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중국의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알려진지 1년이 넘었다.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를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한국, 중국 간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과 그 연구 중심인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한국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은 뚜렷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이 문제는 단순히 학술적인 차원에 불과한 것일까?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담겨있는 중국의 또다른 노림수는 과연 무엇인가?

지난해 7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갑작스레 한국을 방문했다. 공식적인 방문 목적은 짜칭민 중국 국가 부주석의 방한에 앞선 사전협상 문제였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 해결이었다. 한,중 양국 외교부 간 회담은 27일과 28일 연이틀에 걸쳐 벌어졌다. 무려 9시간 반에 걸친 기나긴 협상이 이어졌다.

최영진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 “양국 정부는 향후 역사 문제에 있어서 양국 간 우호 협력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자...”

결국 양국 정부가 구두양해 형식으로 합의한 내용은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가 양국 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것을 인정하고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2003년 말에 이미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뤘던 한국과 중국...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내의 한국 소개란에서 고구려를 삭제하여 또다시 불붙었던 양국 간 역사논쟁은 일단 이렇게 봉합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서길수 서강대학 교수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주목해 볼수 있는 것은 중국이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사(高句麗史)를 왜곡한 내용을 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교과서를 왜곡하지 않으면 우리가 승리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용만 한국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중국 측이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방정부나 민간단체에서 역사왜곡 행위를 하는 것가지 막으려는 의지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 구두합의 이후에도 중국에서 역사왜곡을 하는 사태는 계속 벌어졌다. 단순하게 중국 외교부부장의 말을 믿고 한,중 간의 역사논쟁을 마치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보는 것은 우리만의 착각일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사(高句麗史)에 대한 중국 내부의 시각은 구두합의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2004년 9월 말에는 베이징에서 중국의 역사문화 전시회가 열렸다. 그런데 전시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구려 역사 유적을 소개하는 사진과 설명문이다. 고구려의 첫번째 도성(都城)이었던 오녀산성을 비롯해 장군총(將軍塚)과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훈적비(勳積碑) 등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중국의 역사 유적으로 버젓이 소개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한 문화잡지에는 “고구려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제목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중외문화교류”라는 이름의 이 잡지는 중국의 문화부가 발행하는 것으로 중국어판과 영어판으로 촐판돼 전세계 180여개국에 배포되는 관영 홍보지이다. 그런데 여기 실린 기사 역시 지금까지 중국에서 진행되어온 고구려사 왜곡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는 고대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한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주장해온 중국인 학자들의 입장 역시 큰 변화가 없다. 2004년 9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 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증국인 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손홍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일부 사람들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4세기에 고구려가 한반도 북부에 침입했고 그곳으로 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국의 소수민족이 한반도에 침입하여 중국의 식민지 정권을 설립한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지 고구려가 한국 민족의 국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기환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실장 “고구려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였고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호태왕비(好太王碑) 등 금석문(金石文)에도 잘 나타나듯이 고구려는 중원 왕조와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나라였다.”

한국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고구려 역사 문화의 독자성까지도 이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손진기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원장 “고구려가 자체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임 선생이 제기한 도자기, 축성법, 사신도 등은 공교롭게도 고구려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다.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손홍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고구려는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의 영향으로 고구려는 놈업과 수렵 혼합형의 과도기적인 경제 상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되었으며 고구려는 비록 자주적인 문화의 특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漢) 문화가 중심이었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한,중 간 구두합의가 끝났지만 전혀 달라진게 없는 중국 학자들의 태도. 이것이 단지 학술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

김현숙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중국에서는 사실 한국의 정치가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정치적인 명분이 필요하다고 보면 역사학계에서 그것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되고 일반론이 하나가 뜨게 되면 다른 이설은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수 있다.”

조민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중국의 국경 내에서 중세, 혹은 고대에 전개되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 아닌가. 그렇다면 만주지방에서 전개되었던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가 바로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라는 그런 주장인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역사 날조인데 지금 와서 중국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가 뭐냐. 중국도 일본의 식민사관, 한국에 대한 침략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반도사관을 비판해왔지 않은가?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우리 민족의 과거사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혼(魂)이다. 우리 민족의 혼을 왜곡하고 갈취하겠다고 하는 것은 학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중국의 정치적인 속셈, 다시 말해서 대한반도(對韓半島) 전략의 핵심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북경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작업의 핵심으로 알려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관하고 있는 곳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동북공정은 단순히 학술적인 연구일 뿐이며 이를 문제삼는 것은 한국 측의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공격하는 중국.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홈페이지에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소개문에는 이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목표가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과 사회질서 확립이라고 밝혀 놓았다. 동북공정이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표에 주안점을 둔 프로젝트임을 명시한 것이다. 동북공정의 조직도에서도 정치적인 색깔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서열에 포함돼 있는 정치부 위원과 재정부 부장이 동북공정의 고문을 맡고 있다. 또 사회과학원의 부원장 흑룡강성 부서기 등 중국 정부의 주요 관직자들이 동북공정의 요소요소에 포진돼 있다.

