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日本铁釜に興味を持って調べてみた結果、上図のようなことが分かった。
外径2900ミリメートル、口径2430ミリメートル、高さ2100ミリメートル、7697リットル、2786キログラムという大羽釜。
もちろん、最近では、より大きいことが分かった。

일본 鐵釜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본 결과 윗 그림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外径2900밀리미터、口径2430밀리미터、高さ2100밀리미터、7697리터、2786킬로그램 大羽釜。
물론 최근에는 보다 더 큰 것이 나타났다.

한일 양국의 가마(Kama)의 용어를 잠시 조사해 보면

가마 [명사] =가마솥. 【가마≪석보상절(1447)≫ 】

가마 [명사] 숯이나 질그릇, 기와, 벽돌 따위를 구워 내는,

            아궁이와 굴뚝이 있는 시설. ≒요(窯).

가마솥 [명사] 아주 크고 우묵한 솥. ≒가마.

             【가마솥≪가례언해(1632)≫← 가마+솥】

솥 [명사]밥을 짓거나 국 따위를 끓이는 그릇. 

가매 [명사][방언] ‘솥’의 방언(함경).

소가매 [명사][방언]‘솥’의 방언(평안).

かま [釜;kama] 1. [명사] 솥. 가마솥.

                2. [명사] 차관(茶罐). 차끓이는 가마솥.

かま [窯;kama] [명사] 가마. 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구덩이.

かま [竃;kama] [명사] 아궁이. 부뚜막. 〔동의어〕かまど.

かま [缶;kama] [명사] 기관(汽罐). 보일러. 〔동의어〕ボイラ―.

 

日本釜を調べてみるとアルミ製 釜のみ表示される。
일본 솥을 조사해 보면 알루미늄으로 만든 釜만 나타난다.
なぜ”
왜 이럴까?
まず、調理方法を調べてみることにする。
먼저 취사 방법을 조사해 보기로 한다.





近年急に使用されなくなった民具に、炊飯や湯沸し用の釜がある。羽釜と呼ばれる羽(鍔ともいう)のついた釜は、江戸時代の後期、都市を中心に使用が始まったとされる。土製の塗竈(ぬりかまど)の出現もこの頃で、両者の普及には深い関係がある。羽釜の羽によって釜と竈は密着し、火や煙を漏らさずに効率よく煮炊きを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羽釜や竈が普及する以前には、自在鉤(じざいかぎ)に鍋をかけて、囲炉裏で煮炊きを行っていた。古くは飯の炊き方も異なっており、大量の水で米を炊き、沸騰後しばらくして湯を取り除く方法がとられた。
 これに対し羽釜を使用する場合には、少量の水を炊き干した後に、釜の中の蒸気で米を蒸すという方法がとられる。蓋が欅(けやき)や樫(かし)材を用いて分厚く重く作られているのは、釜の内に蒸気を密閉して保つためである。下駄の歯のような蓋の把手(とって)は、高い温度や湿度で板が反るのを防ぐのに役立っている。
최근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민구에, 취사나 물끓이는 용도의 가마가있다. 羽釜라는 날개 (鍔라고도 함)가 달린 가마는 에도시대 후기, 도시를 중심으로 사용이 시작되었다고한다. 흙으로 만든 곤로의 출현도 이무렵으로, 양자의 보급에 깊은 관계가있다. 羽釜의 날개로 가마와竈은 밀착하고 불 또는 연기를 누설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취사를 할 수있게되었다.
羽釜와竈이 보급되기 전에는 自在鉤(囲炉裏나 부뚜막 위에 매달아 놓고, 주전자나 냄비 등을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 있게 한 갈고리(불과의 거리를 조절하기 위하여)에 남비를 걸고 난로에 취사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밥 짓는 방법이 달라서, 다량의 물로 밥을 짓고, 물이 끓으면 여분의 물을 제거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이에 대해羽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소량의 물을 짓고 물이 증발하면 가마 속의 증기로 밥을 찐다는 방법이 일어난다.  뚜껑은 느티나무나 참나무 재료를 사용하여 무겁게 만든 것은  솥 안에 증기를 밀폐하여 유지하기위한 것이다. 게다의 발굽과 같은 두껑의 손잡이는 높은 온도와 습도에 판이 변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http://www.city.hagi.lg.jp/hagihaku/hikidashi/mingu/html/022.htm

