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후지무라 신이치
와 력
1950 년생.센다이 육영 고등학교 졸업 후, 토후쿠 전력 자회사의 토호쿠 계기 공업에 취직.공원 시대에 고고 자료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1973년에는 「미야기현 후루카와시 바바 단상 발견의 문자기와」(공저, 「차광기」7, pp.18~21, 길의 구고고학 연구회)에 두고 선각 문자기와를 자료 소개했다.다음 1974년 이후는, 에아이가와 유역의 석기를 중심으로 한 답사를 시작해 1975년에는 이 때의 동료를 주력으로 하는 석기 문화 담화회가 결성되어 석기 찾기의 명인으로서 활동했다.동료들에서는 「갓 핸드(신의 손)」의 이명을 달렸다.일본의 구석기시대사의 쟁점에서 만난 전기·중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발견」해, 토후쿠 전력계열의 회사에 근무하면서 1992년에는 민간의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 설립에 참가, 1999년에 회사를 퇴직해, 동연구소 직원이 된다.동연구소는 2000년 8월에는, NPO 법인으로서 인증(2004년 1월 해산)되어 부이사장으로서 활동했다.

 

요점:후지무라는 「아마츄어 고고학 연구자」이다.

 

후지무라가, 재적하고 있던 학회인 일본 고고학 협회에 대해.

 

유한 책임 중간 법인 일본 고고학 협회 정관
 제1장 총칙
(명칭)
제1조이 법인은, 유한 책임 중간 법인 일본 고고학 협회라고 한다.
(목적)
제2조이 법인은, 고고학 연구자가, 자주·민주·평등·호혜·공개의 원칙에 끊고, 고고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이 때문에, 고고학 연구자의 전국적 조직으로서 사원 사이 및 관계 학회와의 협력·교류를 추진해, 적극적으로 연구 조건을 개선해, 문화재 보호 등 사회적 책임의 수행에 노력한다.
(사업)
제3조이 법인은 전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음의 사업을 실시한다.
 (1) 연구 및 조사의 실시
 (2) 학회잡지, 학술 도서등의 간행
 (3) 연구 발표회, 학술 강연회, 심포지엄등의 개최
 (4) 문화재의 보호에 관한 사업
 (5) 연구의 장려 및 연구 실적의 표창
 (6) 관련 학술 단체와의 제휴 및 협력 
 (7) 국제적인 연구 교류의 추진
 (8) 그 외의 사업
(사무소)
제4조이 법인은, 주된 사무소를 도쿄도 에도가와구에 둔다.
(기금의 총액)
제5조이 법인의 기금의 총액은, 금25,418,902엔으로 한다.
(현물 거출)
제6조 설립에 임하여 현물 거출하는 사람, 거출의 목적인 재산 및 그 가격은 별지 현물 거출 목록 기재대로로 한다.
(기금의 갹출자의 권리에 관한 규정)
제7조 거출된 기금은, 이 법인의 해산 때까지 반환하지 않는다.
(기금 반환의 수속)
제8조이 법인의 해산시의 의결을 거친 후, 이사회가 결정된 것에 따라서 반환한다.
(공고의 방법)
제9조이 법인의 공고는, 사무소의 게시판에 게시한다.

