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요괴 좋아하는 검은 고양이입니다.
이번은 「사람에게 들린 악령(tsukimono)」의 이야기에서도...

 

우선은, 한국 분도 볼 수 있는 것을 고려해 기본적인 일로부터.
일본에는, 고래, 여우로 대표되는 동물영혼에 원한을 샀기 때문에 때문에 빙의 되었다고 말해지는 사람의 정신의 착란한 상태를, 「00이 빙 있었다」라고 불러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빙구물을 「사람에게 들린 악령」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에게 들린 악령」이 여우의 경우 「호빙 나무(kitsunetsuki)」라고 불리고, 너구리의 본고장 시코쿠에서는 「리빙 나무(tanukitsuki)」도 있고, 뱀에 홀리는, 아귀에게 홀리는, 등등 여러 가지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에게 들린 악령」은 개인에게 빙거미의 것입니다만, 일족 대대 홀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tsukimonosuji)」라고 불립니다.
일본내에 있어서의, 「사람에게 들린 악령」의 변천을 더듬어 보고 싶습니다.

 

 

고래보다 「호빙 나무」로 대표되는 「사람에게 들린 악령」은, 지역을 불문하고 이야기로 전할 수 있고 있습니다.
문헌에서도, 헤이안 시대에 편찬 된 「금석 이야기집」에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들린 악령」은 아무것도 일본에 한정한 이야기가 아니고, 세계 각국에서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트교 세계에서도 성령이 빙 있던 머물었다고 말해지는 전설은 잘 듣습니다.
가장, 중세 이후는 「악마빙 나무」 「랑빙 나무」등이라고 하는 어느 쪽일까하고 말하면 나쁜 측면에 있어지는 것이 많아져 간 것 같습니다만.
이것은 역사적 변천을 보면 아직도 체계화까지 입어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신도적인 일본인의 사고 체계」라고, 체계화된 「크리스트교」의 교의의 차이로부터 나오는 것이지요.
또, 원래빙의(포젯션) 형샤머니즘은 「사람에게 들린 악령」이 신앙의 토대가 되고 있기 때문에, 온 세상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상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한국에도 무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영혼이라고 하는 생각은 차치하고 「빙의」라고 하는 문화는 있는 것은 틀림없는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으로 한정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면, 여우나 너구리라고 한 동물영혼의 조업이라고 되고 있던 그러한 「사람에게 들린 악령」은, 「한 개당행여의말」(1788년)에서는 「호빙간야호수등에서는 없다.피해망상, 과대 망상, 감정 황폐, 강박 관념, 자폐, 불면, 환상, 억울 등은 광의 증상이다.」

(와)과의 의미를 적고 있었다(Wiki보다.원문은 양이 많이 어디에 써 있을까 다 찾을 수 있지 않습니다;;)와 기술이 있거나 「인 호변혹담」(1818년)에도, 「호빙은 광간의 변증으로 해 소위졸광이것이든지, 결코 호리인의 몸에 붙는 것에 있지 않고」로서, 여우가 영수가 아닌 예증, 호빙 나무가 마 빙 나무로 바뀌는 예를 들어 「필경이것모두 정신착란이 하는 곳(중) 되어」라고 결론 하고 있습니다.
즉, 18 세기 후반 이후, 「사람에게 들린 악령」은 정신 질환의 증상과 간주하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학자간에 인식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며, 항에서는 아직 여우, 너구리의 조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서양의 학문이 들어 오는 것 과 병행하고, 정부라고 해도 속신으로서 그 불식에 노력하고는 갔습니다만, 완전하게 잃는 일은 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라고 해도 「동물계 영이잡지」(1928년)에서도 메이지 중순부터, 동물에 관련되는 괴이 체험이 급속히 적게 되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 오카다 켄문은, 그 원인으로서 근대 과학의 계몽 활동보다, 오히려 가까이에  호리를 볼 수  없게 되어 갔던 것이 원인은 아닐까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물계 영이잡지」에는, 나의 서오사카에서도 메이지 40년(1907년)에 「두리」가 빙 있던 예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만, 그 무대가 된 현재의 타니쵸7가 부근은 이와 같은 마치나미 봐입니다.

 

헤세이의 세상에서는 이 근처로 호리가 보이는 일은 우선 없고, 「사람에게 들린 악령」의 주체가 되려면  현실감이 부족해졌다고 말해 바구니를 있습니다.


