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이번 이야기는「반도에 있어서의 몇개의 전염병에 관해서, 총독부 시대의『숫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는」입니다.

 이 이야기에 걸리기 위해서 한번 더 반도의 근대사를 종종걸음으로 재검토하거나 법령집에 고개를 갸우뚱해 충분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하지만 기본이「물건이 충분해」의 사람이므로, 가능한 한 물건에 해당되고 싶은 상황에 해당되고 싶다고 하는 일로 없는 지혜를 비튼 결과 없는 방향의 자료를 모레 내립니다.결과 밑거름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정보도 몇개인가 취할 수가 있던 것은 요행입니다만, 조금 지금 찾고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만약 무엇인가 참고가 되는 것이 있으면 교수 받으면 다행입니다.고고・문헌 뭐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위생-세탁-라고 하는 것을 조사하고 있고 거기에 간신히 도착해 버렸습니다만, 그것은『다듬잇돌』입니다.다듬이질, 세탁 후에 다리미가 비교적 사용된 목제의 도구로, 일본에서는 고고 유물로서의 산견과 문헌상 가마쿠라 시대위로부터 볼 수 있다라는 일입니다만, 넷상의 이야기에서는 반도의 문헌은 18 세기 이전의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든가, 고고 유물로서의 다듬이질에 이르러 반도의 물건은 현재 찾아낼 수 있고 있지 않습니다.복식사에 관한 분야이며, 하늘구는 비단의 전파에 수반해 유입해 온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현재 형편없습니다.
 덧붙여서 불정사각형의 색종이는 중국으로부터 간접・직접으로 일본에 들어간 일은 명확합니다만, 이쪽은 에도시대 이전에는 일본에서의 발굴예는 부족하고, 에도기 이후에 급격하게 보급했다고 생각됩니다.반도에서는 우선 뵐 수 없습니다만, 메이지 말년의 사진에서는 저고리를 입어 불정사각형의 색종이를 맞히고 있는 여성, 이라고 하는 잎새가 있어, 적어도 전혀 사용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아닌(다만 개국 후일책으로부터 유입한 가능성은 있다) 것만 판명되어 있습니다.

그럼에서는.
 
 우선 총독부 시대의 전염병 환자의 발생에 대한 숫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기본으로 된 자료 통계는
『위생국 연보 』(매년다음)
『일본 제국 통계연감 』(매년다음)
『법정 전염병 통계 』(T13:1923)
『조선 총독부 통계 연보 』(매년다음・중심적 자료)
『통감부 통계 연보 』
『대만 총독부 통계서 』(매년다음)
전후의 한반도의 인구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인구 전환과 그 변동 요인의 분석 』(미우라 요코:치바 경제 논총29;2004)에 의했습니다.원자금료는 한나라 통계연감 등.

문제인 것은 각각 통계로 발견된 집적 기간이 가지각색인 일입니다.대만・조선 총독부가 성립하기 이전의 현지의 정보는 찾아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하와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1 일본(이하 많은 경우「내지」와 표기하는 일이 됩니다)의 통계는 M27(1894) -S10(1935)까지 밖에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2 대만에 대해서는 M32(1899) -S4(1929)라고 날아 S17(1942)를 발견
3 관동주・가라후토청 등은 타이쇼로부터 쇼와 초두 정도를 발견(다만 이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4 한반도는 M43(1910) -T14(1925)까지는 내지인・한국인별의 정보가 있지만, 이후 S17(1942)까지는 조선 전체 밖에 없고, S9(1934) ・S15(1940) ・S17(1942)에 대해 구별된 정보가 있었습니다.

