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고 , 스리랑카 초대 대통령 쥬니우스·리처드·쟈야와르다나
 
이 분을 아시는 바입니까?
일본인이다면 알아 두었으면 좋은…, 아니,
알아 두어찰 수 있는 안 되는, 그리고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있는 분들은 아시는 바겠지만, 일본은 1951년에 열렸다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 회의에 의해서 종전이 되어, 점령을 풀렸습니다.
그는 그 강화 회의에 대하고, 일본 독립에 매우 크게 관련된 사람입니다.
 
쟈야와르다나는 불교를 신봉 해, 그것을 스스로의 사상과 행동의 의지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유일 구미 열강국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일본을 동경해
표본으로서 자국의 독립, 그리고 아시아의 부흥에의 길을 열고 간 사람입니다.
 
1951년 9월 4일부터 8일까지,
미국, 영국을 시작으로 해, 일본을 포함한 52개국이 참가하고,
미국·샌프란시스코에 대해 대일강화조약 체결을 위한 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재정부 장관이었던 쟈야와르다나는 Ceylon 대표(현스리랑카)로서 출석했습니다.
이 때, 일본은 전권으로서 요시다 시게루 수상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미국은, 일본 경제 유지를 위해서 연간 5억 달러를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벌써 연합국도 분산하고 있어, 점령 2년이나 지나면,
미국에 있어서, 일본과의 강화는 당장이라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존·F·다레스를 특명 대사로서 극동 위원회 제국에 파견해,
강화 해결을 위한 의견을 주고 받기 시작합니다만, 이것에 대해소련(현러시아)은,
「강화 체결은 요네, 사카에, 소, 안의 4개국에 의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이윽고 조약의 주문 내용도 결정되어, 강화 회의 개최의 단계가 되었습니다만,
강화 회의에 대해도 소련대표는 일본의 주권 제한안을 제안해, 또,
의사 진행을 방해하려고, 조약 서명을 늦추는 것을 목론 봐,
32명의 대대표단을 보내, 1개월이나 체재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회의에는 인도, 버마(현미얀마), 중국은 결석하고 있었습니다.
인도는 일본에 정당하게 주어져야 할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라고 하는 이유로부터
버마는 배상의 결정이 불복이었기 때문에였습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중화 민국과 중국 공산당의 어느 쪽을 대표인가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초청 되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출석했지만, 전쟁의 상처 자국이 깊고,
조약에 서명해야할 것인가 결정하기 어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일본에 있어서는 어려운, 긴장과 불안 중(안)에서 강화 회의는 개회되었던 것입니다.
그 어려운 상황을 구해 준 것이 Ceylon 대표인 쟈야와르다나였습니다.
 
심의에 들어가면, 소련대표그롬이코는 중국 공산당의 회의 출석을 요구하거나
수정안의 제출을 끝없이 주장하는 등의 공작을 실시해,
이것에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보조를 맞추었다.
 
1일이나 빠른 일본의 주권 회복을 요구하는 쟈야와르다나는 이것과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쟈야와르다나는 소련의 의도적인 사진확대에 대해서는,
의사 진행의 보정안을 차례차례로 제안해 대항해, 그 주장에 대해서는,
이로 정연과 모순을 찔러 부정해, 완벽하게 소련대표를 떨쳐 내서 갔습니다.
 
그리고, 회의 3일째의 9월 6일 오전 11시,
쟈야와르다나가 연설을 시작했다.
이 15분간의 역사적인 연설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전문으로 하면 터무니없고 길어지므로 빼기 내밀기를 씁니다.
역사적으로, 너무 유명한 연설이라고 합니다(부끄럽지만 나는 몰랐습니다.)
흥미가 있는 분이나 부른 일이 없는 분은 부디 찾아 보세요.
타국 대표면서, 일본 옹호에 어려운 이 회의에 대하고,
이렇게도 일본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는지, 와 감명의 눈물이 나오는 문장입니다.
 