釜を炊飯に使い始めたのは比較的新しいことで、それまでは、囲炉裏の火を用い鍋で炊事をしていました。しかし、江戸末期以降、都市を中心に、かまどを築き、その上に羽釜をのせる方法が普及していきます。羽が熱効率を高め、煤(すす)を防いだのが大きな理由ですが、それ以上に、釜の使用を決定的にしたのは、白米食の普及です。かてめし・麦飯を炊くには鍋による湯取りがよいのですが、米の飯は炊き干しがよく、これには釜が適したからです。
솥을 밥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그 전까지는 난로의 불을 사용 남비에서 요리를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에도 말기부터 도시를 중심으로, 부뚜막을 만들고 그 위에羽釜을 올려놓는 방법을 보급하고있습니다. 羽釜가 열효율을 높이고煤(그을음)을 막은 것이 큰 이유이지만, 그 이상으로, 솥의 사용을 결정하게 된 것은 쌀밥 의 보급입니다. かて-めし( [糅飯] 밥밑을 두고 지은 밥(잡곡밥·나물밥 등)) ・보리밥 짓는 것은 냄비에 의한 것이  좋습니다만, 쌀은 밥을 짓기에 가마가 적당한 때문입니다.
www2.rosenet.ne.jp/...e/.../culture2.html

釜の使用を決定付けたのは米の普及と関係があるという
솥의 사용을 결정 지은 것은 쌀밥의 보급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铁釜は、江戸末期に登場するが、見つけるのが大変なので鉄锅について調査した結果、次のような興味深いデータを得た。
次側に江戸末期に餅米が流行するようになった詳細な理由を調査し紹介する。
そして日本料理の代表的ないくつかの調査ご紹介するシリーズを連載させていただきます。
鐵釜는 에도 말기에 등장한다고 하지만 찾기가 힘드므로 鉄鍋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자료를 얻었다.
다음 편으로 에도 말기에 쌀밥이 보급되게 된 자세한 이유를 조사 소개한다.
그리고 일본 요리의 대표적인 몇가지에 대해 조사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鍋歴史年表
http://www.kibun.co.jp/enter/nabe/n-rekisi_nenpyou.html

平安時代 「堝」、「鍋」文献に登場。
927年頃     鉄鍋、朝廷へ献上される(『延喜式』より)(延長5年頃)
厨(くりや)のみでの使用
「鍋冠祭」(『伊勢物語』より)
滋賀県米原町に残る鍋をかぶる祭。この地に朝廷の厨があったことからとも言われている
933年頃      『和名抄』で土製の「堝」、鉄製の「鍋」に書き分けられている(承平3年頃)
→鉄製の鍋の普及にともない土製の鍋は「土鍋」という言葉を使うようになった
京都で田楽流行
※串にさした豆腐の形が田楽舞に似ていることから田楽
→江戸期に「おでん」へ

