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伊東 俊太郎의 科学史技術史事典의 年表를 보면
1400년에서 1450년까지 주요 업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29건, 중국 5건, 일본이 0건이며,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이 28건으로 정리되어 있다.
앞으로 어떤  科学,技術이 이렇게 소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伊東 俊太郎の科学史技術史事典の年表を見ると、
1400年から1450年までの主要な成果として、東アジアでは韓国が29件、中国5件、日本が0件で、東アジア以外の全地域が28件で整理されている。
今後どのような科学,技術がそう紹介されているのかについて、比較的詳しく連載させていただきます。
伊東 俊太郎(いとう しゅんたろう、1929年4月25日 - )は、日本の科学史家。比較文明学者、東京大学名誉教授、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名誉教授、麗澤大学名誉教授。

 

한국의 선진 문물이 일본에 전해진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일본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韓国の先進的な文物が日本に伝わったことを恥ずかしく思っている日本人が多いようだ。
ある日本人の言葉に耳を傾けてみよう。

欧米の学校で教えられている世界史は、欧米のことしか書いていないひどいものである。キリスト誕生以後の2000年より長く続いた古代エジプト文明はさすがに記述するものの、そのあとも人間が住みつづけたエジプトのその後については一切記述しない。エジプト文明の歴史はのちのヨーロッパのためだけにあったとでも言うのだろうか? しかし、同様の錯覚は日本人もしているのであって、「~は中国から朝鮮半島を通して日本に伝わった」という決り文句にそれが示されている。朝鮮の歴史に生きた人々は、のちの日本の歴史のために生きたのではない。 
서양 학교에서 배우고있는 세계사는 서양 것 밖에 쓰지 않는 참담한 것이다. 그리스도 탄생 이후 2000 년 오랫동안 계속된 고대 이집트 문명은 과연 묘사되지만 그 후에도 인간이 살고 요즘 이집트 그런 내용은 전혀 기술하지 않는다. 이집트 문명의 역사는 이후 유럽을 위해서만 있었다고도 말할 것인가? 그러나 같은 환영은 일본인도 하고 있는 것이고, “~은 중국에서 한반도를 통해 일본에 전해진”라는 상투적인 표현에서 그것이 나와있다. 한국의 역사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후의 일본의 역사를 위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율리우스력은 고대 로마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한 역법이다.
율리우스력은 1년을 365.25일로 했으며, 0.25일의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4년에 한 번씩 1일을 추가한 윤년이 있었다(곧 400년에 100번의 윤년이 있게 됨). 하지만 정확한 천문학적 1년(태양년)과는 약간의 오차가 있었기 때문에 그 오차를 더 줄인 그레고리력이 나오게 된 것이다.
1582년 10월 4일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개정하였으며, 개정한 달력은 그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레고리력은 1년을 365.2425일로 보았으며, 율리우스력보다 0.0075일 줄어든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매 400년마다 3일씩을 빼도록 했다.
ユリウス暦は、古代ローマの政治家ガイウスユリウスカエサルが紀元前46年に制定された暦である。
ユリウス暦は1年を365.25日としており、0.25日の誤差を修正するために4年に1回、1日を追加したのうるう年があった(すぐに400年に100回の閏年があるようになる)。しかし、正確な天文学的な1年(太陽年)とは若干の誤差があったので、その誤差を減らしたグレゴリオ暦が出るようになったのだ。
1582年10月4日、教皇グレゴリウス13世はユリウス暦を改正し、改訂したカレンダーは彼の名にちなんでグレゴリオ暦と呼ぶようになった。
グレゴリオ暦は1年を365.2425日に見たおり、ユリウス暦よりも0.0075日減の誤差を修正するためのユリウス暦に基づいて、ひとつひとつの400年毎に3イルシクウルペドロクした

 