그렇다면 대체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연구내용은 무엇인가?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홈페이지에는 2003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수정된 연구과제들이 설명되어 있다. 이들 56개 과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내용이 중국 동북지역의 공정(工程)과 영토문제에 관한 것이다. 동북공정이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동북지역은 중국의 최동북쪽에 위치한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세지역을 가리킨다. 총면적이 78.9만 평방 킬로미터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동북삼성(東北三省)에는  우리가 흔히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이 대부분 포함되는데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한,중 간에 영토분쟁을 일으켜왔다.

조선조 숙종(肅宗) 38년인 1712년 실록에는 중국의 사신이 국경문제로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양국인 모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던 간도지역이 영토분쟁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가 세워졌다. 양국 간 국경협정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는 백두산 정계비. 그 내용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후로 문제가 되는 것이 동쪽 경계인 토문강의 위치다.

토문강을 동쪽 경계로 할 경우 간도지역의 대부분이 조선 영토에 포함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두만강과 토문강이란 지명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중국은 두만강이 경계라고 주장했다. 조선과 청나라는 1885년과 87년 두차례에 걸쳐 국경회담을 가졌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조선과 청나라의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던 간도. 그런데 1909년 당시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던 일본이 청나라와의 협약을 체결한다. 간도를 청나라에 넘기고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탄광체굴권을 얻는다는 내용이었다. 국경문제의 당사자였던 한민족(韓民族)이 완전히 배제된채 체결된 이 조약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지난 22일 국경감사장에서 반기문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간도협약이 무효란 입장을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간도협약에 관해서는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간도협약이 체결된지 9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정부가 간도협약의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지금의 국제법적인 문제로 봐도 국경문제의 당사자가 배제된채 제삼자가 개입을 해서 영토를 중국에 넘긴 것은 분명한 과오라고 볼 수가 있다. 특히 국제법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미국에 항복하기 이전에 체결했던 모든 협약은 무효라는 내용이 있고 그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포츠담 카이로 조약에서도 다 무효라고 인정하는데 오직 이 간도협약의 무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여서 어쨌든 1960년에 중국과 북한 간의 국경협약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한,중 간의 국경협약이 다시 재개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중국도 충분히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간도문제가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점으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 측과의 구두양해 합의 당시에도 중국은 고구려사와 국경 및 영토문제의 연관성에 가장 관심을 보였다. 한,중 간의 외교회담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해 8월20일자 “더 타임”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렸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옛 고구려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바인더 하버드대학 교수 “나는 중국의 입장에 상당히 수세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동북지역 세개의 성이 중국 영토라는 입장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49년까지 중국의 중앙정부가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었던 지역이다.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지켜내기가 힘들어진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북동쪽 국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존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동북지역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길림성 연변시에 위치한 조선족 자치주이다. 한반도의 1/4 면적에 중국 동북지방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이 지역은 조선족이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요 행정직은 대부분 이들 조선족이 맡고 있으며 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주도권 역시 조선족이 가지고 있다. 중국어와 함께 조선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중국 개방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한류열풍까지 겹치면서 조선족 사회에 한국의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연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조선족 가정에는 한국 공중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위성안테나가 달려 있다. 한국 방송 수신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이들은 단속을 피해 거의 매일같이 한국 TV 방송을 시청한다. 드라마와 뉴스 등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한국과 동시에 방송된다.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돈을 벌려고 한국 땅을 찾는 조선족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남한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은 1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통해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도 한국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속속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는 탈북자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7일 북경에선 67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이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민감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흔들리면서 탈북자의 수는 계속 늘고 있고 이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사회로 숨어든다. 그리고 중국은 이같은 상황이 변경지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보령 동북공정(東北工程) 전문가 위원회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 이를테면 북한의 난민이 끊임없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이것은 한중관계를 생각할때 중국으로서도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바로 변경 불안정의 요소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탈북자들이 주로 숨어드는 곳은 연길을 포함한 조선족 거주지역이다. 미국에서도 탈북자 문제와 인권문제를 포함해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상황이고 중국의 변경 즉 동북지역이 중국과 북한 간의 외교적 문제만이 아니고 중국과 남한 간의 외교적 문제만도 아니고 미국도 관여하게 되고 세계가 관여하게 되어서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되기 때문에 국제적 문제로도 비화될 수가 있는 것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관하고 있는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탈북자 문제가 동북지역 불안정의 중요한 요인이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 이후다. 통일이 되면 북한과 남한 조선족 사회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이 지역 전체가 한민족(韓民族)의 영향권에 들수 있기 때문이다.

