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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30대 비타쓰왕이 백제 왕족임을 밝힌 일본왕실 족보 ‘신찬성씨록’. 아래는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



지난해 5월, 필자는 일본 교토에 살고 있는 우에다 마사키 박사를 찾았다. 우에다 박사는 교토대 사학과 명예교수로 일본 고대 역사학의 태두로 불린다. 30여 년 전 “백제왕이 백제의 식민지였던 왜의 후왕(侯王)에게 ‘백제 칠지도(七支刀)’를 하사했다”고 밝혀 일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우에다 박사는 당시 집으로 몰려든 일본 국수주의 청년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우에다 박사가 자택에서 필자에게 보여준 것은 훨씬 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서 조상 대대로 고이 간직해온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을 꺼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제30대 비타쓰왕은 백제 왕족입니다.”

서기 815년 일본 왕실이 편찬한 ‘신찬성씨록’은 일본 고대의 왕도(王都)였던 ‘헤이안경’(지금의 교토시)의 왕족과 귀족 1182개 가문의 신분을 기록한, 일종의 일본 고대 왕족 및 귀족 족보다. 우에다 박사는 일본 왕족 30개 가문이 나열되어 있는 대목을 펼쳐놓고, 그중 12번째에 씌어진 ‘大原眞人’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大原眞人’이라는 일본 왕족이 누구인지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씌어 있었다.

‘大原眞人. 出自諡敏達孫百濟王也. 續日本紀合.’

(대원진인, 그의 조상은 시호가 비타쓰(敏達)라는 백제 왕족이니라. ‘속일본기’ 기록에도 부합한다.)

풀이하면, ‘대원진인의 조상이 일본 제30대 비타쓰왕이며, 비타쓰왕은 본래 백제 왕족이다.’ 또한 이 내용이 ‘속일본기’라는 왕실 편찬 역사서(서기 797년)에도 부합한다고까지 적시하고 있다. 우에다 박사는 이 대목이 “비타쓰 천황이 백제 왕족 출신임을 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순간 필자는 말을 잇지 못했는데, “비타쓰 천황이 백제 왕족”이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우에다 박사의 학문적 양심에 가슴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구다라 천황(百濟天皇)’

‘일본서기’(서기 720년, 일본왕실 편찬)에 보면, “제30대 비타쓰 천황(敏達·572~585 재위)은 나라(奈良)에 ‘구다라오이궁(百濟大井宮)’을 지었다”는 대목이 있다. 비타쓰왕이 나라의 백제인 집단 거주지 ‘구다라오이(百濟大井)’에 왕궁을 지었다는 얘기다. 이 기록 또한 비타쓰왕이 백제 왕족 출신임을 방증한다. 그뿐만 아니라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제34대 조메이왕(舒明·629∼641 재위)도 나라의 ‘구다라강(百濟川) 옆에 구다라궁(百濟宮)과 구다라노데라(百濟寺)라는 큰 가람을 지었다. 조메이왕이 구다라궁에서 살다가 서거했을 때 ‘구다라노오모가리(百濟大殯)’로 장례를 치렀다’는 내용도 있다.

일본 학자 마유즈미 히로미치씨는 ‘일본서기’의 조메이왕 대목인 ‘조메이기(舒明紀)’에 대한 주해(註解)에서 “여기서 말하는 빈소는 그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백제대빈(百濟大殯)’이란 백제 왕실에서 행한 3년상(喪)을 가리킨다. 백제 제25대 무령왕(501∼523 재위)이 왕도(王都)였던 곰나루(웅진, 공주) 지역에서 ‘백제대빈’을 치렀다는 사실은 1971년 출토된 무령왕의 ‘묘지명’을 통해 입증됐다. 백제 왕실의 성대한 장례 의식을 왜에서 거행했다는 것은 당시 나라 땅을 지배한 백제 왕가의 세력이 절대적이었음을 추찰케 한다.

한편 일본 고대 사학자인 세이조대 사학과 사에키 아리키요 교수는 비타쓰왕의 친손자인 “조메이 천황은 생전에 ‘구다라 천황(百濟天皇)’이라고 불렸을 것이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서기 572년에 등극한 비타쓰왕이 ‘백제대정궁’을 세운 오이(大井)는 어디인가. 지금의 나라현 ‘고료초 구다라(廣陵町 百濟)’라는 게 일본 사학계의 통설이다. 이곳에는 2007년 11월 현재 ‘구다라 우편국(百濟郵便局)’도 영업 중이다. ‘고료초 구다라(百濟)’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백제’라는 행정 지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두 곳 중 하나다.

