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A. 김석형의 일본 열도내 삼한, 삼국의 분국설

기원 전3-2세기, 고대 한국인등은 일본 서부에 이주하고, 농경민으로서 정착했다.

이것들은 니혼바라 주민등에 철제 기구의 사용과 벼농사를 포함한 새로운 농업기술을 가져왔다. 고대 한국인등은 1개소에 집주 했지만 이것은 곧 자치구내지는 왕국의 규모에 발전했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전란이 빈발했으므로, 전재로부터 피한 고대 한국인등이 차례차례 일본에 이주하게 되었다. 따라서 니혼바라 주민등에 비해, 고대 한국인 집단 거주지는 아득하게 먼저 선진적인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2 세기부터 6 세기에 걸치고, 한반도에서는 쿠타라, 신라, 고구려가 왕권을 굳혀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는 동안, 일본에서는 수많은 고대 한국인의 식민지마을이 형성되어 이것들은 본국의 한반도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가졌다.

4 세기에 들어가고, 일본내의 고대 한국인의 식민지는 보다 강력한 정치적 집단이 되어, 그 중 3개의 중심세력이 형성되었다. 첫번째는 나라를 중심으로 일본 동부 지역에 산 가야 이주민등이었다. 두번째는 이즈모와 길비지역의 신라 이주민등으로, 3번째는 큐슈 북부를 차지한 (쿠다라)백제인등이었다. 이것들3 지역은 말대로 일본내의 고대 한국의 식민지에서 만났다.


B. 일본 열도내 삼한, 삼국의 분국에 대한 일본인의 조상신의 증언

“우리는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에 건너 온 삼한, 삼국인입니다.”


고사기, 일본 서기의 기록

1.고대 일본의 역사는 신라인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 일본 서기

1) 시시, 소잔명존, 수기자 50맹신, 강도어신라국, 거증시무이지처, 내흥언왈, 차지오불 욕구주거지, 수이점토작주, 승지동도, 도이즈모노쿠니절름이 카와카미 소재, 새우에노 봉우리

이 때, 소잔명존은 아들 50맹존을 따라”신라국”에 내려서 증시무이라고 하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이 토지는 내가 아프지 않은”이라고 하고 진흙으로 만든 배를 타고 동쪽으로 가, 이즈모의 절름이 카와카미류에 있는 새카미미네에 갔다.

[해설]스사노오는 하늘에서 신라국 Soshimori에 강림 해, 계속 되고 진흙으로 만든 배를 타 일본 열도의 이즈모노쿠니에 갑니다.여기서 Soshimori는 한국어로 Soshi (우지) + Mori(머리) 즉 현대 한국어로 Sou mori가 됩니다.Sou mori는 한자어로 소의 머리가 되어, 이마에원도(칸워드) 하루카와의 코치명이 소의 머리주입니다.고대에 소의 머리주는 신라의 토지였습니다.스사노오의 별명이 우두 천왕인 것은, 이 해석을 증명합니다.


2) 시시, 다카미무스비노 미코토, 내용진상복금, 뒤황손 청진 히코네화경경저존, 이배피천여덟 겹구름, 이봉강지. 고 칭차신, 왈천국뇨석언화경경저존. 우시, 강도지처자, 호왈양지습지타카치호 소에야마(=소포리능야마) 봉의

이 때, 다카미무스비노 미코토는 마루를 가리는 이불에서, 황손 청진 히코네화경경저존을 가리는 여덟 겹의 구름을 가라앉히고, 보냈다. 따라서 그 신을 천국뇨석언화경경저존이라고 한다. 그 때 내려 온 것을을 양지습의 타카치호의”소에야마”(=소포리능야마 =Sohorinoyama) 봉우리라고 칭한다.

소에야마는 Sohorinoyama라고 읽어, 신라의 왕도, 서벌(Sopor)을 음역한 것이라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판모토부토낭)

Sopori → Sohori

*황손 청진 히코네화경경저존은 확실히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손자입니다. 그러니까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는 확실히 신라인이지요.

