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미닫이를 제작한 직공과 도구

 

에서는, 어떠한 사람들이, 미닫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목조의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 설계해, 재목을 봐 고쳐, 가공해, 조립하는 직업을 목수라고 하지만, 이 목수의 동류로, 후스마, 미닫이, 통풍공간, 무심코 세워 등을 전문에 다루는 집단이 창호 직공으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읽고 쓰기를 기억한 10세~15세에 감독의 곳에 거주해, 5년~10년의 수업의 끝에 한 사람 분의 직공으로서 인정되었다.

몇 년인가의 수업을 지나면, (창호 직공에게 한정하지 않고) 에도시대의 직공은, 「사이교」라고 불리는, 먼 곳 제국에의 수업의 여행하러 나오는 것이 규칙이었다.

 

 가도관계의 이름이 알려진 직공에게 점점이 따르고, 1개월~3개월, 무보수로 도우면서, 일을 배워 갔다.

여행 수행중의 직공을 떠돌이 장색과 읽었지만, 「침갑(라인이라고 하는 도구)을 가지고 사이교 한다」라고 하는 것은 창호 직공의 여행 수행을 찔렀던 것이다.

 

전문직인의 일은, 말할 필요도 없이, 나무의 재질·특성을 밟으면서, 정확·정밀하게 미닫이를 제작하는 것이 제일에 생각의 훌륭함이나 요염함의 추구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물건이었다.

 

정밀하게 만드는 것으로, 마찰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일)것은 강도의 면에서 정밀함이 필요했다고 하는 것이다.

목재의 접합부에 철부(암나무, 장부 구멍), 볼록부(남목, 장부)를 만들어, 입체적으로 서로 물고 뜯게 한다.이것을 이음새라고 하지만, 형태에도, 개미 이어, 금테 계속 등 각종 있고, 정밀한 작업을 오지 않음 없으면, 접합마저 할 수 없다.

 

시간을 거치고, 경년 변화나 습도의 변동을 위해서 상인방(상부의 대들보)과 문턱(하부의 대들보)의 사이의 공간이 줄어들어 미닫이가 차 버렸을 때에, 전신의 힘으로 미닫이를 눌러 당기는 일이 있다. 이 때, 문자신에게 폐해나 일그러짐이 있으면, 힘이 불균일에 걸려, 미닫이는 변형하거나 망가져 버린다.

정확·정밀하게 만들지 않으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그들은 어떠한 도구를 사용한 것일까.

 그들은 목재를 가공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도구는 톱, 끌, 포 등, 일반의 목수직이 사용하는 도구도 사용하지만, 이하와 같은 전문화한 도구도 사용했다.

 

두 개의향대끌 왼쪽이달마현능우가 보통 현능

 

향대끌

 이 끌은 창호의 장부 구멍을 조각할 때에 사용하는 것으로, 장방형의 작은 장부 구멍을 조각하기 위해인 만큼 사용된다.수처의 단면이 정확한 장방형으로, 한편 칼끝으로부터 강철의 부분의 양측면이 완전한 평행면일 필요가 있다.

 

달마현능

 향대끌을 사용할 때에 사용하는 전용의 소형의 해머로 통상의 현능보다, 머리가 굵고, 타면이 평평하고, 모양이 짧다.

장부 구멍에 수직에 세운 향대끌에 적절한 힘을 올바를 방향에서 주기 위한 것.

 

 

 

          

왼쪽이몸통 다해 거우가반만거

 

몸통 다해 톱

정밀한 켜 포함을 행하기 위한거판의 매우 얇은 톱으로, 두께 0.3밀리의 것도 있다.

휘청휘청 하지 않게, 배금을 단다.

 

반만거

직선의 돌진해, 샘플 등에 사용하는, 소형의 특수한 톱.

세워 켜, 옆 켜 전용의 외날 2 개1조가 기본이지만, 양측이 눈에 띌 수 있는을 따로 한 양날칼의 것도 있다.

반만거제작 전문의 대장간도 있었다.

