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본기 訖解尼師今(흘해이사금) 37년, AD346년
三十七年 倭兵猝至風島 抄掠邊戶 又進圍金城急攻 王欲出兵相戰 伊伐湌康世曰 賊遠至 其鋒不可當 不若緩之待其師老 王然之 閉門不出 賊食盡將退 命康世率勁騎 追擊走之
37년(346) 왜의 군사가 갑자기 풍도(風島)에 이르러 변방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또 진군하여 금성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하였다. 왕이 군사를 내어 상대하여 싸우고자 하였으나 이벌찬 강세(康世)가 말하였다. “적은 멀리서 왔으므로 그 칼날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 그것을 늦추었다가 그 군사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왕이 그렇다고 여겨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니 적은 식량이 떨어져 장차 물러가려 하였다. 강세에게 명하여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버렸다.
*AD375년- AD346년= 29년 편차.
訖解尼今紀(흘해니금기) 6년, AD375년
六年 靑豕 四月 倭寇風島進圍金城 待其食盡 康世出擊大破之 虜其酋夫妻而獻之 禮生宮生帝子河期
6년 靑豕(청시, 乙亥, AD375년) 4월, 倭(왜)가 風島(풍도)를 침범하고, 나아가 金城(금성)을 포위하였다. 그들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康世(강세)가 출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그 우두머리 夫妻(부처)를 사로잡아 바쳤다. 禮生宮生(례생궁주)가 帝(제)의 아들 河期(하기)를 낳았다.
Q: 100年前に日本学者たちは訖解尼師今 37年記事が 375年になるということが分か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新羅本紀の紀年が操作されていたから.. 100年が去る今日までも 日本書紀の紀年を 舌ないしできなかった原因になるのだろう..
A: そのため, 日本書紀 神功47年 記事に出る 莫古(막고)が 百済本紀 近仇首王 元年記事に 出る 莫古解(막고해)と同一人になるのです?
莫古(막고)= 莫古解(막고해)
Q: うん. そう..
377年には大伽揶では 慕訶(모가)が王になりながら.. 倭から妻を受け入れる..
そのため, 377年には大伽揶は完全に親倭国家変わるようになってしまう..
その上に.. 百済では近肖古王よりは近仇首王王が集権しながら.. 百済はもっと親倭国家変わるようになる..
新羅本紀 訖解尼師今(フルヘイサグム) 37年, AD346年
三十七年 倭兵猝至風島 抄掠辺戸 又進囲金城急攻 王欲出兵相戦 伊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