 

 

2.고대 일본의 역사는 가야인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고사기

어시조지차지자향한국진 와 통립지어전이아침해지 곧 자국 석양지일조국야 고 차지심요시지조이, 어저진이시네 황거의 기둥포두사리, 어타카마가하라빙연다가사리이좌야.

이것에(이이예명이) 말하는 것을”여기는 한국(karakuni)을 바라보고 있어 카사사미사키와도 통하고 있어 아침 태양이 확실히 비치고 석양이 비치는 나라이므로 이쪽은 정말로 좋은 곳이다.”이렇게 말하면서 그쪽의 토지하 반석에 두꺼운 기둥을 지은 훌륭한 궁정을 만들어 하늘로 향해 고대 건축 양식을 높게 올리고 그 쪽에서 살았다.

[해설]큐슈는 일본 열도안으로 한국과 제일 가까울 뿐만 아니라 고대 한국인이 일본 열도안으로 제일 최초로 건너고 가 연 참이다. 천신의 자손이 하늘에서 공자와 큐슈에 내려 왔다는 (일)것은 한국(특히 가야)에서 건너 온 고대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와 같이 되면 큐슈안에서도 고대 한국인이 거주한 것에 천신의 자손이 강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강림 1개소의 방향이 본래 고대 한국인이 산 나라 즉 한국(특히 가야)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매우 길 1개소라면 감탄이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고대 한국인이 제일 최초로 건너고 간 지역이며, 고대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거주한 장소에 천신의 자손이 강림과 그 쪽이 그들이 떨어져 온 한국(특히 가야)을 향하고 있어 매우 좋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천신의 자손의 고향이 한국(특히 가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고대 일본의 역사는 (쿠다라)백제인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 일본 서기
급지산시, 먼저 이아와지주 때문포, 의소 불쾌, 고 명 지왈아와지주.유생 대일본 토요아키진주

자식을 낳을 때에 이르고, 먼저”아와지”(Tamuro) 주를 포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로”아와지”(Awaji) 주라고 했다. 다음에”대일본”토요아키진주를 낳았다.

[해설]”끝에 아와지주를 포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로 아와지주라고 하는”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아와지주라고 했는데, 아와지주라고 하는 단어에는 조금도 어떤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문장은 명확하게 잘못된 문장이다.그러나 전의 아와지주를 Tamuro로, 후의 아와지주를 Awaji로 읽으면 이 문장은 무슨 결함이 없어진다. 일본 서기의 저자는 확실히 이 문장을 통해서 일본이 (쿠다라)백제의 지방관제의 아와지(Tamuro)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오야시마 생성에 대한 신화는 실은 일본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면 안 된다.

.(쿠다라)백제를 Kudara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Ku(대) + Dara(=Damuro=담노=아와지=국)라고 하는 뜻이다.
즉 22의 (쿠다라)백제담노를 수습하는 대국(kudara)이라고 하는 뜻이다.
일본 서기 저자가 아와지(Damuro)를 Damuro라고 읽지 말고 Awaji라고 읽은 것은 일본의 생성의 비밀 (쿠다라)백제의 담노(=아와지)로서의 일본을 생각하는 것 조차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사기

(1) 이쿠코, 물에비스, 차자자입갈대배이류거

아들을 낳으면 물에비스에서 만났다. 이 아들을 위복(배, 배)에 넣어 흐르도록(듯이) 했다.

(2) 차생, 담 시마, 시역후뉴우자지례

차남을 낳으면 아와시마에서 만났다. 이것 역시 아들의 예에 넣지 않았다.

(3) 이쿠코, 담도지수지협별 시마

아들을 낳으면 담도(Tamuro) 지수지협별 시마라고 했다.

