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3일간이 아침이 되어 금년 처음으로 이쪽을 보았습니다.
나도 예에 의해서, 작년말의 Enjoy의 리뉴얼에 의해 이쪽에 이전해 왔습니다.당면은 Enjoy로 투고했지만 쳐, 몇개인가 추천해 주시고 있던 것에 가필 수정을 더하면서 이식하면서, 게시판의 활성화가 되면이라고 생각합니다.대충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투고의 테스트의 의미도 겸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njoy인 한국인이 필사적으로 신라의 관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그러한 발굴품이나 복원품이 아니고,전세품의 관이 몇개인가 있기 때문에 그 쪽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현재의 궁중에서 이용되는 관은, 천황의 「립 갓끈관」을 시작으로 한 일본식의 물건입니다만, 에도시대까지는 이하에 나타내는 관이 이용되고 있었습니다.현재는 「능」의 무대 정도로 밖에 볼 기회는 없습니다(TOP화 참조).

 

 

◆궁중 어물(천황의 관)
새롭게 즉위 한 천황이, 황위계승을 세상에 나타내는 「즉위의 의식」에서는, 례관·예복을 몸에 지닐 수 있다.특히 에도시대에 들어가면, 전란의 세상에 끊어지고 있던 여러가지 궁중 의식이 부활해, 그 때에 이용된 장신구가 오늘까지 전세 하고 있다.
관에는 반드시, 8지오가 각인 된 일륜과 서운의 립물이 배치되어 봉황의 장식도 자주 채용된 것 같다.

 

·옥관-나카미카도 천황
호우에이 7년(1710)에 10세에 즉위 한 나카미카도 천황이 즉위시에 이용한 것.아직도 원복 되지 않는 아이의 모습의 천황인것 같고, 어림을 느끼는 어물이다.

 

 

 

 ·보관-고자쿠라마치 천황
일본의 역사상 8명 10대의 여성 천황이 계셨지만, 그 마지막 여성 천황인 고자쿠라마치 천황이 호레키 13년(1763)의 즉위식에 이용된 것.즉위시에는 22세에 어머나 다투어졌다.
계·협형·오모토결이 부속된다.봉황의 주둥이처로부터도, 좌우 귓전에 늘어지는 것과 동형의 장식이 부속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없어지고 있다.여성다운 분위기를 느끼는 어물이다.

 

 

·면관-닌코 천황
문화 14년(1817)에 20세에 즉위 되었을 때에, 즉위예로 이용된 것.
이 면관과 고용초102장이 나타난 예복을 여며 「고면102장」이라고 겉(표)나타내지기도 하는 어물이다. 

 

 

 ◆옥관-도쿠가와 나리아키
에도시대의 궁중 의식에 대해서는, 고위의 무사도 무관으로서 대례(즉위나 입후등의 의식)에 참례했다.구슬의 색이나 수는 신분에 의해서 세세하게 정해져 있어 이 관은 미토번9대 지방 영주·도쿠가와 나리아키공이 에도말기의 연호 8년(1837)에 권 율령제하에서 대정관의 차관임시에 신조 된 것이다.

 

 

◆당관-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당관에는, 함리에 낡은 문서가 있어, 그것에 따르면 「인의 해부터 머리에 지시하실 수 있는 문안 드림 운운」이라고 있어, 덴쇼(연호)108년(인년:1590)의 9월부터 히데요시가 머리에 감싼 것이다고 추측된다.동년여름의 오다와라 정벌에 의해 천하를 억제해, 히데요시가 자신있는 절정에 있었던 시기에 해당된다.소재는 련혁에 당초를 투각 한 정교한 것으로, 또 관함이 시대의 훌륭한 것이다.다이와 코이즈미번·카타기리 가전 이래의 물건. 

 

 