江戸時代 料理の成熟期、後期には庶民に小鍋立てが親しまれるようになる
1616年     銚子の田中玄藩により醤油醸造される(元和2年)
七輪・火鉢の登場で「大鍋」から「小鍋立て」へ
1635年     京都に初の湯豆腐店「奥丹」開店(寛永12年)
江戸で料理文化大盛況 安永・天明(1772年~1789年)年間
1801年     東京・浅草にどじょう鍋店「駒形どぜう」開店(享和元年)どじょう(泥鰌):미꾸라지
江戸の食い倒れ 文化・文政年間(1804年~1830年)
天ぷら、握り寿司、すき焼きなどの料理が庶民に親しまれるようになる
「すき焼き」由来:「唐鋤を火の上に置き、この上で溜り醤油をつけたカモ、ガン、カモ、シカなどの肉を焼いた」のが始まり 『料理談合集』
참고 唐鋤(からすき)から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1830年     東京・神田にあんこう鍋店「いせ源」開店(天保元年)あんこう
『江戸繁盛記』天保年間に刊行
江戸で濃口醤油で煮込む料理が流行
今のスタイルのおでん=串の田楽が煮込まれ、屋台、茶飯屋で親しまれる
1862年     横浜に初の牛鍋屋「伊勢熊」開店(文久2年)

明治時代 食卓での団居鍋が家庭料理として定着してくる
1868年     「太田なわのれん」味噌仕立ての牛鍋考案(明治元年)
1869年     江戸市中に牛鍋屋相次ぎ開店/神戸元町にすき焼き「月下亭」開店(明治2年)
1870年頃     江戸市中に猪、鹿など肉の煮込みを出す料理店増え始める(明治3年頃)
1830年     東京・神田にあんこう鍋店「いせ源」開店(天保元年)
『江戸繁盛記』天保年間に刊行
江戸で濃口醤油で煮込む料理が流行
今のスタイルのおでん=串の田楽が煮込まれ、屋台、茶飯屋で親しまれる
1871年     仮名垣魯文による『安愚楽鍋』当時の牛鍋活況の様子描く(明治4年)
「士農工商、老若男女、賢愚、貧福おしなべて牛鍋くわねば開化不進奴」

大正時代 関東大震災を機に関西の味が東京に入ってくる
1924年頃     東京では大震災後「牛鍋」が「すき焼き」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大正13年頃)
1925年     東京におでん店「お多幸」開店(大正14年)


イルボンソッ(日本釜)

日本铁釜に興味を持って調べてみた結果、上図のようなことが分かった。
外径2900ミリメートル、口径2430ミリメートル、高さ2100ミリメートル、7697リットル、2786キログラムという大羽釜。
もちろん、最近では、より大きいことが分かった。

일본 鐵釜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 본 결과 윗 그림과 같은 것이 나타났다.
外径2900밀리미터、口径2430밀리미터、高さ2100밀리미터、7697리터、2786킬로그램 大羽釜。
물론 최근에는 보다 더 큰 것이 나타났다.

한일 양국의 가마(Kama)의 용어를 잠시 조사해 보면

가마 [명사] =가마솥. 【가마≪석보상절(1447)≫ 】

가마 [명사] 숯이나 질그릇, 기와, 벽돌 따위를 구워 내는,

            아궁이와 굴뚝이 있는 시설. ≒요(窯).

가마솥 [명사] 아주 크고 우묵한 솥. ≒가마.

             【가마솥≪가례언해(1632)≫← 가마+솥】

솥 [명사]밥을 짓거나 국 따위를 끓이는 그릇. 

가매 [명사][방언] ‘솥’의 방언(함경).

소가매 [명사][방언]‘솥’의 방언(평안).

かま [釜;kama] 1. [명사] 솥. 가마솥.

                2. [명사] 차관(茶罐). 차끓이는 가마솥.

かま [窯;kama] [명사] 가마. 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구덩이.

かま [竃;kama] [명사] 아궁이. 부뚜막. 〔동의어〕かまど.

かま [缶;kama] [명사] 기관(汽罐). 보일러. 〔동의어〕ボイラ―.

 

日本釜を調べてみるとアルミ製 釜のみ表示される。
일본 솥을 조사해 보면 알루미늄으로 만든 釜만 나타난다.
なぜ"
왜 이럴까?
まず、調理方法を調べてみることにする。
먼저 취사 방법을 조사해 보기로 한다.