윤휘탁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그렇게 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간의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게 되는 것이다. 북쪽에는 탈북자와 조선족이 어울리게 되고 남쪽에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들이 어울리게 되고 또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과도 어울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이 한민족의 활동영역으로 고정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한반도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또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조선족들은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될 것이고 조선족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25일 뉴욕타임즈에는 이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현재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현대의 국경을 넘어선 통일한국을 지지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노력하는 조선족들을 중국 정부가 엄하게 처벌한 것도 한국과 조선족들간의 연결을 우려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2003년 12월부터 중국은 조선족들에게 이른바 삼관교육이라는 사상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삼관이라는 것은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 세가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내용은 조선족들에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홍두 (연길 거주 조선족) “중국이 너희들의 조국이다. 남한이나 북한이 너희의 조국이 아니다. 법적으로 이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을 똑똑히 알아라. 이게 조국관 문제고, 민족관은 너희는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국에 사는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관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변방에 사는 소수민족의 역사로서 중국 역사 가운데 하나다. 이런걸 정확히 수립해야 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왜곡 작업도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고구려와 발해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한반도와 연결된 조선족의 역사적 뿌리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윤휘탁 위원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 간의 관련성을 부정해야 될 필요가 있고 중국에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논리를 개발하거나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서들을 들춰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과거에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여겨져 왔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라는 국가가 중국 민족이 세운 것이고 이것들이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를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조선족과 동북지역에 대해 중국이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다민족국가(多民族國家)라는 중국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중국은 전체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漢族) 이외에도 55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이 다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소수민족은 중국 전체인구의 1/10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의 거주지역은 중국 영토의 절반을 넘는다. 때문에 이들의 융화와 단결이 국가 생존의 절대적인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건국 초기부터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通一的多民族國家論)을 강조해 왔다. 중국 내의 소수민족은 모두 중국이라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이며 각 민족간의 관계는 분리할수 없다는 내용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중국 내 각 민족간의 분열을 해소하고 국가를 통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이론이다.

윤휘탁 위원 “한족(漢族)과 소수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적어도 중국이라는 역사적 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민족이라고 한다면 그 민족이 어떻든 간에 모두 온전한 중국 민족이라고 하는 그런 전제 하에서 중국 내 각 민족의 단결과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파생시킨 중국의 국가인식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인 것이다.”

사실 중국은 건국 이후 끊임없이 소수민족과의 분쟁에 시달려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갈등이 심한 지역은 중국 남서부에 자리잡고 있는 티베트다. 1950년 중국의 침공을 받은 티베트는 1959년 3월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반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채 실패로 끝났고 티베트는 중국에 의해 완전 점령당하고 만다.

1965년 서장자치구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영토 내에 편입된 티베트는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였지만 중국은 이를 무력(武力)으로 진압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같은 무력 진압을 통해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차단시키기 위한 또다른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이른바 서남공정(西南工程)이 그것이다.  

서남공정(西南工程)을 진행하는 곳은 이른바 중국의 장학연구중심(奬學硏究中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 설립된 중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이곳에서는 1986년 130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서남공정을 시작했다.

10년에 걸친 서남공정을 통해 중국은 7세기 이후 독자적인 주권과 문화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철저하게 부정해왔다. 티베트는 중국이라는 다민족국가의 일부분이며 사고(史古) 이래로 중국과 나눠질수 없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 서남공정의 주장이다. 이같은 서남공정(西南工程)의 논리는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논리와 유사하다.

김용만 한국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해서 정치적 구심체까지 있기 때문에 (티베트는) 중국과는 다른 문명체이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양해 하에 티베트 지역을 점령한 후에 여기를 다시 때앗기지 않기 위해서 수십년 동안 티베트 지역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또 한족(漢族) 인구를 티베트 지역에 분파시켜 티베트의 독립의지와 명분을 없애려고 하였으며, 동북지역보다 더 먼저 중국이 오랫동안 투자를 했다고 볼수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중국 화폐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설자인 마오쩌둥과 함께 소수민족의 얼굴을 넣을 정도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강조해온 중국. 소수민족 통합이란 목적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왔다.

규모가 크거나 이탈 움직임이 많은 소수민족의 경우 거주지역에 한족(漢族)들을 대거 유입시켜 한족들과의 동화를 꾀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는 대규모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최근들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이 바로 동북지역의 조선족이다.

박선영 교수 “조선족 문제가 부각될 경우 중국 내의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억누르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인으로서의 민족관, 중국인으로서의 역사관, 중국인으로서의 국가관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끊임없이 중국이라는 역사, 문화, 정치의 틀 안에서 소수민족을 가두고 소수민족을 설명하려는 요인이 되지 않을가...”

