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中國 廣西省 長族 自治區의 省都 南寧市 와 百濟鄕 사이를 오가는 버스

 
 
 
1.劉鈞仁의<中國歷史地名大辭典> : 晉平은 縣 이름인데, 晉나라가 설치하여 廣州 蔚林郡에
소속시켰고, 南宋과 南濟도 그대로 하였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廣西 境界에 있었다.
 
2. 중국 역사서 梁書의 기록
그 나라(백제)는 본래 고려와 함께 遼東의 東쪽에 있었다. 晉國 때에 고려가 遼東을
점령하여 갖자 백제 역시 遼西,晉平 2郡을 차지하여 百濟郡을 두었다.
 
3.중국 역사서 梁書의 기록
 [원문] 號所治城曰固麻,謂邑曰檐魯,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皆以子弟宗族分據之
[번역문}다스리는 바 城(=首都)을 일러 固麻라고 한다. 읍을 일러 檐魯라고 한다. 중국의 언어로
郡縣과 같다. 그 나라에는 22檐魯가 있어서 모두 子弟宗族들이 그것을 분할하여 雄據한다.
 
 
 
4.西魏・東魏・梁의 地圖
 

 위의 梁나라 地圖 중에 특히 廣州를 注目해 주기 바란다. 이 廣州廣西省晉平郡, 즉 百濟郡
가까운 곳이다.
 
 
 
5. 백제郡= 백제 檐魯 (檐魯는 중국의 언어로 郡縣이다)
 
6.廣東城의 省都인 廣州에서는 Taam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이 廣州는 梁나라의 영토이며
백제郡, 즉 백제의 檐魯인 晉平郡과 가까운 지역이다.
[중국 사이트 원문 : <+~nta:m :广州“”ta:m <+cram 9)“甜”梁子ka:m。<+~qwmm :广州“甘”kam。< &am 10)“(水)清”梁=~dmJ < 刮[ hQ日: ..... 对一个研究汉语音韵史的西洋同行来说,汉语从上古中古音的四种“调类”往往被口语中极为错综复杂的“调值”变化困扰得无法掌握 ...]
 
梁書는 백제의 檐魯에 대해 중국 역사서 중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 檐魯 중 晉平郡은 바로 梁의 영토인 廣東省의 廣州와 가까운 廣西省에 있었다. 梁書에 기록된 檐魯의 發音으로 한국에 傳承
되는 發音이 Tamro인데,  이것이 바로 백제의 晉平郡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廣東省의 廣州方言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즉 이것은 梁書를 기록한 史家가 백제가 진출한 지역, 곧 晉平郡에서
발음하는 檐魯의  발음 곧 Tamro 그대로의 同一音인 漢字를 借用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을 뜻하며,
곧 이것은 檐魯(Tamro)가 백제의 언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本紀 始祖 東明聖王]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2년 6월에 (沸流國王) 松讓이 나라를 들어 와서 항복하니 왕은 그 곳을

多勿都라 하고, 松讓을 封하여 그 곳의 主로 삼았다. 고구려 國語

舊土의 回復 多勿(Tamur)이라고 하므로 그와 같이 이름한 것이다.

 

[해설]고구려 初期 國語 중에 舊土의 回復을 의미하는 多勿(Tamur)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이 多勿(Tamur)이 後代에 백제에서 魯(Tamuro)라는 단어로 변천이

되었다.

 

 

[梁書 列傳 諸夷 東夷 百濟]

 

1.號所治城曰固麻,謂邑曰魯,如中國之言郡縣也  皆以子弟宗族分據之
都城이 있는 곳을 일컬어 固麻라고 한다.  邑을 일러 檐魯(Tamuro)라고 한다.

중국의 말로 郡縣과 같다.  그 國土에는 22魯가 있다. 

子弟,宗族이 그것을 分割하여 雄據한다.

 

[해설]백제의 魯가 중국어로 郡縣과 같다는 기록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즉 百濟가 중국 대륙에 설치한 遼西郡, 晉平郡이 바로 檐魯인 것이다.