 

 

면취포

                      라인 

면취포

모따기와는 기둥이나 창호가 모난(90도의) 모퉁이에 중간 45도의 각도의 작은 면을 만들어 감촉을 잘 하는 것.

창호에는 창호 전용의 면취포를 사용한다.

 

라인(침갑)

묵평이나 묵차로 획구선보다 한층 더 미세한 선을 선을 긋기 위한 칼날포함의 도구로, 라인인이 목재의 표면 섬유를 얇게 자른다.

 

 

 

대 수선포

일반의 포의 대면(목재와 접촉하고 있는 면)은 평평하지만, 사실은 미조정되고 있다.포의 대면의 머리와 엉덩이, 칼날 끝 가까이의 3개소가 재료와 접하고 있어 그러한 중간부는 조금 패이고 있다.이러한 대면의 미조정을 실시할 필요가 나왔을 때에, 대면을 희미하게 깎는 것이 전용 도구인 받침대 수선포

 

 

조선 통신사의 증언

 

“한반도에 미닫이는 사용되고 있었는지”라고 하는 당초의 의문에 되돌아와 본다.

우선, 대형의, “벽의 대체”로서의 미닫이와 창에 이용되고 있던 창미닫이와로 나누고 생각해 보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지금까지, 「미닫이가 여기에 있다」라고 해서 소개된 사진은 거의 모두, 창미닫이라고도 해야 할 물건이었다.

예외적으로, “벽의 대체”로서의 미닫이도 파랑 Id로부터 소개되었지만, 보기에도 , 시대가 새로운지, 미닫이인가 여닫이 문인가 의미 불명의 것이었다.대신에 방과 방을 연결하는 도어로서는 여닫이 문이 사용되고 있었다(사실-B).

방과 방을 잇는 것으로서미닫이는조선시대 일반적으로는 사용되지 않았었다.그 말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서는,“일반적이지 않기는 했지만,방과 방을 잇는 것으로서소수면서 미닫이는 사용되고 있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인가?

 

여기서 18 세기의조선 통신사의 기록을 채택해 보고 싶다.

 

이번 문제를 생각할 때에, 「조선시대의 반도에는 미닫이 창호의 문화가 없었다」라고 하는 가설에 대한, 반대론자로부터,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만약, 조선에 미닫이가 없었으면, 일본에 간 통신사는 문화 쇼크를 받아 당연, 미닫이에 관한 기술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그러한 것은 있는 것인가?」라고

실제로는 파랑 Id로부터 그러한 질문은 없었다.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필요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자료를 맞아 보았다.

 

확실히, 그러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것들 모든 맹을 늘어놓은 좋게는, 당을 만들어, 방을 만들어, 회랑이나 측을 만든다.방에는 죄다 중모 자리(다다미)를 깔아, 그 두께나 인연 잡기선의 척도가 일정되어 있다.문은 개폐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일면마다 셋의 큰 격자창을 세워 서로 추 바꾸어 개폐하는 것이지만, 털 정도의 차이도 생기지 않는다」

  헤본사 동양문고 252 「 「해 유록


朝鮮に引き戸建具の文化はあったのか--(2/4)

引き戸を製作した職人と道具

 

では、どのような人々が、引き戸を作っていたのであろうか。

 

 木造の建築物を建てるために、設計し、材木をみつくろい、加工し、組み立てる職業を大工というが、この大工の同類で、フスマ、障子、欄間、ついたてなどを専門に手がける集団が建具職人と呼ばれる人たちであった。

 

彼らはある程度の読み書きを覚えた10歳~15歳で親方のところに住み込み、5年~10年の修業の末に一人前の職人として認められた。

何年かの修業を過ぎたら、(建具職人に限らず)江戸時代の職人は、「西行」と呼ばれる、遠方諸国への修業の旅にでることがきまりであった。

 

 街道筋の 名の通った職人のところに点々とよって、1ヶ月~3ヶ月、無報酬で手伝いながら、仕事を覚えていった。

旅修行中の職人のことを渡り職人とよんだが、「針甲(羅引という道具)をもって西行する」というのは建具職人の旅修行のことをさしたのである。

 

