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일본은 한국인을 만주에 내쫓고 한반도에 살려고 했다」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116468
  식민지 시대를 바라보는 눈은 크게 2개로 나누어진다. 「식민지 수탈론」과「식민지 근대화론」이다.그러나 구건설부의 공무원, 국토 개발 연구원장, 콜원(콜워) 대총장을 역임한 금의원(김·위워) 박사(78)는 이것과는 다른 주장을 한다. 김씨는 「일제가 한반도를 개발한 것은, 궁극적으로 조선의 사람들을 만주에 내쫓아, 스스로가 거기에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에 의하면, 일본은 1943년의 비밀 국토 계획 「중앙 계획 처음의 안」으로, 경성부(소울) 남의 교외, 일본의 오카야마와 후쿠오카의 3개소를 대동아권의 수도 이전 후보지로 결정했다, 로 하고 있다. 일본인은 한반도와 만주에, 한국인은 만주에 이주시킬 계획도 세웠다.김씨는 「일본의 전 관리등과의 면담으로, 수도 이전 후보지의 경성부 교외는 한국 외국어 오타츠인(욘 인) 캠퍼스 근처인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8월말까지 국토 개발 60년사를 편찬 하기 위한(해) 국토 연구원을 방문한 김씨에게 4일, 인터뷰를 했다. 김씨는 4 대하강개발, 그린벨트 관리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일제는 정말로 수도를 소울 부근에 이전하려고 했는가.
 「일본에서 국토 계획을 하는 사람들이 수도 이전 계획을 포함한 중앙 계획 처음의 안을 만들어 내각회의에서 결의했다고 증언했다.그 문서에 후보지 3개소가 명기되어 있다. 그것을 내가 일본의 고서점에서 찾아냈다.흥분해 주인에게 가격을 물었는데,‘마루에 쌓고 있는 것은 자신이 쓰레기 취급해 하고 있는 것이므로 돈을 받을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다.완고하게 대금을 거절하므로 자판기로 담배 3상자를 사 두고 갔다.일본의 국토 전문가에게 물었는데, 내각회의 결의 후에 서류를 없애라고 말하는 명령이 있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고서점에 건넜는지 모른다고 해 놀라고 있었다」
  --일제는 왜 수도를 이전하려고 했는가.
 「소울은 당시 , 일제의 지배권의 중심이었다 이식해 역사적으로 지진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다른 2개의 후보지는 일본 본토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벌써 소울 부근으로 정해져 있었다.비밀 계획을 보면, 일본인 800만명과 한국인 200만명을 만주에 이주시켜, 일본인 200만명을 한반도에 이주시킨다고 하는 내용의 인구 배분 계획이 나오지만, 이것은 계획에 지나지 않고, 실행 단계에서는 일본인을 만주 대신에 조선에 보내, 훨씬 많은 한국인을 만주에 내보냈다.추운 만주나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보다 한반도는 살기 쉬운 땅이다. 결국, 한반도의 개발은 모두 스스로가 살기 위해서 갔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구건설부 도로 과장을 맡은 이·홀골씨가 광복(해방) 직후, 도로과의 캐비넷으로 류지 일대의 측량도면을 보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얻은 자료는 많은 것인가.
 「국토 연구원에 내가 입수한 자료를 많이 기증하고 있다.이 중 국가 기록원에서 영구 보존 자료로 선택된 것은 80건 남짓에도 된다.조선 총독부의 공무원등의 집을 방문해 그들이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당신들에게 용도는 없으니까 그것을 양보하면 좋은'이라고 말하고 받아 왔다.펜으로 등사 한 후, 스스로의 사이에 보고 있던 문서다. 조선총독부에는 우수 인재가 모였다.2년간 근무하면 1년간 세계일주를 시켜 준다고 하는 특전이 있었다고 한다. 기술자는 한반도를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자신의 전공을 살리려는 열정을 가지고 일했다. 우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조선 총독부가 막대한 예산을 던져 「조선 하천 조사서」를 제작했지만, 그들이 하고 있지 않으면 지금도 예산의 문제로 되어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제가 수탈 하기 위해서 그러한 조사를 한 것은.
  「일본이 한반도에 와 철도·도로·항만을 건설했다.각면에 학교를 지었다.일본인이 우리로부터 착취해 건설했다고 하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조선 총독부의 예산을 분석하면, 조선에서 모은 세금은 농지세 정도이며, 이것으로는 당시의 공무원의 월급의 10분의 1도 안 되었다.총독부의 공무원이 본국에 가서 로비 활동을 해, 예산을 확보했다. 물론 철도 등은 대륙 진출을 위해서 그러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최근의 국토 계획을 담당하는 후배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회고록을 쓰고 있다. 교수는 행정 실무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국토 개발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자세하고 모른다. 내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것은 간석의 가치를 별로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립·간척을 함부로 했다고 하는 것이다.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모아 후배 서에게 전하고 싶다」
  ◇금의원(김·위워)=1931 년생.경상북도선산(콜산브크드·소산) 출신으로, 건설부 국토 계획 과장·국토 계획 국장·도시 국장·국토 지리 원장을 거치고, 81년에 국토 개발 연구원장으로 취임해, 학계와 가장자리를 연결했다.계속 되어 콜원(콜워)대의 교수·총장, 건설부의 공무원으로부터 되는 대한 건설 진흥회의 회장을 역임했다.일본 대학 공학박사.  