정보 자체는 각각 놓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적어도 1942의 조선 총독부 연보의 자료로부터 생각해도 내지・대만에서도 수집은 행해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조선 총독부 연보로조차 제반의 사정(아마 지면의 사정)으로 내지인・한국인별의 자료를 게재해 (안)중등, 정보로서 통일된 개념이 없었던 것, 전쟁의 혼란으로 결정된 자료로서 출판되지 않은 채 끝난 가능성, 앞으로 최후는 도서관에 수장 되지 않은지, 나의 검색이 서투른 일.마지막이 상당히 가능성대입니다.탄식.특히 내지의 쇼와 10-15의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은 것이 유감입니다.

따라서, 각지의 정보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M43(1910) -S4(1929)

의 20년 정도에 머무릅니다.

한반도 자체에서는

M43(1910) -T14(1925) 한국인・내지인까지 비교 가능
M43(1910) -S17(1942) 반도 전체의 상황을 확인 가능

모든 전염병에 대해 대개 같은 상황입니다.브로드 소도는 손에 넣었는데 방패는 남비의 뚜껑이라든지, 발 밑은 맨발이라든지, 그런 느낌입니다.아무튼 드래곤 사냥하러 가는 것도 없기 때문에 이대로 가는 일로 합니다(이제 더이상 카피 하러 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게훈게훈 …).


그래프 1 수집할 수 있던 전염병 정보의 데이터의 존재 기간

 그런데, 천연두.
 적어도 이씨 조선의 단계에서 인 두법의 수용, 지석영에 의한 총독부 이전의 종두와 다른 전염병에 비해 다소나마 방역 체제가 만들어져서 있었습니다만, 한정적인 물건이었다고 추측됩니다.단지, 요즘의 종두는 계속적으로 계속할 필요가 있어, 언제라도 넓힐 수 있는 환경은 갖추어지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개국으로부터 통감부 시대에 대해서는 뚜렷한 문헌은 없습니다만, 내지인용의 병원에서는 원칙으로서 거류자 이외로의 종두를 하지 않고(통계가 없다), 예외적으로 거류지에 출입하고 있는 한국인・그리고 그 가족에 대해서 종두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적어도 연못과 같이 종두법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기질 자주(잘) 전수하고 있는 것, 계속적인 종두를 실시하지 않으면  두묘를 유지할 수 없을 가능성이 있는 일로부터입니다.
또『통감부 임시 마지마 출장소 기요 』(M43:1910)에는 마지마자혜병원에서 한달에 200에서 800명, 2년간(M41-42)의 누계로 10641명의 한인의 치료를 실시했다고 있어, 전혀 한국인에 대해서 어프로치를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지 않았습니다.※1

※1 이 2년의 마지마로의 일본 사람의 치료는 1302명.분명히 말하고, 현지인용의 병원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환자는 회령군・부녕군등 , 마지마 이외로부터의 사람도 많았다고 하고 있습니다.종두는 기꺼이 받고 있었다(희테지구무르노장 개미)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실인원수의 데이터.이것은 비교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네요.역시 인구비등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그렇지만 굳이 여기서 올려 본 것은, 그 대인구, 라고 말하는 곳(중)에 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입니다.내지에서조차 등록된 인구에 흔들려가 있는 일은 틀림없고, 하물며 한반도에서는 여러분 아시는 바대로 1910-15당의 폭발적 인구증가가 반대로 노이즈에조차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프 2 천연두 환자의 수※2


