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豕) 元年 正月 太公摩帝薨 葬以王禮
(土豕(토시, 己亥)) 원년(AD159년) 1월, 太公(태공) 摩帝(마제)가 죽으니, 王(왕)의 禮(례)로서 장사지냈다.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원년, AD112년.
祇摩尼師今 立 或云祇味 婆娑王嫡子 母史省夫人 妃金氏愛禮夫人 葛文王摩帝之女也 初婆娑王獵於楡湌之澤 太子從焉 獵後 過韓歧部 伊湌 許婁饗之 酒酣 許婁之妻 携少女子出舞 摩帝伊湌之妻 亦引出其女 太子見而悅之 許婁不悅 王謂許婁曰 “此地名大庖 公於此 置盛饌美醞以宴衎之 宜位酒多 在伊湌之上” 以摩帝之女 配太子焉 酒多後云角干
지마이사금(祇摩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혹은 지미(祇味)라고도 하였다.> 파사왕(婆娑王)의 친아들이고 어머니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다. 왕비는 김씨(金氏) 애례부인(愛禮夫人)으로 갈문왕(葛文王) 마제(摩帝)의 딸이다. 일찍이 파사왕(婆娑王)이 유찬(楡湌)의 못 가에서 사냥할 때 태자(太子)가 따라 갔다. 사냥을 마친 후에 한기부(漢歧部)를 지나게 되었는데, 이찬(伊湌) 허루(許婁)가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얼근하게 취하자 허루(許婁)의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서 춤을 추었다. 이찬(伊湌) 마제(摩帝)의 아내 역시 자기 딸을 이끌고 나왔는데, 태자(太子)가 보고서 기뻐하였다. 허루가 언짢아 하자, 왕이 허루에게 말하였다.
”이곳 땅 이름이 대포(大庖)인데, 공은 이곳에서 잘 차린 음식과 맛좋은 술을 마련하여 잔치를 열어 즐겁게 해주었으니 마땅히 주다(酒多)의 위계를 주어 이찬(伊湌)보다 위에 있게 하겠다.”
그리고는 마제(摩帝)의 딸을 태자(太子)의 짝으로 삼았다. 주다(酒多)는 후에 각간(角干)이라 일컬어졌다.
*AD159년- AD112년= 47년 편차.
二月 上與愛后親祀祖廟 賜酺骨門 昌永伊飡 宮孝稟主 玉權水路 羊皇水母 啓其別軍使 申權吉飡 順宣斗胡級飡 翌宗京路 狗日京母 昕連護城大師
2월, 상은 愛后(애후)와 함께 친히 祖廟(조묘)에 제사지내고, 骨門(골문)에 酺(포, 酒食, 술과 음식)을 하사하였다. 昌永(창영)을 伊飡(이찬)으로, 宮孝(궁효)를 稟主(품주)로, 玉權(옥권)을 水路(수로)로, 羊皇(양황)을 水母(수모)로, 啓其(계기)를 別軍使(별군사)로, 申權(신권)을 吉飡(길찬)으로, 順宣(순선)과 斗胡(두호)를 級飡(급찬)으로, 翌宗(익종, 제거의 아들)을 京路(경로)로, 狗日(구일)을 京母(경모)로, 昕連(흔련)을 護城大師(호성대사)로 삼았다.
*酺(포)= 연회, 술, 酒食(주식)
三月 扶余使來吊先今 獻方物 上洗愛后女淡理
3월, 扶余(부여)의 사신이 와서 先今(선금)을 조문하였고 方物(방물)을 바쳤다. 상은 愛后(애후)의 딸 淡理(담리)를 씻어주었다.
*신라본기 지마이사금 2년, AD113년.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拜昌永爲伊湌 以參政事 玉權爲波珍湌 申權爲一吉湌 順宣爲級湌 三月 百濟遣使來聘
2년(113) 봄 2월에 몸소 시조묘에 제사지냈다. 창영(昌永)을 이찬(伊湌)으로 삼아 정치에 참여시켰다. 옥권(玉權)을 파진찬(波珍湌)으로 삼고 신권(申權)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았으며, 순선(順宣)을 급찬(級湌)으로 삼았다. 3월에 백제(百濟)가 사신을 보내와서 예방(禮訪)하였다.
*AD159년 -AD113년= 46년 편차. 지마이사금 2년- 지마기 1년= 1년 편차.
七月 上與太聖愛后遊音汁伐 試射士
7월, 상은 太聖(태성, 史后= 史省), 愛后(애후)와 함께 音汁伐(음즙벌)을 여행하였고, 射士(사사)를 시험하였다.
(土豕) 元年 正月 太公摩帝薨 葬以王礼
(土豕(トシ, 己亥)) 元年(AD159年) 1月, 太公(太公) 摩帝(磨製)が死んだら, 王(王)の 礼(例)として葬った.
*新羅本紀ジマイサグム元年, AD112年.
祇摩尼師今 立 或云祇味 婆娑王嫡子 母史省夫人 妃金氏愛礼夫人 葛文王摩帝之女也 初婆娑王獵於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