교토시 동쪽에 ‘百濟寺’란 사찰이 있다. 일본인들은 ‘햐쿠사이지’라고 발음하지만, ‘백제’라는 행정 지명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나머지 한 곳은 교토시 동쪽의 ‘히가시 오우미시 햐쿠사이지초(東近江市百濟寺町)’다. 이 이름은 일본 최대의 비와코 호수 너머 스즈카산(鈴鹿山) 등성이에 우뚝 서 있는 유서 깊은 사찰에서 비롯됐다. 이 사찰의 이름은 ‘샤카산 햐쿠사이지(百濟寺)’, 일본에서는 ‘百濟寺’를 ‘구다라 데라’라고 하는데 유독 이 사찰만은 ‘百濟寺’의 한자어를 소리 나는 대로 읽어 ‘햐쿠사이지’로 부른다.

1910년 일제의 조선 침략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각지에 ‘구다라고우리(百濟郡)’ ‘구다라손(百濟村)’ ‘구다라강(百濟川)’ 나아가 ‘구다라대교(百濟大橋)’ ‘구다라평야(百濟平野)’ 같은 행정지명이 널리 쓰였다. 일본 고대 지도인 ‘팔랑화도(八浪華圖)’는 지금의 오사카 지역인 난바(難波·‘나니와’라고도 부름) 일대가 ‘구다라스(百濟洲)’로 불렸음을 보여준다. 이 지도는 서기 1098년(承德 二年)에 처음 그려졌다.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 지도에 표기된 ‘구다라스’ ‘난바지(難波寺)’ ‘구다라리(久太郞里·‘백제리’의 이두식 한자 표기)’ 등은 2007년 현재까지 오사카시내의 지명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당시 ‘구다라고우리(百濟郡)’ 지역은 지금의 오사카 중심 시가지인 히가시나리구(東成區)이다. 1937년에 편찬된 ‘일본고어대사전’은 ‘구다라고우리(くだら こうり)’의 ‘고우리’가 “한국어의 고을에서 파생된 말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오사카 중심지 일대는 한때 행정구역상 ‘기타구다라손(北百濟村)’ ‘미나미구다라손(南百濟村)’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강제 점령한 후, 백제와 관계된 대부분의 일본 지명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백제’가 지명으로 남아 있는 곳이 두 군데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두 곳의 지명 또한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길이 없다.

 

 

 

 

 


退屈な nida

和製30台ビタスワングが百済王族なのを明らかにした日本王室系図 ‘シンチァンソングシロック’. 下は 1971年発掘された武寧王陵.

去年 5月, 筆者は日本京都に住んでいるUedaMasaki博士を捜した. Ueda博士は京都台史学科名誉教授で日本古代史学の泰斗に呼ばれる. 30余年前 “百済王が百済の植民地だったなぜのフワング(侯王)に ‘百済打つかも(七支刀)’を下賜した”と明らかにして日本社会に大きい波紋を投げかけた当事者でもある. Ueda博士は当時家で寄り集まった日本ナショナリズム青年たちから脅迫を受けたと打ち明けた.

しかしUeda博士が自宅で筆者に見せてあげたことはずっと衝撃的な内容を記していた. 彼は自分の家から先祖代代で安らかにおさめて来た ‘シンチァンソングシロック(新撰姓氏録)’を取り出して見せてこんなに言った.

“第30代ビタスワングは百済王族です.”

西紀 815年日本王室が編纂した ‘シンチァンソングシロック’は日本古代の王道(王都)だった ‘平安京’(今の京都の時)の王族と貴族 1182個家門の身分を記録した, 一種の日本古代王族及び貴族族より. Ueda博士は日本王族 30個家門が羅列されている書き入れ時を広げておいて, なかでも 12番目に被せられた ‘大原真人’を指でついた. ‘大原真人’という日本王族が誰かは次のように明らかに被せていた.

‘大原真人. 出自諡敏逹孫百済王也. 続日本紀合.’

(隊員陣である, 彼の先祖は諡号がビタス(敏逹)という百済ワングゾックイニだと. ‘ソックイルボンギ’ 記録にも符合する.)

解けば, ‘隊員真因の先祖が日本第30代ビタスワングであり, ビタスワングは本来百済王族だ.’ またこの内容が ‘ソックイルボンギ’という王室編纂歴史書(西紀 797年)にも符合するとまで指摘している. Ueda博士はこの書き入れ時が “ビタス天皇が百済王族出身なのを言ってくれている”と言った. 瞬間筆者は言葉を引き継ぐことができなかったが, “ビタス天皇が百済王族”という事実も驚くべきだが, Ueda博士の学問的良心に胸が熱くなったからだ.