마크 바인더 하버드대학 교수 “사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입장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서쪽이나 북서쪽에서 살고 있는 다른 소수민족들의 경우 계속 독립을 요구하며 독립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는데 왜 우리는 중국에 속해야 하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논지를 확장하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우리는 옛 고구려 땅에 살고 있고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왜 중국에 속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 아래서 중국인 티베트 역사를 편입시키는 서남공정(西南工程)에 이어 동북지역 문제를 다루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 집결지인 집안(集安) 일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도 이같은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집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중국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고구려가 중국 역사란 주장을 본격화했고 관광객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과 장수태왕(長壽太王)의 흔적도 마치 중국 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계속}


東北公正(東北工程)と韓半島. 中国の最終目的は何か?

 

中国の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問題がうちの社会に知られてから 1年が過ぎた. 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を取り囲んだ論争は絶えず続きながら韓国, 中国に行った葛藤要因になっている. 中国の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とその研究中心である東北公正(東北工程)に対する韓国側の荒い反発にもかかわらず中国側は明らかな立場変化を見せていない. 彼らの主張どおりこの問題は単純に学術的な次元に過ぎないのだろう?  東北公正(東北工程)に盛られている中国のもう一つの狙いは果して何か?

去年 7月, ウダウェイ中国外交部副部長が急に韓国を訪問した. 公式的な訪問目的はチァチングミン中国国家副主席の訪韓に先に進んだ辞書交渉問題だったがより重要な理由は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解決だった. 韓,中両国外交部の間会談は 27日と 28日二日続きにかけて起った. おおよそ 9時間半分にわたった長長しい交渉がつながった.

崔ヨン陣韓国外交通商部次官 ¥"両国政府は今後の歴史問題において両国の間友好協力関係が損傷されないようにしよう...¥"

結局両国政府が靴さんして形式で合議した内容は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が両国の間重大懸案に頭をもたげたことを認めて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を政治争点化しないように努力するのだ. 2003年末にもう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問題で一度はしかを受けた韓国と中国... 中国外交部ホームページ内の韓国紹介欄で高句麗を削除して再び火が付いた両国の間歴史論争は一応こんなに縫合された. しかしこれに対する評価はあまり肯定的ではない.

西ギルス西江大学教授 ¥"内容をよく見ればそこで新しいのがないという点だ. その中で注目して見られることは中国が歴史教科書に高句麗社(高句麗史)を歪曲した内容を積まないというのだ. ところで中国が教科書を歪曲しなければ私たちが勝利したことと思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のだ.

キム・ヨンマン韓国歴史文化研究所所長 ¥"中国側が韓国の古代史を歪曲しないと約束をしたが地方政府や民間団体で歴史歪曲行為をするゴッがだ阻もうとする意志はないだろう. 実際にその靴合意以後にも中国で歴史歪曲をする事態はずっと起った. 単純に中国外交部部長の言葉を信じて韓,中の間の歴史論争をまるで平和的に終わったと思うことは私たちばかりの錯覚であるでしょう.¥"

実際に高句麗社(高句麗史)に対する中国内部の視覚は靴合意以後にも大きく変わったのがない状況だ. 2004年 9月末には北京で中国の歴史文化展示会が開かれた. ところで展示場一方を占めていることは高句麗歴史遺跡を紹介する写真と説明文だ. 高句麗の一番目都城(都城)だったオニョサンソングを含めて張君寵(将軍塚)と光ヶ土豪太王(広開土好太王) フンゾックビ(勳積碑) など高句麗の歴史と文化を代表する遺跡たちが中国の歴史遺跡で堂堂と紹介されている. 彼だけではない. 中国の一文化雑誌には ¥"高句麗に身近に近付く.¥"は題目の特集記事が載せられた. ¥"中外文化交流¥"という名前のこの雑誌は中国の文化部が発行することで中国語版と英語版でチォルパンドエ全世界 180余個国に配布される官営広報誌だ. ところでここに積まれた記事も今まで中国で進行されて来た高句麗社歪曲内容と特に違わない. 高句麗は古代中国東北地方に存在した中国少数民族の中一つというのだ.

このような内容を主張して来た中国人学者たちの立場(入場)も大きい変化がない. 2004年 9月 16日ソウルで開催された ¥"韓国歴史の中の高句麗の位相¥"という題目の国際学術会議でもズンググックである学者たちは高句麗が中国歴史という主張を一貫されるように広げた.

