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타밀어로 석탈해는 ‘대장장이 우두머리’… 삼국유사·삼국사기 내용과 일치 

필자는 한국 고대사 최대 미스터리의 하나인 가야 초대 왕비 허왕후(許王侯·서기 32~189년)의 고향 아유타(阿喩陀)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州)의 아요디야 쿠빰(Ayodhya Kuppam)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2005년 8월 16일자 ‘뉴스메이커’) 또 다른 미스터리인 신라 제4대왕 석탈해(昔脫解, 재임 서기 57~80년)의 출신지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용성국(龍城國)은 어디인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史)에 나오는 석탈해 설화를 당시 타밀인의 언어 및 사회상과 비교해 분석한 결과, 그도 허왕후와 마찬가지로 인도 남부 타밀지역에서 온 인물임을 알았다.

 

선진 철기문화로 토착세력에 맞서

이는 지난 수년간 캐나다 토론토대학 남아시아연구센터 소장인 셀바카나간따캄교수, 토론토의 타밀인협회 산무감 코한 사무총장, 남아시아 여성센터 자얀티 레이놀드 상담관, 타밀어 교사 칼란티 쿨라나한, 그리고 힌두교 성직자 등 수많은 인도인을 직접 만나 취재했고 토론토대학 등 여러 도서관의 자료들을 추적한 결과다.

석탈해는 자신이 “숯과 숯돌을 사용하는 대장장이 집안”이라고 밝혔는데 석탈해의 성(姓)인 ‘석(Sok)’은 당시 타밀어로 ‘대장장이’를 뜻하는 ‘석갈린감(Sokalingam)’의 줄인 말로 성과 집안 직업이 그대로 일치한다. ‘석갈린감’ ‘석’ ‘석가(Soka)’등은 영어의 Blacksmith, Goldsmith나 Smith처럼 대장장이 집안의 이름으로 통용됐으며 지금도 타밀인의 남자이름에 남아 있다. 또 ‘탈해(Talhe)’는 타밀어로 ‘머리, 우두머리, 꼭대기’를 의미하는 ‘탈에(Tale)’나 ‘탈아이(Talai)’와 거의 일치한다. 따라서 ‘석탈해’라는 이름은 타밀어로 ‘대장장이 우두머리’를 가리켜 그가 바다 건너 한반도에 함께 들어온 대장장이의 지도자임을 이름에서 암시하고 있다. 

아울러 석탈해의 다른 이름 토해(吐解)는 타밀어 토헤(Tohe)나 토하이(Tohai)와 일치하는 데 이는 ‘새의 날개, 특히 공작새 날개’와 ‘보호자, 후견인’ 등 2가지 뜻을 갖고 있어 석토해라는 이름은 ‘대장장이의 보호자’라는 의미다.

더구나 석탈해가 ‘대장간 도구’를 ‘단야구’(鍛冶具)라고 불렀는데 당시 타밀어의 단야구(Dhanyaku)와 그 발음 및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신라와 가야의 ‘각배’숨은 비밀


석탈해는 인도 남부 ‘촐라왕국’ 출신으로 추정된다. 
약 2000년 전 당시 타밀인이 세운 촐라왕국(Chola Kingdom) 등 인도 남부지역은 당대 세계 최고 품질인 우츠(Wootz)강철의 원산지인 철의 선진국으로 동서양에 철을 수출하던 ‘철의 실크로드’ 중심지였다.
석탈해가 비록 이방인이지만 초기철기시대에 머물러 있던 한반도에 칼이나 철제 농기구 등 인도 남부의 강력한 선진 철기문화를 갖고 이주해 기존 토착세력에 맞서 신라의 왕권에 참여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잡게 된 것이다.

둘째로,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하는 또 다른 단어는 석탈해의 제안에 의해 제3대 유리(儒理)왕부터 쓴 ‘니사금’(Nisagum)이라는, 왕을 뜻하는 용어이다. 제2대 왕 남해(南解) 차차웅의 후임을 놓고 노례(努禮)왕자가 장자상속 기득권을 포기, 매부인 석탈해에게 왕위를 양보하려고 했을 정도로 석탈해가 지닌 인도 남부 철기문화의 힘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석탈해는 “이가 많은 사람을 후임 왕으로 정하자”고 제안, 결국 떡에 물린 잇자국이 많은 노례왕자가 제3대 유리니사금(尼師今)으로 칭하기 시작한다. ‘니사금’은 사실 당시 타밀어로 ‘대왕’(a great king), 또는 ‘황제’(an emperor)라는 뜻으로 일반적인 왕보다는 상위 개념이다.