가장 이전에는 근린에는 너구리가 잘 나왔으므로 리판이라고 한 장소(리판자체는 이미 현존 하지 않고)나, 「오사카 번성시」(1862년) 등으로부터도 근대 이전에는너구리가 가까이에  있던 일이 엿봐 알려집니다.

이것은 타니쵸에 가까운 「남 오에 공원」에 있는 「리판신의 이름 밑에 붙이는 칭호」의 작은 사당.


이런 작은 사입니다만 매년 5월에는 예제도 행해집니다.

 


그런데도 유감스럽지만, 근린의 아이들은 너구리 자체를 보았던 적은 없습니다...
오카다 켄문씨가 말한 것처럼 「사람에게 들린 악령」을 추방 하는 것은 과학적 설명보다 도시 개발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근년이라도 「사람에게 들린 악령」을 과학적 설명으로 해석하려고는 하지 않고 , 고래부터의 샤머니즘의 논리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 하는 지역이나 집단도 있습니다.
일본에 있어 오키나와의 유타(yuta)나 아오모리의 무녀(itako)등이 유명하겠지요.
위의 예를 들 것도 없고, 샤머니즘이 현실감이 있는 존재이기 위해서는, 자연이 가까이에  있을 필요가 있겠지요.

 


또 특히 오키나와는, 일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 정신 의료의 분야가 뒤떨어졌습니다.
따라서 정신 질환을 안은 환자가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없었던(정신 병원이 없었다) 것이 큰 요인이다고 하고 있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는 것도, 본토에서는 메이지 8년에 사립의 미치광이 병원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전쟁 전부터 정신 병원이 설립되어 왔습니다.
타이쇼 시대에는 「정신 병원법」을 제정해 각 도도부현에 정신 병원을 설립하는 일을 목표로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강제 격리 시설로서의 사립 병원이 본토에 설립되었던 만큼 머물었습니다.

 

또, 법제도적으로는 메이지 33년에 「정신병자 감독과 보호법」이 제정되어 어찌할 도리가 없는 환자는 사택감치 하는 것이 인정되었습니다.
거기까지는 본토도 오키나와에서도 변함없습니다만, 동법은 쇼와 25년 「정신 위생법」에 따라 폐지됩니다.
이것에 의해 가족은 아니고 나라가 정신병 환자를 수용하는 형태로 바뀌어 갔습니다만, 당시 오키나와는 미국의 지배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동등의 법률이 생기는 쇼와 35년까지, 증상의 격렬한 사람 이외는 일반의 사람과 함께 사회 생활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일단, 오키나와에서도 지배하에 둔 미국에 의해서 설립된 미군 정부 병원에 있어 쇼와 20년에 정신과가 개설되어 쇼와 23년에 정신병동이, 그리고 쇼와 25년에 정신 병원이 설립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토 복귀 이후는 오키나와에는 많은 정신 병원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정신의학에서도 「카미다리(빙의)」 등은 정신 해체라고 하는 것보다는, 인간이 가리키는 적극적인 영위의 하나이다고 하는 것처럼, 빙의현상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도 되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의사 반, 유타 반」이라고 하는 습관도 있는 것 같습니다(의사가 유타를 권한다).
확실히, 본토에서도 격리 중심의 그 이전의 정신의학의 방식에 대한 반성도 일어나고 있었을 무렵으로, 「카미다리」를 「정신 질환」이라고 하는 테두리에는 째, 치료해야할 것으로 하는 것에 의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빙의(광기)의 유효성」이 정신과 의사에 의해 지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나 서양 근대사회라는 비교에 있어 「빙의(의 일부)를 긍정하는 사회」라고 하는 특이성을 현재까지 가질 수 있을 수가 있었다고 파악하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헤세이의 세상에서도, 일인간의 정신 활동에 대하고, 과학이 만능이든 무렵까지는 도달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현재의 이 분야에서는, 과학보다 신앙등이 유효타 충분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증거가 될까...
구해진다면, 과학에서도 신앙에서도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개인에게 빙구 「사람에게 들린 악령」이란 달라, 일족에게 빙구라고 하는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에 이야기를 옮겨 보고 싶습니다.

이 분야에 관해서는, 고마츠와언씨라고 하는 분이 빙령신앙론 중(안)에서 여러 가지 논하고 계십니다.

