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일본의 식생활에 대하여 알아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精米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日本の食生活についての詳細は見ています。
今日は精米について調べてみましょう。


이전 투고 내용중 핵심을 추려 보면
前の投稿内容のうち中核を選り抜き見る

釜の使用を決定付けたのは米の普及と関係があるという
솥의 사용을 결정 지은 것은 쌀밥의 보급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kr/exchange/photo/read.php?uid=1642&fid=1642&thread=1000000&idx=1&page=1&tname=exc_board_14&number=1195

米は主食であっても常食たりえなかったのであろ。たとえば,鎌倉時代(1192-1330)においては,米飯と味噌汁と漬物という献立は,上流の貴族・僧侶にのみ許された美味であり,これが支配階級の武士から都市民にいたり,最下級の労働者にいたるまで,米飯に親しむことが出来るようになったは江戸時代末期である。
가마 쿠라 시대 (1192-1330)에서는 쌀밥과 된장국과 절인 야채는 식단은 상류 귀족 승려에만 허용되었다 별미이고, 이것이 지배 계급의 무사에서 도시 사람에 있고, 밑바닥 수준의 노동 사람에 이르기까지 쌀밥을 체험할 수있게 된 것은 에도시대 말기이다.
/kr/exchange/photo/read.php?uid=1651&fid=1651&thread=1000000&idx=1&page=1&tname=exc_board_14&number=1201

에도시대 말기에 쌀의 보급으로 솥이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 서민도 쌀밥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쌀생산이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던 에도시대 초기에는 쌀밥이 보급되지 않았을까요?
그 비밀을 精米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前の投稿内容のうち中核を選り抜き見る
江戸時代末期に米の普及に羽釜が使用され、それによって庶民にも米を味わえるようになった話ですが
米の生産がそういう風に不足していなかった江戸時代初期には、米が普及していないのでしょうか。
その秘密を精米で検索してみましょ


昔の精米方法は?
今から500年ほど前までは、刈(か)り取った穂(ほ)から、もみをそぎ落とし、
その後、臼(うす)中に入れて杵(きね)でついたんだ。
自然に糠(ぬか)がはがれたので、今のように真っ白にならないけど、もみすりと精米が同時にできたんだよ。
150年前になると、唐臼(からうす)といって 足を使った精米機が発明されたよ。
手で杵(きね)をつくより 力がいらず楽に精米できるようになったよ。
http://www.ja-group.or.jp/baketsuine/info_magazine/magazine/b_no112.html
과거의 정미방법은?
지금 부터 500년 정도 전에는 벤 벼의 이삭에서 겨가 붙어 있는 벼를 왕겨를 제거하여 방아에 넣고 절구로 찧엇다.
자연적으로 쌀겨가 박리되었기 때문에,지금과 같은 흰쌀은 아니지만 매갈이와 정미가 동시에 가능했다.
벼를 매통에 갈아서 왕겨만 벗기고 속겨는 벗기지 아니한 쌀을 만드는 일
150년 전에 이르면,디딜방아라는 다리를 사용하는 정미기가 발명되었다.
팔을 사용하는 것 보다 힘이 적게 들어 즐겁게 정미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150년 전에 디딜방아라는 획기적인 정미기계의 등장으로 마침내 대량으로 생산하여 흰쌀을 서민도 맛보게 되었군요.
そうでした。
150年前に、トレッドミルと呼ばれる画期的な精米機の登場で、最終的には大量に白米を生産するようになり、庶民も味わうことになりましたよね。


안악 3호분 벽화중 디딜방아 그림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의 서기 6세기 전반 고구려 보루(堡壘)에서 디딜방아 시설을 갖춘 방앗간 유적이 확인됐다.15평 규모의 방앗간 터에서 발굴된 화강암 방아확에는 1500년 세월을 견딘 방앗공이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김홍도(金弘道) - 수차도(水車圖)


물레방아는 큰나무바퀴와 굴대에 공이를 장치하여,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 그 끝의 공이가 확 속의 곡식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동작이 자동으로 되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찧을 수 있으며, 공이가 양쪽으로 두 개가 물려 있어 엇갈려 찧어지는 것과 한 개만 있는 것 등이 있다.


1900년경에 설치돼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강원 정선군 동면 백전리 물레방아(강원도 민속자료 제6호)가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듯 이끼를 뒤집어 쓴 채 오늘도 쉼없이 돌고 있다. 이 물레방아는 재래식 물레방아의 원형을 완벽하게 보전, 향토민속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아


한쪽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져서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마주 서서 찧는 양다리방아와 한쪽이 벌어지지 않고 곧아서 한 사람이 찧는 외다리방아의 두 가지가 있다. 외다리방아의 가장 오랜 증거는 황해도 안악의 옛 고구려 무덤의 그림으로서 이 무덤은 4세기에 만들어졌으므로 이미 4세기 이전부터 이것을 써 왔음이 분명하며, 이 방아는 근래까지 전남의 해안 지방에서 사용되었다.


디 딜방아의 분포지역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대륙, 인도네시아 등지의 도서 지역, 일본 ·네팔 ·인도 등이지만, 양다리방아는 한국 고유의 발명품으로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다.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외다리방아를 나란히 설치하여 쓸지언정 한국처럼 양다리방아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양다리방아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러가며 찧는 까닭에 매우 능률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고달픔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공이로는 나무, 돌을 쓰지만 나무 공이 끝에 겉을 우툴두툴하게 만든 쇠통을 끼우기도 한다. 확으로는 작은 돌절구를 땅에 묻으며 천장에서 늘인 새끼줄을 쥐고 방아를 찧는다.

