다 하겠다. 또 누수의 남은 물을 이용하여 기울어지는 그릇을 만들어서 하늘 돗수의 차고 비는 이치를 보며, 산 사방에 빈풍도(豳風圖)를 벌려 놓아서 백성들의 농사하는 어려움을 볼 수 있게 하였으니, 이것은 또 앞 세대에는 없었던 아름다운 뜻이다. 임금께서 여기에 항상 접촉하고 생각을 깨우쳐서, 밤낮으로 근심하는 뜻을 곁들였으니, 어찌 다만 성탕(成湯)의 목욕반(沐浴盤)과 무왕의 호유명(戶牖銘)과 같을 뿐이리오. 그 하늘을 본받고 때를 좇음에 흠경하는 뜻이 지극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농사를 중하게 여기시니, 어질고 후한 덕이 마땅히 주나라와 같이 아름답게 되어 무궁토록 전해질 것이다. 흠경각이 완성되자 신에게 명하시어 그 사실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삼가 그 줄거리를 적어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바치나이다.”
そも唐、虞の時代から測候の器は、その時代ごとにそれぞれの制度があったが、唐、宋の以降には、法律がますます整っれ、唐の黃道遊儀·水運渾天と宋の浮漏表影·渾天儀象と、元の仰儀·簡儀のようなことはすべて精妙だと伝えられている。しかし、通常は1つずつとされているだけで混ぜられたことは考えておらず、また、運用する方法も、人の手を借りられることが多かったが、今の欽敬閣は天と日の度、晷漏の刻または四神·十二神·鼓人·鍾人·司辰·玉女など、さまざまなフレームワークを順番にすべて作成して、人々の力を使用せず、自分で鐘を打ち、、自分で運行することは、まるで幽霊が規定されるよう見る人ごとに驚いてそれの原理が分からない、上には天の運行とは少しも間違っれませんので全く奇妙なことである。また、漏水の残りの水を使用して、傾向がある器を作って、天の滿と空の理致を見て、山の四方に豳風圖を開いて置いて民の農業の難しさ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これはまた、前の世代にはなかった美しいという意味だ。王のごここでは、常に接触し、思考を覚醒し、日夜心配の意味を意味を置いた、どうしてちょうど成湯の沐浴盤と武王の戶牖銘と同じだ。欽敬の意味が至極し、民を愛し、農業を重要に考えると、仁して厚な德が周のように美しくなって無窮するように伝えられる。欽敬閣が完成に伴い、臣に命じ、その事実を記録にするため、そのストーリーを書く.
 
明宗 15卷, 8年(1553 癸丑 / 명 가정(嘉靖) 32年) 9月 14日(丁巳)
丁巳/景福宮大內火。【太祖卽位三年, 所創康寧、思政二殿及欽敬閣皆燒盡。 自祖宗朝所傳珍寶、書籍, 與大王大妃誥命、服御等物, 亦盡爲灰燼。
경 복궁(景福宮)의 대내(大內)에 불이 났다.【태조가 즉위한 뒤 3년에 창건한 강녕전(康寧殿)·사정전(思政殿)·흠경각(欽敬閣)이 모두 불타 버렸다. 이 때문에 조종조로부터 전해 오던 진보(珍寶)와 서적 및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고명(誥命)과 복어(服御) 등도 모두 재가 되고 말았다.
景福宮の対内に火が出た。【太祖が即位した後、3年に創建した康寧殿·思政殿·欽敬閣がすべて燃えてしまった。このため、祖宗朝から伝えてきた珍寶と本と大王大妃の誥命と服御などもすべて灰となった。
 