ソンホング沈陽東アジア文化研究員 ¥"一部人々は高句麗が中国歴史と主張するのにその理由は 4世紀に高句麗が韓半島北部に侵入したしその所に遷都したからだ. しかしこちらは中国の少数民族が韓半島に侵入して中国の植民地政権を設立したことを説明してくれることであって高句麗が韓国民族の国家というのを言うのではない.¥"

林奇幻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室長 ¥"高句麗が中国少数民族の一つだったし中原王朝の地方政権だと主張している. しかしホテワングビ(好太王碑) など金石文(金石文)にもよく現われるように高句麗は中原王朝とは違う独自の天下官を持った国だった.¥"

韓国人学者たちが主張する高句麗歴史文化の独自性までもこれらは認め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立場だ.

手珍奇沈陽東アジア文化研究員院長 ¥"高句麗が自らの独特の文化を持っていると言ったが私も同意する. しかし林先生が申し立てた陶磁器, 築城法, 四神図などはあいにくにも高句麗の独特の文化ではない. 皆中国の影響を受けたのだ.¥"

ソンホング沈陽東アジア文化研究員 ¥"高句麗は経済のみならず文化的な面でも皆中国の影響を受けた. 中国の影響で高句麗はノムアップと狩猟混合型の過渡期的な経済状態で農業経済に転換されたし高句麗はたとえ自主的な文化の特色を取り揃えていたが後期にのぼるまでたいてい(漢) 文化が中心だった.¥"

高句麗社問題に対する韓,中の間靴合意が終わったが全然変わったのがない中国学者たちの態度. これがただ学術的な問題に過ぎないのだろう?

金賢淑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委員 ¥"中国では実は韓国の政治が完全に独立されていると話しにくい. 政治的な名分が必要だと見れば歴史学界でそれを提供してくれる役目をたくさんするようになって一般論が一つが浮かぶようになれば他の異説は発表す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するそんな雰囲気だと言える.¥"

兆民統一研究員院長 ¥"現在中国の国境内で中世, あるいは古代に展開されたすべての歴史は中国の歴史という論理ではないか. それなら満洲地方で展開されたうちの韓民族(韓民族)の歴史がすぐ中国地方政権の歴史というそんな主張であることだ. これは厳密に言えば歴史捏造なのに今来て中国人たちがそんな主張をするようになった理由が何か. 中国も日本の植民史観, 韓国に対する侵略統治を正当化するための半島士官を批判して来たのないか? 古朝鮮, 高句麗, 渤海は我が民族のすぎ去った事と言うよりは我が民族の魂(魂)だ. 我が民族の魂を歪曲して脅して奪うと言うことは学問的な次元を越して中国の政治的な下心, 言い替えれば対韓半島(対韓半島) 戦略の核心ではないか? 私たちはここに関心を持たざるを得ない.¥"

中国北京の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 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作業衣核心と知られた東北公正(東北工程)を主観している所だ. 東北公正に対する韓国側の荒い反発にもかかわらず中国はこのプロジェクトを中断していない. 東北公正は単純に学術的な研究であるだけでこれを問題視することは韓国側の度が外れた民族主義だと攻撃する中国. しかしこのような主張は事実と違う.

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 ホームページにある東北公正(東北工程) 小開門にはこのプロジェクトの直接的な目標が国家の長期的な安定と社会秩序確立だと明らかにしておいた. 東北公正が単純に学問的な研究にだけ止むのではなく特定の政治的目標に主眼点を置いたプロジェクトなのを明示したのだ. 東北公正の組職図でも政治的な色は明らかに現われる. 中国共産党の最高序列に含まれている政治部委員と財政部部長が東北公正の顧問を引き受けている. また社会科学院の副院長黒竜江省部署期など中国政府の主要官職者たちが東北公正の要素要素に布陣されている.

それなら一体東北公正(東北工程)の研究内容は何か? 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 ホームページには 2003年から3回目にかけて修正された研究課題たちが説明されている. これら 56個課題の中半分に近い内容が中国東北地域の公正(工程)と領土問題に関するのだ. 東北公正が主要研究対象にしている東北地域は中国の催東北の方に位した遼寧省, 吉林省, 黒竜江省世智役を示す. 総面積が 78.9万平方キロメートルで南韓の三つの倍が越える東北三星(東北三省)には  私たちがよく間島だと呼ぶ地域が大部分含まれるのにこの地域はずいぶん前から韓,中の間に領土紛争を起こして来た.

朝鮮朝肅宗(肅宗) 38年の 1712年実録には中国の使臣が国境問題で訪問したという記録が出る. 当時両国である皆の出入りが禁止されていた間島地域が領土紛争の対象で登場したのだ. そして同じ年に白頭山定界碑(白頭山定界碑)が立てられた. 両国の間国境協定の出発点で評価を受けている白頭山定界碑. その内容は西の方では鴨緑江, 東では土們江を境界にするというのに以後で問題になることが東境界である土們江の位置だ.