      


江戸時代の食生活 2-精米

일본의 식생활에 대하여 알아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精米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日本の食生活についての詳細は見ています。
今日は精米について調べてみましょう。


이전 투고 내용중 핵심을 추려 보면
前の投稿内容のうち中核を選り抜き見る

釜の使用を決定付けたのは米の普及と関係があるという
솥의 사용을 결정 지은 것은 쌀밥의 보급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kr/exchange/photo/read.php?uid=1642&fid=1642&thread=1000000&idx=1&page=1&tname=exc_board_14&number=1195

米は主食であっても常食たりえなかったのであろ。たとえば,鎌倉時代(1192-1330)においては,米飯と味噌汁と漬物という献立は,上流の貴族・僧侶にのみ許された美味であり,これが支配階級の武士から都市民にいたり,最下級の労働者にいたるまで,米飯に親しむことが出来るようになったは江戸時代末期である。
가마 쿠라 시대 (1192-1330)에서는 쌀밥과 된장국과 절인 야채는 식단은 상류 귀족 승려에만 허용되었다 별미이고, 이것이 지배 계급의 무사에서 도시 사람에 있고, 밑바닥 수준의 노동 사람에 이르기까지 쌀밥을 체험할 수있게 된 것은 에도시대 말기이다.
/kr/exchange/photo/read.php?uid=1651&fid=1651&thread=1000000&idx=1&page=1&tname=exc_board_14&number=1201

에도시대 말기에 쌀의 보급으로 솥이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 서민도 쌀밥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만
쌀생산이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던 에도시대 초기에는 쌀밥이 보급되지 않았을까요?
그 비밀을 精米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前の投稿内容のうち中核を選り抜き見る
江戸時代末期に米の普及に羽釜が使用され、それによって庶民にも米を味わえるようになった話ですが
米の生産がそういう風に不足していなかった江戸時代初期には、米が普及していないのでしょうか。
その秘密を精米で検索してみましょ


昔の精米方法は?
今から500年ほど前までは、刈(か)り取った穂(ほ)から、もみをそぎ落とし、
その後、臼(うす)中に入れて杵(きね)でついたんだ。
自然に糠(ぬか)がはがれたので、今のように真っ白にならないけど、もみすりと精米が同時にできたんだよ。
150年前になると、唐臼(からうす)といって 足を使った精米機が発明されたよ。
手で杵(きね)をつくより 力がいらず楽に精米できるようになったよ。
http://www.ja-group.or.jp/baketsuine/info_magazine/magazine/b_no112.html
과거의 정미방법은?
지금 부터 500년 정도 전에는 벤 벼의 이삭에서 겨가 붙어 있는 벼를 왕겨를 제거하여 방아에 넣고 절구로 찧엇다.
자연적으로 쌀겨가 박리되었기 때문에,지금과 같은 흰쌀은 아니지만 매갈이와 정미가 동시에 가능했다.
벼를 매통에 갈아서 왕겨만 벗기고 속겨는 벗기지 아니한 쌀을 만드는 일
150년 전에 이르면,디딜방아라는 다리를 사용하는 정미기가 발명되었다.
팔을 사용하는 것 보다 힘이 적게 들어 즐겁게 정미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150년 전에 디딜방아라는 획기적인 정미기계의 등장으로 마침내 대량으로 생산하여 흰쌀을 서민도 맛보게 되었군요.
そうでした。
150年前に、トレッドミルと呼ばれる画期的な精米機の登場で、最終的には大量に白米を生産するようになり、庶民も味わうことになりましたよね。


안악 3호분 벽화중 디딜방아 그림

경기도 구리시 아차산의 서기 6세기 전반 고구려 보루(堡壘)에서 디딜방아 시설을 갖춘 방앗간 유적이 확인됐다.15평 규모의 방앗간 터에서 발굴된 화강암 방아확에는 1500년 세월을 견딘 방앗공이 자국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김홍도(金弘道) - 수차도(水車圖)


물레방아는 큰나무바퀴와 굴대에 공이를 장치하여,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 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 그 끝의 공이가 확 속의 곡식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동작이 자동으로 되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찧을 수 있으며, 공이가 양쪽으로 두 개가 물려 있어 엇갈려 찧어지는 것과 한 개만 있는 것 등이 있다.


1900년경에 설치돼 국내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강원 정선군 동면 백전리 물레방아(강원도 민속자료 제6호)가 세월의 흐름을 상징하듯 이끼를 뒤집어 쓴 채 오늘도 쉼없이 돌고 있다. 이 물레방아는 재래식 물레방아의 원형을 완벽하게 보전, 향토민속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통아

한쪽이 가위다리처럼 벌어져서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마주 서서 찧는 양다리방아와 한쪽이 벌어지지 않고 곧아서 한 사람이 찧는 외다리방아의 두 가지가 있다. 외다리방아의 가장 오랜 증거는 황해도 안악의 옛 고구려 무덤의 그림으로서 이 무덤은 4세기에 만들어졌으므로 이미 4세기 이전부터 이것을 써 왔음이 분명하며, 이 방아는 근래까지 전남의 해안 지방에서 사용되었다.

디 딜방아의 분포지역은 중국을 비롯하여 동남아시아 대륙, 인도네시아 등지의 도서 지역, 일본 ·네팔 ·인도 등이지만, 양다리방아는 한국 고유의 발명품으로서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다. 심지어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외다리방아를 나란히 설치하여 쓸지언정 한국처럼 양다리방아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양다리방아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불러가며 찧는 까닭에 매우 능률적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고달픔을 덜 수 있는 장점도 지녔다. 공이로는 나무, 돌을 쓰지만 나무 공이 끝에 겉을 우툴두툴하게 만든 쇠통을 끼우기도 한다. 확으로는 작은 돌절구를 땅에 묻으며 천장에서 늘인 새끼줄을 쥐고 방아를 찧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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