 

2.晉世句驪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晉나라 때에 高句麗가 이미 遼東을 침략하여 가지니 백제 역시 遼西, 晉平

2郡의 땅을 차지하여 가졌는데 스스로 百濟郡을 두었다.

 

 

 * 魯(Tamuro : 百濟語)=郡縣(中國語) 그러므로 百濟郡(=百濟檐魯)

 

 

 

 

[일본서기 神代 第四段 大八洲生成]

 

及至産時, 先以淡路洲爲胞, 意所不快, 故名之曰淡路洲.楢生大日本豊秋津洲

아이를 낳을 때에 이르러서, 먼저 “淡路(Tamuro)”洲를 胞로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故로 “淡路(Awaji)”洲라 하였다. 다음으로”大日本”豊秋津洲를 낳았다.

 

[해설] “먼저 淡路洲를 胞로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故로 淡路洲라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淡路洲라고 하였는데, 淡路洲라는 단어에는 조금도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분명히 잘못된 문장이다.

그러나 前의 淡路를 Tamuro로, 후의 淡路를 Awaji로 읽으면 이 문장은

아무 흠결이 없게 된다.  일본서기의 著者는 바로 이 문장을 통해서 日本이

백제의 地方官制인 淡路(Tamuro) 에서 기원했다 는 것을  은밀히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일본인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일본의 起源이 淡路洲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는 大八洲生成에 대한 神話를 기록하면서도 實은 日本의 역사적 起源 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은 바로 밑의  古事記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고사기 上券 幷序]

 

1.生子、水蛭子、此子者入葦船而流去

아들을 낳으니 水蛭子였다.  이 아들을 갈대 배에 넣어 흘러가게 하였다.

 

2.次生、淡嶋、是亦不入子之例

둘째 아들을 낳으니 淡島였다. 이것 역시 아들의 例에 넣지 않았다.

 

3.生子、淡道之穗之狹別嶋

아들을 낳으니 淡道(Tamuro)之穗之狹別嶋라고 하였다.

 

[해설] 위의 내용을 보면 일본의 男女 始祖神이 아들을 차례로 셋이나 낳았으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불구아로서 아들 구실을 하지 못해 버렸고, 셋째 아들이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대신하여 맏아들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의 첫째와 둘째는 일본 열도에 있었던 新羅,加羅系 王朝를 의미하며,

셋째는 百濟系 王朝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新羅, 加羅系 王朝는 百濟系 王朝보다

먼저 일본 열도에서 分國을 설치하여 그 지역을 다스렸으나, 後日에 등장한 百濟系

王朝에 의해 그 명맥이 끊기거나, 百濟系 王朝에 흡수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古事記, 일본서기에 나오는 淡道와 淡路가 그 音이 다르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단어의 漢字 上古音은 道와 路 모두  lu 혹은

la로서 같았다. 그리고 淡의 한자 中古音은 Tam이었다.  백제의 魯라는 단어는

그 역사적 淵源이 오래 되었으나 5세기 이후의 중국 역사서에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魯의 同音異字인 淡道, 淡路 또한 5세기에 등장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道와 路의 한자 上古音은 한자 中古音이 등장하였던 시기 초기까지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淡의 漢字 中古音 Tam 다음에 와서 淡道(Tamuro),

淡路(Tamuro)라는 단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道와 路의 漢字音이

中古音으로 바뀌자, 같은 漢字音이었던  淡道, 淡路 두 단어가 Tamuto, Tamuro와

같이 각기 다른 漢字音을 가진 단어로 바뀌었고, 그 때문에 두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百濟語(地方官制)이면서도 각기 음이 서로 다른 한자어로

변질 될 운명에 처하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피할 방편으로 두 단어

淡道와 淡路는 訓讀되어 Awaji가 되었고, 각기 다른 漢字語(地名)가 되는

운명을 피하게 된 것이다.