그래프 3 천연두 사망자의 수※2

※2 이 환자 사망자라고 하는 것은 조금 빛좋은 개살구로, 천연두에 걸린 결과 의사(병원)에 걸려, 그 후 죽은 수라고 생각됩니다.법률상은 법정 전염병에 걸렸을 경우 신속하게 신고하고 여주인이 지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만, 통상의 반도・대만의 의료 기관 이용율에서는 현지인은 대개 1할에 못 미친 수이며, 대유행한 해는 연보의 숫자 이상의 이환자・사망자가 나온 가능성이 있습니다.검토할 때 의식할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특히 천연두와 같이 이환시에는 송곳과 증상이 나오는 것은 어쨌든, 그 외의 몇개인가에 대해서는 실수 이상의 피해가 나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수와 사망자수는 거의 링크하고 있어, 내지에 있어서의 1896 부근의 대유행은 콜레라의 대유행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또 1909에 대유행하고 있습니다만, 이쪽은 잘 모릅니다.혹시, 대륙과의 교류가 지극히 커진 영향인지도 모릅니다.그리고 1917-20에 걸쳐 유행하고 있습니다.특히 1919-20에 걸쳐 하나산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스페인 감기의 영향은 아닐까 생각합니다.다른 전염병도 유사 경향이 인가, 무엇인가 하나 큰 병이 유행하면 다른 병도 유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이것은 아주 당연한 이야기로 대유행한 병에 의해 체력이 없어지고 있는 곳(중)에 다른 병이 덮치는 것입니다.천연두의 경우 종두에 의해 그 경향은 없앨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역시 선감이 미약(분명하게 항체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자의 존재 등, 문제는 있었으므로 막지 못했다 것이지요.또, 큰 병이 유행하는 일에 의해 의료 기관이 펑크, 일손부족, 약품의 결핍등이 유발되어 통상의 방역 체제가 무너져 간다고 하는 일도 있었겠지요.
이「무엇인가가 유행하면 외도 끌리는」경향은, 다른 전염병에도 현저하게 나타납니다.특히 1919-20은 모든 전염병이 만연합니다.공해 판데믹크.이후 이 이야기로 판데믹크기, 라고 나오면 이 1919-20을 가리킨다고 생각해 주세요.
대만도 이 해는 내지와 같은 상황이 작은 대로 일어나고 있으므로, 천연두에 대해서는 내지와 대만에서의 상황은 가까운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특이한 것은 대만에서는 통계가 놓치고 있는 대부분의 해에 천연두 환자가 나와 있지 않은 것.여기는 정보를 검토하고 처음으로 깨달았으므로, 이 이야기를 생각하는 일을 끝내면 당시의 대만 정세 에 붙어 한번 더 확인할까하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청조 혹은 구미 열강의 영향으로 종두가 진행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지・대만에 대해, 조선에서는 약간 사정이 차이가 난 것 같습니다.1910 부근의 유행도, 1919 부근의 유행도, 내지에 약간 지각해 발생합니다.1918경부터 대륙 북부 경유로 콜레라가 대유행하는 것(후술 예정) 같게, 기본적으로 조선의 역병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유행하는 경향이 강합니다만, 천연두에 대해서는 혹시 일본 항로 경유였을지도 모릅니다.이 근처는 상세한 발생 경로등이 통계상에 나오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만, 내가 지역마다・월별의 발생수까지 정밀 조사 하고 있지 않는 것도 있어(시대에 의해서 이러한 정보는 남아 있습니다), 불명합니다.단지, 1919로부터의 대유행은 지극히 심각한 피해를 한반도에 가져왔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인원수만을 내도 어쩔 수 없을까 생각해, 대인구에 있어서의 발생율도 보았습니다.다른 전염병에 대해서도 같은 수식을 사용합니다.