그 중으로, 「빙기모노관계」의 신앙에 관련되는 중요한 요소로서 그것이 촌락공동체 중(안)에서도 비교적 부유인 집에 많이 보여진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호농 등 구래부터 촌락에 거주하고 있던 집에 대해서 쓸자 말한 신앙은 보지 못하고, 이차적으로 외부로부터 이주해 온 집이 재산을 모았을 경우에, 그 집이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
즉, 빙기모노관계의 상당수는 「타관 사람의 갑자기 출세함자」이며, 이것이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의 신앙에 깊게 관계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촌락과 같은 폐쇄 사회에 있어 그 공동체 구성원의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부의 이미지로서 「부, 애정, 행운 등은 한정된 양 밖에 없다」라고 하는 인식 방법이 일반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옛부터의 부호는 원래 유복했던 것이다로부터, 다른 공동체 구성원에게 있어서 아무 관계도 없지만, 이차적인 이주자가 단기간으로 부를 축적하면, 다른 구성원에게 있어서,


「그 집은 타인의 부를 횡령해 풍부하게 되었다」
「그 집이 풍부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집이 궁핍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는 인식이 태어납니다.
이것이 마을사람들의 피해자 의식을 증대시켜, 「타관 사람의 부는 불법인 수단으로 손에 넣은 것」이라고 하는 망상으로부터 비방 중상을 일으키게 해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라고 하는 설명 체계가 태어난 것은 아닌지, 라고 논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는 사농 공상의 신분 제도가 확립해, 계급간의 유동성이 대부분 없어지고, 그것까지 전국을 유랑 하고 있던 하급의 성, 유행승려, 연예인들이 정주를 강요당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즉 촌락공동체에 이차적 이주자가 증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에도시대는 화폐 경제가 전국적으로 보급했던 시대이기도 해, 폐쇄적인 농촌의 주민에 있어도, 이웃마을이나 도시와 교역을 하는 것으로써, 상업적 재치나 호기마저?, 비약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듯이)도 되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농촌이 많은 주민에게는 이러한 경제 시스템이 이해 불능이며, 자급 자족의 촌락공동체로 부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타관 사람」이 「사람에게 들린 악령」을 사역하고 있다고 하는 「설명」을 용이하게 받아 들이게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라고 여겨지는 가계의 사람들도, 그 대부분이 마을사람에게 유포하는 악평을 증명하도록(듯이), 스스로를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라고 인정해 그러한 동물영혼을 신으로서 모시고 있던 곳(점)이 많다고 하는 것은 재미있는 곳이지요.
이전에는 외경심것에 의하는 메리트가 충분히 있었겠지요.

 

이 설의 진위의 정도는 접어두어, 매우 재미있는 설이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들린 악령관계」에 대한 설의 진위는 별로, 이와 같은 촌사(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회, 폐쇄 사회에서 유효했던 「설명 체계」에 의한 불공평감, 불만을 심리적으로 납득시키는 수법은, 현재에도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논리를 이용한 이런 종류의 「주저(jyuso)」는, 현대 사회에서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폐쇄 집단의 사고 체계만 이해하고 있으면 「주(syu)」를 걸칠 수 있는 것이므로…

 

반대로 「설명 체계」를 해체하는 일에 의한 「사람에게 들린 악령 오토시」도 할 수 있겠지요 해, 현재 그것을 직업으로 되고 있는 분도 있겠지요.

 

이번은 이런 곳에서^ ^


【妖怪・怪異】憑き物

妖怪好きの黒猫です。
今回は「憑き物(tsukimono)」の話でも。。。

 

まずは、韓国の方も見られることを考慮して基本的なことから。
日本には、古来、狐に代表される動物霊に恨みをかったため為に憑依されたと言われる人の精神の錯乱した状態を、「○○が憑いた」と呼びあらわしていました。
この人に憑く物を「憑き物」と呼びます。
「憑き物」が狐の場合「狐憑き(kitsunetsuki)」と呼ばれますし、狸の本場四国では「狸憑き(tanukitsuki)」もありますし、蛇に憑かれる、餓鬼に憑かれる、等々いろいろあります。

たいてい「憑き物」は個人に憑くものですが、一族代々憑かれているとされる場合もあります。
この場合「憑き物筋(tsukimonosuji)」と呼ばれます。
日本国内における、「憑き物」の変遷を辿ってみたいと思います。

 

 