「군부의 주둔에 의한 피해나 우리 나라의 중요 생산품이다
생고무의 대량 채취에 의한손해는 당연히 변상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권리를 행사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불타의“증오는 증오에 의해서 그치는 일은 없고, 사랑에만 따라 그친다”
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소련의 수정 조항을 우리가 동의 할 수 없는 이유는,
제약을 붙이면 일본이 종주권과 평등과 존엄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고, 쟈야와르다나는 불타나 석가님의 말씀잎을 인용해,
스리랑카의 대일 배상 청구권의 방폐를 명언해, 한층 더 소련의 제한안에 반대하고,
일본은 실로 자유롭고 독립한 나라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해,
참가한 각국 대표에 관용의 정신을 요구하고 그리고, 일본을 자주 독립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이 연설은 각방면에서 다대한 칭찬이 보내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뉴스에 의하면,
쟈야와르다나의 연설이 끝나면, 칭찬의 박수와 환성의 폭풍우로
회장의 유리창이 갈라졌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각 신문, 잡지는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소르트레이크·트리뷴지
「Ceylon 대표의 쟈야와르다나씨의 매우 명쾌 논리적인 연설은,
이 회의 최고의 역사적인 발언이며, 후에의 세상에게 전할 수 있어 갈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그자미나지
「갈색의 핸섬한 외교관이 Ceylon섬에서(보다) 오고,
세상에 잊어 떠나지려 하고 있던 국가간의 예절과 관용을 큰소리구 말해,
날카로운 이론으로 소련의 책략을 깨었다.」
 
타임잡지
「이 회의에서, 쟈야와르다나씨야말로, 가장 재능흘러넘치는 아시아의 대변인이었다.」
 
이와 같이, 쟈야와르다나는 「아시아 제일의 외교관」이라고 하는 국제적 찬사를 얻었던 것입니다.
쟈야와르다나는 완전히 화제의 인물이 되어, 회의후의 기차나 백화점안에서 사람들에게,
「그 연설을 실시한 Ceylon 대표인 분입니까?」와 말을 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화 조약은이라고 하면,
결국,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외한 49개국이 서명해,
전쟁은 간신히 종결, 일본의 점령도 풀렸던 것입니다.
 
그 후, 쟈야와르다나는 요시다 수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감사의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총리대신 관저, 도쿄
                                   1951년 9월 20일
 
배정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있어서 각하가 기술된, 자유를 요구하는 아시아의 정열,
Ceylon 정부의 일본에 대한 관대한 입장에 감동했습니다.
진심으로의 사의를 바칩니다.
전일본 국민도 각하의 고결한 발언에 감명하고 있는나름으로입니다.
 여기에 평화 조약 조인이 완료섬 해인 이상, 아시아의 안정과 발전 때문에,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을 열망하겠습니다.
 
                                       돈수 재배    
                                       요시다 시게루
Ceylon 대표
대장 대신
쟈야와르다나 각하
콜롬보, Ceylon
 
그 후도 쟈야와르다나는 일본을 계속 사랑해 주었습니다.
아시는 바도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스리랑카의 현재의 수도, 스리·쟈야와르다나·프나콧테는,
이 위대한 대통령의 이름을 기념하여 붙일 수 있던 것입니다.
대통령이 죽은 현재에도,
이와 같이 스리랑카 국내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일본에 있어서는 자주 독립을 도와 준 큰 은혜인입니다만 유감인 일이 있습니다.
 
쟈야와르다나는 1989년의 쇼와 천황붕어 시에는,
국빈으로서 장의에 참례해 주었습니다.
 
1996년 11월 1일, 쟈야와르다나는 90세의 생애를 닫아
콜롬보의 케라니아 사원에서 국장이 거행해졌습니다.
이 때, 일본으로부터의 참례는 총리 특사만의 참례였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이 일본 정부의 태도는,
일본의 큰 은혜인에 대해서 너무 불성실이라고 해 바구니 끝내지 않습니다.
 
그는 생애 일본을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 이유에 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에,
「일본은 서구에 대해서 아시아에서 혼자 눈에 띈 존재였다,
그리고, 불교국이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지에 근거해, 사후에 그의 각막이 장기 제공되었다.
다른 한쪽은 스리랑카인에, 그리고 이제(벌써) 다른 한쪽은 일본인에.
 