 제2장 회원
(종별)
제10조 이 법인의 회원은, 다음대로로 한다.
 (1) 정회원 고고학에 관계되어 학식 경험을 가지는 개인으로, 이 법인의 목적으로 찬동 해 입회한 사람 
 (2) 명예 회원 고고학에 대해 현저한 공적이 있어, 또는 이 법인의 발전에 기여한 개인 혹은 단체에서, 이사회의 추천에 의해 총회에서 승인된 사람
2 정회원(이하 「회원」이라고 한다.)(을)를 가지고 법률상의 사원으로 한다.
(입회)
제11조 이 법인의 회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따로 정하는 입회신입서를 제출해, 총회의 승인을 유리한 차면 안 된다.
2 명예 회원은 이사회의 추천에 근거해 총회의 의논을 거쳐 정한다.
(회원의 의무)
제12조회원은 제2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때문에) 노력해, 회원으로서의 활동의 여하에 관계없이, 총회가 정하는 윤리 강령을 준수해야 한다.
2 회원은 이 법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때문에), 따로 정하는 회비를 지불할 의무를 진다.
(자격의 상실)
제13조회원은, 다음일사정에 의해서 그 자격을 상실한다.
 (1) 탈퇴했을 때
 (2) 사망해, 혹은 실종 선고를 받았을 때
 (3) 회비를 3년 이상 체납 했을 때
 (4) 제명되었을 때
(탈퇴)
제14조회원이 탈퇴하려고 할 때는, 탈퇴계를 회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제명)
제15조회원이 다음의 각 호의 1에 해당할 때는, 법률의 규정에 따라서, 제명할 수 있다.
 (1) 이 법인의 명예 또는 신용을 현저하게 손상시키는 행위가 있었을 때
 (2) 이 법인의 목적으로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을 때
 (3) 그 외 정당한 사유 있을 때

(이하약어)

 

요점:일본 고고학 협회는 어디까지나 고고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어, 날조 사건이 발각되면, 아래와 같이  여러가지 조사등의 대처를 실시해, 그때마다 견해를 발표하고 있다.


일본 고고학 협회의, 후지무라가 한 일에 대한 견해 및 대처

 