専門職人の仕事は、いうまでもなく、木の材質・特性を踏まえながら、正確・精密に引き戸を作製することが第一で意匠の見事さや艶やかさの追求はあくまで副次的なものであった。

 

精密に作ることで、摩擦を減らすことができる。 しかし、本当に重要なことは強度の面で精密さが必要であ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

木材の接合部に凹部(女木、ホゾ穴)、凸部(男木、ホゾ)を作り、立体的にかみ合わせる。これを継ぎ手というが、形にも、蟻継ぎ、金輪継ぎなど各種あって、精緻な作業をこなさなければ、接合さえできない。

 

時間を経て、経年変化や湿度の変動のために鴨居(上部の梁)と敷居(下部の梁)の間の空間が縮み引き戸が詰まってしまったときに、全身の力で引き戸を押し引きすることがある。 この際、戸自身にひずみや歪みがあれば、力が不均一にかかり、引き戸は変形したり、壊れてしまう。

正確・精密に作らなければ全く役に立たなかったのである。

 

 では、かれらはどのような道具を使ったのであろうか。

 彼らは木材を加工する仕事をするから、使う道具は鋸、ノミ、鉋など、一般の大工職の使う道具も使うが、以下のような専門化した道具も使った。

 

二つの向待ノミ            左がダルマ玄能 右が普通の玄能

 

向待ノミ

 このノミは建具のホゾ穴を彫る時に使用するもので、長方形の小さなホゾ穴を彫るためだけに使用される。穂先の断面が正確な長方形で、かつ 刃先 から 鋼の部分の両側面が完全な平行面である必要がある。

 

ダルマ玄能

 向待ノミを使うときに使う専用の小型のハンマーで通常の玄能より、頭が太く、打面が平らで、柄が短い。

ホゾ穴に垂直に立てた向待ノミに適切な力を正しい方向から与えるためのもの。

 

 

 

          

左が胴つき鋸      右が畔挽鋸

 

胴つき鋸

精密な挽き込みを行うための鋸板の非常に薄い鋸で、厚さ0.3ミリのものもある。

へなへなしないように、背金を取り付ける。

 

畔挽鋸

直線の切り込み、切り抜きなどに使う、小型の特殊な鋸。

たて挽き、横挽き専用の片刃二本一組が基本であるが、両側の目立てを別にした両刃のものもある。

畔挽鋸製作専門の鍛冶屋もいた。

 

 

面取鉋

                      羅引 

面取鉋

面取りとは柱や建具の角ばった(90度の)角に中間45度の角度の小さな面を作って手触りをよくすること。

建具には建具専用の面取鉋を使用する。

 

羅引(針甲)

墨坪や墨差で画く線よりもさらに微細な線を画するための刃物つきの道具で、羅引刃が木材の表面繊維を薄く切る。

 

 

 

台直し鉋

一般の鉋の台面(木材と接触している面)は平らであるが、本当は微調整されている。鉋の台面の頭と尻、刃口近くの3箇所が材料と接していてそれらの中間部はわずかに凹んでいる。これらの台面の微調整を行う必要が出てきたときに、台面をかすかに削るのが専用道具である台直し鉋

 

 

朝鮮通信使の証言

 

“朝鮮半島に引き戸は使われていたか” という当初の疑問に立ち戻ってみる。

まず、大型の、“壁の代替”としての引き戸と窓に利用されていた窓障子とに分けて考えてみるほうがよさそうである。

 

これまで、「引き戸がここにある」として紹介された写真はほとんどすべて、窓障子ともいうべきものであった。

例外的に、“壁の代替”としての引き戸も青Idから紹介されたが、見るからに、時代が新しいか、引き戸なのか開き戸なのか意味不明のものであった。代わりに部屋と部屋を結ぶドアとしては開き戸が使われていた(事実―B)。

部屋と部屋をつなぐものとして、引き戸は朝鮮時代一般的には使われていなかった。ということはいえるであろう。

 

では、“一般的ではなかったものの、部屋と部屋をつなぐものとして、少数ながら引き戸は使われていた”といえるであろうか?

