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 변조된 것이 확실한 “海” >

 

이진희 는 來渡海破의 넉 자가 일본의 참모본부에 의해 조작된 글자이므로 기존 해석은 모두 타당치 않으며, 글자의 판독이 원상으로 복구되기 전에는 이를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실 변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면 우선 본래의 글자를 파악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신묘년 글자 중에서도 기왕에 자로 판독되던 글자는 변조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1982년 중국의 주운대가 찍은 탁본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다른 글자와 칸이 맞지 않고 글자 규격이 다르며 지나치게 왼쪽으로 치우쳐 “삼수변” 자가 비문의 행을 구분하는 세로선 밖으로 삐져 나와 있습니다. 분명 여기에는 변조의 혐의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이 글자의 판독을 유보하는 입장이 적지 않습니다.

 

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日帝 시기에 일본학자들은 이 문장을 으레 ,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잔(백제)과 ▨▨가라,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위당 정인보 선생은 1930년 말에 일본의 주장을 비판하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으나 공포하지는 못하였고, 1955년에 비로소 발표하였는데, 한국의 입장에서 내놓은 광개토왕릉비문에 대한 최초의 주장이었습니다.

”신묘년의 주어는 고구려인데, 주어가 생략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왜가 신묘년에 오니,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격파하였다. 백잔이 (왜와 연결하여) 신라를 (침략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의) 신민이었기에, [영락 6년 왕이 군대를 이끌고 백잔을 토벌하였다]. “

 

” 왜가 신묘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 (백제로)왔다. 고로 백제가 신라를 침략하여 (신라를)신민으로 삼으려고 하였다.너가 백잔▨▨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故)百殘(將侵)新羅以爲臣民 천관우

”그후 (백잔과 신라가)신묘년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백잔·일본인·신라를 격파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而(後)以辛卯年(不貢)(因)破百殘(倭寇)新羅以爲臣民이형구

”(백제의 책동으로)왜가 신묘년에 왔으므로(고구려)는 패수를 건너 백잔을 치고 동쪽으로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而倭以辛卯年來渡(浿)破百殘(東)▨新羅以爲臣民손영종

이외에도 나름대로 판독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사례가 적지 않았는데,

특히 앞에 지적한 ” 해(海) “자는 “매(每)”, “사(泗), “패(浿)” 등 여러 글자로 판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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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당시 倭는 나라로써는 변변치 못한 상태였고

 

백제와 倭의 관계는 칠지도에 나와 있는 傳示後世

 

先世以來未有此刀 百濟王世子奇生聖音 故僞倭王旨造 傳示後世

 

(백제의 왕이 倭王에게 ”후대에 전하여 보이라”)를 통해

 

백제와 倭의 관계가 어떤 관계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고,

 

칼은 보통 윗사람이 아래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요.

 

 

 

광개토대왕비에 한자상으로도 倭國이 아니라 倭라고만 한 것으로 보아

 

백제에서 보낸 倭軍 용병이나 백제가 倭와 통하여 계획된 신라 침공이라고

 

보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만약 日帝 학자들의 말대로 倭國이 백제와 신라를 정복하였고

 

이것이 4세기 후반에서 6세기까지 임나일본부를 뒷받침 한다면

 

 

광개토대왕비는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인데

 

임나일본부를 광개토대왕의 업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내용의 기술은 아마도 고구려의 활약상을 전하려고

 

한 본래 목적과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으로 판단됩니다, 

 

 

임나일본부라는 명칭 또한 잘못된 것은

 

倭가 스스로 日本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7세기 이후임으로

 

4세기부터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맞는 표현이 아니며

 

임나倭府라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広開土大王碑解釈

< 変調されたのが確かな 海 >

 

李進ヒ増えた 来渡海破の四者が日本の参謀本部によって操作された字なので既存解釈は皆妥当ではなくて, 字の判読が原状に復旧される前にはこれを解釈することができないと主張しました. 実は変調された可能性が高ければまず本来の字を把握するのが至急です.

