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조공을 바친 일본
しかし他方、日本海沿岸の豪族や西国各地の大名は、朝鮮の進んだ文物を取り入れようとして、朝鮮の朝廷に朝貢するという形で貿易することを願ったのです。15世紀、十三湊(とさみなと。現在の青森県十三湖)の安藤(安東とも書く)氏と思われる豪族が、みずからは
「日の本将軍、夷千島(えぞちしま)王」と名のって「朝鮮に朝貢」しています。
「그러나 한편 , 일본해 연안의 호족이나 서쪽 지방 각지의 영주는 , 조선이 진행된 문물을 거두어 들이려고 , 조선의 조정에 조공 한다고 하는 형태로 무역할 것을 바랐습니다. 15세기 , 도사미나토(와 삼미선인과. 현재의 아오모리현 쥬산호) 의 안도(안동이라고도 쓴다 ) 씨라고 생각되는 호족이 , 스스로는
「날의 본장군 , 미개 민족 치시마(있고 섬) 왕이라고 자칭해 「조선에 조공」 하고 있습니다.
「日本列島の北から南まで、所地域に息づく歴史や文化について書かれた本です。たとえば、
「古代北海道の交易品」の項では、1482年に夷千島王遐叉(かしゃ)と名乗ったものが、昆布200斤をもたせて李朝に使いを出したこと
「일본 열도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 곳 지역에 숨쉬는 역사나 문화에 대해 쓰여진 책입니다. 예를 들면 ,
「고대 홋카이도의 교역품」의 항에서는 , 1482년에 미개 민족 치시마왕하차(화물 열차) 와 자칭한 것이 , 다시마 200근을 갖게 해 이조에 심부름을 보낸 것
조선왕조실록에도 그 내용이 나오고 있으며
그 예로 태종 7년과 8년에 각각 16건, 22건의
일본의 조공을 받친 내용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 일왕의 조공도 보인다..
태종 016 08/10/28(임인)/
일본 국왕 원도의가 좀도적을 금지시켰다고 알리고 예물을 바치다
..
그외에도
● 성종 140 13/04/09(정미) / 일본 국왕과 이천도왕 하차가 사신을 보내 《대장경》과 재화를 보내주길 요청하다.
“일본 국왕 원의정(源義政)은 조선 국왕 전하(朝鮮國王殿下)께 삼가 회답을 올립니다. 두 나라가 천 리(里)를 사이에 두고 대대로 인호(?好)를 닦아 온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압니다. 사람이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근년(近年)에는 우리 나라가 혼란(混亂)하여서, 온갖 일을 잠시 폐(廢)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음신(音信)이 막혔으니, 그 동안에 적조(積阻)한 죄(罪)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이 앞서 갑오년에 우리 사자(使者)가 귀국(歸國)할 때에, <상국(上國)에서> 상아(象牙)를 쪼개어 만든 부신(符信) 10개를 주시어 왕래(往來)하는 데 신표(信標)로 삼게 하셨으니, 하사품(下賜品) 으로 무엇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겠습니까? 금후(今後)로 빙문(聘問)이 있을 때마다 차례로 주어서, 의심(疑心)이 없는 부험(符驗)을 삼겠습니다
朝鮮に朝貢を捧げた日本
しかし他方′日本海沿岸の豪族や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