近年急に使用されなくなった民具に、炊飯や湯沸し用の釜がある。羽釜と呼ばれる羽(鍔ともいう)のついた釜は、江戸時代の後期、都市を中心に使用が始まったとされる。土製の塗竈(ぬりかまど)の出現もこの頃で、両者の普及には深い関係がある。羽釜の羽によって釜と竈は密着し、火や煙を漏らさずに効率よく煮炊きを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羽釜や竈が普及する以前には、自在鉤(じざいかぎ)に鍋をかけて、囲炉裏で煮炊きを行っていた。古くは飯の炊き方も異なっており、大量の水で米を炊き、沸騰後しばらくして湯を取り除く方法がとられた。
 これに対し羽釜を使用する場合には、少量の水を炊き干した後に、釜の中の蒸気で米を蒸すという方法がとられる。蓋が欅(けやき)や樫(かし)材を用いて分厚く重く作られているのは、釜の内に蒸気を密閉して保つためである。下駄の歯のような蓋の把手(とって)は、高い温度や湿度で板が反るのを防ぐのに役立っている。
최근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민구에, 취사나 물끓이는 용도의 가마가있다. 羽釜라는 날개 (鍔라고도 함)가 달린 가마는 에도시대 후기, 도시를 중심으로 사용이 시작되었다고한다. 흙으로 만든 곤로의 출현도 이무렵으로, 양자의 보급에 깊은 관계가있다. 羽釜의 날개로 가마와竈은 밀착하고 불 또는 연기를 누설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취사를 할 수있게되었다.
羽釜와竈이 보급되기 전에는 自在鉤(囲炉裏나 부뚜막 위에 매달아 놓고, 주전자나 냄비 등을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 있게 한 갈고리(불과의 거리를 조절하기 위하여)에 남비를 걸고 난로에 취사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밥 짓는 방법이 달라서, 다량의 물로 밥을 짓고, 물이 끓으면 여분의 물을 제거하는 방법이 채택되었다.
 이에 대해羽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소량의 물을 짓고 물이 증발하면 가마 속의 증기로 밥을 찐다는 방법이 일어난다.  뚜껑은 느티나무나 참나무 재료를 사용하여 무겁게 만든 것은  솥 안에 증기를 밀폐하여 유지하기위한 것이다. 게다의 발굽과 같은 두껑의 손잡이는 높은 온도와 습도에 판이 변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http://www.city.hagi.lg.jp/hagihaku/hikidashi/mingu/html/022.htm

釜を炊飯に使い始めたのは比較的新しいことで、それまでは、囲炉裏の火を用い鍋で炊事をしていました。しかし、江戸末期以降、都市を中心に、かまどを築き、その上に羽釜をのせる方法が普及していきます。羽が熱効率を高め、煤(すす)を防いだのが大きな理由ですが、それ以上に、釜の使用を決定的にしたのは、白米食の普及です。かてめし・麦飯を炊くには鍋による湯取りがよいのですが、米の飯は炊き干しがよく、これには釜が適したからです。
솥을 밥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그 전까지는 난로의 불을 사용 남비에서 요리를하고있었습니다. 그러나,에도 말기부터 도시를 중심으로, 부뚜막을 만들고 그 위에羽釜을 올려놓는 방법을 보급하고있습니다. 羽釜가 열효율을 높이고煤(그을음)을 막은 것이 큰 이유이지만, 그 이상으로, 솥의 사용을 결정하게 된 것은 쌀밥 의 보급입니다. かて-めし( [糅飯] 밥밑을 두고 지은 밥(잡곡밥·나물밥 등)) ・보리밥 짓는 것은 냄비에 의한 것이  좋습니다만, 쌀은 밥을 짓기에 가마가 적당한 때문입니다.
www2.rosenet.ne.jp/...e/.../culture2.html

