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일본과 조선의 대조(방과 방을 잇는 것)

 

일본의 가옥 사사가와가 객실

 

일본의 가옥 사사가와가 응접실

 

 

조선의 가옥 경북 안도 양반 저택

 

조선의 가옥 김동수고택

 

조선시대의 반도와 일본의 집의 내부를 봐 비교하면, 인상이 완전히 다르다.

 

미닫이의 유무라고 하는 것 이전에, 조선의 가옥의 단차의 크기, 양을 눈치챌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방 마다 높이가 다르다. 이 이유의 하나는 조선의 가옥이 고마루식이 아니고, 유럽이나 중국과 같은 저마루식이었기 때문이다.(사실-D)

 

왜 저마루식일까하고 말하면, 중국의 영향이라고 하는 일도 생각할 수 있지만, 주로는 기후 요인일 것이다.

반도는 일본만큼 습도가 높지 않다.

이 기후 요인은, 유형 무형 다양한 곳에서, 일본과 반도의 차이를 낳고 있다.

 

일본의 전통 가옥에 있는 현관은 지붕아래에 둘러싸지고 있지만, 마루의 면은 지면과 계속 되고 있는 반외부이다.이러한 반외부가 가옥 전체에 이르고 있는 것이 저마루식 주택에서, 흙의 벽을 마련하는 것은 용이하지만, 각부가게의 마루의 위치는 지형의 영향을 받기 쉽다.또 거주자는 집안에서도 구두를 벗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방과 방을 잇는 미닫이가(여닫이 문보다) 필요한 것으로 해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인가?

 미닫이의 약점으로서 아래 쪽의 도랑 주변은 청정을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일이 있었지만, 지상보다 마루를 높게 한 건물이면 아직 하지도,저마루식 주택의 경우는 크고 불리하게 작용한다.

 

 조선의 상류 계층의 주택에는, 한 획에, 대청(테톨)이라든지 말이라고 하는, 고마루의 부분이 있다.여기의 마루는 판자부착으로, 당주의 서재와 같은 스페이스로서 사용된다.

 

다만, 일본의 가옥의 고마루 부분의 면적과 비교하면 꽤 작고, 사이 구분이나 환기성을 중시하는 필요성은 낮다.이러한 일로부터, 사람의 출입구용으로, 여닫이 문이 아니고, 몇개의 불이익을 각오하고, 굳이미닫이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하나 없다고 생각된다.

 

 

 

화상으로부터, 일본의 가옥내의 평탄성이 재차 잘 안다(사실-E).이 점은 현재까지 일관해서 있는 특징이다.

 

본래는, 문턱에 도랑이 조각해 있으니까 미닫이의 가옥 쪽에 단차가 있어 이상하지 않다.집안에서는 맨발이나 맨발와 다름없는가들 , 당연, 얼마나 얕고 정확한 도랑으로 할까라는 것이 된다.

후스마문의 두께의 규격은 21 mm(7치수)이지만, 문턱에는 2개의 도랑을 찌른다.한 개 마다의 도랑의 폭은 후스마의 두께에 대해서 1 mm정도 넓게 취해, 2개의 도랑의 간격은 12 mm(4치수)(정도)만큼 비운다.그리고 도랑의 깊이는 1.5 mm(0.5치수)와 정해져 있다.

 

 도랑을 찌르기 위한 도구는 전용의 구포이지만, 현재와 같은 전동 공구가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황돌」 「협취」 「차도에 사용되는 도구」라고 하는 3 종류의 구포를 사용했다.

 

「하나의 도랑을 만드는데 세 개의 포를 사용했던 시대 , 대단한 고생을 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단순하게 생각해도, 세 개의 포의 받침대의 정도나 상태를 정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어느 포하나에서도 상태에 이상이 나오면, 다른 두 개의 포가 얼마나 완전하게 정비되고 있어도 도랑을 만들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연도 받침대 수선도, 일인분의 포를 조정하는 수고의 몇배도 걸린 것이지요.」

(츠치다 이치로 「일본의 전통 공구」)

 

미닫이를 끼우는 아래의 대들보인 문턱에는 단단하게 이상의 적다고 말해지는, 앵, 견, 느티나무, 호두등의 목재가 선택되어 위의 대들보인 상인방에는 미관 중시로 스기, 아카마츠등이 선택된다. 함께, 목재의 「겉(표)」에 도랑을 새긴다.

