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史擥要(국사람요)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5/ri05_00016/ri05_00016_0001/ri05_00016_0001.html
이번에 볼 고서는 國史擥要(국사람요)이죠.
링크 주소의 26P과 27P입니다.
이 國史擥要(국사람요)의 성무천황의 기사를 보면.. 일본서기 경행 51년 1월 기사가 성무천황 안쪽의 기사로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先帝嘗テ 群臣ヲ 宴ス
ヲ= を= ~를(을)
五十一年 春正月 壬午朔 戊子。招群卿而宴數日矣。時皇子稚足彦尊武內宿禰不參赴于宴庭。天皇召之 問其故。因以奏之曰。其宴樂之日。群卿百寮必情在戱遊。不存國家。若有狂生而伺墻閤之隙乎。故侍門下備非常。時天皇謂之曰。灼然。〈灼然。此云以耶知擧。〉則異寵焉。
景行天皇 五一年 (成務 1년, 316년, 8월.)
秋八月 己酉朔 壬子。立稚足彦尊爲皇太子。是日命武內宿禰爲棟梁之臣。(이하 생략)
*일본서기 기사를 조금 보기 쉽게 간략화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최종 단계에는 각각의 기사가 나타내는 실제연도를 위에 표시해 놓은 연도 옆에다 이중으로 표기해 놔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사가 이리저리 이동을 해서입니다.
현재 보시는 연도는 하나의 프레임을 나타내 주는 일본서기 구조를 알기 위한 뼈대를 말합니다.
재위년수 기준으로 하여, 이중으로 또 표기를 해줍니다.
先帝嘗宴群臣
= 先帝는 일찍이 群臣들에게 연회를 하였다.
이때 先帝= 景行을 말하죠.
성무천황 앞에 위치한 천황이 경행천황이니까요.
”嘗= 일찍이” 란 말이므로..경행은 습관적으로 늘상, 자주, 군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는 속뜻이 있습니다.
아마 휘하 군신들에게 잘 보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稚足彦尊과 武內宿禰이 연회에 불참을 하여..그 이유를 묻는 장면이 나오죠.
어쩌구 저쩌구 해 놨는데.. 표면적으로 들어난 기사일 뿐.. 왜 경행이 10년간 재위를 하고.. 물러나서 성무에게 왕위를 넘겨줘야 했는지는 미스터리한거죠.
원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내막은 모르는겁니다.
그 다음 2편에서는.. 武內宿禰가 동량이 된 시기에 대해.. 다른 고서를 가지고 파악하는 기사를 또 올리겠습니다.
国史〓要(グックサラムです)
http://archive.wul.waseda.ac.jp/kosho/ri05/ri05_00016/ri05_00016_0001/ri05_00016_0001.html
今度見る故では 国史〓要(グックサラムです)ですよ.
リンク住所の 26Pと 27Pです.
が 国史〓要(グックサラムです)の星霧天皇の記事を見れば.. 日本書紀慶幸 51年 1月記事が星霧天皇内側の記事に入っていることが分かります.
先帝嘗テ 群臣ヲ 宴ス
ヲ= を= ‾を(を)
五十一年 春正月 壬午朔 戊子。招群卿而宴数日矣。時皇子稚足彦尊武内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