釜の使用を決定付けたのは米の普及と関係があるという
솥의 사용을 결정 지은 것은 쌀밥의 보급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铁釜は、江戸末期に登場するが、見つけるのが大変なので鉄锅について調査した結果、次のような興味深いデータを得た。
次側に江戸末期に餅米が流行するようになった詳細な理由を調査し紹介する。
そして日本料理の代表的ないくつかの調査ご紹介するシリーズを連載させていただきます。
鐵釜는 에도 말기에 등장한다고 하지만 찾기가 힘드므로 鉄鍋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자료를 얻었다.
다음 편으로 에도 말기에 쌀밥이 보급되게 된 자세한 이유를 조사 소개한다.
그리고 일본 요리의 대표적인 몇가지에 대해 조사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鍋歴史年表
http://www.kibun.co.jp/enter/nabe/n-rekisi_nenpyou.html

平安時代 「堝」、「鍋」文献に登場。
927年頃     鉄鍋、朝廷へ献上される(『延喜式』より)(延長5年頃)
厨(くりや)のみでの使用
「鍋冠祭」(『伊勢物語』より)
滋賀県米原町に残る鍋をかぶる祭。この地に朝廷の厨があったことからとも言われている
933年頃      『和名抄』で土製の「堝」、鉄製の「鍋」に書き分けられている(承平3年頃)
→鉄製の鍋の普及にともない土製の鍋は「土鍋」という言葉を使うようになった
京都で田楽流行
※串にさした豆腐の形が田楽舞に似ていることから田楽
→江戸期に「おでん」へ

江戸時代 料理の成熟期、後期には庶民に小鍋立てが親しまれるようになる
1616年     銚子の田中玄藩により醤油醸造される(元和2年)
七輪・火鉢の登場で「大鍋」から「小鍋立て」へ
1635年     京都に初の湯豆腐店「奥丹」開店(寛永12年)
江戸で料理文化大盛況 安永・天明(1772年~1789年)年間
1801年     東京・浅草にどじょう鍋店「駒形どぜう」開店(享和元年)どじょう(泥鰌):미꾸라지
江戸の食い倒れ 文化・文政年間(1804年~1830年)
天ぷら、握り寿司、すき焼きなどの料理が庶民に親しまれるようになる
「すき焼き」由来:「唐鋤を火の上に置き、この上で溜り醤油をつけたカモ、ガン、カモ、シカなどの肉を焼いた」のが始まり 『料理談合集』
참고 唐鋤(からすき)から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1830年     東京・神田にあんこう鍋店「いせ源」開店(天保元年)あんこう
『江戸繁盛記』天保年間に刊行
江戸で濃口醤油で煮込む料理が流行
今のスタイルのおでん=串の田楽が煮込まれ、屋台、茶飯屋で親しまれる
1862年     横浜に初の牛鍋屋「伊勢熊」開店(文久2年)

明治時代 食卓での団居鍋が家庭料理として定着してくる
1868年     「太田なわのれん」味噌仕立ての牛鍋考案(明治元年)
1869年     江戸市中に牛鍋屋相次ぎ開店/神戸元町にすき焼き「月下亭」開店(明治2年)
1870年頃     江戸市中に猪、鹿など肉の煮込みを出す料理店増え始める(明治3年頃)
1830年     東京・神田にあんこう鍋店「いせ源」開店(天保元年)
『江戸繁盛記』天保年間に刊行
江戸で濃口醤油で煮込む料理が流行
今のスタイルのおでん=串の田楽が煮込まれ、屋台、茶飯屋で親しまれる
1871年     仮名垣魯文による『安愚楽鍋』当時の牛鍋活況の様子描く(明治4年)
「士農工商、老若男女、賢愚、貧福おしなべて牛鍋くわねば開化不進奴」

大正時代 関東大震災を機に関西の味が東京に入ってくる
1924年頃     東京では大震災後「牛鍋」が「すき焼き」と呼ばれるようになる(大正13年頃)
1925年     東京におでん店「お多幸」開店(大正1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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