 

혹 일본 열도 四國에 있는 阿波(Awa)에서 淡道나 淡路의 語源을 찾으려는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후대의 史實을 선대의 史實로 여기려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淡道, 淡路의 語源은 고구려 초기 즉 西紀前 1세기까지 소급되는

기나긴 역사적 淵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Awa는 한 곳에만있는 古代 地名이 아니다. 지금의 千葉縣의 남부가

고대 지명이 安房(Awa)이었고, 또 지금의 德島縣이 고대 지명이 阿波(Awa)였다.

고사기를 보면 일본의 남녀 始祖神들이 淡島 즉 Awajima를 낳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함에도 이 Awajima는 그들의 아들에 포함되지를 않는다. 다시 말해서

淡島(Awajima)는 일본 역사의  起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고사기의 著者도 淡島(Awajima)를 淡道(Tamuro)와 연관시키지 말라고 後孫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현대 일본어 Tamuro(屯)는 a war camp(陣營)의 뜻이 있다.왜 Tamuro가 a war
camp(陣營)의 뜻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Tamuro(魯=淡路)의 長, 즉 백제의

候國의官吏(=Tamuro)가 武將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에는 지방관리는

文官인 동시에 또 武官이었다. 중국 대륙이나 일본 列島에 進出하여 전쟁으로 백제의

새로운 영토를 확보해야할 重大한 역할을 부여받은 Tamuro가 A War Camp(陣營)의

뜻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일본 열도에 降臨한 新羅人, 加羅人 그리고 百濟人]

 

* 일본서기

 

1. 是時, 素殘鳴尊, 帥其子五十猛神, 降到於新羅國, 居曾尸茂梨之處,

乃興言曰, 此地吾不欲居, 遂以埴土作舟, 乘之東渡, 到出雲國跛川上所在,

鳥上之峰

 

때에 素殘鳴尊은 아들 五十猛尊을 데리고 “新羅國”에 내려서

曾尸茂梨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서 ” 이 땅은 내가 있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 出雲의 跛川 上流에 있는 鳥上峰으로 갔다.   

 

.2. 是時, 高皇産靈尊, 乃用眞床覆衾, 裏皇孫天津彦根火瓊瓊杵尊, 而排披天八重雲,

以奉降之. 故稱此神, 曰天國饒石彦火瓊瓊杵尊. 于時, 降到之處者, 呼曰日向襲之高千穗

添山(=曾褒里能耶麻)峰矣

 

이때에 高皇産靈尊은 床을 덮는 이불로, 皇孫 天津彦根火瓊瓊杵尊을

덮어서 겹겹의 구름을 헤치고, 내려보냈다. 고로 그 神을 天國饒石彦火瓊瓊杵尊이라 한다.

그 때 내려온 곳을 日向襲의 高千穗의 “添山”(=曾褒里能耶麻=Sohorinoyama)峰이라 일컫는다.

 

< 添山은 Sohorinoyama라고 읽는데, 신라의 王都, 徐伐(Sopor)을 音譯한 것일 것이다. > (板本太郞)

 

3.及至産時, 先以淡路洲爲胞, 意所不快, 故名之曰淡路洲.楢生大日本豊秋津洲

 

아이를 낳을 때에 이르러서, 먼저 “淡路”洲를 胞로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故로 “淡路”洲라 하였다. 다음으로”大日本”豊秋津洲를 낳았다.

 

*고사기

 

於是詔之此地者向韓國眞來通笠之御前而朝日之直刺國夕日之日照國也故此地甚吉地

 

이에 (邇邇藝命이) 말하기를 “이 곳은 韓國(karakuni)을 바라보고 있고 笠沙岬과도

통하고 있어 아침에 해가 바로 비치고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이므로 이곳은 정말 좋은 곳이다.”  