당시 타밀어 ‘니’가 우리말에 들어와 ‘이’가 됐는 데 삼국유사에서 ‘니사금’을 ‘치질금(齒叱今)’으로도 표현한 것은 ‘니’를 훈독해 한자어로 표기한 것이다. 이빨은 타밀어로 ‘니’ 와 ‘뺏등 2가지로 쓰이다가 현재는 ‘뺏만 쓰이는 데 2가지가 합쳐진 ‘니뺏이 우리말에선 ‘이뺏이 된 것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석씨계의 마지막 왕인 제16대 홀해왕(재위 310~356)까지 니사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김(金)씨 가문에 의한 왕자리 독점을 알리는 제17대 내물왕부터 왕은 ‘마립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석탈해가 자신의 모국어에서 빌려온 니사금은 석씨계의 몰락과 함께 신라왕의 명칭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셋째로, 석탈해가 자신의 부친을 다파나국의 함달파(含達婆)왕, 줄여서 함달(含達)왕이라고 밝히고 있는 데 함달파(함달)는 타밀인이 가장 숭배하는 신 ‘한다파(Handappa)’, 줄여서 ‘한단(Handan)’과 거의 일치한다. ‘한다파’는 힌두교 3대신의 하나인 시바(Shiva)의 둘째 아들이며 인도 북부 아리안이 별로 중요시하지 않고 남부 타밀인만 으뜸으로 섬기는 신으로 남성 이름에도 자주 등장한다. 아울러 ‘한다파’는 당시 타밀어로 ‘아버지’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석탈해가 자신의 아버지를 타밀인이 가장 존경하는 신 ‘한다파’의 한자 표기로 함달파왕, 또는 함달왕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한다파’는 최근 무루간(Murugan)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넷째, 서기 8년 신라 2대 남해(南解)왕의 사위가 된 석탈해는 2년 뒤 국무총리 격인 대보(大輔)라는 중책을 맡았는데 당시 타밀 나라에선 왕의 신하 가운데 측근을 뜻하는 ‘데보(Devo)’와 일치한다. ‘데보’는 남자신(God)을 뜻하는 ‘데반(Devan)’과 여자 신(Goddess)및 왕비(queen)을 뜻하는 ‘데비(Devi)’와 같은 뿌리로 ‘신의 다음 자리’(next to God)’와 ‘막강한 사람(a powerful man)이라는 2가지 뜻을 갖고 있다. 당시 왕은 신처럼 받들어졌기에 ‘신의 다음자리’와 ‘막강한 시람’이라는 2가지 뜻을 갖는 ‘데보(Devo)’가 바로 왕 다음의 권력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를 한자어로 표기한 대보(大輔)자리에 석탈해가 신라 역사상 처음으로 오른 것은 그가 타밀 나라 출신임을 시사한다.

또 제3대 유리(儒理)왕이 죽어 서기 57년 석탈해가 왕위에 오르고 대보자리에 자신에게 집을 양도했던 ‘표주박(瓢)을 허리에 찬 호공(瓢公)’을 발탁했는데, 신라 1000년 역사에서 왕의 최측근인 대보(大補)라는 직위를 맡았던 사람은 오로지 이 두 사람뿐이며 두 사람은 매우 특수한 관계로 호공 또한 타밀 출신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호공에 대한 최초의 장면이자 그의 정체에 대한 설명의 전부인데 전형적인 왜인은 아니지만 아무튼 왜가 있는 지역에서 건너왔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박은 인도나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이며 타밀인은 기원전부터 뜨거운 날씨 때문에 목을 축이기 위해 허리에 표주박을 차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표주박은 타밀어로 단니 쿠담(Thaneer Kudam)이라고 불렸다. 호공도 석탈해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정착했던 타밀인 중 한 사람으로 석탈해보다 먼저 바다 건너 신라에 정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에 있는 석탈해 왕릉. 왕릉 주위 소나무는 모두 능을 향해 누워 있다. 
해외 진출 전진기지 ‘나가파티남’

다섯째로 주목되는 것은 석탈해가 한반도에 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동물 뿔로 만든 술잔인 각배(角杯)가 고구려나 백제에선 발견되지 않고 오직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만 발굴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고고역사학계에선 시베리아나 몽골 등의 북방 기마 유목민이 사용했던 뿔잔이 이 두 나라에만 전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북방의 각배가 어떻게 지리적으로 근접한 고구려나 백제를 건너뛰어 한반도 동남쪽 신라와 기야에만 전해질 수 있겠는가.