 

神妙年字の中でも既往に 字に判読された字は変調されたことなのが間違いないです.

 

1982年中国の株運台が取った拓本でも鮮かに現われるのに, 他の字と間が当たらないで字規格が違いながらすぎるほど左にかたよって ¥"三水辺¥" 者が碑文の行を区分する縦線の外に突き出ています. 確かにここには変造の疑いがあります. したがって今日にはこの字の判読を留保する立場(入場)が少なくないです.

 

而倭以辛卯年来渡破百残〓〓新羅以為臣民

 

日帝 時期に日本学者たちはこの文章を通例 ,

なぜが神妙年に海を渡って来てバックザン(百済)と 〓〓行きなさい,新羅を撃破して臣民にした.

 

上だ鄭寅普先生は 1930年末に日本の主張を批判する新しい見解を提示したが公布す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し, 1955年に初めて発表したが, 韓国の立場で出した広開土王陵碑文に対する最初の主張でした.

神妙年の主語は高句麗なのに, 主語が省略されたことで見ました.

 

なぜが神妙年に来たら, (高句麗が) 海を渡って (なぜを) 撃破した. バックザンが (なぜと連結して) 新羅を (侵略した. 新羅は高句麗の) 臣民だったから, [ヤングラック 6年王が軍隊を導いてバックザンを討伐した].

 

なぜが神妙年以来で海を向こう (百済で)来た. ゆえに百済が新羅を侵略して (新羅を)臣民にしようと思った.お前がバックザン〓〓新羅を撃破して臣民にした.

 

而倭以辛卯年来渡海破(故)百残(将侵)新羅以為臣民 チォングァンウ

その後 (バックザンと新羅が)神妙年から朝貢を捧げないので,バックザン・倭寇・新羅を撃破して臣民にした.

 

而(後)以辛卯年(不貢)(因)破百残(倭寇)新羅以為臣民異形区

(百済の策動で)なぜが神妙年に来たので(高句麗)は敗数を渡ってバックザンを打って東に新羅を臣民にした.

 

而倭以辛卯年来渡(〓)破百残(東)〓新羅以為臣民手英宗

以外にもそれなりに判読して新しい解釈を試みた事例が少なくなかったが,

特に前に指摘した ¥" 日(海) ¥"字は ¥"枚(毎)¥", ¥"死(泗), ¥"牌(〓)¥" など多くの字に判読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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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してこの当時 倭は国をもっては碌でない状態だったし

 

百済と 倭の 関係は漆紙島に出ている 伝示後世

 

先世以来未有此刀 百済王世子奇生聖音 故偽倭王旨造 伝示後世

 

(百済の王が 倭王に 後代に伝えたように見えなさい)を通じて

 

百済と 倭の関係がどんな 関係だったのか分かります.

 

上司が下の人にできる言葉で,

 

刀は普通上司が下の人に与えるのですね.

 

 

 

広開土大王碑にたいてい刺傷でも 倭国ではなく 倭だとしたことで見て

 

百済で送った 倭軍 用兵や百済が 倭と通じて 計画された新羅侵攻だと

 

見ることが普遍的です.

 

 

もし 日帝 学者たちの言葉通り 倭国が百済と新羅を征腹したし

 

これが 4世紀後半から 6世紀まで任那日本府を裏付けたら

 

 

広開土大王碑は広開土大王の 業績を記念するための のに

 

任那日本府を広開土大王の業績だと見られないだろうし,

 

このような内容の技術はたぶん 高句麗の活躍の姿を伝えようと

 

一本来目的とはたくさんへだたった内容と判断されます, 

 

 

任那日本府という名称も間違ったことは

 

倭が自ら 日本という名称を使ったことは 7世紀以後なので

 

4世紀から任那日本府があったと言っても当たる表現ではなくて

 

任那倭府というのがぎこちないじゃない表現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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