 

 



是非 Tamuroを Enroに変えてください..Jpn1_rok0


                 中國 廣西省 長族 自治區의 省都 南寧市 와 百濟鄕 사이를 오가는 버스

 
 
 
1.劉鈞仁의<中國歷史地名大辭典> : 晉平은 縣 이름인데, 晉나라가 설치하여 廣州 蔚林郡에
소속시켰고, 南宋과 南濟도 그대로 하였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廣西 境界에 있었다.
 
2. 중국 역사서 梁書의 기록
그 나라(백제)는 본래 고려와 함께 遼東의 東쪽에 있었다. 晉國 때에 고려가 遼東을
점령하여 갖자 백제 역시 遼西,晉平 2郡을 차지하여 百濟郡을 두었다.
 
3.중국 역사서 梁書의 기록
 [원문] 號所治城曰固麻,謂邑曰檐魯,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檐魯,皆以子弟宗族分據之
[번역문}다스리는 바 城(=首都)을 일러 固麻라고 한다. 읍을 일러 檐魯라고 한다. 중국의 언어로
郡縣과 같다. 그 나라에는 22檐魯가 있어서 모두 子弟宗族들이 그것을 분할하여 雄據한다.
 
 
 
4.西魏・東魏・梁의 地圖
 

 위의 梁나라 地圖 중에 특히 廣州를 注目해 주기 바란다. 이 廣州廣西省晉平郡, 즉 百濟郡
가까운 곳이다.
 
 
 
5. 백제郡= 백제 檐魯 (檐魯는 중국의 언어로 郡縣이다)
 
6.廣東城의 省都인 廣州에서는 Taam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이 廣州는 梁나라의 영토이며
백제郡, 즉 백제의 檐魯인 晉平郡과 가까운 지역이다.
[중국 사이트 원문 : <+~nta:m :广州“”ta:m <+cram 9)“甜”梁子ka:m。<+~qwmm :广州“甘”kam。< &am 10)“(水)清”梁=~dmJ < 刮[ hQ日: ..... 对一个研究汉语音韵史的西洋同行来说,汉语从上古中古音的四种“调类”往往被口语中极为错综复杂的“调值”变化困扰得无法掌握 ...]
 
梁書는 백제의 檐魯에 대해 중국 역사서 중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 檐魯 중 晉平郡은 바로 梁의 영토인 廣東省의 廣州와 가까운 廣西省에 있었다. 梁書에 기록된 檐魯의 發音으로 한국에 傳承
되는 發音이 Tamro인데,  이것이 바로 백제의 晉平郡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廣東省의 廣州方言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즉 이것은 梁書를 기록한 史家가 백제가 진출한 지역, 곧 晉平郡에서
발음하는 檐魯의  발음 곧 Tamro 그대로의 同一音인 漢字를 借用하여 기록하였다는 것을 뜻하며,
곧 이것은 檐魯(Tamro)가 백제의 언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本紀 始祖 東明聖王]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來降 以其地爲多勿都 封松讓爲主

麗語謂復舊土爲多勿 故以名焉

2년 6월에 (沸流國王) 松讓이 나라를 들어 와서 항복하니 왕은 그 곳을

多勿都라 하고, 松讓을 封하여 그 곳의 主로 삼았다. 고구려 國語

舊土의 回復 多勿(Tamur)이라고 하므로 그와 같이 이름한 것이다.

 

[해설]고구려 初期 國語 중에 舊土의 回復을 의미하는 多勿(Tamur)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이 多勿(Tamur)이 後代에 백제에서 魯(Tamuro)라는 단어로 변천이

되었다.

 

 

[梁書 列傳 諸夷 東夷 百濟]

 

1.號所治城曰固麻,謂邑曰魯,如中國之言郡縣也  皆以子弟宗族分據之
都城이 있는 곳을 일컬어 固麻라고 한다.  邑을 일러 檐魯(Tamuro)라고 한다.

중국의 말로 郡縣과 같다.  그 國土에는 22魯가 있다. 

子弟,宗族이 그것을 分割하여 雄據한다.