[해설]상의 내용을 보면 일본의 남녀 시조신이 아들을 순서에 3에서도 낳았지만 최초 아들과 차남은 신체장애 아동으로서 아들 역할을 할 수 없어서 버렸고, 3번째의 아들이 최초 아들과 차남의 대신을 하고, 장남이 된 것을 안다.확실히 여기의 최초와 두번째는 일본 열도에 있던 신라, 가야계 왕조를 의미하고, 3번째는 (쿠다라)백제계 왕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신라, 가야계 왕조는 (쿠다라)백제계 왕조보다 먼저 일본 열도에서 분국을 설치하고, 그 지역을 치료했지만, 후일에 등장한 (쿠다라)백제계 왕조에 의해서, 그 명맥이 끊어지거나 (쿠다라)백제계 왕조에 흡수되어 버렸던 것이다.

 

혹시 일본 열도 시코쿠에 있는 아와(Awa)에서 담도나 아와지의 어원을 추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후대의 사실을 선대의 사실이라고 느끼려고 하는 어리석음과 같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담도, 아와지의 어원이 닫는(Tamur)는 고구려 초기 즉 서기전 1 세기까지 소급 하는 긴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고, 5 세기의 중국 고대 역사 서적량서, 주서 등에 담노(Tamuro)가 (쿠다라)백제의 지방관제로서 기록되고 있기 (위해)때문이다.

그런데 Awa는 1개소에만 있는 고대 지명이 아니다. 지금의 치바현의 남부가 고대 지명이 안보(Awa)에서 만났고, 또 지금의 토쿠시마현이 고대 지명이 아와(Awa)에서 만났다.고사기를 보면 일본의 남녀 시조신등이 아와시마 즉 Awajima를 낳았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런 것에도 이 Awajima는 그들의 아들에게 포함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아와시마(Awajima)는 일본의 역사의 기원이란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는 의미이다. 고사기의 저자도 아와시마(Awajima)를 담도(Tamuro)와 관련시키지 말아라 라고 후손등에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일본어 Tamuro(둔)는 a war camp(진영)의 뜻이 있다.왜 Tamuro가 a warcamp(진영)의 뜻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Tamuro(담노=아와지)의 장, 즉 (쿠다라)백제의 후국의 관리(=Tamuro)가 무장이었기 때문에다. 고대 한국의 삼국시대에는 지방 공무원은 문관과 동시에 또 무관이었다. 중국 대륙이나 일본 열도에 진출하고, 전쟁으로 (쿠다라)백제의 새로운 영토를 확보해야 하는 중대 있는 역할이 주어진 Tamuro가 A War Camp(진영)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re:百済