‘百済天皇(百済天皇)’

‘日本書紀’(西紀 720年, 日本王室編纂)に見れば, “第30代ビタス天皇(敏逹・572‾585 在位)殷(奈良)に ‘グダラオイグング(百済大井宮)’を作った”と言う書き入れ時がある. ビタスワングが国の百済人集団居住地 ‘百済きゅうり(百済大井)’に王宮を建てたという話だ. この記録もビタスワングが百済王族出身なのを傍証する. 彼だけではなくビタスワングの内孫である第34代ゾメイワング(舒明・629〜641 在位)も国の ‘グダラガング(百済川) 横にグダラグング(百済宮)とグダラノ−デだと(百済寺)という大きい伽藍を建てた. ゾメイワングがグダラグングで住んで行って逝去した時 ‘グダラノ−オモがリ(百済大殯)’で葬式を済ました’と言う内容もある.

日本学者マユズミヒロミチシは ‘日本書紀’のゾメイワング書き入れ時の ‘ゾメだ(舒明紀)’に対する注解(註解)で “ここで言う殯所はその意識を盛大に行ったことを意味する”と説明した. ‘百済大賓(百済大殯)’と言う(のは)百済王室で行った 3ニョンサング(喪)を示す. 百済第25代武寧王(501〜523 在位)が王道(王都)だったゴムナで(熊津, 公州) 地域で ‘百済大賓’を支払ったという事実は 1971年出土された武寧王の ‘墓誌銘’を通じて立証された. 百済王室の盛大な葬礼意識をなぜで行ったということは当時国地を支配した百済王家の勢力が絶対的だったのをお察しするようにする.

一方日本古代史学者であるセイ粗大史学科Saekiアリキです教授はビタスワングの内孫である “ゾメイ天皇は在世に ‘百済天皇(百済天皇)’と呼ばれたはずだ”と発表した事がある.

西紀 572年に上がったビタスワングが ‘百済台正規の宮’を立てたきゅうり(大井)はどこか. 今の奈良県 ‘稿料初百済(広陵町 百済)’というのが日本史学係の通説だ. こちらには 2007年 11月現在 ‘百済郵便局(百済郵便局)’も営業の中だ. ‘稿料初百済(百済)’は今まで日本で ‘百済’という行政地名をそっくりそのままおさめている二所の中で一つだ.

京都の時東に ‘百済寺’と言う(のは)査察がある. 日本人たちは ‘ヒャクサであって’と発音するが, ‘百済’という行政地名をおさめている, 数少ない所の中で一つだ.

残り1ヶ所は京都の時東の ‘ヒがシ烏芋ミッシーヒャクサイジチォ(東近江市百済寺町)’だ. この名前は日本最大の琵琶湖湖越しスズカサン(鈴鹿山) ドングソングイにぐんと立っている由緒のある査察から始まった. この査察の名前は ‘シャカサンヒャクサであって(百済寺)’, 日本では ‘百済寺’を ‘百済やけどしなさい’と言うのに特にこの査察だけは ‘百済寺’の漢字語を音がし次第に読んで ‘ヒャクサであって’と歌う.

1910年日帝の朝鮮侵略以前までにしても日本各地に ‘百済故友里(百済郡)’ ‘グダラソン(百済村)’ ‘グダラガング(百済川)’ 進んで ‘百済大橋(百済大橋)’ ‘百済平野(百済平野)’ 同じ行政地名が広く使われた. 日本古代指導である ‘パラリと化も(八浪華図)’は今の大阪地域である難波(難波・‘ナニと’とも呼びかけ) 一帯が ‘グダラス(百済洲)’と呼ばれたことを見せてくれる. この地図は西紀 1098年(承徳 二年)に初めて描かれた. 今から 900余年私は地図に表記した ‘グダラス’ ‘難波だ(難波寺)’ ‘百済里(久太郎里・‘百済里’の吏読式漢字表記)’ などは 2007年現在まで大阪市内の地名で命脈を続いて来ている. 特に当時 ‘百済故友里(百済郡)’ 地域は今の大阪中心町竝みであるヒがシナリで(東成区)だ. 1937年に編纂された ‘日本古語大辞典’は ‘百済故友里(くだら こうり)’の ‘細かかろう’が “韓国語の村で派生された言葉だ”と明らかにしている. 大阪中心地一帯はひととき行政区域上 ‘ギタグダラソン(北百済村)’ ‘ミナミグダラソン(南百済村)’で分類されたりした.

しかし日帝が朝鮮を強制占領した後, 百済と係った大部分の日本地名が他の名前に変わった. 先立ってよく見たところのように ‘百済’が地名で残っている所が2ケ所に過ぎないこともこのためだ. この二所の地名もいつまでつながるか分かるあてが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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