발생율(‰)=환자수/당시의 인구*1000

별로 의미가 있는 수식은 아니네요.이런 곳은 더 공부해 두면 좋았다고 후회됩니다.그리고, 베이시스의 표`


孤盲猫を撫でる2 伝染病のお話1 天然痘-2 だらだら続くよどこまでも

 今回のお話は「半島におけるいくつかの伝染病に関して、総督府時代の『数字』を中心に考える」です。

 この話に掛かるために今一度半島の近代史をちょこちょこ見直したり、法令集に首をひねったりしているわけです。が基本が「モノがたり」の人なので、できるだけ物に当たりたい状況に当たりたいという事で無い知恵をひねった結果あらぬ方向の資料をあさっております。結果下肥の話につながるような情報もいくつか取る事ができたのは僥倖なのですが、ちょっと今捜しているモノがございます。もし何か参考になる事があればご教授賜れば幸いです。考古・文献なんでも構いません。
 衛生-洗濯-というのを調べていてそこにたどり着いてしまったのですが、それは『きぬた』であります。砧、洗濯後にアイロンがわりに使われた木製の道具で、日本では考古遺物としての散見と文献上鎌倉時代位から見られるとの事ですが、ネット上の話では半島の文献は18世紀以前のものが見あたらないとか、考古遺物としての砧に至っては半島のモノは今のところ見つけられていません。服飾史に関する分野であり、おそらくは絹の伝播に伴い流入してきたモノと思うのですが、今のところさっぱりであります。
 ちなみに火熨斗は中国から間接・直接で日本に入った事は明確ですが、こちらは江戸時代以前は日本での発掘例は乏しく、江戸期以降に急激に普及したと考えられます。半島ではまずお目にかかれませんが、明治末年の写真ではチョゴリを着て火熨斗を当てている女性、と言う一葉があり、少なくとも全く使用されてい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ただし開国後日本から流入した可能性はある)ことのみ判明しています。

ではでは。
 
 まず総督府時代の伝染病患者の発生についての数字についてお話しします。基になった資料統計は
『衛生局年報』(各年次)
『日本帝国統計年鑑』(各年次)
『法定伝染病統計』(T13:1923)
『朝鮮総督府統計年報』(各年次・中心的資料)
『統監府統計年報』
『台湾総督府統計書』(各年次)
戦後の朝鮮半島の人口については
『朝鮮半島の人口転換とその変動要因の分析』(三浦洋子:千葉経済論叢29;2004)によりました。原資料は韓国統計年鑑など。

問題なのはそれぞれ統計で見つかった集積期間がまちまちである事です。台湾・朝鮮総督府が成立する以前の現地の情報は見つけられないだけでなく、以下のような問題がありました。

1 日本(以下多くの場合「内地」と表記する事になります)の統計はM27(1894)-S10(1935)までしか見つけられませんでした。
2 台湾についてはM32(1899)-S4(1929)と飛んでS17(1942)を発見
3 関東州・樺太庁などは大正から昭和初頭くらいを発見(ただし今回は使いません)
4 朝鮮半島はM43(1910)-T14(1925)までは内地人・朝鮮人別の情報があるが、以後S17(1942)までは朝鮮全体しかなく、S9(1934)・S15(1940)・S17(1942)について区別された情報がありました。

情報自体はそれぞれ取られていたのだろうと思います。少なくとも1942の朝鮮総督府年報の資料から考えても内地・台湾でも収集は行われていたと思います。しかし朝鮮総督府年報ですら諸般の事情(おそらく紙面の都合)で内地人・朝鮮人別の資料を掲載しなかったなど、情報として統一された概念がなかったこと、戦争の混乱でまとまった資料として出版されないまま終わった可能性、あと最後は図書館に収蔵されてないか、私の検索が下手な事。最後のが結構可能性大なんですな。嘆息。特に内地の昭和10-15の情報が手に入れられてないのが残念です。

よって、各地の情報を比較できるのは

M43(1910)-S4(1929)

の20年程度にとどまります。

朝鮮半島自体では

M43(1910)-T14(1925) 朝鮮人・内地人まで比較可能
M43(1910)-S17(1942) 半島全体の状況を確認可能

全ての伝染病について大体同じ状況です。ブロードソードは手に入れたのに盾はお鍋のふたとか、足下は裸足とか、そんな感じです。まぁドラゴン狩りに行くわけでも無いのでこのまま行く事にします(もうこれ以上コピー取りに行くのが経済的にゲフンゲフン…)。