이 의문은 신라와 가야의 각배가 북방이 아니라 남방의 바닷길을 통 전해진 것으로 보면 쉽게 풀린다. 각배는 그리스,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지중해 및 중근동 고대국가에서 발생했는데 이들 나라와 기원전부터 이미 해상무역을 활발히 했던 타밀인의 인도 남부에서도 흔히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타밀인이 신라와 가야, 일본에 각배를 소개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훨씬 더 타당하다. 각배를 타밀어로 쿠디꿈 콤부(Kudikkum Combu)라고 부르는데 타밀 출신인 석탈해와 허왕후가 각각 신라와 가야에 이를 소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삼국사기에 나오는 석탈해의 출신국 다파나국(多婆那國) 또는 용성국(龍城國)은 과연 어디인가를 추적해 보자. 다파나는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타밀어로 태양을 뜻하는 다파나(Tapana) 또는 다파난(Tapanan)과 일치해 ‘다파나국’, 즉 ‘태양국(太陽國)’으로 당시 타밀인 나라 촐라 왕국의 별명이다. 

아울러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용성국(龍城國)의 용성(龍城)은 당시 촐라 왕국의 도시 가운데 대장간과 철기제작으로 잘 알려진 항구도시 나가파티남(Nagappattinam)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타밀어로 나가(Naga)는 본래 ‘코브라’를 뜻하지만 힌두교도에겐 코브라가 용으로 전화되어 숭배대상이 됐기 때문에 ‘용’으로도 불리며 파티남(pattinam)은 ‘도시’를 뜻해 ‘나가파티남’은 ‘용성’(City of Dragon)을 의미한다. 따라서 석탈해가 철기생산 및 해상무역으로 번성했던 국제도시 나가파티남, 즉 용성이 소재했던 촐라 왕국을 용성국으로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나가파티남은 대장장이를 뜻하는 ‘석’(‘석갈린감’의 줄인 말)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대거 거주했고, 동시에 타밀인의 해외 진출 전진기지였던 만큼 대장장이 가문인 석탈해의 가족이 이곳에서 동아시아를 향해 떠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역사서 모두 모두 석탈해의 출신지가 “왜의 동북쪽 1000리 되는 곳” 이라고만 밝히고 있을 뿐인데 당시 왜가 규슈(九州) 북쪽을 가리켰다는 점에서 다파나국의 위치는 오늘날 교도현(京都縣) 부근으로 볼 수 있다. 1세기 후반 저술된 ‘한서(漢書)’ 지리지에 따르면 기원전 현재의 규슈지역을 중심으로 “왜에는 100여 개의 소국이 있으며 통역관에 의해 한(漢)나라와 의사소통이 되는 곳이 30나라”라고 밝히고 있는 만큼 다파나국도 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에 있던 타밀인의 집단 거주지를 석탈해가 자신의 고국 별명인 ‘다파나국’ 또는 ‘용성국’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유럽에서 대서양 건너 신대륙으로 이주한 영국인이 고국을 그리워하여 집단거주지역을 캐나다에선 ‘London’, 미국에선 ‘New England’와 ‘New York’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약 2000년 전 막강한 선진 철기문화와 해상력을 갖춘 타밀인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과 중국 남부지역 등을 누비며 해상무역과 힌두교 전파에 주력하면서 타이완(臺灣) 위쪽에 흐르는 흑조(黑潮,쿠로시오)난류를 타고 일본에까지 도착했다.

 

캄보디아의 푸난 (Funan 扶南, 서기 1~6세기) 왕국 및 베트남의 참파(Champa 占婆, 서기 2~17세기) 왕국 등 철기를 사용하는 동남아 힌두교 왕국의 유물과 유적에서 당시 타밀인들의 활발한 해외진출 증거가 고고역사학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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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이 일본을 경유해 신라에 도착...

 

다파나국, 용성국은 일본에 있던

 

인도인 집단 거주지역 death!!

 

(미국에 온 영국인이 New England라 하는 것과 같은 death!!)

 

또 타밀어는 인도 남부의 언어, 지금의 일본어와 같은 death kka?

 

일본인은 인도인의 후손 death kka?