통나무를 건조시켜,량재를 자르고 말이야 있어, 나무의 심지에 가까운 쪽을 「뒤」, 외피에 향하고 있는 측을 「겉(표)」라고 하지만, 재의 「겉(표)」 쪽이 「뒤」에서(보다) 장래의 수축이 크다.휘어진 상태가 생기고 말이야 있어, 대들보의 「겉(표)」측은 중축부를 따라서 조금 패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한편, 상인방의 옆의 휘어진 상태는 반대로 위로 향해 패이는 경향을 일으킨다.이것은 장래에 미닫이의 힐가 생기기 힘든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단차가 없는 것으로부터 알도록(듯이), 이러한 대들보는 원래 주거의 구조재의 일환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이 점도 조선의 도어가 프레임을 추가하는 형태로 보이는 것으로 상위하다.(사실-F)

 

 

구포

 

규격, 엄격한 척도

 

미리 도랑이 새겨진 대들보가 구조재의 일환으로서 도처에 짜넣어져 별도인 곳에서 작성된 미닫이가 나중에 옮겨 들여져 끼워 넣어진다, 라고 하는 건축 과정에 의해서 평탄성이 담보되고 있는 것에 눈치채면, 거기에는 「엄격한 규격」이 존재한다, 라고 하는 중요한 점에 생각이 도달한다.

 

상하 좌우, 기둥의 사이의 거리는 미리 면밀하게 정해져 있고, 다다미도, 미닫이도 기둥의 수직성, 간격도 오차를 최소로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조선 통신사·제술관 신유한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판을 이용하고 벽이 이루어, 일면 마다 반드시 세 개의 미닫이를 마련해 추전개폐에 추환의 제는 없다.일실의 넓이는 모두 세걸음으로 하고, 그 규격은 일국내가 모두 같이, 조금의 차이도 없다.

간 마다 인석(다다미) 3매를 갱도 와, 그 규격도 또 차이가 없다.미닫이와 인석이 그 하나가 걸치는 일이 있어도, 한편으로부터 이것을 보충하고, 모두 부합 한다.국중으로 이용되는 척도의 정령 되는 것이 알려진다.」

 「해 유록」P290

 

조선에 비해 현격히 일본의 척도가, 통일적으로, “정령 되는 것”, 즉 엄밀한 것으로 당목 하고 있다.

(사실-G)

 

 

조선시대의 주거의 사진을 봐도, 조작이“일품의”적이고 규격의 엄수에 관해서는“등인가”에서 만났던 것이 전해져 온다.

 

이 이유는, 사회의 구조, 민족성, 다양한 일이 있다고 생각된다.단지, 건축 관계에 환시라고, 기후, 특히 습도와의 관계를 생각해야할 것인가도 모른다.

 

조선의 건물의 마루가 목제의 경우, 작은 목편을 종횡에 전면에 까는 형태의 것이 많다.이것은, 지면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부식하면, 부분적으로 교환할 수 있다고 하는 이점이 있는 것과 동시에, 고마루의 경우, 건조하게 따르고, 목재에 휘어진 상태가 일어났을 때에, 소편의 범위내의 변형에 제지당한다고 하는 합리성이 있다.

 

그러나, 견해를 바꾸면, 소편의 범위내의 변형 정도는 허용 한다고 한 것이라도 있다.열도에 비해, 건조의 정도가 높은 반도는 건축의 규격을 엄격하게 지킨다고 하는 면에서는 불리했다.

 

한편, 일본에 있어서의 엄격한 규격의 준수는 전문직인의 정도의 높은 일의 결과이지만, 실은 동시에 원인이기도 하다.

 

전국적인 통일 규격은(크지는 경간과 방넓이 재는 방법과 2 종류 있었지만), 대량생산과 코스트의 저하를 가져온다.그리고, 전국적인 유통 네트워크와 함께 큰 시장의 형성으로 연결된다.

 

이것이, 대량의 전문직인의 층을 형성해, 그들 내부에서의 절차탁마와 기량의 향상을 재촉한다.