土們江を東境界にする場合間島地域の大部分が朝鮮領土に含まれる. しかし中国では豆満江と土們江と言う(のは)地名が混在されて使われているしこれを根拠で中国は豆満江が境界だと主張した. 朝鮮と清は 1885年と 87年二度にかけて国境会談を持ったが結局合意に至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以後でも長い間朝鮮と清の紛争地域で残っていた間島. ところで 1909年当時韓半島を強点していた日本が清との協約を締結する. 間島を清に越して満洲の鉄道敷設権とタングァンチェグルグォンを得るという内容だった. 国境問題の当事者だった韓民族(韓民族)が完全に排除されたまま締結されたこの条約が果して正当だか?

去る 22日国境監事長でバン・ギムン韓国外交通商部長官は間島協約が無效と言う(のは)立場を明らかにした.  

バン・ギムン外交通商部長官 ¥"間島協約については法理的に無效だと思うことができる.¥"

間島協約が締結されてから 95年ぶりに初めて韓国政府が間島協約の問題点を公式的に申し立てたのだ.

朴ションヨン浦項工業大学教授 ¥"今の国際法的な問題で見ても国境問題の当事者が排除されたまま第三者が介入をして領土を中国に越したことは明らかな煮こんで来なさいと見られる. 特に国際法学者たちの主張によれば日本帝国主義勢力がアメリカに降伏する以前に締結したすべての協約は無效という内容があってその後の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やポツダムカイロ条約でもすべて無效だと認めるのにただこの間島協約の無效化が成り立たなかったということがとても重要なポイントなのでとにかく 1960年に中国と北朝鮮の間の国境協約が成り立ったと言っても韓,中の間の国境協約がまた再開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十分な理由があり中国も充分にこれが分かっているからいつかは間島問題が中国立場(入場)ではよほど頭痛い問題点で目立つ素地がある...¥"

実際に中国はこのような状況を一番憂慮している. 去る 8月韓国側との靴さんして合意当時にも中国は高句麗社と国境及び領土問題の連関性に一番関心を見せた. 韓,中の間の外交会談が盛んに進行中だった去年 8月20日付け ¥"もうタイム¥"地にも同じ内容が載せられた. 中国は韓国が統一された以後にも昔の高句麗領土の領有権を主張することに対して一番心配しているというのだ.

マークバインダーハーバード大学教授 ¥"私は中国の立場によほど水勢に置かれていると思う. 中国は東北地域三つの性が中国領土という立場に対する歴史的正当性に対して心配している. この地域は 1949年まで中国の中央政府が長期的に統治したことがなかった地域だ. 歴史的な根拠を提示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この領土に対する領有権を守り出すのが大変になる. 中国人たちはそれを恐れているのだ. 北東の方国境を維持して領土を保存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心配で不安に思っているのだ.¥"

中国が東北地域に対して不安に思っているもう一つの理由は吉林省辺の時に位した朝鮮族自治州だ. 韓半島の 1/4 面積に中国東北地方の国境を形成しているこの地域は朝鮮族が全体人口の 40%を占めている. 辺朝鮮族自治州の主要行政職は大部分これら朝鮮族が引き受けているしこの地域の政治, 経済, 文化の主導権も朝鮮族が持っている. 中国語とともに朝鮮言語を共用で使っている辺朝鮮族自治州では韓国の大衆文化も難しくないように接することができる. 中国開放以後韓国との交流が増えて韓流熱風まで重なりながら朝鮮族社会に韓国の文化が早く流入されているのだ.

辺に暮している大部分の朝鮮族家庭には韓国空中波放送を受信することができる衛星アンテナが走っている. 韓国放送受信は原則的には不法だがこれらは取り締まりを避けてほとんど毎日韓国 TV 放送を視聴する. ドラマとニュースなどほとんど大部分のプログラムが韓国と同時に放送される. 韓国との交流が活発になりながらお金を儲けようと韓国地を尋ねる朝鮮族たちも急速に増えている. 現在南韓に滞留している朝鮮族は 10万名位に推算されるのに人々を通じて中国の朝鮮族社会にも韓国の生活様式と文化が隅隅まで伝わっている.

こんな中中国では北脱出者問題が社会的論難になっている. 去年 9月 27日北京では 67人に達する北脱出者が中国公安に逮捕する事件まであった. これは北脱出者問題に対する中国政府の敏感な立場(入場)を見せてくれるのだ.

北朝鮮経済が搖れながら北脱出者の数はずっと増えているしこれらは中国東北地方の朝鮮族社会でスムオドンダ. そして中国はこのような状況が変更地域を心細くする要因だと思っている.  

