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야마구치 쿠미타 오카 카즈오 자전 전격편」(토쿠마 서점 1973)이라고 하는 서적이 있습니다.광역 폭력단 야마구치조의 3대째 조장인 전 오카 카즈오의 자전입니다(이하 「전강자전」이라고 부릅니다).본인이 썼는지 대작가가 존재했는지라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그만둡니다.
제이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의 일본 거주 한국인이나 대만인의 집단적 불법 행위를 소개할 때에 자주(잘) 인용되는 서적입니다만, 이것, 곤란한 일에, 거기에 쓰여져 있는 불법 행위의 실재를 증명하는 것이 어렵다.뭐, 말하자면 개인의 증언·기록이기 때문에 그 신뢰성에는 한계도 있고, 사건의 발생 일시가 명기되어 있지 않은 이상, 당연한 일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만.

단지, 1점만 확실한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습니다.우선은 「전강자전」의 텍스트입니다.

 쇼와 21년 2월, 코베 이쿠타서의 오카 마사오 순사 부장이 그들에게 납치되어 폭행 살해되어 동년 4월, 스마서 사토 스스무 순사 부장이 역시 그들의 손에 의해서 사살되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경찰의 위신을 근저로부터 뒤집는 불상사마저 가졌다.즉 불량 삼국인3백 다른 사람은 효고 경찰서를 습격해, 서장 초간부 서원들을 인질로서 전화 지령 교환실을 점거한 것으로 .
 한층 더 그들은 수상경찰서를 급습해 유치되고 있던 동포 전원을 석방해, 수상서의 전감방은 그들의 손에 의해서 개방된다고 하는 불상사건에까지 발전했다.

전 오카 카즈오 「야마구치 쿠미타 오카 카즈오 자전 전격편」(토쿠마 서점 1973) p214~215




여기의 기술 가운데, 오카 마사오 순사 부장의 살해 사건에 대해 「효고현 경찰사 쇼와편」과 신문 기사로 확인을 잡혔습니다.

2월 28일, 이쿠타서의 오카 마사오 경부보(당시 순사 부장)가 키타나가사도리의 대만성 청년대 사무소에서, 수명의 사람으로부터 때리고 차는 것 폭행을 받아 인사불성이 되어, 수당의 보람도 없게 절명했다.

효고현 경찰사편씨위원회 「효고현 경찰사 쇼와편」(효고현 경찰 본부 1975) p448



1946년 12월 6 일자 아사히 신문(오사카판)
한신을 망친 기양단
    50여명 죄다 포 깬다
한가닥 50수명으로부터 되는 피스톨대강도단이 부 형사과, 후쿠시마서의 수사진에 의해 이번에 죄다 잡을 수 있는 근처 송국 되는 것에 , 이 강도단은 오사카 아베노구 반다이쵸서산쵸메 겐추일 대중 신문사 이사 사장가만 타카시, 친문경일가병림(27)을 수령으로 하는 일파로

지난 9월 1일낮이쿠노구 이카이노 마치니시 산쵸메 미싱 가공직 이케다 켄 유우씨(삼오) 상 외 4명으로부터 미나토구 신이케 다마치 부근의 소적으로 현금 52만엔을 강탈한 것으로부터 후쿠시마서에서는 부 형사과의 응원을 라고 52만엔 사건으로서 수령이라고 주목받는 가병림을 소네자키서 관내에서 잡아 11월말까지 관계자는 불면 불휴의 수사를 개시하고, 감자 질질 끄는 식에 단원 50수명을 잡은 것

이 한가닥은 2월 28일 코베시 이쿠타 키타나가사도리 산쵸메 대만 청년대 사무소에서 이쿠타서 오카 마사오 순사 부장에 폭행을 가에 죽어 이르게 한

외 살인, 강도, 올까 개 33건을 일해 현금 65만엔, 면포 28 파오, 미 70표, 트라트크 1대 등 공정가격으로 약백 55만8천엔을 강탈하고 있었다

또한 이것에 관련해 잡힌 히가시요도가와구 츠카모토마치 동신문사 주간 마츠오 시게나리일왕아키노리(26)를 수령으로 하는 별파는 올까 개전문에 성동구 세키메마을 니쵸메 오사카 소고 택시 쿠로다 타츠 고로씨보다 승용차 1대를 강탈한 것 외 신문 종이두루마리 20개, 사트카린백정입7천개전철, 극장등의 우대권을 강요해 30 수만엔을 취연줄 있었다



대만인의 범행이었군요.「삼국인」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우선, 이 오카 마사오 순사 부장 사건에 대해서는 「전강자전」의 기술은 사실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해 좋은 것 같네요.
그러나, 현시점에서 사토 순사 부장 살해 사건과 효고 경찰서·수상경찰서 습격 사건은 그 실재를 증명하는 사료를 발견 되어 있지 않습니다.아무튼, 신문에 모든 사건이 실린다는 것도 아닙니다만.
이쿠타 경찰서 습격 사건이라면 실재를 확인할 수 있기는 하지만요…
아, 만약을 위해 말해 둡니다만, 「전강자전」으로 소위 「조선 진주군」실재의 근거로는 할 수 없어요.「조선 진주군」은 말자체가 등장하지 않고.