明宗 15卷, 8年(1553 癸丑 / 명 가정(嘉靖) 32年) 12月 26日(戊戌)
欽敬閣草樣成。【初世宗取蓋天之術, 於康寧殿西, 起一閣, 名曰欽敬。 其中造山設大陽, 靑龍、白虎、朱雀、玄武、四象, 及十二神于山上, 又依《豳風七月》篇, 依稼穡之形, 列于四方。 山內爲機, 遊水而動之, 可以知一日之晷刻, 又可驗四時之晝夜, 其制甚精。 大內之延燒也, 朝廷咸憂此閣之〔遷〕就, 及是草樣成。 上遣中使見之, 知其可成, 甚喜之。】
흠경각(欽敬閣)의 초양(草樣)이 이루어졌다.
 【흠 경각은 처음에 세종 대왕이 개천술(蓋天術)1450) 을 취하여 강녕전(康寧殿) 서쪽에 각(閣)을 한 채 세우고, 이름을 흠경각이라 하였다. 그 안에 산(山)을 만들고, 태양(太陽)·청룡(靑龍)·백호(白虎)·주작(朱雀)·현무(玄武)·사상(四象) 및 십이신(十二神)을 산 위에 가설하고, 또 빈풍 칠월편(豳風七月篇) 에 의하여 농사일의 형상을 사방에 나열하였다. 산 안쪽에 기계를 설치하여 물이 치는 힘을 빌어 움직이면서 하루의 시각을 알리게 하였으며, 또 사계절의 낮과 밤을 알 수 있게 하였는데, 그 제도가 매우 정교하였었다. 대내가 연소되자 조정에서는 다시 지을 수 있을까 염려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초양이 이루어졌다. 상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본 다음 성공할 수 있음을 알고는 매우 기뻐하였다.】
欽敬閣の草樣が行われた。
  【欽敬閣は、最初に世宗大王が蓋天術を取り出し、康寧殿の西に閣を一軒立てて、名前を欽敬閣とした。その中に山を作成して、太陽·青龍·白虎·朱雀·玄武の四象と十二神を山の上に架設とし、また豳風七月篇による農作業の形状をいたる所に記載している。山の中の機械を設置して、水を弾く力を借りて動かしながら、一日の時間を時報し、また、四季節々の昼と夜を知ることが可能にしたが、その制度が非常に精巧した。大內が全燒される朝廷では、再建設することができますか心配しましたが、この時期に至って草樣が作られた。上遣中使を送して、成功することを知って非常に喜んだ。】

 

明宗 17卷, 9年(1554 甲寅 / 명 가정(嘉靖) 33年) 8月 19日(丁亥)
大王大妃供饋監修欽敬閣官員于闕庭, 傳曰: “國遭否運, 兩大王相繼賓天, 衆災連綿, 無歲不凶。 蒼生艱食, 常切嘆憫, 而不意祖宗正闕, 一夜焚蕩, 世宗所創欽敬閣, 幷爲燒盡, 神妙制度, 無計復覩, 不勝痛恨。 卿等誠心曲措, 不期年而依舊造成, 深用嘉悅。”

光海 111卷, 9年(1616 丙辰 / 명 만력(萬曆) 45年) 1月 18日(甲申)
甲申/傳曰: “欽敬閣自春分後, 觀象監提調以下, 詳細校正, 俾無差違。”

正祖 39卷, 18年(1794 甲寅 / 청 건륭(乾隆) 59年) 3月 24日(辛亥)
辛亥/次對。 戶曹判書沈頣之奏曰: “臣於昨日承命, 看審舊摠府、漏局等處, 圖形以進, 而至於欽敬閣, 則樑椽腐傷矣。” 上曰: “如許大廈, 其孰下手? 三間漏水閣, 特其餘事。 決知其有巖墻之慮, 而猶且任置, 實涉未安。 欽敬閣則顧名思義, 實有所重。 苟屬無用, 則周之明堂, 孟子猶請毁之。此亦欲毁則撤去, 欲壽則修葺。 苟欲修葺, 雖云難於下手, 豈無可爲之道乎?” 頣之曰: “改建誠難。” 鄭民始曰: “只令改瓦, 牽架補漏, 亦足改觀矣。” 上曰: “此是世宗朝所創, 而爲我國之第一傑構, 至今巋然若靈光。 此若修葺, 則亦係堂構之一端矣。十二仙童等儀器遺制, 昭載於文跡, 足可倣而設之。 故今之熙政堂前自鳴鐘之水激轉斡者, 亦是傳襲於遺制者。 似此儀器, 如丁遇泰者, 足能成樣。 至若架屋之制, 如許巧匠, 何處得來乎?”

 

我國之第一傑構, 至今巋然若靈光
欽敬閣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웅장한 건축인데 지금껏 우뚝 솟아 있어 마치 영광전(靈光殿)과 흡사하다.
欽敬閣は、我が国で最も壮大な建築ですが今までそびえており、まるで靈光殿と似ている。

 

高宗 13卷, 13年(1876 丙子 / 청 광서(光緖) 2年) 11月 4日(辛酉)
初四日。景福宮災。【交泰殿、精趾堂、健順閣、紫薇堂、德善堂、慈慶殿、協慶堂、福安堂、純熙堂、延生殿、慶成殿、含元殿、欽敬閣、虹月閣、康寧殿】八百三十餘間延燒。 火起倉猝, 勢甚迅遽。 俄頃之間, 諸殿閣蕩然灰燼, 列朝御筆舊物, 一未有收, 大寶及東宮玉印之外, 諸寶符信, 皆燒火。

 

欽敬閣은 수차례의 화제로 전소되어 복구되었으나 1876년 경복궁의 화제로 마지막을 고한다.
欽敬閣は、数々の火災に全焼され、復舊されたが、1876年に景福宮の火災に終わりを告げ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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