쟈야와르다나의 유골은 케라니아 사원의 경내를 흐르는,
석가님이 목욕을 하셨다고 하는 신성한 케라니아강에 흘러갔다.

日本の皆さん、この御方を御存知ですか?

 
故、スリランカ初代大統領ジュニウス・リチャード・ジャヤワルダナ
 
この御方を御存知でしょうか?
日本人であるなら知っておいて欲しい…、いや、
知っておかなけれならない、そして感謝しなくてはいけない人です。
 
ここに居る方々は御存知でしょうが、日本は1951年に開かれた
サンフランシスコ対日講和会議によって終戦となり、占領を解かれました。
彼はその講和会議において、日本独立に非常に大きく関わった人です。
 
ジャヤワルダナは仏教を信奉し、それを自らの思想と行動の拠り所としていました。
そして、アジアで唯一欧米列強国と肩を並べていた日本に憧れ、
手本として、自国の独立、そしてアジアの復興への道を切り開いていった人です。
 
1951年9月4日から8日まで、
アメリカ、イギリスをはじめとし、日本を含む52カ国が参加して、
アメリカ・サンフランシスコにおいて対日講和条約締結のための会議が開かれました。
当時蔵相だったジャヤワルダナはセイロン代表¥(現スリランカ)として出席しました。
この時、日本は全権として、吉田茂首相を派遣しています。
 
当時日本を占領していたアメリカは、日本経済維持のために年間5億ドルを費やしていました。
すでに連合国も分散しており、占領2年も経つと、
アメリカにとって、日本との講和はすぐにでも解決しなければならない問題となっていました。
 
アメリカはジョン・F・ダレスを特命大使として極東委員会諸国に派遣し、
講和解決のための意見を交わし始めますが、これに対しソ¥連(現ロシア)は、
「講和締結は米、英、ソ¥、中の4カ国による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っと主張してきました。
それでもやがて条約の主文内容もまとまり、講和会議開催の運びとなりましたが、
講和会議においてもソ¥連代表¥は日本の主権制限案を提案し、さらには、
議事進行を妨害しようと、条約署名を遅らせることを目論み、
32名もの大代表¥団を送り込み、1ヵ月も滞在する準備を整えていました。
 
会議にはインド、ビルマ(現ミャンマー)、中国は欠席していました。
インドは日本に正当に与えられるべき完全な自由が与えられないからという理由から
ビルマは賠償の取り決めが不服だったためでした。
中国については
中華民国と中国共産党のどちらが代表¥か決められなかったため招請されませんでした。
インドネシアとフィリピンは出席したものの、戦争の傷跡が深く、
条約に署名すべきか決めかねていました。
 
このように、日本にとっては厳しい、緊張と不安の中で講和会議は開会されたのでした。
その厳しい状況を救ってくれたのがセイロン代表¥であるジャヤワルダナだったのです。
 
審議にはいると、ソ¥連代表¥グロムイコは中国共産党の会議出席を求めたり、
修正案の提出を延々と主張するなどの工作を行い、
これにポーランドとチェコスロバキアが歩調を合わせた。
 
1日も早い日本の主権回復を求めるジャヤワルダナはこれと対立していました。
ジャヤワルダナはソ¥連の意図的な引き伸ばしに対しては、
議事進行の補正案を次々に提案して対抗し、その主張に対しては、
理路整然と矛盾を突いて否定し、完璧にソ¥連代表¥を突き放していきました。
 
そして、会議3日目の9月6日午前11時、
ジャヤワルダナが演説を始めた。
この15分間の歴史的な演説に、全世界の人々が耳を傾けました。
全文にするととてつもなく長くなるので抜き出しを書きます。
歴史的に、あまりにも有名な演説だそうです(恥ずかしながら私は知りませんでした。)
興味のある方や呼んだ事のない方は是非とも探してみてください。
他国代表¥でありながら、日本擁護に厳しいこの会議において、
こんなにも日本のことを思ってくれる人がいるのか、っと感銘の涙が出る文章です。
 
『軍部の駐留による被害やわが国の重要生産品である
生ゴムの大量採取による損害は当然弁償されるべきである。
しかし、その権利を行使するつもりはない。
なぜならば、仏陀の“憎悪は憎悪によってやむ事は無く、愛のみによって止む”
っという言葉を信じるからである。
ソ¥連の修正条項を我々が同意できない理由は、
制約をつければ日本が宗主権と平等と尊厳を取り戻す事が不可能¥になるからである。』
 