古来より「狐憑き」に代表されるような「憑き物」は、地域を問わず語り伝えられています。
文献でも、平安時代に編纂された「今昔物語集」にも見ることが出来ます。

「憑き物」は何も日本に限った話ではなく、世界各国で見られます。
キリスト教世界でも聖霊が憑いた宿ったといわれる伝説はよく聞きます。
最も、中世以降は「悪魔憑き」「狼憑き」等というどちらかと言えば悪い側面にとられることが多くなっていったようですが。
これは歴史的変遷をみれば未だ体系化まではいたっていなかったと思いますが「神道的な日本人の思考体系」と、体系化された「キリスト教」の教義の違いから出てくるものでしょう。
また、そもそも憑依(ポゼッション)型シャーマニズムは「憑き物」が信仰の土台となっていますので、世界中で見られ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現象であったと言っても良いでしょう。
韓国にも巫女が存在していますので、動物霊という考え方はともかく「憑依」という文化はあるのは間違いないありません。

 


さて、日本に限定して話を進めると、狐や狸と言った動物霊の仕業であるとされていたそれらの「憑き物」は、「一本堂行余医言」(1788年)では「狐憑きも野狐の祟りなどではない。被害妄想、誇大妄想、感情荒廃、強迫観念、自閉、不眠、幻想、抑鬱などは狂の症状である。」

との意味を記していた(Wikiより。原文は量が多くどこに書いてあるか探しきれてないです;;)と記述があったり、「人狐弁惑談」(1818年)にも、「狐憑は狂癇の変証にして所謂卒狂これなり、決して狐狸人の身につくものにあらず」として、キツネが霊獣ではない例証、狐憑きが馬憑きに変わる例を挙げ、「畢竟これ皆精神錯乱の致すところなり」と結論しています。
つまり、18世紀後半以降、「憑き物」は精神疾患の症状と看做す動きが出始めてきています。
無論、これらはあくまで学者間で認識が出来上がっていく過程であり、巷ではまだ狐、狸の仕業とされていました。
以降、西洋の学問が入ってくるのと並行して、政府としても俗信として、その払拭に努めてはいきましたが、完全に無くす事は出来ず現在に至っています。

 

とはいえ「動物界霊異誌」(1928年)でも明治中頃から、動物にまつわる怪異体験が急速に少なくなりつつあるとされています。
しかし著者の岡田建文は、その原因として近代科学の啓蒙活動よりも、むしろ身近に狐狸が見られなくなっていったのが原因ではないかと指摘しています。

 

「動物界霊異誌」には、私の棲む大阪でも明治40年(1907年)に「豆狸」が憑いた例が取り上げられていますが、その舞台となった現在の谷町七丁目近辺はこの様な町並みです。

 

平成の世ではこの界隈で狐狸を見かける事はまず無く、「憑き物」の主体となるには現実感が乏しくなったと云わざるをえません。


最も以前は近隣には狸がよく出たので狸坂といわれた場所(狸坂自体は既に現存せず)や、「大阪繁盛詩」(1862年)等からも近代以前は狸が身近にいた事が窺い知れます。

これは谷町に程近い「南大江公園」にある「狸坂大明神」の小祠。


こんな小さな祠ですが毎年5月には例祭も行われます。

 


それでも残念ながら、近隣の子供たちは狸自体を見たことはありません。。。
岡田建文氏が述べたように「憑き物」を放逐するのは科学的説明よりも都市開発なのかも知れませんね…

 

 

しかし近年でも「憑き物」を科学的説明で解釈しようとはせずに、古来からのシャーマニズムの論理そのままで受け入れるという地域や集団もあります。
日本においては沖縄のユタ(yuta)や青森のイタコ(itako)などが有名でしょう。
上の例を挙げるまでも無く、シャーマニズムが現実感のある存在であるためには、自然が身近にある必要があるのでしょう。

 


また特に沖縄は、日本の他の地域と比較して精神医療の分野が立ち遅れました。
よって精神疾患を抱えた患者が病院に入ることがなかった(精神病院が無かった)ことが大きい要因であるとしている学者もいます。

 

というのも、本土では明治8年に私立の癲狂病院が設立されたのを皮切りに戦前から精神病院が設立されてきました。
大正時代には「精神病院法」を制定して各都道府県に精神病院を設立する事を目指しましたが、実際には強制隔離施設としての私立病院が本土に設立されただけに留まりました。

 

また、法制度的には明治33年に「精神病者監護法」が制定され、手に負えない患者は私宅監置することが認められました。
そこまでは本土も沖縄でも変わらないのですが、同法は昭和25年「精神衛生法」によって廃止されます。
これにより家族ではなく国が精神病患者を収容する形に変わっていったのですが、当時沖縄はアメリカの支配下でした。
そのため、同等の法律ができる昭和35年まで、症状の激しい人以外は一般の人と共に社会生活を送ることとなったわけです。