2005년 10월 24일에, 인터뷰 형식이 아니지만, 내용이 거의 그대로의 기사가 오르고 있어 암흑경도 소레를 재료에 당일에 총독부 일보를 써 있다.

이하는 그 과거 기사.

 

일본 「40년대, 도쿄로부터 류지에 천도 할 계획이었다」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68897
  「1940년대, 한반도, 만주, 대만을 지배한 일본이 수도(도쿄)를 한국의 류지(욘 인)로 옮기려 하고 있었다.
  경원대 마나부 총장을 맡은 김·위원 박사(74, 대한 건설 진흥 회장)는 지금까지 수집한 120건의 자료를 2001년 국토 연구원에 기증한 후, 최근 발간한 자료 해설서로 이와 같이 분명히 했다.
  김 박사에 의하면 일본은 1940년대의 처음, 15년 후를 목표로 입안한 비밀 국토 계획인 「중앙 계획 처음의 안」으로, 경성부(소울) 남의 교외, 일본내 오카야마와 후쿠오카 등 3개소를 대동아권의 수도 이전 후보지로서 제시했다.
  당시 , 소울 인근은 지진도 없고, 국토(만주-한반도-일본)의 중앙에 위치해, 일본이 수도 입지로서 이상적이라고 하는 것이었다.또 새로운 수도에는 왕궁과 정부 기관만 이전할 계획이었다.김 박사는 「 후에 일본 전직 관리등과의 면담으로 수도 이전 후보지였던 경성 교외와는 한국 외국어 오타츠인캠퍼스가 있는 계곡 일대였다고 하는 사실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박사는 「당시 , 일제는 류지 지역 측량까지 끝내( 구) 건설부 도로 과장을 맡은 이·혼골 대한 콘소르탄트 회장도, 해방 직후, 도로과의 서류에 측량도면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중앙 계획 처음의 안은, 일본 본토와 조선, 만주, 대만에 걸쳐 지역별 산업 생산 목표를 제시, 또 내지 150, 조선 23, 대만 20 등 합계 193의 공업 지구를 지정하는 안을 포함시키고 있다.한반도에 대해서는 삼천포(삼톨포) 석유 화학 공업 단지, 부산(부산)~신의주(신위쥬) 간의 고속도로, 삼천포~대전(대전) 간의 복선철도 및 고속도로등의 건설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한국인 8백만명을 만주에 강제 이주시켜, 거기를 일본 농민 8백만명이서 채우는 것이 전제였다.이주 계획이 실현되었을 경우, 일본인은 한반도 인구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하게 된다.김 박사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으로 승리하면 이 계획은 실현되었을 것으로, 한국이 만주에 내쫓아진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해설서로, 조선 총독부 관리의 모임인 「우방 협회」의 자료를 기초로 38~43년 특별 지원 병제에 의한 한국인 입영자가 1만 7663명, 43년 국민 총동원법에 따르는 강제 징용자가 134만명(노무자 51만 5천명을 포함한다)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또 조선 총독부가 41년,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극비로 취급한 인구통계를 손에 넣어 44년 5월 1일밤의 12시 기준에 조선(한국·북한)의 세대수는 492 만세대, 인구는 2951만 7881명이었다고 확인했다.
  김 박사는 55년, 소울시 도시계획 전문위원을 시작으로 해, 건설 교통성 도시 국장, 국립 지리 원장, 국토 개발 연구원장, 경원대 학원도시시 계획 학과 교수등을 역임한 국토 정책 전문가다.
  해설서 전문은 국토 연구원 홈 페이지(www.krihs.re.kr)에서 볼 수 있다.  
허귀식(호·쿠식크 기자)

 

【공격 방폐】

공격소는 각자 찾아 주세요.

인터뷰에서는 착실한 의견도 말하지만 , 기본은 역시 한국인이라고 했는데일까.