결국, 무엇을 하고 싶었는가 하는 과 「전강자전」과 같은 개인의 증언 기록의 종류여도, 다른 사료와 조합하는 것에 의해서 그 신뢰성을 담보하는 것은 가능하고,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 언설의 근거로서 취급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의 실례로서 준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일차 사료의 기술에서도, 신뢰성의 담보할 수 없는 기술은 있고, 신뢰성의 담보할 수 없는 한은 언설의 근거로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도 됩니다만.

사와―★놀이중

   


▲史料の信頼性の担保

『山口組 田岡一雄自伝 電撃篇』(徳間書店 1973)という書籍があります。広域暴力団山口組の3代目組長であった田岡一雄の自伝です(以下『田岡自伝』と呼びます)。本人が書いたのかゴーストライターが存在したのかといった点についてはここでは措きます。
第二次世界大戦の終戦直後の日本在住朝鮮人や台湾人の集団的不法行為を紹介する時によく引用される書籍なんですが、これ、困ったことに、そこに書かれている不法行為の実在を証明することが難しい。ま、いわば個人の証言・記録ですからその信頼性には限界もあるし、事件の発生日時が明記されていない以上、当然のことと言うべきなんですが。

ただ、1点だけ確実な信頼性を担保できる記述がありました。まずは『田岡自伝』のテキストです。

 昭和二十一年二月、神戸生田署の岡政雄巡査部長が彼らに拉致されて暴行殺害され、同年四月、須磨署佐藤進巡査部長がやはり彼らの手によって射殺された。
 そればかりではない。警察の威信を根底からくつがえす不祥事さえもちあがった。すなわち不良三国人三百余人は兵庫警察署を襲撃し、署長はじめ幹部署員たちを人質として電話指令交換室を占拠したのである。
 さらに彼らは水上警察署を急襲して留置されていた同胞全員を釈放し、水上署の全監房は彼らの手によって開放されるという不祥事件にまで発展した。

田岡一雄『山口組 田岡一雄自伝 電撃篇』(徳間書店 1973) p214~215




ここの記述のうち、岡政雄巡査部長の殺害事件について『兵庫県警察史 昭和編』と新聞記事で確認が取れました。

二月二十八日、生田署の岡政雄警部補(当時巡査部長)が北長狭通の台湾省青年隊事務所で、数名の者から殴る蹴るの暴行を受けて人事不省となり、手当の甲斐もなく絶命した。

兵庫県警察史編さん委員会『兵庫県警察史 昭和編』(兵庫県警察本部 1975)p448



1946年12月6日付朝日新聞(大阪版)
阪神を荒したギヤング団
    五十余名ことごとく捕わる
一味五十数名からなるピストル大強盗団が府刑事課、福島署の捜査陣によりこのほどことごとく捕えられ近く送局されることになつた、この強盗団は大阪阿倍野区万代町西三丁目元中日大衆新聞社取締役社長柯万隆、陳文慶こと柯柄林(二七)を首領とする一派で

さる九月一日昼生野区猪飼野町西三丁目ミシン加工職池田健雄氏(三五)上ほか四名から港区新池田町附近の焼跡で現金五十二万円を強奪したことから福島署では府刑事課の応援をえて五十二万円事件として首領と目される柯柄林を曽根崎署管内で捕え十一月末まで係員は不眠不休の捜査を開始して、いもずる式に団員五十数名を捕えたもの

この一味は二月二十八日神戸市生田北長狭通三丁目台湾青年隊事務所で生田署岡政雄巡査部長に暴行を加へ死にいたらしめたほか殺人、強盗、きようかつ三十三件を働き現金六十五万円、綿布二十八包、米七十表、トラツク一台など公定価格で約百五十五万八千円を強奪していた

なおこれに関連して捕われた東淀川区塚本町同新聞社主幹松尾重成こと王明訓(二六)を首領とする別派はきようかつ専門に城東区関目町二丁目大阪相互タクシー黒田辰五郎氏より乗用車一台を強奪したほか新聞巻取紙二十本、サツカリン百錠入七千個電鉄、劇場などの優待券を強要し三十数万円を取つていた



台湾人の犯行だったんですね。ま「三国人」には違いないですが。

とりあえず、この岡政雄巡査部長事件については『田岡自伝』の記述は事実を伝えていると考えてよさそうですね。
しかし、現時点で佐藤巡査部長殺害事件と兵庫警察署・水上警察署襲撃事件の方はその実在を証明する史料を発見できていません。まぁ、新聞に全ての事件が載るというわけでもないんですが。
生田警察署襲撃事件なら実在を確認できるんですけどねぇ…
ああ、念のために言っておきますが、『田岡自伝』を以て所謂「朝鮮進駐軍」実在の根拠にはできませんよ。「朝鮮進駐軍」って言葉自体が登場しませんしね。

結局、何をしたかったかというと、『田岡自伝』のような個人の証言記録の類であっても、他の史料と照合することによってその信頼性を担保することは可能だし、信頼性を担保できれば言説の根拠として扱うことも可能だということの実例としてあげたわけです。
逆に言えば、一次史料の記述でも、信頼性の担保できない記述はあり得るし、信頼性の担保できない限りは言説の根拠として使えないってことにもなるんですがね。

しゃおこー★お遊び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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