칠정산 (七政算)
  조선 초 1442(세종 24)년 완성되어 44년 3권으로 간행된 역서(曆書)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과 그 속편인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로서 세종의 명을 받아 이순지(李純之;?~1465), 김담(金淡;1416~64)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것이다. 먼저 칠정산내편은  1420년 유정현(柳廷顯)이 역법을 바르게 할 것을 건의하자, 세종은 정흠지(鄭欽之)·정초(鄭招)에게 〈수시력법 授時曆法〉을 연구하게 하여, 그 묘법을 터득했다. 그후 〈태음태양통궤 太陰太陽通軌〉라는 역서가 중국에서 들어왔는데 그 내용이 〈수시력법〉과 달라, 세종이 이순지와 김담에게 명해 그것을 참작·요약하고 한양을 기준으로 추산(推算)한 것을 중심으로 정리·편찬하게 했다.
   책의 구성은 1281년(고려 충렬왕 7)을 원력(元曆)으로 삼았으며, 상권은 천행제율(天行諸率)·일행제율·월행제율·일월식·역일, 중권은 태양·태음·중성(中星), 하권은 교식(交食)·일식·월식·오성(五星)·사여성(四餘星)으로 되어 있다. 내편의 소인(所引)·후지(後識)에는 편찬과정을 적었다.
  칠정, 즉 해와 달, 그리고 다섯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는 수학적 방법을 완성해놓은 것인데, 삼국시대 이래 고려 때까지는 이런 계산이 아직 완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칠정산내편》의 완성으로 계산이 완벽해져 서울에서 일어날 일식 등의 천문현상을 정확하게 예보했다.
  그리고 1444년(세종 26년)에 간행된 칠정산외편은 활자본이며 3권 5책으로 구성되고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속편으로, 《회회력경통경(回回曆經通經)》과 《가령력서(假令曆書)》를 개정 ·증보하여 만든 것이다. 원(元)나라의 《수시력법(授時曆法)》과 명나라의 《통궤력법(通軌曆法)》을 참고하여, 한양을 기준으로 조선의 지리적 조건에 알맞게 작성되어 있다.
 
朝鮮初 1442(世宗24)年完成し、44年3巻で出版された曆書)の七政算內篇と、その続編である七政算外篇として、世宗の命を受けて李純之、金淡が中心となって編纂される。まず、七政算內篇は、1420年柳廷顯が暦を正しくすることを提案しよう、世宗は鄭欽之·鄭招に”授時曆法”を研究して、その妙法を会得した。その後、”太陰太陽通軌”という曆書が中国から入ってきたが、その内容が”授時曆法”と違い、世宗が李純之と金淡に命じて、それを考慮·要約し、漢陽に基づいて推算することを中心に整理編纂するようにした。
   本の構成は、1281年(高麗 忠烈王7)を元曆として設定しおり、上券は天行諸率,日行諸率,月行諸率,日月蝕 曆日、中券は太陽·太陰·中星、下巻は交食,日蝕,月蝕 五星,四余星になっている。内篇の所引,後識には、編纂過程を書いた。
  七政、つまり太陽と月、そして5つの惑星(水星,金星,火星,木星,土星)の動きを計算することができる数学的方法を補完しておいたはずなのに、三国時代以来、高麗まで、このような計算がまだ完全ではできなかったようだ。 “七政算内篇”の完成に計算が完璧なり、ソウルで行われる日蝕などの天文現象を正確に予測した。
  そして1444年(世宗26年)に出版された七政算外篇は活字本で、3巻5本で構成され、現在の奎章閣に所蔵されている。この本は”七政算内篇”の続編として、”回回曆經通經”と”假令曆書” を改正増補して作成する。、元の”授時曆法”とは、明の”通軌曆法”を参照して、漢陽を基準に、朝鮮の地理的条件に適切に作成されている。