◆옥 캄무리-류큐왕상가전 와 물건
류큐에서는, 내일 아침에 입 입궐하고 있던 관계로부터 명식의 옥관이 이용되고 있었다.옥관은, 피변관, 또 방언에서는 구슬의 관(타만치야브이)으로 불려 중국의 내일 아침 시대, 류큐국 세코(황태자)가, 명의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아 명실 공히 류큐 국왕이 될 때, 황제로부터 피변복과 함께 하사 된 왕권의 상징적인 물건이다.
현존 하는 피변관은, 청조에 왕조가 교대한 후에, 내일 아침의 제를 답습하면서 류큐 독자적으로 제작한 것이다.내일 아침으로는 류큐왕은「군왕」의 격식이 주어지고 있었지만, 청에의 왕조 교대의 혼잡에 잊혀지고, 그것까지 주어지고 있던 흰색 가죽제 7조의 옥관으로부터, 흑지지미의 표지에 12조의 금사의 줄기를 두어, 금,은, 수정, 산호 등 266개의 구슬을 돈의 압정으로 둔 것으로 고쳤던 것이다.이 12조의 관과는「황제」의 격식에서, 구슬의 수에서는 내일 아침 황제의 그것을 웃도는 것이어, 류큐의 독립행보의 정신을 겉(표)한 것일 것이다.한편, 청조의 여진족은 아직도 중화 문명에 물들지 않은 요새 밖 민족이며, 입조의 「열매」마저 지키고 있으면 멸망 왕조의 복제로 약간의 놀이를 해도 꽈당 말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 같고, ?`노후 소식도 없었던 것 같다.
덧붙여서, 64년전의 오키나와전 시에는, 국왕의 황태자의 주택이었던 나카구스쿠 저택에 납입할 수 있었던 문화재가 미군의 약탈에 있고, 유사한 옥관을 포함한 100점 이상의 물건이 행방 불명이 되어 있다.FBI와 인터폴에는 도난 미술품으로서 등록되어 있어 언제의 날이나 발견되는 것을 바라고 싶다.

 

 

 

◆현존 최고의 관-관잔결
례관의 최고의 유품은, 정창원에 전해지는 나라시대의 「관잔결」이다.유감스럽지만 이미 1개의 관의 모습은 세우지 않았다.
나라시대의 연호 4년(752)에, 도다이사 대불의 개안 공양이 영위되었을 때, 여제·효켄 천황은, 성무다이죠 천황, 광명 황태후와 함께 문무백관을 이라고도 없는 도다이사에 행차.설날의 예에 준거해 예복례관으로 바랬다.이 때의 관은 13 세기에 이를 때까지 거의 완전한 형태로 정창원에 전해지고 있었다.
인치 3년(1242), 고사가 천황의 즉위의 의식의 직전, 사용하는 관이 도적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급거, 정창원에 전래하는 관이 표본으로서 쿄토에 옮겨진다.급을 필요로 한 나머지, 각부 소재의 유용을 한 것일까, 정창원에 되돌려진 것은, 금동의 장식, 수정·진주·산호, 라 등 뿔뿔이 흩어지게 해체된 상태였다고 한다.
효켄 천황의 대금으로부터 고사가 천황의 즉위까지 벌써 500년 정도의 격차가 있다.당연 그 사이에 례관의 형상도 많이 변용하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파손 사건을 계기로서 복고적인 복원을 한 것이어, 정창원이 이 시대 벌써 문화의 타임 캡슐과 같이 되어 있던 것을 가리키는 에피소드로 ?`교B 

 

 

이상, 일본의 관의 전세품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보았습니다.


日本の冠(伝世品)

皆様、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三が日が明け、今年初めてこちらを覗いてみました。
私も例によって、昨年末のEnjoyのリニューアルによりこちらに移転して参りました。当面はEnjoyで投稿したもののうち、いくつか推薦いただいていた物に加筆修正を加えながら移植しつつ、掲示板の活性化になればと思います。手を抜くという訳ではありませんが、投稿のテストの意味も兼ねて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Enjoyではある韓国人が必死に新羅の冠を誇示していましたが、日本ではそのような発掘品や復元品でなく、伝世品の冠がいくつかありますのでそちらをご紹介しようと思います。
現在の宮中で用いられる冠は、天皇の「立纓冠」を始めとした和式の物ですが、江戸時代までは以下に示すような冠が用いられていました。現在では「能¥」の舞台くらいでしかお目にする機会はありません(TOP画参照)。

 

 

◆宮中御物(天皇の冠)
新たに即位した天皇が、皇位継承を世に示す「即位の儀」では、礼冠・礼服を身につけられる。特に江戸時代にはいると、戦乱の世に途絶えていた様々な宮中儀式が復活し、その際に用いられた装身具が今日まで伝世している。
冠には必ず、八咫烏が刻印された日輪と瑞雲の立物が配され、鳳凰の飾りもしばしば採用されたようである。

 

・玉冠−中御門天皇
宝永7年(1710)に10歳で即位した中御門天皇が即位時に用いたもの。いまだ元服ならぬ童形の天皇らしく、幼さを感じる御物である。

 

 

 