 

정밀한 미닫이의 제작에는 전문성을 가지는 직공이 있는 것 만으로는 안되고, 전문 용도의 도구가 없으면 안 된다.이 전문 도구를 만드는 전문의 직공이 상관 없는 구라고는 안되어, 그들을 위한 전문 도구도 또 필요하다.

이것들을 배경으로서 계속성을 가진 미닫이의 문화는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이 필요한 (일)것은 분명하겠지.

일본의 창호는“수공 공업”이라고도 말해야 할 내용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된다.에도시대의 창호는 일종의“공업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아니기는 했지만, 소수면서(방과 방을 잇는다)미닫이는 사용되고 있던”이라고 하는 명제는 성립할 것이다인가?

 

건축 양식후가 있어, 규격의 엄밀함의 차이, 최상, 시장규모의 문제,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이 명제는 부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朝鮮に引き戸建具の文化はあったのか--(3/4)

日本と朝鮮の対照部屋と部屋をつなぐもの

 

日本の家屋  笹川家広間

 

日本の家屋  笹川家客間

 

 

朝鮮の家屋  慶北安東両班の屋敷

 

朝鮮の家屋 金東秀古宅

 

朝鮮時代の半島と日本の家の内部を見比べると、印象が全く異なる。

 

引き戸の有り無しということ以前に、朝鮮の家屋の段差の大きさ、多さに気づくであろう。

極端にいえば、部屋毎に高さが違う。 この理由のひとつは朝鮮の家屋が高床式ではなく、ヨーロッパや中国と同様の低床式であったためである。(事実―D)

 

なぜ低床式かといえば、中国の影響ということも考えられるものの、主としては気候要因であろう。

半島は日本ほど湿度が高くない。

この気候要因は、有形無形さまざまなところで、日本と半島の違いを生み出している。

 

日本の伝統家屋にある玄関は屋根の下に囲われているが、床面は地面と続いている半外部である。このような半外部が家屋全体に及んでいるのが低床式住宅で、土の壁を設けることは容易であるが、各部屋の床の位置は地形の影響を受けやすい。また住人は家の中でも靴を脱がない。

 

このような環境下で、部屋と部屋をつなぐ引き戸が(開き戸よりも)必要なものとして設定できるであろうか?

 引き戸の弱点として下側の溝周辺は清浄をこころがけ無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があったが、高床式住居であればまだしも、低床式住宅の場合は大きく不利に働く。

 

 朝鮮の上流階層の住宅には、一画に、大庁(テチョン)とかマルといわれる、高床の部分がある。ここの床は板張りで、当主の書斎のようなスペースとして使われる。

 

ただし、日本の家屋の高床部分の面積と比べればかなり小さく、間仕切りや通気性を重視する必要性は低い。これらのことから、人の出入り口用に、開き戸ではなく、いくつかの不利益を覚悟して、あえて引き戸を選択する理由は何一つないと思われる。

 

 

 

画像から、日本の家屋内の平坦性が改めてよくわかる(事実―E)。この点は現在まで一貫している特長である。

 

本来は、敷居に溝が彫ってあるのだから引き戸の家屋のほうに段差があって不思議ではない。家の中では素足か素足も同然であるから、当然、いかに浅く正確な溝にするかということになる。

フスマ戸の厚さの規格は21mm(7寸)であるが、敷居には2本の溝を突く。一本毎の溝の幅はフスマの厚さに対して1mm程度広く取り、2本の溝の間隔は12mm(4寸)ほど空ける。そして溝の深さは1.5mm(0.5寸)と決まっている。

 

 溝を突くための道具は専用の溝鉋であるが、現在のような電動工具のなかった時代であるから「荒突」「脇取」「底取」という3種類の溝鉋を使った。

 

「一つの溝を作るのに三つの鉋を使用した時代には、大変な苦労をしていたようです。単純に考えても、三つの鉋の台の精度や調子を整備することは非常に難しいはずです。どの鉋ひとつでも調子に狂いが出れば、他の二つの鉋がどれだけ完全に整備されていても溝を作ることができなくなってしまいます。

研ぎも台直しも、一丁の鉋を調整する手間の何倍もかかったことでしょう。」

(土田一郎「日本の伝統工具」)

 