자료명이 「중앙 계획 처음의 안」으로, 1943년 부근에서 각의 결정되고 있는 것인가···.

WW2 당시의【비밀】국토 계획이라고 하는 자료인데,

일본의 헌책방조차 잡지 취급이 되는 물건인가 응.(B 00k○ff라면 알지 않아가.)


【移民】半島補完計画?【遷都】

「日本は朝鮮人を満州に追い出して韓半島に住もうとした」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116468
  植民地時代を眺める目は大きく2つに分かれる。 「植民地収奪論」と「植民地近代化論」だ。しかし旧建設部の公務員、国土開発研究院長、キョン園(キョンウォン)大総長を歴任した金儀遠(キム・ウィウォン)博士(78)はこれとは異なる主張をする。 金氏は「日帝が韓半島を開発したのは、究極的に朝鮮の人たちを満州に追い出し、自分たちがそこに住もうとしたからだ」と述べた。
  金氏によると、日本は1943年の秘密国土計画「中央計画素案」で、京城府(ソ¥ウル)南の郊外、日本の岡山と福岡の3カ所を大東亜圏の首都移転候補地に決めた、としている。 日本人は韓半島と満州に、朝鮮人は満州に移住させる計画も立てた。金氏は「日本の元官吏らとの面談で、首都移転候補地の京城府郊外は韓国外国語大竜仁(ヨンイン)キャンパス辺りであることを確認した」と述べた。
  8月末までに国土開発60年史を編纂するため国土研究院を訪れた金氏に4日、インタビューをした。 金氏は4大河川開発、グリーンベルト管理に関する話もした。
  −−日帝は本当に首都をソ¥ウル付近に移転しようとしたのか。
  「日本で国土計画をする人たちが首都移転計画を含む中央計画素案を作って閣議で決議したと証言した。その文書に候補地3カ所が明記されている。 それを私が日本の古書店で見つけた。興奮して主人に価格を尋ねたところ、‘床に積んでいるものは自分がゴミ扱いしているものなので金を受け取ることはできない’と話した。頑なに代金を断るので自販機でたばこ3箱を買って置いて行った。日本の国土専門家に尋ねたところ、閣議決議後に書類をなくせという命令があったが、それがどのように古書店に渡ったのか分からないと言って驚いていた」
  −−日帝はなぜ首都を移転しようとしたのか。
  「ソ¥ウルは当時、日帝の支配圏の中心だったうえ、歴史的に地震のないところだったからだ。他の2つの候補地は日本本土だったが、彼らの心はすでにソ¥ウル付近に決まっていた。秘密計画を見ると、日本人800万人と朝鮮人200万人を満州に移住させ、日本人200万人を韓半島に移住させるという内容の人口配分計画が出てくるが、これは計画にすぎず、実行段階では日本人を満州の代わりに朝鮮に送り、はるかに多くの朝鮮人を満州に送り出した。寒い満州や地震が頻発する日本よりも韓半島は住みやすい地だ。 結局、韓半島の開発はすべて自分たちが住むために行ったというのが私の結論だ。旧建設部道路課長を務めたイ・ヒョンギョン氏が光復(解放)直後、道路課のキャビネットで竜仁一帯の測量図面を見たと話していた」  
  −−日本で得た資料は多いのか。
  「国土研究院に私が入手した資料をたくさん寄贈している。このうち国家記録院で永久保存資料に選ばれたものは80件余りにもなる。朝鮮総督府の役人らの家を訪ね、彼らが保管していた資料を‘あなたたちに使い道はないのだからそれを譲ってほしい’と言って受け取って来た。ペンで謄写した後、自分たちの間で見ていた文書だ。 朝鮮総督府には優秀人材が集まった。2年間勤めれば1年間世界一周をさせてくれるという特典があったという。 技術者は韓半島を植民地と考えなかった。自分の専攻を生かそうという熱情を持って働いた。 私たちもそれを認めなければならない。朝鮮総督府が莫大な予¥算を投じて『朝鮮河川調査書』を制作したが、彼らがしていなければ今でも予¥算の問題でできていなかったかもしれない」
  −−日帝が収奪するためにそのような調査をしたのでは。
  「日本が韓半島に来て鉄道・道路・港湾を建設した。 各面に学校を建てた。日本人が私たちから搾取して建設したという主張があるが、事実と違う。朝鮮総督府の予¥算を分析すると、朝鮮で集めた税金は農地税程度であり、これでは当時の公務員の月給の10分の1にもならなかった。総督府の役人が本国に行ってロビー活動をし、予¥算を確保した。 もちろん鉄道などは大陸進出のためにそうしたと考えられる」
  −−最近の国土計画を担当する後輩に言いたいことがあれば。
  「回顧録を書いている。 教授は行政実務をしていないので国土開発がどのように行われるのか詳しく知らない。 私が最も後悔しているのは干潟の価値をあまり理解していなかったため、埋立・干拓をむやみにしたということだ。 役立つような話を集めて後輩たちに伝えたい」
  ◇金儀遠(キム・ウィウォン)=1931年生まれ。慶尚北道善山(キョンサンブクド・ソ¥ンサン)出身で、建設部国土計画課長・国土計画局長・都市局長・国土地理院長を経て、81年に国土開発研究院長に就任し、学界と縁を結んだ。 続いてキョン園(キョンウォン)大の教授・総長、建設部の公務員からなる大韓建設振興会の会長を歴任した。日本大学工学博士。  