 ・宝冠−後桜町天皇
日本の歴史上8人10代の女性天皇がおられたが、その最後の女性天皇である後桜町天皇が宝暦13年(1763)の即位式に用いられたもの。即位時には22歳であらせられた。
笄・夾形・小元結が付属する。鳳凰の嘴先からも、左右耳元に垂れるものと同型の飾りが付属していたが、現在は失われている。女性らしい雰囲気を感じる御物である。

 

 

・冕冠−仁孝天皇
文化14年(1817)に20歳で即位された際に、即位礼で用いられたもの。
この冕冠と、袞龍はじめ十¥二章のあらわされた礼服とを合わせ、「袞冕十¥二章」と表¥現されることもある御物である。 

 

 

 ◆玉冠−徳川斉昭
江戸時代の宮中儀式においては、高位の武士も武官として大礼(即位や立后などの儀式)に参列した。玉の色や数は身分によって細かく定められており、この冠は水戸藩九代藩主・徳川斉昭公が天保8年(1837)に権中納言に任じられた時に新調されたものである。

 

 

◆唐冠−豊臣秀吉
この唐冠には、函裏に古い書付があり、それによると「寅の年より頭に仰せ付けられ候云々」とあり、天正十¥八年(寅年:1590)の九月から秀吉が頭に被ったものであると推測される。同年夏の小田原征伐により天下を制し、秀吉が得意の絶頂にあった時期に当たる。素材は煉革に唐草を透かし彫りした精巧なもので、また冠函が時代の立派なものである。大和小泉藩・片桐家伝来の品。 

 

 

◆玉冠−琉球王尚家伝来品
琉球では、明朝に入朝していた関係から明式の玉冠が用いられていた。玉冠は、皮弁冠、また方言では玉の御冠(タマンチヤーブイ)と呼ばれ、中国の明朝時代、琉球国世子(皇太子)が、明の皇帝から冊封を受けて名実ともに琉球国王になる際、皇帝から皮弁服とともに下賜された王権の象徴的なものである。
現存する皮弁冠は、清朝に王朝が交代した後に、明朝の制を踏襲しつつ琉球独自に作製したものである。明朝では琉球王は「郡王」の格式を与えられていたが、清への王朝交代のどさくさに紛れて、それまで与えられていた白皮製7条の玉冠から、黒縮緬の表¥地に12条の金糸の筋を置き、金、銀、水晶、珊瑚など266個の玉を金の鋲で留めたものに改めたのである。この12条の冠とは「皇帝」の格式で、玉の数では明朝皇帝のそれを上回るものであり、琉球の独立独歩の精神を表¥したものであろう。一方、清朝の女真族はいまだ中華文明にかぶれていない塞外民族であり、入朝の「実」さえ守っていれば滅亡王朝の服制で少々のお遊びをしてもどうと言うことはないと考えていたようで、なんらの沙汰も無かったようである。
ちなみに、64年前の沖縄戦の際には、国王の皇子の住宅だった中城御殿に納められた文化財が米軍の略奪にあって、類似の玉冠を含めた100点以上の品が行方不明になっている。FBIとインターポールには盗難美術品として登録されており、いつの日か発見されることを望みたい。

 

 

 

◆現存最古の冠−御冠残欠
礼冠の最古の遺品は、正倉院に伝わる奈良時代の「御冠残欠」である。残念ながらもはや1個の冠の姿はとどめていない。
天平勝宝4年(752)に、東大寺大仏の開眼供養が営まれたとき、女帝・孝謙天皇は、聖武太上天皇、光明皇太后とともに文武百官をともない東大寺に行幸。元日の礼に則り礼服礼冠でのぞんだ。この折の冠は13世紀に至るまでほぼ完全な形で正倉院に伝わっていた。
仁治3年(1242)、後嵯峨天皇の即位の儀の直前、使用する冠が盗賊により破壊されていることが判明した。急遽、正倉院に伝来する冠が手本として京都へ運ばれる。急を要するあまり、各部素材の流用が行われたのであろうか、正倉院へ戻されたのは、金銅の装飾、水晶・真珠・珊瑚、羅などバラバラに解体された状態であったという。
孝謙天皇の御代から後嵯峨天皇の即位まですでに500年ほどの隔たりがある。当然その間に礼冠の形状も少なからず変容していたものと思われるが、破損事件をきっかけとして復古的な復元が行われたわけであり、正倉院がこの時代すでに文化のタイムカプセルのようになっていたことを示すエピソ¥ードである。 

 

 

以上、日本の冠の伝世品について簡単にご紹介してみ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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