 

ここで18世紀の朝鮮通信使の記録を取り上げてみたい。

 

今回の問題を考える際に、「朝鮮時代の半島には引き戸建具の文化が無かった」という仮説に対する、反対論者から、ひとつの質問が投げかけられていて当然であった。

 

「もし、朝鮮に引き戸が無かったら、日本に行った通信使はカルチャーショックをうけ、当然、引き戸に関する記述を残し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そのようなものはあるのか?」と

実際には青Idからそのような質問はなかった。しかし、ある意味では必要条件ともいえるわけで、資料を当たってみた。

 

確かに、そのような記録が残っていた。

 

「これらすべての甍をつらねた結構には、堂をつくり、房をつくり、歩廊や厠をつくる。房にはことごとく重茅席(畳)を敷き、その厚さや縁取り線の尺度が一定している。門戸は開閉軸を用いるものではなく、一面毎に三つの大きな格子窓を立て相互に推転して開閉するものであるが、毛ほどの差も生じない」

  平凡社東洋文庫252「「海游録-朝鮮通信使の日本紀行」(申維翰)P33

 

 1719年6月、対馬での経験である。やはり、畳と引き戸に強い印象を受け、その精巧な作りに感嘆している。(事実―C)

引き戸に関しては、適切な名詞を使うことができず、「開閉軸はない、相互に推転して開閉する」と形容している。この事から、当時の朝鮮には引き戸とその文化がないことがわかる。

 

朝鮮での引き戸はこの後に生じた可能性もあるわけで、“疑念の余地無く論証する”にはまだ十分ではないが重要な証言といえるだろう。

 

また、今回の問題に関連して、彼はこの他に重要な記述を残していた。それは後に触れる

 



TOTAL: 960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추천
5962 파랑 ID는 나의 장문을 읽어 삭일 수 ....... jitou6000 2011-09-23 2155 0
5961 조선에 미닫이 창호의 문화는 있었는....... jitou6000 2011-09-22 2628 0
5960 조선에 미닫이 창호의 문화는 있었는....... jitou6000 2011-09-22 2575 0
5959 조선에 미닫이 창호의 문화는 있었는....... jitou6000 2011-09-21 2660 0
5958 조선에 미닫이 창호의 문화는 있었는....... jitou6000 2011-09-21 9294 0
5957 사기꾼, logicsayer kemukemu1 2011-09-21 1787 0
5956 열도의 문화는 이해하기 힘들다....( ....... sarutrainer 2011-09-21 2155 0
5955 조선이 전쟁으로 일본과 청에 이길 수....... sumatera 2011-09-19 2344 0
5954 온 세상이 웃음거리 w 「독립기념관」....... colony1910w 2011-09-19 14305 0
5953 서울을 당당 행진하는 일본군환희로 ....... chon35slave 2011-09-19 2400 0
5952 (이)다 사리 축제 ななこも 2011-09-19 1991 0
5951 일본의 중추의 명월 gokihoi9 2011-09-18 2700 0
5950 조선인이 절대로 대답하지 않는 질문....... colony1910w 2011-09-17 3736 0
5949 미사계 다이와야, 흐드러지게 피어 しをん 2011-09-17 2211 0
5948 1965해에 일본에서 받은 8억 달러 kijinkid 2011-09-17 3190 0
5947 일본의 YOUTUBE 조회수 조작 WEB SERVICE 사....... WarCriminal_Jap 2011-09-16 1917 0
5946 일본인은 날조, 은폐를 직시합시다..(....... sarutrainer 2011-09-15 1754 0
5945 한국 최고의 바다의 리조트에 숙박했....... chon35slave 2011-09-14 3123 0
5944 날조 가득, 이것이 조선인이다 mephist2 2011-09-14 3606 0
5943 pipecloud 2011-09-12 197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