グラフ1収集できた伝染病情報のデータの存在期間

 さて、天然痘。
 少なくとも李氏朝鮮の段階で人痘法の受容、池錫永による総督府以前の種痘と、他の伝染病に比べて多少なりとも防疫体制が作られつつありましたが、限定的なものであったと推測されます。ただ、この頃の種痘は継続的に続ける必要があり、いつでも広げられる環境は整っ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開国から統監府時代についてははっきりした文献はありませんが、内地人用の病院では原則として居留者以外での種痘が行われておらず(統計がない)、例外的に居留地に出入りしている朝鮮人・そしてその家族に対して種痘が行われ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少なくとも池のように種痘法を求めるものに対しても気前よく伝授していること、継続的な種痘を行わないと痘苗が維持できない可能性がある事からです。
また『統監府臨時間島出張所紀要』(M43:1910)には間島慈恵病院で月に200から800人、2年間(M41-42)の累計で10641人の韓人の治療を行ったとあり、全く朝鮮人に対してアプローチをしていなかったわけでもありませんでした。※1

※1 この二年の間島での日本人の治療は1302人。はっきり言って、現地人用の病院と言っていいと思います。患者は会寧郡・冨寧郡等、間島以外からの者も多かったとしています。種痘は喜んで受けていた(喜テ之ヲ求ムルノ状アリ)としています。


 まず、実人数のデータ。これは比較するというのは結構難しいですね。やはり人口比とかで考えるべきなのかもしれません。でもあえてここで揚げてみたのは、その対人口、と言うところにかなり問題があると思われたからです。内地ですら登録された人口に揺れがある事は間違いなく、まして朝鮮半島では皆さんご存じの通り1910-15あたりの爆発的人口増加が逆にノイズにすらなるからです。


グラフ2天然痘患者の数※2


グラフ3天然痘死者の数※2

※2 この患者死者というのはちょっと食わせ物で、天然痘にかかった結果医師(病院)にかかり、その後死んだ数と思われます。法律上は法定伝染病にかかった場合速やかに届け出てお上の指示を仰ぐ必要があるのですが、通常の半島・台湾の医療機関利用率では現地人はおおむね1割に満たない数であり、大流行した年は年報の数字以上の罹患者・死者が出た可能性があります。検討するときに意識する必要があろうかと思います。特に天然痘のように罹患時にはっきりと症状が出るものはともかく、その他のいくつかについては実数以上の被害が出たと考えるべきだと思います。


患者数と死者数はほぼリンクしており、内地における1896近辺の大流行はコレラの大流行の影響があるかもしれません。また1909に大流行していますが、こちらはよく分かりません。もしかしたら、大陸との交流が極めて大きくなった影響なのかもしれません。そして1917-20にかけて流行しています。特に1919-20にかけてひとつ山がありますが、これはスペイン風邪の影響ではないかと思っています。他の伝染病も類似傾向が認められますが、何かひとつでかい病気が流行すると他の病気も流行する傾向があります。これは至極当然な話で大流行した病気により体力が無くなっているところに別の病気が襲うわけです。天然痘の場合種痘によりその傾向はなくせそうなのですが、やはり善感が微弱(ちゃんと抗体ができていなかった)者の存在など、問題はあったので防ぎきれなかったのでしょう。また、大きな病気が流行する事により医療機関がパンク、人手不足、薬品の欠乏などが誘発され、通常の防疫体制が崩れていくという事もあったのでしょう。
この「何かが流行るとほかもつられる」傾向は、他の伝染病にも顕著に表れます。特に1919-20は全ての伝染病が蔓延します。恐るべしパンデミック。以後この話でパンデミック期、と出てきたらこの1919-20を指すと思ってください。
台湾もこの年は内地と同様の状況が小さいなりに起きているので、天然痘については内地と台湾での状況は近いものだったと思われます。特異なのは台湾では統計の取られているほとんどの年で天然痘患者が出ていない事。ここは情報を検討して初めて気がついたので、この話を考える事を終えたら当時の台湾情勢について今一度確認しようかとも考えていますが、清朝もしくは欧米列強の影響で種痘が進んでい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ています。
 内地・台湾に対し、朝鮮ではやや事情が違っていたようです。1910近辺の流行も、1919付近の流行も、内地にやや遅れて発生します。1918頃から大陸北部経由でコレラが大流行する(後述予定)ように、基本的に朝鮮の疫病は北から南に流行する傾向が強いのですが、天然痘についてはもしかしたら日本航路経由であったのかもしれません。このあたりは詳細な発生経路などが統計上にでていない事もありますが、私が地域ごと・月別の発生数まで精査していない事もあり(時代によってこれらの情報は残っています)、不明です。ただ、1919からの大流行は極めて深刻な被害を朝鮮半島にもたらしたと考えていいでしょう。