2005年10月24日に、インタビュー形式じゃないけど、内容がほぼそのままの記事が上がっており、暗黒卿もソ¥レをネタに当日に総督府日報を書いてある。

以下はその過去記事。

 

日本「40年代、東京から竜仁に遷都する計画だった」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68897
 「1940年代、韓半島、満洲、台湾を支配した日本が首都(東京)を韓国の竜仁(ヨンイン)に移そうとしていた。
  キョンウォン大学総長を務めたキム・ウィワン博士(74、大韓建設振興会長)はこれまでに収集した120件の資料を2001年国土研究院に寄贈した後、最近発刊した資料解説書でこのように明らかにした。
  キム博士によると日本は1940年代の初め、15年後を目標に立案した秘密国土計画である「中央計画素案」で、京城部(ソ¥ウル)南の郊外、日本内岡山と福岡など3カ所を大東亜圏の首都移転候補地として提示した。
  当時、ソ¥ウル隣近は地震もなく、国土(満洲−韓半島−日本)の中央に位置し、日本が首都立地として理想的だということだった。また新しい首都には王宮と政府機関のみ移転する計画だった。キム博士は「後に日本前職官吏らとの面談で首都移転候補地だった京城郊外とは韓国外国語大竜仁キャンパスがある渓谷一帯だったという事実を確認した」と述べた。
  博士は「当時、日帝は竜仁地域測量まで終え、(旧)建設部道路課長を務めたイ・ホンギョン大韓コンソ¥ルタント会長も、解放直後、道路課の書類に測量図面があるのを見たと言っていた」と付け加えた。
  中央計画素案は、日本本土と朝鮮、満洲、台湾にかけて地域別産業生産目標を提示、また内地150、朝鮮23、台湾20など計193の工業地区を指定する案を盛り込んでいる。韓半島に対しては三千浦(サムチョンポ)石油化学工業団地、釜山(プサン)〜新義州(シンウィジュ)間の高速道路、三千浦〜大田(テジョン)間の復線鉄道および高速道路などの建設計画を含んでいる。
  しかしこのような計画は朝鮮人8百万人を満洲に強制移住させ、そこを日本農民8百万人で満たすということが前提だった。移住計画が実現した場合、日本人は韓半島人口の3分の1以上を占めることになる。キム博士は「日本が太平洋戦争で勝利すればこの計画は実現したはずで、韓国が満洲に追い出されたのは明らかだ」と述べた。
  キム博士はまた解説書で、朝鮮総督府官吏の集まりである「友邦協会」の資料をもとに38〜43年特別支援兵制による朝鮮人入営者が1万7663人、43年国民総動員法による強制徴用者が134万人(労務者51万5千人を含む)に達すると紹介した。
  また朝鮮総督府が41年、真珠湾奇襲攻撃以後、極秘で扱った人口統計を手に入れ、44年5月1日夜の12時基準に朝鮮(韓国・北朝鮮)の世帯数は492万世代、人口は2951万7881人だったと確認した。
  キム博士は55年、ソ¥ウル市都市計画専門委員を始めとし、建設交通省都市局長、国立地理院長、国土開発研究院長、キョンウォン大学都市計画学科教授などを歴任した国土政策専門家だ。
  解説書全文は国土研究院ホームページ(www.krihs.re.kr)で見ることができる。  
許貴植(ホ・クィシック記者)

 

【突っ込み放棄】

突っ込み所は各自で探してください。

インタビューではまともな意見も言っているのだが、基本はやはり韓国人といったところだろうか。

資料名が「中央計画素案」で、1943年付近で閣議決定されているのか・・・。

WW2当時の【秘密】国土計画という資料なのに、

日本の古本屋でさえ雑紙扱いになるようなモノなのかねえ。(B○○k○ffなら判らん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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