宝令東北公正(東北工程) 専門家委員会 ¥"韓半島を取り囲んだ問題, 言わば北朝鮮の難民が絶えず中国に入って来ているのにこれは韓中関係を思う時中国としてもすごく困難な状況だ. このような状況たちがすぐ変更不安定の要素だ.¥"

朴ションヨン浦項工業大学教授 ¥"北脱出者たちが主にスムオドは所は延吉を含んだ朝鮮族居住地域だ. アメリカでも北脱出者問題と人権問題を含んで支援をしてくれると約束した状況で中国の変更すなわち東北地域が中国と北朝鮮の間の外交的問題だけではなくて中国と南韓の間の外交的問題だけもなくてアメリカも関与するようになって世界が関与するようになって人権問題が水面の上に浮び上がるようになる状況で滲むようになるから国際的問題でも飛話されることができるのだ.¥"

東北公正(東北工程)を主観している辺彊四肢研究中心(辺疆史地研究中心)ではこのような内容の報告書を作成したりした. 北脱出者問題が東北地域不安定の重要な要因でこれに対する対策を立て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のだ.

特に中国が憂慮することは韓半島統一以後だ. 統一になれば北朝鮮と南韓朝鮮族社会の間の交流が拡がってこの地域全体が韓民族(韓民族)の影響圏に入ることができるからだ.

ユンフィタック高句麗社研究財団研究委員 ¥"そのようになれば韓半島北部と満洲の間の国境線という概念が曖昧になるのだ. 北には北脱出者と朝鮮族が似合うようになって南側には北朝鮮人と南韓人々が交わるようになってまた不法滞留している朝鮮族とも似合うようになる. そのようになれば韓半島と中国東北地域が韓民族の活動領域に固定される恐れがあるのだ. 中国東北地域に対する韓半島の影響力が大きくなるしかなくてまた朝鮮族に対する韓国人たちの影響力が大きくなるしかない. 中国朝鮮族たちはアイデンティティに対して会議を持つようになるはずで朝鮮族たちの離脱をもたらすことができるというのだ.¥"

去年 8月 25日ニューヨークタイムズにはこのような内容の記事が載せられたりした. 韓半島が統一される場合現在中国東北地域に住んでいる朝鮮族たちが現代の国境を超えた統一韓国を支持することができるし中国はこのような状況を恐れているというのだ. 韓国国籍を取得しようと努力する朝鮮族たちを中国政府が厳しく処罰したことも韓国と朝鮮族たちの間の連結を憂慮真書という視覚が多い.

2003年 12月から中国は朝鮮族たちにいわゆる三観教育という思想教育も実施している. 三観というのは歴史観, 民族官, 祖国官三種類を示すことでその内容は朝鮮族たちに中国人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強調するのだ.

朴泓も (延吉居住朝鮮族) ¥"中国が君たちの祖国だ. 南韓や北朝鮮が君逹の祖国ではない. 法的にこんなに規定されていることをはっきり分かりなさい. これが祖国官問題で, 民族官は君逹は中国の少数民族の中一つであるだけだ. 中国に住む 56個少数民族の中一つだ. 歴史観は君たちが持っている歴史は辺方に住む少数民族の歴史として中国歴史の中一つだ. こんな事を正確に樹立しなければならない.¥"

中国が推進している歴史歪曲作業も朝鮮族のアイデンティティ問題と連関されている. 高句麗と渤海を含めた東北地域の歴史を中国歴史に編入させることで韓半島と繋がれた朝鮮族の歴史的根を否定しようとするのだ.

ユンフィタック委員 ¥"(中国立場(入場)では) 歴史的に韓半島と中国東北地域の間の関連性を否定しなければならない必要があって中国ではこれに対する明らかな論理が必要なのだ. それでそんな論理を開発するとか捜し出すために歴史書たちを暴き出し始めたのだ. そうして見るから過去に我が民族の歴史と思って来た古朝鮮, 高句麗, 渤海という国家が中国民族が立てたことでこれらが皆中国の歴史という論理を立てるようになるのだ.¥"

朝鮮族と東北地域に対して中国がこんなに敏感な理由は何だろう. その背景には多民族国家(多民族国家)という中国の特殊な状況がある. 中国は全体人口の大部分を占める漢族(漢族) 以外にも 55個に達する少数民族が多民族国家を成している. これら少数民族は中国全体人口の 1/10度及ぶことができないがこれらの居住地域は中国領土の半分を越す. だからこれらの融化と団結が国家生存の絶対的な問題だ.

こんな状況で中国は建国初期から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通一的多民族国家論)を強調して来た. 中国内の少数民族は皆中国という一つの家庭を成す構成員で各民族間の関係は分離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いう内容の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 中国内各民族間の分裂を解消して国家を統合しようとする目的から出た理論だ.