■카미타카모리 유적 문제등에 대한 위원회 견해
2000년 11월 12일
일본 고고학 협회 위원회
 일본 고고학 협회는, 1948년에 결성된 우리 나라의 고고학 연구자 전국조직으로, 자주·민주·평등·호혜·공개의 원칙에 끊어 고고학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 활동해 왔습니다.
 고고학은, 유적의 발굴 조사에 의해서 확인된 사실 관계를 기초로 하는 과학입니다.이번에 분명해진 후지무라 신이치 회원에 의한 카미타카모리 유적, 소우신 부동비탈 유적의 조사에 있어서의 고고학적 사실의 날조는, 고고학의 기초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으로, 연구자로서의 윤리가 어렵게 추궁 당하는 행위입니다.일본 고고학 협회는, 이러한 행위를 이루는 사람을 내, 게다가 연구자 상호의 비판에 의해서 이것을 막지 못하고, 우리 나라의 고고학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켰던 것에 대해, 깊게 사과 합니다.대지에 남겨진 과거의 인간 활동의 흔적의 조사를 통해서, 열도의 역사를 보다 풍부하게 그려내는데 있어서, 고고학이 과연 온 역할은 높게 국민에게 평가되어 왔습니다만, 그 한편, 신발견이 중요한가와 같은 오해나 잘못된 풍조를 낳고 있던 우려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또 새로운 발견을 둘러싸고, 자료의 공개와 다양한 의견의 연구자에 의한 상호 비판이 불10분은 아니었던 것일까, 본협회라고 해도 어렵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협회로서 연구자 윤리의 철저에 대해서도 검토에 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고고학 협회 위원회는, 오늘, 고고학 연구 및 학계의 사회적 신용을 현저하게 해치는 결과를 불러, 본협회의 명예를 손상시킨 후지무라 신이치 회원의 행위는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서 회칙에 비추어, 탈퇴시키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전기 구석기 문제, 이른바 「원시인 유적」문제는, 「 신발견」의 연속으로 따라 인지되어 정설화 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만, 학계에는 더 이론도 많아, 논쟁의 와중에 있다고 해야 합니다.그러나 한편, 본협회가, 우리 나라 및 동아시아의 인류사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극히 중대한 이 문제에 관해서, 반드시 적극적으로 임해 학술적인 검토를 진행시켜 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 들여 반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지금까지, 본협회는, 그때그때의 중요한 과제에 대해서, 학회를 주어 집중적인 조사를 실시해, 예를 들면, 3월식 토기 문화 종합 연구 특별 위원회, 동굴 유적 조사 특별 위원회에 의한 3월 문화나 죠몽 초창기 문화의 적극적 해명등을, 실시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본협회는, 이번 사건에 의해서 의농`O가 생긴 유적의 검증을 포함해 전·중기 구석기 유적의 자유 활달인 학술적 검토가 집중적으로 행해지는 것의 필요를 인정해 특별 위원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검토 특별 위원회)를 조직 해 이것에 해당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에 관한 진지인 총괄과 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한 자료의 공표를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미 보고의 과거의 발굴 조사 결과에 대해서, 시급하게 학술 보고서를 간행하도록 요구합니다.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설치에 관한 기본적 생각분
일본 고고학 협회 위원회
《경과》
 11월 5일, 매스컴에 의해서 폭로 된, 이른바 「석기 발굴 날조 사건」은, 고고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실추시켜, 일본 열도의 인류 문화의 기원이라고 하는 역사상의 중대 문제에 관한 학술 연구상의 미비를 나타내게 되었다.
 일본 고고학 협회 위원회는, 이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 들여 11월 12일에 긴급 위원회를 소집해, 이 문제에의 대응을 협의한 결과, 이것은 개별 연구 분야, 혹은 관계 기관이나 관계 연구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실의 해명과 함께, 고고학이 지게하고 있는 사회적 책무에 귀감 보고, 일본 고고학 협회가 중심이 되어 대학 전체계적으로 시급하게 임해야 할 과제이다라는 공통 인식에 이르렀다.
 이 인식에 근거하고, 본위원회는 견해를 발표해, 그 중으로, 표기의 특별 위원회의 설치 준비를 진행시키는 것을 언명 했다.위원회·사무국에서는, 회장·부회장의 지시아래, 유시 회원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을 포함해 특별 위원회 설치를 향한 준비를 진행시켜 왔다.그 결과, 아래와 같은 기본방침으로, 특별 위원회 준비회를 발족시키고 싶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특별 위원회의 목적》
 본위원회 활동은, 적극적으로 공개성과 상호 비판을 진행시키는 것으로, 학술적인 공정함을 견지 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본특별 위원회의 임무는 크게 나누어 다음의 2점이다.
(1) 「날조 공작」의 발각으로 의혹이 기대고 있는, 전·중기 구석기시대제유적의 사실 인정 조사를 지원해, 이것에 협력해, 학회로서 필요한 조언, 조정을 실시하는 것.
(2) 전·중기 구석기시대 연구의 현상을 정리·총괄해, 과제와 연구의 논점을 분명히 해, 일본 열도의 인류 문화의 첫원에 관한 집중적인 연구의 진전에 필요한 방법론의 확립과 연구 및 조사 체제의 정비를 진행시킨다.
《특별 위원회의 조직과 운영》
 본특별 위원회는 2001년 5월에 예정 되고 있는 2001년도 일본 고고학 협회 제 67회 총회에 대해 설치의 결의를 해 정식으로 발족하는 단계가 되지만, 그 조직은, 일본 고고학 협회 회원 뿐만 아니라, 관련제과학 분야의 연구자를 위촉 하는 등, 100명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 상정되어 제과제에 따른 복수의 서브·프로젝트에 의해서 구체적인 조사·연구가 진행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제활동에는, 회원, 회원외를 포함한 연구자를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조직 운영이 필요하다.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발족》
 이번 불상사에의 대응은 긴급을 필요로 한다.그러나, 일본 고고학 협회의 규약에 근거하는 특별 위원회의 설치는, 상기대로 내년 봄의 총회 결정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실정이다.이 때문에, 일본 고고학 협회 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의 사이, 실질적으로 특별 위원회의 목적으로 연결되는 제과제의 기본적인 해결 방법을 검토한다.
《그 외》
 협회·`마원회로서는, 각지역의 연구 단체, 관련 각 분야의 학회, 문화청을 시작해 관계 지방 자치체의 문화재 행정 기관 등등에, 특별 위원회의 활동에의 지원·협력을 요구해 필요한 협의·요청을 진행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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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개요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개요
 본특별 위원회는, 2001년 5월의 총회에 대해 설치의 승인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긴급을 필요로 하는 과제에 대응해, 특별 위원회의 조직·활동 내용을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일본 고고학 협회 위원회의 승인하에서 준비회를 발족시켰다.
위원장:토자와 미츠노리
위원:이나다 코우지·사가와 마사토시·시라이시 히로유키·츠루마루 토시아키·하기와라 히로후미·바바유남 하루나리수이·마츠후지 카즈토·야지마국 유우·마치다 히로시·야마나카 이치로
 