七政算外篇
조선 전기의 문신 이순지(李純之:?~1465)· 김담(金淡:1416~64)이 중국에서 사용되던 회회력법(回回曆法)의 착오를 수정해 우리 실정에 맞게 엮은 역서(曆書).
3 권 5책. 목활자본. 회회력법을 연구하던 중 중국 역관들이 계산에 착오가 있음을 발견하고, 1432년(세종 14) 왕명으로 편찬을 시작해 1442년에 완성, 2년 후인 1444년에 간행했다. 서두에 역원(曆元)과 몇 가지 상수를 밝힌 다음 1장 태양의 운행, 2장 달의 운행과 경도(經度)·위도(緯度), 3장 일식·월식의 계산법, 4장 금·목·수·화·토의 오성(五星) 운동과 그 경도·위도, 5장 오성릉범(五星凌犯)·시각추산법 등이 공식집의 형태로 실려 있다. 이 책은 〈칠정산내편 七政算內篇〉에 비해 수표가 더 많고 계산도 세밀하며, 추보(推步:천체 관측)의 정확도도 앞서 있다. 내편과의 차이점은 천구(天球) 1주(周)를 360˚(내편에서는 365˚ 2.575′)로 한 점, 내편의 28수(宿) 대신 황도(黃道) 12궁(宮)을 중시한 점, 내편이 오성의 천구상의 운행과 관측사실을 단순히 수리적으로 설명한 데 비해 원(圓) 또는 복합원(複合圓)을 사용해 기하학적으로 구명한 점 등이다. 또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부등속 타원운동을 하는 태양의 운행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에는 타원이라는 개념이 없던 까닭에 지구의 위치를 구의 중심 이외의 곳에 두고 설명했다. 이 책은 세종대부터 효종대에 시헌력(時憲曆法)이 도입될 때까지 약 200년 동안 〈칠정산내편〉을 보완해 천문관측에 이용되었는데 특히 일식·월식의 관찰에 큰 참고가 되었다.
朝鮮前期の文臣李純之,金淡が、中国で使われていた回回曆法のミスを修正して朝鮮の実情に合わせて編纂された曆書.
3 巻5本。木活字本。回回曆法を研究していたの中,中国曆官の計算にミスがあることを発見し、1432年(世宗14)王命に編纂を始めて1442年に完成、 2年後の1444年に出版した。この本は”七政算內篇”に比べて數表がより多く,計算を細かくし、推步(天体観測)の精度を上回っている。內篇との違いは、天球1周を360˚(內篇では、365˚2.575”)とした点、內篇の28数(宿)ではなく、黃道12宮を重視した点、內篇が五星の天球上の運行と観測事実を単純に數理に説明するのに比べて圓、または複合圓を使用して、幾何学的に究明した点などだ。また、ケプラーの法則に基づいて不等速楕円運動をする太陽の運行を説明するために、その時には、楕円形という概念がなかったわけで、地球の位置を球の中心部以外のところに置いて説明した。この本は、世宗大王から孝宗代に時憲曆法が導入されるまで、約200年の間に”七政算內篇”を補完して天文観測に利用されたが、特に日蝕,月蝕の観察には大きな参考になった。

남송(南宋) 순우(淳祐) 7년(1247)에 만들어진 “淳祐天文圖

天象列次分野之図

 

天象列次之図

天文分野之図

日本の星図の歴史
江戸時代までに日本で使用されていた星図は中国星座である.
渋川春海によると,中国星座は3種類に分けられる.二十八宿や北斗等の明るい星を含む魏の石申が制定した138座810星,斉の甘徳が制定したやや明るい星を含む 18座511星,巫咸が制定した暗い星を含む44座144星がある.ただ,これらは本当に石申,甘徳,巫咸が制定したかどうかは不明であるし,その星座も時代によって少し変遷がある.渋川春海は,朝鮮の天象列次分野之図(1395)を参考に「天象列次之図」(1670),さらに「天文分野之図」(1677)という星図を著した.さらに星の位置を測定し,それを「天文瓊統」に示すとともに,子の昔伊と共に「天文成象」(1699)で図に表した.その折,中国星座以外の星に対し,太宰府など,日本の官職名にあたる星座308星61座を追加した.この星図は日本人により初めて編集された星図である.
일본 천문도의 역사
에도시대까지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던 별자리 표는 중국 별자리이다.
渋川春海에 따르면, 중국 별자리는 3 가지로 나뉜다. 이십 팔수와 북두 등 밝은 별을 포함하여 위의 石申이 제정한 138 좌 810星 제나라의 甘徳이 제정한 다소 밝은 별을 포함하여 18 자리 511 성, 巫咸이 제정한 어두운 별을 포함하여 44 자리 144 별이있다. 단, 이들은 정말 石申,甘徳,巫咸가 제정한 것인지는 불명하고 별자리도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천이있다. 渋川春海은 조선의 天象列次分野之図(1395)를 참고로 “天象列次之図”(1670), 또한 “天文分野之図”(1677)이라는 별자리 표를 썼다. 또한 별의 위치를 측정하고 그것을 “天文瓊統”에 표시하고 아들 昔伊과 함께 “天文成象”(1699)의 그림에 나타냈다. 저 시절 중국 별자리가 아닌 별 에 대해 太宰府등, 일본의 관직 이름에 해당하는 별자리 308 별 61 자리를 추가했다. 이 별자리 표는 일본인에 의해 처음으로 편집한 별자리 표이다.