A. 金錫亨の日本列島内三韓,三国の分国説 紀元前3-2世紀,古代韓国人らは日本西部に移住して,農耕民として定着した。 これらは日本原住民らに鉄製器具の使用と稲作を含む新しい農業技術をもたらした。 古代韓国人らは一ケ所に集住したがこれはまもなく自治区ないしは王国の規模へ発展した。 韓半島では三国が形成される過程で戦乱が頻発したので, 戦災から逃れた古代韓国人らが順次日本に移住することになった。 したがって日本原住民らに比べて,古代韓国人集団居住地ははるかに先に先進的な文明を持っていた。 2世紀から6世紀にかけて,韓半島では百済,新羅,高句麗が王権を固めて強力な国家が形成される間、日本では数多くの古代韓国人の植民地村が形成され, これらは本国の韓半島と持続的に関係を持った。 4世紀に入って,日本国内の古代韓国人の植民地はより強力な政治的集団になり, そのうち3つの中心勢力が形成された。 一番目は奈良を中心に日本東部地域に住んだ加羅移住民らだった。 二番目は出雲と吉備地域の新羅移住民らで, 三番目は九州北部を占めた百済人らだった。 これら三地域は言葉どおり日本国内の古代韓国の植民地であった。 B. 日本列島内三韓,三国の分国に対する日本人の祖先神の証言 ¥"私たちは韓半島から日本列島へ渡ってきた三韓,三国人です。¥" 古事記,日本書紀の記録 1.古代日本の歴史は新羅人によって始まりました。 * 日本書紀 1)是時,素残鳴尊,帥其子五十¥猛神,降到於新羅国,居曽尸茂梨之処,乃興言曰,此地吾不欲居,遂以埴土作舟,乗之東渡,到出雲国跛川上所在,鳥上之峰 この時, 素残鳴尊は息子五十¥猛尊を連れて¥"新羅国¥"に降り立ち曽尸茂梨という所に着いた。 しかし¥"この土地は私がいたくない¥"と言って泥で作った船に乗って東へ行き,出雲の跛川上流にある鳥上峰に行った。 [解説]スサノオは空で新羅国Soshimoriに降臨し,続いて泥で作った船に乗って日本列島の出雲国に行きます。ここでSoshimoriは韓国語でSoshi (牛之) + Mori(頭)すなわち現代韓国語でSou moriになります。Sou moriは漢字語で牛頭になり,今江原道(カンウォンド)春川の古地名が牛頭州です。古代に牛頭州は新羅の土地でした。スサノオの別名が牛頭天王であることは,この解釈を裏付けます。 2)是時,高皇産霊尊,乃用真床覆衾,裏皇孫天津彦根火瓊瓊杵尊,而排披天八重雲,以奉降之. 故称此神,曰天国饒石彦火瓊瓊杵尊. 于時,降到之処者,呼曰日向襲之高千穂添山(=曽褒里能¥耶麻)峰矣 この時、高皇産霊尊は床を覆う布団で,皇孫天津彦根火瓊瓊杵尊を覆う八重の雲を散らして,送った。 したがってその神を天国饒石彦火瓊瓊杵尊という。 その時降りてきたところを日向襲の高千穂の¥"添山¥"(=曽褒里能¥耶麻=Sohorinoyama)峰と称する。 添山はSohorinoyamaと読み,新羅の王都,徐伐(Sopor)を音訳したものだとする説があります。(板本太郎) Sopori → Sohori *皇孫天津彦根火瓊瓊杵尊はまさに天照大神の孫子です。 だから天照大神はまさに新羅人でしょう。 2.古代日本の歴史は加耶人によって始まりました。 *古事記 於是詔之此地者向韓国真来通笠之御前而朝日之直刺国夕日之日照国也故此地甚吉地詔而、於底津石根宮柱布斗斯理、於高天原氷椽多迦斯理而坐也。 これに(迩迩芸命が)言うことを¥"ここは韓国(karakuni)を眺めていて笠沙岬とも通じていて朝太陽がまさに映って夕日が映る国なのでこちらは本当に良いところだ。¥"と言いながらそちらの土地下磐石に厚い柱をたてた立派な宮廷を作って空に向かって千木を高く上げてそちらで生きた。 [解説]九州は日本列島中で韓国と一番近いだけでなく古代韓国人が日本列島中で一番最初に渡っていって切り開いたところだ。 天孫が空で恐紫と九州に降りてきたとのことは韓国(特に加羅)から渡ってきた古代韓国人が居住していたとのことを意味して,このようになれば九州の中でも古代韓国人が居住したところに天孫が降臨したとのことを意味する。 そうして降臨1ヶ所の方向が本来古代韓国人が生きた国すなわち韓国(特に加羅)を向かっていたので非常に吉1ヶ所だと感嘆の声をあげたのだ。 