 

[해설]백제의 魯가 중국어로 郡縣과 같다는 기록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즉 百濟가 중국 대륙에 설치한 遼西郡, 晉平郡이 바로 檐魯인 것이다.

 

2.晉世句驪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自置百濟郡

晉나라 때에 高句麗가 이미 遼東을 침략하여 가지니 백제 역시 遼西, 晉平

2郡의 땅을 차지하여 가졌는데 스스로 百濟郡을 두었다.

 

 

 * 魯(Tamuro : 百濟語)=郡縣(中國語) 그러므로 百濟郡(=百濟檐魯)

 

 

 

 

[일본서기 神代 第四段 大八洲生成]

 

及至産時, 先以淡路洲爲胞, 意所不快, 故名之曰淡路洲.楢生大日本豊秋津洲

아이를 낳을 때에 이르러서, 먼저 "淡路(Tamuro)"洲를 胞로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故로 "淡路(Awaji)"洲라 하였다. 다음으로"大日本"豊秋津洲를 낳았다.

 

[해설] "먼저 淡路洲를 胞로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故로 淡路洲라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淡路洲라고 하였는데, 淡路洲라는 단어에는 조금도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분명히 잘못된 문장이다.

그러나 前의 淡路를 Tamuro로, 후의 淡路를 Awaji로 읽으면 이 문장은

아무 흠결이 없게 된다.  일본서기의 著者는 바로 이 문장을 통해서 日本이

백제의 地方官制인 淡路(Tamuro) 에서 기원했다 는 것을  은밀히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일본인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일본의 起源이 淡路洲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는 大八洲生成에 대한 神話를 기록하면서도 實은 日本의 역사적 起源 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은 바로 밑의  古事記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고사기 上券 幷序]

 

1.生子、水蛭子、此子者入葦船而流去

아들을 낳으니 水蛭子였다.  이 아들을 갈대 배에 넣어 흘러가게 하였다.

 

2.次生、淡嶋、是亦不入子之例

둘째 아들을 낳으니 淡島였다. 이것 역시 아들의 例에 넣지 않았다.

 

3.生子、淡道之穗之狹別嶋

아들을 낳으니 淡道(Tamuro)之穗之狹別嶋라고 하였다.

 

[해설] 위의 내용을 보면 일본의 男女 始祖神이 아들을 차례로 셋이나 낳았으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불구아로서 아들 구실을 하지 못해 버렸고, 셋째 아들이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대신하여 맏아들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여기의 첫째와 둘째는 일본 열도에 있었던 新羅,加羅系 王朝를 의미하며,

셋째는 百濟系 王朝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新羅, 加羅系 王朝는 百濟系 王朝보다

먼저 일본 열도에서 分國을 설치하여 그 지역을 다스렸으나, 後日에 등장한 百濟系

王朝에 의해 그 명맥이 끊기거나, 百濟系 王朝에 흡수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古事記, 일본서기에 나오는 淡道와 淡路가 그 音이 다르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단어의 漢字 上古音은 道와 路 모두  lu 혹은

la로서 같았다. 그리고 淡의 한자 中古音은 Tam이었다.  백제의 魯라는 단어는

그 역사적 淵源이 오래 되었으나 5세기 이후의 중국 역사서에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

볼 때 魯의 同音異字인 淡道, 淡路 또한 5세기에 등장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道와 路의 한자 上古音은 한자 中古音이 등장하였던 시기 초기까지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것들은 淡의 漢字 中古音 Tam 다음에 와서 淡道(Tamuro),

淡路(Tamuro)라는 단어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道와 路의 漢字音이

中古音으로 바뀌자, 같은 漢字音이었던  淡道, 淡路 두 단어가 Tamuto, Tamuro와

같이 각기 다른 漢字音을 가진 단어로 바뀌었고, 그 때문에 두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百濟語(地方官制)이면서도 각기 음이 서로 다른 한자어로

변질 될 운명에 처하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피할 방편으로 두 단어

淡道와 淡路는 訓讀되어 Awaji가 되었고, 각기 다른 漢字語(地名)가 되는

운명을 피하게 된 것이다.