 

인도네시아, 중국 남부, 베트남, 캄보디아, 대만

 

일본, 한반도까지와 힌두교 전파하러 다닌 건

 

일본인 death kka?

 

그렇다면 석탈해는 일본인 death!! wwwww


新羅第4大王昔脱解はインド人

他密語で昔脱解は ‘鍛冶親分’… 三国有史・三国史記内容と一致 

筆者は韓国古代史最大ミステリーのひとつの伽揶招待王妃ホ王后(許王侯・西紀 32‾189年)の故郷アユタ(阿喩陀)がインド南部タミルナドゥ株(州)のアヨデ−なのクパム(Ayodhya Kuppam)と主張した事がある(2005年 8月 16日付け ‘ニュースメーカー’) また違うミステリーである新羅第4大王昔脱解(昔脱解, 在任西紀 57‾80年)の出身地ダパナグック(多婆那国) または竜成局(竜城国)はどこか. 三国史記(三国史記)と三国有史(三国遺史)に出る昔脱解説話を当時タミルインの言語及び社会像と比べて分析した結果, 彼もホ王后と同じくインド南部他密旨役から来た人物なのを分かった.

 

先進鉄器文化で土着勢力に対立して

これは去る数年間カナダトロント大学南アジア研究センター所長であるセルバカナガンタカムギョス, トロントのタミルインヒョブフェ山務感鼻した事務総長, 南アジア女性センターザヤンティレイノルド相談官, 他密語教師カルランティクルラナした, そしてヒンズー教聖職者など幾多のインド人に直接会って取材したしトロント大学など多くの図書館の資料たちを追跡した結果だ.

昔脱解は自分が “炭とスッドルを使う鍛冶家”と明らかにしたが昔脱解の姓(姓)である ‘石(Sok)’は当時他密語で ‘鍛冶’を意味する ‘ソックガルリンガム(Sokalingam)’の減らした言葉で成果家職業がそのまま一致する. ‘ソックガルリンガム’ ‘石’ ‘釈迦(Soka)’などは英語の Blacksmith, Goldsmithや Smithのように鍛冶家の名前で通用したし今もタミルインの男名前に残っている. また ‘脱解(Talhe)’は他密語で ‘頭, 親分, てっぺん’を意味する ‘仮面に(Tale)’や ‘タルアイ(Talai)’とほとんど一致する. したがって ‘昔脱解’という名前は他密語で ‘鍛冶親分’を示して彼が海向こう韓半島に一緒に入って来た鍛冶のリーダーなのを名前で暗示している. 

同時に昔脱解の他の名前吐いて(吐解)は他密語トヘ(Tohe)やトハイ(Tohai)と一致するのにおこる ‘鳥の羽, 特に孔雀羽’と ‘保護者, 後見人’ など 2種意味を持っていてソックトヘという名前は ‘鍛冶の保護者’という意味だ.

その上に昔脱解が ‘鍛冶屋道具’を ‘短夜で’(鍛冶具)と呼んだが当時他密語の短夜で(Dhanyaku)とその発音及び意味が完全に一致する.

新羅と伽揶の ‘角杯’隠れた秘密


昔脱解はインド南部 ‘チョウラ王国’ 出身に推定される. 
約 2000年前当時タミルインが立てたチョウラ王国(Chola Kingdom) などインド南部地域は当代世界最高品質であるウツ(Wootz)鋼鉄の原産地である鉄衣先進国で東西洋に物心を輸出した ‘鉄衣シルクロード’ 中心地だった.
昔脱解がたとえ異邦人だが初期鉄器時代にとどまっていた韓半島に刀や鉄製農機具などインド南部の力強い先進鉄器文化を持って移住して既存土着勢力に対立して新羅の王権に参加する決定的なきっかけを取るようになったのだ.

二番目で, 発音と意味が完全に一致するまた他の単語は昔脱解の提案によって第3代硝子(儒理)王から使った ‘ニサグム’(Nisagum)という, 王を意味する用語だ. 第2代超南海(南解) チァチァウングの後任をおいて ノ−リェ(努礼)王子が長子相続既得権を放棄, 妹夫である昔脱解に王位を譲歩しようと思った位に昔脱解が持ったインド南部鉄器文化の力が大きかったのだ. しかし昔脱解は “これが多い人を後任王に決めよう”と提案, 結局餠に飽きた歯形の多いノ−リェワングザが第3代ユリニサグム(尼師今)と称し始める. ‘ニサグム’は実は当時他密語で ‘大王’(a great king), または ‘皇帝’(an emperor)という意味で一般的な王よりは上位概念だ.