言い換えれば古代韓国人が一番最初に渡っていった地域であり,古代韓国人が集団的に居住した場所に天孫が降臨とそちらが彼らが離れてきた韓国(特に加羅)に向かっていて非常に良いというのはまさに天孫の故郷が韓国(特に加羅)というものを意味することだ。 3.古代日本の歴史は百済人によって始まりました。 * 日本書紀 及至産時,先に以淡路洲為胞,意所不快,故名之曰淡路洲.楢生大日本豊秋津洲 子供を産む時に達して,先に¥"淡路¥"(Tamuro)洲を胞でした。 気に入らなかった。 故で¥"淡路¥"(Awaji)洲といった。 次に¥"大日本¥"豊秋津洲を産んだ。 [解説]¥"先に淡路洲を胞でした。 気に入らなかった。 故で淡路洲といった¥"気に入らないので淡路洲だといったのに,淡路洲という単語には少しもどんな否定的な意味が入っていない。 したがってこの文章は明確に誤った文章だ。しかし前の淡路洲をTamuroで,後の淡路洲をAwajiで読めばこの文章は何の欠陥がなくなる。 日本書紀の著者はまさにこの文章を通じて日本が百済の地方官制の淡路(Tamuro)で始まったとのことを記録していることだ。 この大八洲生成に対する神話は実は日本の歴史的起源に対する記録ということを分からなければならない。 .百済をKudaraという。 これは何の意味なのか? Ku(大) + Dara(=Damuro=担魯=淡路=国)という意だ。 すなわち22ヶの百済担魯を治める大国(kudara)という意だ。 日本書紀著者が淡路(Damuro)をDamuroと読まないでAwajiと読んだことは日本の生成の秘密百済の担魯(=淡路)としての日本を考えることさえしたくないためだ。 *古事記 (1)生子、水蛭子、此子者入葦船而流去 息子を産むと水蛭子であった。 この息子を葦腹(船,梨)に入れて流れるようにした。 (2)次生、淡嶋、是亦不入子之例 次男を産むと淡島であった。 これやはり息子の例に入れなかった。 (3)生子、淡道之穂之狭別嶋 息子を産むと淡道(Tamuro)之穂之狭別嶋といった。 [解説]上の内容を見れば日本の男女始祖神が息子を順に三でも産んだが最初息子と次男は身体障害児童として息子役割をすることができなくて捨てたし,三番目の息子が最初息子と次男の代わりをして,長男になったことが分かる。まさにここの最初と二番目は日本列島にあった新羅,加羅系王朝を意味して,三番目は百済系王朝を意味することだ。 すなわち新羅,加羅系王朝は百済系王朝より先に日本列島で分国を設置して,その地域を治めたが,後日に登場した百済系王朝によって,その命脈が切れたり,百済系王朝に吸収されてしまったのだ。 ひょっとして日本列島四国にある阿波(Awa)で淡道や淡路の語源を推定する人があるがこれは後代の史実を先代の史実と感じようとする愚かさと同じだというだろう。 なぜなら淡道,淡路の語源の閉ざす(Tamur)は高句麗初期すなわち西紀前1世紀まで遡及する長い歴史的淵源を持っていて,5世紀の中国古代歴史書物梁書,周書などに担魯(Tamuro)が百済の地方官制として記録されているためだ。 ところでAwaは1ヶ所にだけある古代地名でない。 今の千葉県の南部が古代指名が安房(Awa)であったし,また今の徳島県が古代指名が阿波(Awa)であった。古事記を見れば日本の男女始祖神らが淡島すなわちAwajimaを産んだとなっているので,そうであることにもこのAwajimaは彼らの息子に含まれない。 言い換えれば淡島(Awajima)は日本の歴史の起源とは何の関連がないという意味である。 古事記の著者も淡島(Awajima)を淡道(Tamuro)と関連させるなと後孫らに教えていることだ。 現代日本語Tamuro(屯)はa war camp(陣営)の意がある。なぜTamuroがa warcamp(陣営)の意があるということだろうか? それはまさにTamuro(担魯=淡路)の長,すなわち百済の候国の官吏(=Tamuro)が武将だったためだ。 古代韓国の三国時代には地方役人は文官と同時にまた武官だった。 中国大陸や日本列島に進出して,戦争で百済の新しい領土を確保しなければならない重大ある役割を与えられたTamuroがA War Camp(陣営)の意を持っているのは当然だといわ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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