沾解尼今紀(첨해니금기) 4년, AD313년
四年 正月 謁白伊伐飡 秀皇稟主
4년(AD313년) 1월, 알백(謁白)을 이벌찬으로, 수황(秀皇)을 품주로 삼았다.
行玄鳥祭
현조제(玄鳥祭)를 행하였다.
*현조(玄鳥)는 계유(癸酉)년이다.
加耶君孝道禪于其女河理智 迎宣威爲婿
가야(加耶)의 왕 효도(孝道)가 그의 딸 하리지(河理智)에게 선양을 하고, 선위(宣威)를 맞이하여 사위로 삼았다.
四月 倭獻土物 其太子求婚 于老戱之 “虜汝王爲鹽奴矣 何可婚乎” 使怒歸和絶
4월, 倭(왜)가 土物(토물)을 바치고, 太子(태자)의 혼사를 구하였다. 于老(우로)가 그 사신을 희롱하며 “너의 왕을 사로잡아 염전의 노예로 만들겠다. 혼사가 가당키라도 하느냐” 라고 하였다. 사신이 화가 나서 돌아가 화친이 끊어졌다.
*신라본기 첨해이사금 3년 4월 기사에 于老(우로)가 죽었다고 하였지만, 우로의 아들 訖解(흘해)가 즉위하였을 당시에 어렸다고 했으므로, 나이를 계산해 보면 최소 환갑이 넘은 노인이다. 또한 최소107세까지 생존한 장수한 왕이 된다. 그러한 이유로 신라본기의 기사는 합당하지 않다.
*신라본기 沾解尼師今(첨해이사금) 3년, AD249년
三年 夏四月 倭人殺舒弗邯于老 秋七月 作南堂於宮南 南堂或云都堂 以良夫爲伊湌
3년 (AD249년) 여름 4월, 倭人(왜인)이 舒弗邯(서불한) 于老(우로)를 죽였다. 가을 7월, 궁궐의 남쪽에 南堂(남당)을 짓었다. <南堂(남당)은 혹은 都堂(도당)> 良夫(량부)를 伊湌(이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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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倭(왜)가 土物(토물)을 바치고, 太子(태자)의 혼사를 구하였다.”
첨해왕 4년, 313년, 4월, 왜로부터 사신이 도착하여 태자의 혼사를 청합니다.
이때, 왜왕(倭太子)은 누구일까요?
정답 = 景行天皇(경행천황)입니다.
★『日本書紀』卷七 景行天皇 二年(壬申 七二)二月 戊辰《三》◆ 景行 8년, 313년, 3월. (景行 2年, 307年, 3月)
二年 春三月 丙寅朔 戊辰。立播磨稻日大郞姬〈一云。稻日稚郞姬。郞姬。此云異羅■■。〉爲皇后。后生二男。第一曰大碓皇子。第二曰小碓尊。〈一書云。皇后生三男。其第三曰稚倭根子皇子。〉其大碓皇子。小碓尊。一日同皰而雙生。天皇異之。則誥於碓。故因號其二王曰大碓。小碓也。是小碓尊。亦名日本童男。〈童男。此云鳥具奈。〉亦曰日本武尊。幼有雄略之氣。及壯容貌魁偉。身長一丈。力能扛鼎焉。
*景行天皇의 나이= 10살.
*次櫛角別命
*日本武尊= 306년 出生.
*景行天皇= 304년 出生.
*[先代舊事本紀 大成經]
天皇三十七年 立以爲皇太子。年始三歲。生性生氣。異世兒也。生年能言能步。十指長抓腕根天皇爲珍辟。庶皇子擧爲太子。
*306년, 景行天皇 即位. 3살 即位. 306년- 2살= 304년生.
先代舊事本紀 大成經(선대구사본기 대성경)을 보면은.. 경행천황은 3세때 즉위했다고 나옵니다.
景行(경행)은 생기가 있으며.. 다른 세상의 아이같았다고 하며..태어나자마자 말할 수 있고, 걸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十指長抓腕根天皇(십지장조완근천황)이 珍辟(진피)가 되어..(아마도 왕위를 물러 났음)
서자인 경행이 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신뢰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나이를 생각해 보면..
경행 원년= 306년. 이때 경행 나이= 3살.
경행 8년= 313년, 경행 나이= 10살 때가 됩니다.
일본서기는 구조가 2중으로 되어 있어.. 겉보기 기년과 해당 기사의 실제 기년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저렇게 괄호를 쳐서.. 2중으로 표시를 해줘야 합니다.
景行 8년, 313년, 3월. (景行 2年, 307年, 3月)
그러니까.. 景行(경행)은 즉위하고 나서..7년후에.. 10살쯤 되었을 때.. 신라에게 혼사를 구한 것이 되는거죠. 혼사는 于老(우로)의 의견으로 실패하죠.
이런 비밀도 덤으로 알 수 있습니다.
沾解尼今紀(チォムヘニグムギ) 4年, AD313年
四年 正月 謁白伊伐〓 秀皇稟主
4年(AD313年) 1月, アルバック(謁白)をイボルチァンで, スファング(秀皇)を稟奏にした.
行玄鳥祭
玄祖制(玄鳥祭)を行った.
*玄祖(玄鳥)は聖酉(癸酉)年だ.
加耶君孝道禅于其女河理智 迎宣威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