 さて、単に人数だけを出しても仕方ないかと思い、対人口における発生率も見てみました。他の伝染病についても同様の数式を使います。

発生率(‰)=患者数/当時の人口*1000

あんまり意味のある数式ではないですね。こういうところはもっと勉強しておけばよかったと悔やまれます。あと、ベーシスの方がよかったかなぁ。


グラフ4 天然痘発生率(‰)

朝鮮人と朝鮮人全体の発生率がほぼ同じなので少々分かりづらいですが、朝鮮半島では以下の事が起きていました

1 内地人(日本人)の天然痘は1910から急激に発生率が下がり、天然痘は一旦撲滅されたかに見えます。これは内地人の人口が17万から30万まで急激に増加した事によるところも大きいのですが、それ以上に患者が100人から1人まで減るということに起因しています(以後パンデミック期を除き多くても100人程度)。

2 朝鮮人では1913まで毎年4桁の患者が出ています。グラフには入れられませんでしたが(総人口が不明のため)1908の1443人、1909の4260人と、少ない年でも1500人近く、多い年では4000人を超す患者が出ています。死亡率も20から25%と、かなり高い値。

3 1913になると、急激に朝鮮人の発生率が下がります。これも人口の増加よりも患者数(214)・死者数(33)が激減したためとみていいでしょう。死亡率もここで15%程度にさがり、種痘(予防)だけでなく治療も機能してきた事が分かります。

4 その後内地人・朝鮮人どちらも天然痘の脅威は去ったかに見えたが、パンデミック期に突然発生率が上がります。特に1920は内地人が患者1291人・死者288人と爆発的な猛威をふるい、死亡率も20%超え。朝鮮人はこの年患者数10224人・死者3321人、死亡率30%と、深刻な被害を出しています。

5 1921には朝鮮半島全体でパンデミックからの立ち直り傾向を示し、1924にはほぼ流行が止まったと見ていいでしょう。これは内地人・朝鮮人共に同じ傾向を示しています。すなわち「医療」、特に伝染病については総督府は内鮮の区別無く治療防疫に当たっ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

6 その後の昭和時代について内地人の情報が乏しくなりますが、1933(全体で4928)・1941(同4720)と、小さい流行を繰り返しています。たとえば1940の情報を見ると以下の数字が見て取れます

内地人患者   135 死者    5
朝鮮人患者 3128 死者 611

内地人ではこうした流行時でも患者数は拡大せず、もっぱら朝鮮人が天然痘にかかっている事がはっきり分かります。死亡率も内地人が4%程度なのに対し、朝鮮人では20%近く、統監府時代に近い数値を示します。

 種痘に関しても検討はしてみたのですが、こちらは何回か受けてどこかで善感が出るとおしまいと言うもので、実際に善感になった人数がどれくらいなのかと言う事はよく分かりませんでした。なので、本当は検討しなくてはならないのですが、ここでは泣く泣く割愛します。

3については『最近朝鮮事情』(T2:1913)の伝染病の項目に以下のような記述が見えます。(当該405-406Pより抜粋・旧字等多少手直しあり)。あくまで日本から見た状況ですが、この辺が実情でありこの傾向が残ってしまった部分があるのでしょう。