このようにして、ジャヤワルダナは仏陀や御釈迦様の御言葉を引用し、
スリランカの対日賠償請求権の放棄を明言し、さらにソ¥連の制限案に反対して、
日本は真に自由で独立した国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説き、
参加した各国代表¥に寛容の精神を求め、そして、日本を自主独立へと導いたのでした。
 
この演説は各方面から多大な賞賛が送られました。
サンフランシスコ・ニュースによれば、
ジャヤワルダナの演説が終わると、賞賛の拍手と歓声の嵐で
会場の窓ガラスが割れたほどだったそうです。
 
各新聞、雑誌は次のように評しています。
 
ソ¥ルトレイク・トリビューン紙
「セイロン代表¥のジャヤワルダナ氏の非常に明快論理的な演説は、
この会議最高の歴史的な発言であり、後々の世に伝えられていくだろう」
 
サンフランシスコ・エグザミナー紙
「褐色のハンサムな外交官がセイロン島よりやって来て、
世に忘れ去られようとしていた国家間の礼節と寛容を声高く説き、
鋭い理論でソ¥連の策略を打ち破った。」
 
タイム誌
「この会議で、ジャヤワルダナ氏こそ、最も才能¥溢れるアジアのスポークスマンだった。」
 
このように、ジャヤワルダナは「アジア随一の外交官」という国際的賛辞を得たのでした。
ジャヤワルダナはすっかり時の人となり、会議後の汽車やデパートの中で人々に、
「あの演説を行ったセイロン代表¥の方ですか?」っと声を掛けられたそうです。
 
そして、講和条約はというと、
結局、ソ¥連、ポーランド、チェコスロバキアを除く49カ国が署名し、
戦争はようやく終結、日本の占領も解かれたのでした。
 
その後、ジャヤワルダナは吉田首相から次のような感謝の手紙を受け取っています。
 
 
 
総理大臣官邸、東京
                                   1951年9月20日
 
拝呈
 
 サンフランシスコ会議に於いて閣下が述べられた、自由を求めるアジアの情熱、
セイロン政府の日本に対する寛大なる立場に感動いたしました。
心からの謝意を捧げます。
全日本国民も閣下の高潔なる発言に感銘いたしておる次第ででございます。
 ここに平和条約調印が完了いたしましたる以上、アジアの安定と発展のため、
あらゆる努力を傾けることが出来ることを熱願いたします。
 
                                       頓首再拝    
                                       吉田 茂
セイロン代表¥
大蔵大臣
ジャヤワルダナ閣下
コロンボ、セイロン
 
その後もジャヤワルダナは日本を愛し続けてくれました。
御存知の方も居るかもしれませんが、
スリランカの現在の首都、スリ・ジャヤワルダナ・プナコッテは、
この偉大なる大統領の名にちなんで付けられたものです。
大統領が亡くなった現在でも、
このようにスリランカ国内では最も有名かつ偉大な人と言えるでしょう。
 
日本にとっては自主独立を助けてくれた大恩人ですが残念な事があります。
 
ジャヤワルダナは1989年の昭和天皇崩御の際には、
国賓として葬儀に参列してくれました。
 
1996年11月1日、ジャヤワルダナは90歳の生涯を閉じ、
コロンボのケラニア寺院で国葬が執り行われました。
この時、日本からの参列は総理特使のみの参列でした。
残念ながらこの日本政府の態度は、
日本の大恩人に対してあまりにも不誠実と言わざるおえません。
 
彼は生涯日本を愛してくれました。
その理由について聞かれた際に、
「日本は西欧に対してアジアでひとり際だった存在だった、
そして、仏教国だから」っと答えたそうです。
彼の遺志に基づき、死後に彼の角膜が臓器提供された。
片方はスリランカ人に、そしてもう片方は日本人に。
 
ジャヤワルダナの遺骨はケラニア寺院の境内を流れる、
御釈迦様が沐浴をされたという神聖なケラニア河に流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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