■제1회 준비회
일시:2000년 12월 20일(수)오후 2시~6시
장소:일본 고고학 협회 사무소
·준비회 설치에 이르는 경위, 준비회 위원의 선임등에 대해서 설명이 있어, 또 12월 5일의 카마타·카지와라 양회원과의 면담 결과의 보고가 있었다.
·호선에 의해서, 준비회의 위원장에 토자와 미츠노리씨를 선출했다.
·협회 위원회 원안의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의 설치에 관한 기본적 생각분」에 대해 검토해, 일부 수정해 승인했다.
·도쿄도·사이타마현·미야기현등에서의 검증 작업의 진척 상황, 동북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회·미야기현 고고학회의 동향이 보고되었다.
·후지무라 신이치씨의 관여한 발굴 조사에 관해서, 각 자치체·연구기관에 대해, 발굴조사의 경과, 해당 유적의 조사 결과, 검증·재조사등의 계획의 유무와 생각등의 조사를 의뢰하는 것을 결정했다.
·5월의 총회에서, 전·중기 구석기 문제의 심포지엄의 개최를 검토하기로 했다.

■제2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개요
일시:2001년 1월 28일(일)오후 2시~5시
장소:일본 고고학 협회 사무소
·12월 23·24일에 행해진 심포지엄 「 제14회 동북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회」 및 1월 21일에 행해진 심포지엄 「전기 구석기 문제를 생각한다」의 보고가 있었다.
·5월의 총회의 좌담식 공개 토론의 내용에 대해 검토했다.
·긴급 조치로서 후지무라씨의 관여한 유적의 출토 자료,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에 있는 후지무라씨의 콜렉션·자료의 제삼자 기관에의 이관을 요청한다.