ユンフィタック委員 ¥"漢族(漢族)と少数民族を区分しないで少なくとも中国という歴史的共同体中で決まった役目を一民族だと言ったらその民族がいずれにせよの間に皆完全な中国民族だと言うそんな前提下で中国内各民族の団結と中国人民の愛国心を鼓吹させるために意図的に派生させた中国の国家認識が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であることだ.¥"

実は中国は建国以後絶えず少数民族との紛争に苦しんで来た. その中でも一番葛藤のひどい地域は中国南西部に席を取っているチベットだ. 1950年中国の侵攻を受けたチベットは 1959年 3月首都ラッサで大規模反乱を起こした. しかしこの反乱は幾多の犠牲者を出したまま失敗で終わったしチベットは中国によって完全占領されてしまう.

1965年署長自治区という名前で中国の領土内に編入されたチベットは絶えず独立闘いをしたが中国はこれを無力(武力)で押えて来た. そしてこの過程で幾多のチベット人々が犠牲された. このような無力鎭圧を通じて中国はチベットに対する領有権を主張してチベットの独立運動を遮断させるためのもう一つの作業を進行させて来た. チベットの歴史を中国歴史に編入させるいわゆる西南公正(西南工程)がそれだ.  

西南公正(西南工程)を進行する所はいわゆる中国の装学研究中心(奨学研究中心)と知られている. 1980年代に設立された中国の代表的な研究機関であるこちらでは 1986年 130人余りの研究人力を投入して西南公正を始めた.

10年にわたった西南公正を通じて中国は 7世紀以後独自の株券と文化を維持して来たチベットの歴史を徹底的に否定して来た. チベットは中国という多民族国家の一部分で事故(史古) 以来で中国と分けられることができない中国の地方政権というのが西南公正の主張だ. このような西南公正(西南工程)の論理は高句麗社(高句麗史) 渤海社(渤海史) 歪曲プロジェクトである東北公正(東北工程)の論理と似たり寄ったりだ.

キム・ヨンマン韓国歴史文化研究所所長 ¥"ダライラマを中心にして政治的求心体まであるから (チベットは) 中国とは違うムンミョングチェだ. ところで中国はアメリカの了解の下にチベット地域を占領した後にここをまたテアッギだないために数十年の間チベット地域の歴史を自国歴史に編入させる努力をして来た. また漢族(漢族) 人口をチベット地域に分派させてチベットの独立意志と名分を無くそうと思ったし, 東北地域よりもっと先に中国が長い間投資をしたと見られる.¥"

現在通用している中国貨幤に中華人民共和国の創設者である毛沢東と一緒に少数民族の顔を入れるほどに統一的ダミンゾック国家論を強調して来た中国. 少数民族統合と言う(のは)目的のために多様な政策を動員して来た.

規模が大きいとか離脱動きが多い少数民族の場合居住地域に漢族(漢族)らを大挙流入させて漢族たちとの童話をはかったり経済的に立ち後れされた地域には大規模支援も行われている. 特に中国が最近になって一番関心を持っている少数民族がすぐ東北地域の朝鮮族だ.

朴ションヨン教授 ¥"朝鮮族問題が目立つ場合中国内の少数民族たちが自分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に対して思うようになるはずでそれを押えつけるとか解決することができる方法は中国人としての民族官, 中国人としての歴史観, 中国人としての国家観をどんなに再確立しようかこれを思うようになるはずで絶えず中国という歴史, 文化, 政治のフレーム中で少数民族を閉じこめて少数民族を説明しようとする要因にならアンウルが...¥"

マークバインダーハーバード大学教授 ¥"実は中国に住んでいる朝鮮族は (中国立場(入場)で) 大きい問題ではないかも知れない. しかし南西の方や北西の方で暮している他の少数民族たちの場合ずっと独立を要求して独立の歴史的正当性を捜すために努力している. ¥"私たちご先祖は中国の一部ではなかったがどうして私たちは中国に属しなければならないが.¥"と言う質問をするようになるのだ. 論旨を確張すれば中国に住んでいる朝鮮族たちが ¥"私たちは昔の高句麗地に住んでいるし高句麗は中国の一部ではなかったが私たちはどうして中国に属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と質問することもできるのだ.¥"

このような背景の下で中国人チベット歴史を編入させる西南公正(西南工程)に引き続き東北地域問題を扱う東北公正(東北工程)を始めた. 去年 7月代表的な高句麗遺跡集結誌である家(集安) 一帯を世界文化遺産で登録したこともこのような東北公正の一環だ. 家が世界文化遺産に指定された以後中国は多くの言論媒体を通じて高句麗が中国歴史と言う(のは)主張を本格化したし観光客幼稚にも熱をあげている. 高句麗の最前性器を成した光ヶ土豪太王(広開土好太王)と長寿太王(長寿太王)の跡もまるで中国歴史の日附印のように広報している.

{引き続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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