引き戸をはさむ下の梁である敷居には固く狂いの少ないといわれる、桜、樫、ケヤキ、胡桃などの木材が選ばれ、上の梁である 鴨居には美観重視で杉、赤松などが選ばれる。 ともに、木材の「表」に溝を刻む。

丸太を乾燥させ、梁材を切り出すさい、木の芯に近い側を「裏」、外皮に向いている側を「表」というが、材の「表」のほうが「裏」より将来の収縮が大きい。反りが生じるさい、梁の「表」側は中軸部に沿って少し凹む効果が生ずる。 一方、鴨居の側の反りは反対に上に向かって凹む傾向を生ずる。これは将来に引き戸の詰りが生じづらい効果を期待してのことである。

 

そして、段差がないことからわかるように、これらの梁はもともと住居の構造材の一環であることに注目すべきである。この点も朝鮮のドアがフレームを追加する形に見えることと相違している。(事実―F)

 

 

溝鉋

 

規格、厳格な尺度

 

あらかじめ溝が刻まれた梁が構造材の一環としていたるところに組み込まれ、別なところで作成された引き戸が後から運び込まれ、はめ込まれる、という建築過程によって平坦性が担保されていることに気づけば、そこには「厳格な規格」が存在する、という重要な点に思いが到る。

 

上下左右、柱の間の距離はあらかじめ綿密に決まっていて、畳も、引き戸も柱の垂直性、間隔も誤差を最小に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朝鮮通信使・製述官 申維翰は次のように記述している。

「板を用いて壁となし、一面ごとに必ず三つの障子を設け、推転開閉に枢環の制はない。一間の広さはみな三歩にして、その規格は一国内がみな同じく、少しの差も無い。

間ごとに茵席(畳)3枚を鋪き、その規格もまた差がない。障子と茵席がその一つがかけることがあっても、他方からこれを補って、みな符合する。国中で用いられる尺度の精なることが知られる。」

 「海游録」P290

 

朝鮮に比べて格段に日本の尺度が、統一的で、“精なること”、すなわち厳密であることに瞠目している。

(事実―G)

 

 

朝鮮時代の住居の写真を見ても、造作が“一品もの”的で規格の厳守に関しては“おおらか”であったことが伝わってくる。

 

この理由は、社会の構造、民族性、さまざまなことがあると思われる。ただ、建築関係にかんして、気候、特に湿度との関係を考えるべきかもしれない。

 

朝鮮の建物の床が木製の場合、小さな木片を縦横に敷き詰める形のものが多い。これは、地面と直接つながっていて、腐食したら、部分的に交換できるという利点があると同時に、高床の場合、乾燥によって、木材に反りが起こったときに、小片の範囲内の変形に止められるという合理性がある。

 

しかし、見方をかえると、小片の範囲内の変形程度は許容するということでもある。列島に比べて、乾燥の度合いが高い半島は建築の規格を厳格に守るという面では不利であった。

 

他方、日本における厳格な規格の遵守は専門職人の精度の高い仕事の結果であるが、実は同時に原因でもある。

 

全国的な統一規格は(大きくは京間と江戸間と2種類あったのだが)、大量生産とコストの低下をもたらす。そして、全国的な流通ネットワークとあいまって大きな市場の形成につながる。

 

このことが、大量の専門職人の層を形成し、彼ら内部での切磋琢磨と技量の向上を促す。

 

精密な引き戸の作製には専門性を持つ職人がいるだけではだめで、専門用途の道具が無くてはならない。この専門道具を作る専門の職人が別にいなくてはならず、彼らのための専門道具もまた必要なのだ。

これらを背景として、継続性を持った引き戸の文化は成立するのである。

 

そして、これらが成り立つためには一定規模以上の市場が必要なことは明らかであろう。

日本の建具は“手仕事工業”とでも言うべき内容を待っていたと思われる。江戸時代の建具は一種の“工業製品”ともいえるだろう。

 

さて、“朝鮮半島では一般的にではなかったものの、少数ながら(部屋と部屋をつなぐ)引き戸は使われていた”という命題は成立するであろうか?

 

建築様式のちがい、規格の厳密さのちがい、なにより、市場規模の問題、これらの観点から、この命題は否定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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