当時他密語 ‘お前’が国語に入って来て ‘この’がドエッヌンところ三国有史で ‘ニサグム’を ‘痔疾金(歯叱今)’でも表現したことは ‘お前’を訓読して漢字語で表記したのだ. 歯は他密語で ‘お前’ と ‘ペッドング 2種で使われている途中現在は ‘ペッだけ使われるのに 2種が合された ‘ニペッが国語では ‘イペッになったのだ. 三国有史によれば新羅釈氏係の最後の王人第16代ホルヘワング(在位 310‾356)までニサグムという名称を使っている途中金(金)さん家門による王子里独占を知らせる第17代ネムル王から王は ‘麻立干’と呼ばれ始める. したがって昔脱解が自分の母国語から借りて来たニサグムは釈氏係の沒落とともに新羅王の名称で完全に消えるようになる.

三番目で, 昔脱解が自分の父親をダパナグックのハムダーパー(含逹婆)王, 減らして言いますを(含逹)王だと明らかにしていることにハムダーパー(言いますを)はタミルインが一番崇拜する神さま ‘ハンダパ(Handappa)’, 減らして ‘したという(Handan)’とほとんど一致する. ‘ハンダパ’はヒンズー教 3代わりのひとつのシヴァ(Shiva)の二番目息子でインド北部アーリア族があまり重要視しないで南部タミルインだけ最高で仕える神さまで男性名前にもよく登場する. 同時に ‘ハンダパ’は当時他密語で ‘お父さん’という意味もあるから昔脱解が自分のお父さんをタミルインが一番尊敬する神さま ‘ハンダパ’の漢字表記でハムダーパー王, またはハムダルワングだと称したのだ. ‘ハンダパ’は最近無塁間(Murugan)でもっとたくさん殖やしている.

第四, 西紀 8年新羅 2対南海(南解)王の壻になった昔脱解は 2年後国務総理柄である大宝(大輔)という重責を引き受けたが当時タミル国では王の臣下の中側近を意味する ‘デボ(Devo)’と一致する. ‘デボ’はナムザシン(God)を意味する ‘デバン(Devan)’と女神さま(Goddess)及び王妃(queen)を意味する ‘デービー(Devi)’のような根で ‘信義次席’(next to God)’と ‘莫強した人(a powerful man)という 2種意味を持っている. 当時王は神さまのように奉ざれたから ‘信義次席’と ‘莫強したシラム’という 2種意味を持つ ‘デボ(Devo)’がまさに王次の権力者を示すのだ. これを漢字語で表記した大宝(大輔)席に昔脱解が新羅歴史上初めて上がったことは彼がタミル国出身なのを示唆する.

また第3代硝子(儒理)王が死んで西紀 57年昔脱解が王位に上がって大宝席に自分に家を譲渡した ‘瓢箪(瓢)を腰に蹴ったホゴング(瓢公)’を抜擢したが, 新羅 1000年歴史で王の最側近である大宝(大補)という職位を引き受けた人はひたすらこの二人だけで二人は非常に特殊な関係でホゴングもタミル出身に推定される.

三国史記に記録されているホゴングに対する最初の場面と同時に彼の正体に対する説明の全部なのに典型的な倭人ではないがとにかくなぜがある地域から渡って来たことを確かに明らかにしている. 打ちこんだインドやアフリカなど熱帯地方で育つ植物でタミルインはB.C.から熱い天気のためのどを潤すために腰に瓢箪を蹴って通う習慣がある. 瓢箪は他密語でダンニクダム(Thaneer Kudam)と呼ばれた. ホゴングも昔脱解と同じく日本に定着したタミルである重い人で昔脱解より先に海向こう新羅に定着したことと見える. 
競走にいる昔脱解王陵. 王陵周り松は皆御陵を向けて横になっている. 
海外進出前進基地 ‘ナがパティナム’

五番目に注目されることは昔脱解が韓半島に史上初めて取り入れた動物角で作ったさかずきである角杯(角杯)が高句麗や百済では発見されないでただ新羅と伽揶地域でばかり発掘されているという点だ. 今まで考古歴史学界ではシベリアやモンゴルなどの北方騎馬遊牧民が使ったプルザンがこの両国にだけ伝わったと主張している. しかし北方の角杯がどんなに地理的に近接した高句麗や百済を飛ばして韓半島東南の方新羅とギヤにだけ伝わることができるか.