世宗時代(1418~1450年)には、首都漢陽(現在のソウル)を基準にした新しい時刻制度が始まりました。世宗王は一年の長さがそれまで 365.2425日であった授時暦を校正させ、天体位置の表示には二十八宿を基本とした「七政算内篇」を編纂させました。すなわち、平均太陽日(恒星年) を365日.2575(現代365日.2564と近似)、周天度(円周)を365度25分75秒(三六五度四分の一度)としたのです。(一度は100分、一分は100秒の角度法を採用。)後になって、二十八宿の代りにアラビア方式に準じた十二宮を基準とした「七政算外篇」(5巻)を編纂して、周天度を360度、1度を60分、1分を60秒としました。
この七政算の計算法は1643年(寛永20年)、朝鮮通信使の一員であった朴安期によって日本にも伝わり、彼に師事した岡野井玄貞の弟子、渋川晴海が「貞享暦」という日本最初の暦を作るときに参考とされました。
세종 시대 (1418 ~ 1450 년)에는 수도 한양 (현재 서울)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시간 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종 임금은 일년의 길이가 이전 365.2425 일이었던 授時暦을 교정하고 천체 위치 표시는 二十八宿을 기본으로 한 “七政算内篇”를 편찬했습니다. 즉, 평균 태양일 (항성년)를 365 일 .2575 (현대 365 일 .2564와 근사), 주천도 (원주)을 365도 25 분 75 초 (三六五度四分의一度)으로 한 것입니다. (일도는 100 분, 일 분은 100 초 각도 방식을 사용) 나중에, 二十八宿 대신에 아랍 방식에 준한 十二宮 을 기준으로 한 “七政算外篇”(5 권 )를 구성하여 주천도 360도, 1 도를 60 분, 1 분 60 초로 했습니다.
이 七政算의 계산 방법은 1643 년 (寛永 20 년), 조선 통신사의 일원이었던 朴安期를 통해 일본에도 전해져, 그에게 사사했던  岡野井玄貞의 제자, 渋川晴海가”貞享暦”이라는 일본 최초의 달력을 만들 때 도움이 되었습니다.

宣明暦                            天保暦(もどき)
小満 辛酉 =1607.5.24 23:46 四月   1607.5.22 2:10 四月
朔 癸亥    =1607.5.26 3:52 閏四月  1607.5.26 3:33 五月
夏至 壬辰 =1607.6.24 10:16 五月   1607.6.22 11:34 五月
朔 壬辰    =1607.6.24 16:47 五月   1607.6.24 16;37 閏五月
参考:内田正男編著「日本暦日原典」
 この年には江戸時代第一回の朝鮮通信使が来訪している。この一行は四月一二日に京都を出発し五月二十四日に江戸に到着した。ただしこの日付は「朝鮮暦」と但し書きがついている(仲尾宏「朝鮮通信使」)。
 閏四月があったとすれば、京都から江戸まで70日以上を要したことになる。しかしそれがなかったなら40日強の旅程で、こちらのほうが妥当であろう。

 このように宣明暦時代に節気がずれたのは、この暦では1年の長さを
 3068055÷8400=365.2446428571429日
としていたためである。1太陽年の正確な長さは365.2422日なので、これは0.0024日ほど長い。僅かな誤差ではある。しかし、800年の間、この「1年」を愚直に加算していったものだから、積もり積もって2日のずれが生じたのである。
이 무렵 에도시대 첫 회 조선 통신사가 내방하고있다. 이 일행은 四月一二日에 교토를 출발하여 오월 이십사일에 에도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날짜는 “朝鮮暦”이라고 단서가 붙어있다 (仲尾宏 “조선 통신사”).
윤월이 있었다고하면, 교토에서 에도까지 70 일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없었다면 40 일 강의 여정으로 여기 쪽이 합리적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宣明暦시대 절기가 어긋난 것은 이 달력은 1 년의 길이를
3068055 ÷ 8400 = 365.2446428571429 일
하고 있었기 때문에이다. 1 태양년의 정확한 길이는 365.2422 일이므로, 이것은 0.0024 일 정도 길다. 소량 오차가있다. 그러나 800 년 동안 이 “1 년”을愚直하게 가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쌓이고 쌓여 2 일 차이가 생긴 것이다.


朝鮮時代の科学科技術 - 天文 1

伊東 俊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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