一応、沖縄でも支配下に置いたアメリカによって設立された米軍政府病院において昭和20年に精神科が開設され、昭和23年に精神病床が、そして昭和25年に精神病院が設立されています。

そして、本土復帰以降は沖縄には多くの精神病院が設立されました。
しかし、その頃には精神医学でも「カミダーリ(憑依)」などは精神解体というよりは、人間の示す積極的な営為の一つであるというように、憑依現象に対して肯定的な見方もなさ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現在でも「医者半分、ユタ半分」という習慣もあるようです(医者がユタを勧める)。
確かに、本土でも隔離中心のそれ以前の精神医学のありかたに対する反省も起こっていた頃で、「カミダーリ」を「精神疾患」という枠にはめ、治療すべきものとすることに疑問が投げかけられました。
いわゆる「憑依(狂気)の有効性」が精神科医により指摘されたのです。
それゆえ、沖縄は日本本土や西洋近代社会との比較において「憑依(の一部)を肯定する社会」という特異性を現在まで持ちえる事が出来たと捉える事も出来ます。

 

平成の世でも、こと人間の精神活動において、科学が万能たるところまでは到達できていないようです。
少なくとも現在のこの分野では、科学よりも信仰等の方が有効打たりえる場合もあるという証左になるかと。。。
救われるのであれば、科学でも信仰でも私は構わないと考える次第です。。。

 

 


さて、個人に憑く「憑き物」とは異なり、一族に憑くという「憑き物筋」に話を移してみたいと思います。

この分野に関しては、小松 和彦氏という方が憑霊信仰論の中でいろいろ論じていらっしゃいます。

その中で、「憑きもの筋」の信仰に関わる重要な要素として、それが村落共同体の中でも比較的富裕な家に多く見られるということが分かっているそうです。
しかも、豪農など旧来から村落に居住していた家に対してはこういった信仰はみられず、二次的に外部から移住してきた家が財を成した場合に、その家が「憑き物筋」と見られることが多いとのこと。
つまり、憑きもの筋の多くは「よそ者の成り上がり者」であり、これが憑き物筋の信仰に深く関係していると推察できます。

村落のような閉鎖社会においてその共同体構成員の共同体内部に存在する富のイメージとして、「富、愛情、好運などは限られた量しかない」という認識方法が一般に存在しています。
昔からの富豪はもともと裕福だったのだから、他の共同体構成員にとって何の関係もないが、二次的な移住者が短期間で富を蓄積すると、他の構成員にとって、


「あの家は他人の富を横取りして豊かになった」
「あの家が豊かになったということは別の誰かの家が貧しくなったということだ」

という認識が生まれます。
これが村人達の被害者意識を増長させ、「よそ者の富は不法な手段で手にいれたもの」という妄想から誹謗中傷を生じさせ、「憑き物筋」という説明体系が生まれてきたのではないか、と論じています。

 

江戸時代は士農工商の身分制度が確立し、階級間の流動性が殆どなくなって、それまで全国を流浪していた下級の聖、遊行僧、芸人たちが定住を強いられた時代でもありました。
つまり村落共同体に二次的移住者が増加したわけです。
そして、江戸時代は貨幣経済が全国的に普及した時代でもあり、閉鎖的な農村の住民においても、隣村や都市と交易をすることにより、商業的才覚や好機さえ?めば、飛躍的に富を蓄積することが出来るようにもなった時代でもありました。
しかし、農村の多くの住民にはこれらの経済システムが理解不能であり、自給自足の村落共同体で富を集中させるために、「よそ者」が「憑き物」を使役しているという「説明」を容易に受け入れることになったとしています。

また「憑き物筋」とされる家系の者達も、その多くが村人に流布する悪評を裏付けるように、自らを「憑き物筋」と認め、それらの動物霊を神として祀っていたところが多いというのは面白いところでしょう。
かつては畏れられることによるメリットが十分にあったのでしょうね。

 

この説の真偽の程はさておき、非常に面白い説であると思います。
「憑き物筋」に対する説の真偽は別に、この様な村社会、閉鎖社会で有効だった「説明体系」による不公平感、不満を心理的に納得させる手法は、現在でも生きていると思っています。
そしてこのロジックを利用したこの種の「呪詛(jyuso)」は、現代社会でも効果的だと考えます。
その閉鎖集団の思考体系さえ理解していれば「呪(syu)」をかけることができる訳ですので…

 

逆に「説明体系」を解体する事による「憑き物落し」もできるのでしょうし、現在それを職業にされている方もいるのでしょうね。

 

今回はこんなところ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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