…(ロ)痘瘡 痘瘡ハ朝鮮ニ於テハ殆ド地方病ノ観ヲ呈シ古来ヨリ四季ヲ通ジ各地ニ発生シ年年多少ノ流行ヲ見サルハナシ故ニ種痘ノ普及ニ就テハ特ニ力ヲ致シ一般ニ厲行(励行)シツツアリ然レトモ衛生思想ノ尚幼稚ナル朝鮮人間ニ於テハ痘瘡ハ人生必ス経過セサルヘカラサルモノニシテ到底人力ヲ以テ済フヘカラサル災厄ナリトシ之ニ対シテ毫モ予防ノ方法ヲ講セサルノミナラス同病ニ罹ルヲ以テ寧ロ自然ノ命数ナリト思惟スル者多シ況ヤ種痘ノ効力ヲ解スル者ノ如キハ極メテ鮮少ニシテ官ヨリ種痘施行ノ命ヲ受クルヤ徒ニ疑懽ノ念ヲ抱キ之ヲ忌避スル者多ク甚シキハ往往故ラニ隠遁奔竄ヲ企ツル如キ状況ナリ故ニ種痘ノ施行ニ際シテハ各警察官憲兵ニ於テ努メテ其ノ迷信ヲ誠諭シ種痘ハ痘瘡予防ノ最善ナル唯一ノ良法ナルヲ示シタル結果近時漸ク之ヲ受クル者多キヲ加フルニ至レリ…


これらの事から考えられる事は

1)1910総督府に政治が移行した時点では種痘の効果がまだはっきりと現れていない、すなわち李氏朝鮮から大韓帝国で行われていた種痘は極めて限定的であったと考えられます。

2)1913、すなわち3年強を経てようやく朝鮮半島での天然痘は種痘の効果が出てきて、患者数を減らす事に成功します。これは総督府が伝染病防疫に力点を置いていたからです。

3)1919-20のパンデミック期の治療等に関しては内鮮の区別はなく行われていた形跡が認められます。

4)その後内地人にはほとんど天然痘が出なくなりますが、朝鮮人にはだらだらと患者が残ります。人口比のため発生率などは低下していますが、患者数自体は総督府直前(統監府時代)を超える人数の年もあり、種痘が朝鮮人には完全には浸透していなかった事が分かります。

後述する事になるかと思いますが、年齢別の伝染病による死者数は明治末年と大正末年では明らかに傾向が違います(明治末は全体に広がるが、大正では若年層に集中していく)。ですので親が赤ん坊にすぐ種痘を行わなかったなどの結果、いつまでも天然痘が残ってしまったと思われます。
経済的な問題も絡んでいるとは思いますが『最近朝鮮事情』の状況が昭和まで続いていたならば、総督府の衛生教育が行き届いていなかったためだろうと思われます。少なくとも種痘は義務に近いものとして半ば強制的に行われましたし、その結果が1913以降の激減につながっています。また慈恵病院など朝鮮人は無料の医療施設も少なからず存在し、受けられなかった事はありません。
強いて言えば種痘施設(種痘所や慈恵医院・または学校など)に行くだけの経済力(交通費や学校に行かせるためのそれ)にも事欠いていたためかもしれませんが、そこを突っ込んでいくとそれだけで一冊分位ものを組み立てなきゃならなくなりそうなので、天然痘についてはここまでにしたく思います。

おまけ。朝鮮半島の人口動態のグラフも作ってみたのですが、何かこう不自然な部分が多い気がします。特に1940年代の統計断絶時にそんなに人口が増えたのかな?というのは疑問です。50年代にがくんと下がるのは朝鮮戦争の影響ですね。戦後は南北を足したあくまで推定値。


グラフ5 朝鮮半島推定人口


次は何を取り上げるべきなのかちょっと思案中。天然痘に次いで情報が多いのはコロリなのではありますが。なので次はちょっと時間があくと思います。年度末にもかかっちゃうしね。

おまけのおまけ(こっちがメインか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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