が疑問は新羅と伽揶の角杯が北方ではなく南方の海岸道路を全然伝わったことで見れば易しく解ける. 角杯はギリシア, イラン, アプガニスタンなど地中海及び中近東古代国家で発生したが人々国とB.C.からもう海上貿易を活発にしたタミルインのインド南部でもよく発見されている. したがってタミルインが新羅と伽揶, 日本に角杯を紹介したことで推正するのが論理的にずっと妥当だ. 角杯を他密語でクデ−クムコムブ(Kudikkum Combu)と呼ぶのにタミル出身である昔脱解とホ王后がそれぞれ新羅と伽揶に至る紹介したことに推定される.

それでは三国史記に出る昔脱解の出身国ダパナグック(多婆那国) または竜成局(竜城国)は果してどこなのかを追跡して見よう. ダパナはサンスクリット語と古代他密語で太陽を意味するダパや(Tapana) またはダパナン(Tapanan)と一致して ‘ダパナグック’, すなわち ‘太陽国(太陽国)’で当時タミルである国チョウラ王国のニックネームだ. 

同時に三国有史で言う竜成局(竜城国)の竜性(竜城)は当時チョウラ王国の都市の中鍛冶屋と鉄器製作でよく知られた港市ナがパティナム(Nagappattinam)を示すと見られる. 他密語で出て(Naga)は本来 ‘コブラ’を意味するがヒンドゥ教徒にはコブラが竜に電話されて崇拜対象になったから ‘竜’とも呼ばれてパティナム(pattinam)は ‘都市’を意味して ‘ナがパティナム’は ‘竜性’(City of Dragon)を意味する. したがって昔脱解が鉄器生産及び海上貿易で盛んだった国際都市ナがパティナム, すなわち竜性が素材したチョウラ王国を竜成局と指称したように見える.

ナがパティナムは鍛冶を意味する ‘石’(‘ソックガルリンガム’の減らした言葉)という名前を持った人が大挙居住したし, 同時にタミルインの海外進出前進基地だった位鍛冶家門である昔脱解の家族がこちらで東アジアに向けて去ったことに推定される.

二つの歴史書皆皆昔脱解の出身地が “なぜの東北の方 1000里になる所” とだけ明らかにしているだけなのに当時なぜが九州(九州) 北を示したという点でダパナグックの位置は今日教徒県(京都県) 近所で見られる. 1世紀後半著述された ‘寒暑(漢書)’ 地理誌によればB.C.現在の九州地域を中心に “なぜには 100余個の小菊があり通訳官によってたいてい(漢)国と意思疎通になる所が 30国”と明らかにしている位ダパナグックもこの中一つで見られる. 

が地域にあったタミルインの集団居住地を昔脱解が自分の故国ニックネームである ‘ダパナグック’ または ‘竜成局’と言ったことと見える. まるでヨーロッパで大西洋向こう新大陸で移住したイギリス人が故国をしのんで集団居住地域をカナダでは ‘London’, アメリカでは ‘New England’と ‘New York’という名称を付けたことと一脈相通ずる.
 

約 2000年前莫強した先進鉄器文化と解像力を取り揃えたタミルインはインドネシア, カンボジア, ベトナムと中国南部地域などを歩き回って海上貿易とヒンズー教電波に力を注ぎながら台湾(台湾) 上側に流れる黒潮(黒潮,黒潮)乱流に乗って日本にまで到着した.

 

カンボジアのプナン (Funan 扶南, 西紀 1‾6世紀) 王国及びベトナムのツァンパ(Champa 占婆, 西紀 2‾17世紀) 王国など鉄器を使う東南アジアヒンズー教王国の遺物と遺跡で当時タミルインドルの活発な海外進出証拠が考古歴史学籍で現わ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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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ンド人が日本を経由して新羅に到着...

 

ダパナグック, 竜成局は日本にあった

 

インド人集団居住地域 death!!

 

(アメリカへ来たイギリス人が New Englandだと 言うことのような death!!)

 

また他密語はインド南部の言語, 今の日本語のような death kka?

 

日本人はインド人の子孫 death kka?

 

インドネシア, 中国南部, ベトナム, カンボジア, 台湾

 

日本, 韓半島までと ヒンズー教伝えに通ったのは

 

日本人 death kka?

 

それなら昔脱解は日本人 death!! ww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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