 

혹 일본 열도 四國에 있는 阿波(Awa)에서 淡道나 淡路의 語源을 찾으려는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후대의 史實을 선대의 史實로 여기려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淡道, 淡路의 語源은 고구려 초기 즉 西紀前 1세기까지 소급되는

기나긴 역사적 淵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Awa는 한 곳에만있는 古代 地名이 아니다. 지금의 千葉縣의 남부가

고대 지명이 安房(Awa)이었고, 또 지금의 德島縣이 고대 지명이 阿波(Awa)였다.

고사기를 보면 일본의 남녀 始祖神들이 淡島 즉 Awajima를 낳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러함에도 이 Awajima는 그들의 아들에 포함되지를 않는다. 다시 말해서

淡島(Awajima)는 일본 역사의  起源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고사기의 著者도 淡島(Awajima)를 淡道(Tamuro)와 연관시키지 말라고 後孫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현대 일본어 Tamuro(屯)는 a war camp(陣營)의 뜻이 있다.왜 Tamuro가 a war
camp(陣營)의 뜻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Tamuro(魯=淡路)의 長, 즉 백제의

候國의官吏(=Tamuro)가 武將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에는 지방관리는

文官인 동시에 또 武官이었다. 중국 대륙이나 일본 列島에 進出하여 전쟁으로 백제의

새로운 영토를 확보해야할 重大한 역할을 부여받은 Tamuro가 A War Camp(陣營)의

뜻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일본 열도에 降臨한 新羅人, 加羅人 그리고 百濟人]

 

* 일본서기

 

1. 是時, 素殘鳴尊, 帥其子五十猛神, 降到於新羅國, 居曾尸茂梨之處,

乃興言曰, 此地吾不欲居, 遂以埴土作舟, 乘之東渡, 到出雲國跛川上所在,

鳥上之峰

 

때에 素殘鳴尊은 아들 五十猛尊을 데리고 "新羅國"에 내려서

曾尸茂梨라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서 " 이 땅은 내가 있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며,

진흙으로 배를 만들어 타고 동쪽으로 가, 出雲의 跛川 上流에 있는 鳥上峰으로 갔다.   

 

.2. 是時, 高皇産靈尊, 乃用眞床覆衾, 裏皇孫天津彦根火瓊瓊杵尊, 而排披天八重雲,

以奉降之. 故稱此神, 曰天國饒石彦火瓊瓊杵尊. 于時, 降到之處者, 呼曰日向襲之高千穗

添山(=曾褒里能耶麻)峰矣

 

이때에 高皇産靈尊은 床을 덮는 이불로, 皇孫 天津彦根火瓊瓊杵尊을

덮어서 겹겹의 구름을 헤치고, 내려보냈다. 고로 그 神을 天國饒石彦火瓊瓊杵尊이라 한다.

그 때 내려온 곳을 日向襲의 高千穗의 "添山"(=曾褒里能耶麻=Sohorinoyama)峰이라 일컫는다.

 

< 添山은 Sohorinoyama라고 읽는데, 신라의 王都, 徐伐(Sopor)을 音譯한 것일 것이다. > (板本太郞)

 

3.及至産時, 先以淡路洲爲胞, 意所不快, 故名之曰淡路洲.楢生大日本豊秋津洲

 

아이를 낳을 때에 이르러서, 먼저 "淡路"洲를 胞로 하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故로 "淡路"洲라 하였다. 다음으로"大日本"豊秋津洲를 낳았다.

 

*고사기

 

於是詔之此地者向韓國眞來通笠之御前而朝日之直刺國夕日之日照國也故此地甚吉地

 

이에 (邇邇藝命이) 말하기를 "이 곳은 韓國(karakuni)을 바라보고 있고 笠沙岬과도

통하고 있어 아침에 해가 바로 비치고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이므로 이곳은 정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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