■제3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개요
일시:2001년 2월 25일(일)오후 1시~5시
장소:일본 고고학 협회 사무소
·후지무라씨의 관여한 발굴 조사에 관해서, 조사 주체가 된 15의 자치체·연구기관으로부터의 회답 문서를 회람했다.
·사이타마현의 검증 활동의 진척 상황에 대하고 보고가 있었다.
·오이타현성악동굴의 문제에 대하고 보고가 있었다.
·야마가타현 오바나자와시수원 3 유적의 검증을 위한 발굴 조사의 조사 검토 위원회에, 토자와 위원장·사가와 위원이 더해지는 것을 승낙했다.
·5월의 총회에 있어서의 「공개토론회」의 안이 검토되어 명칭을 「 「구석기 발굴 날조 문제」를 얼마나 해결할까-일본의 앞·중기 구석기 연구의 현상과 문제점-」(이)라고 해, 보고 3개 및 좌담식 공개 토론이라고 하는 구성을 결정했다.
·특별 위원회에는, 큰 범위로서 학사의 검토등의 장기적 과제와 검증을 중심으로 한 단기적 과제를 축으로 작업 부회를 설치하는 것.위원회의 위원은 일부가 총무·총괄적 역할을 담당해, 그 이외의 위원은 작업 부회에 들어가는 것등이 검토되었다.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에 있는 후지무라씨의 콜렉션·자료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보관해 주었으면 한 취지의 의뢰를 했던 것이 보고되어 향후의 보관에 대해서는, 미야기현 고고학회등과도 상담하면서, 준비회로서의 대응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4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개요
일시:2001년 3월 23일(금)오후 2시 30분 ~5시 30분
장소:메이지 대학 대학 회관 4층 박물관 회의실
·준비회에 앞서,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미야기현 카미타카모리 유적에 있어서의 후지무라 신이치씨의 「조작 행위」를 촬영한 비디오를 열람했다.
·3월 14·15일에 토자와 위원장·야지마 위원이 미야기현을 방문해 사가와 위원과 함께 이하와 같은 활동을 실시했던 것이 보고되었다.
(1)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에 있는 후지무라씨의 콜렉션·자료를 일시적으로 봉인했다.
(2) 4월 14일(토)·15일(일)에 토호쿠 역사 박물관에서, 준비회와 동북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회·미야기현 고고학회와의 합동 검토회를 개최해, 거기서 향후의 활동에 관해서도 서로 이야기하는 것에 합의했다.
·오이타현성악동굴의 문제에 대하고 보고가 있었다.
·5월의 총회에 있어서의 좌담식 공개 토론의 사회 및 패널리스트의 후보자를 결정했다.또, 총회 레쥐메와는 별도로 공개토론회의 자료집을 간행하게 되었다.
·5월 11일에 센다이에서 개최되는 응용 지질 학회 토호쿠 지부 주최의 타 `V포지움의 발표자 2명의 추천 의뢰가 있어, 대응하게 되었다.
·후쿠시마현 아다치마치의 한 말 나이마츠 하야마 유적의 시굴 확인 조사를 4월에 실시하기에 즈음하고, 조사 지도 위원회에 협회로부터 2명의 위원의 파견 의뢰가 있어, 대응하게 되었다.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의 설치 요강안을 검토했지만, 계속 심의가 되었다.

■제5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준비회 및
동북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회·미야기현 고고학회와의 합동 검토회의 개요
일시:2001년 4월 14일(토)오후 1시~5시 30분
   4월 15일(일)오전 9시 30분 ~오후 3시
장소:토호쿠 역사 박물관
출석자:(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토자와 미츠노리·이나다 코우지·사가와 마사토시·
시라이시 히로유키·하기와라 히로후미·하루나리수이·마츠후지 카즈토·야지마국웅
(총무) 오가사와라호언·타니가와 아키오
(동북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회) 카토 미노루·키쿠치강일·쿠마가이상 타다시·시부야 타카오
(미야기현 고고학회 구석기 발굴 「조작」문제 특별 위원회 준비회) 츠지 히데토·아라이격·사쿠마 코헤이·사사키 카즈히로·야나기사와 카즈아키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 카마타 토시아키
(토호쿠대학 종합 학술 박물관) 야나기다 토시오
결석자:츠루마루 토시아키·바바유남·마치다 히로시·야마나카 이치로
·특별 위원회 준비회·동북일본의 구석기 문화를 말하는 회·미야기현 고고학회의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하고 보고가 있었다.
·야마가타현 오바나자와시수원 3 유적·후쿠시마현 아다치마치 한 말 나이마츠 하야마 유적의 발굴 조사에 대하고 보고가 있었다.
·후지무라씨의 콜렉션을 실견했다(총점수약 1300점).
·카미타카모리 유적·자자라기 유적·마 융`저dA유적·하라세카사하리 유적의 출토 자료를 실견해, 가지리·갈철광 부착·마멸·가열자국등 향후의 검토가 필요한 것을 픽업 했다.
·출토 자료의 검토 후, 향후의 방침등에 대해 의견교환을 했다.

■제6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개요
일시:2001년 5월 19일(토)오후 2시 30분 ~4시 30분
장소:고마자와 대학 대학 회관 2층 2-1
·토자와 위원장보다, 특별 위원회 준비회의 지금까지의 활동을 총괄하는 견해가 나타나고 그 내용을 포함한 문장을 위원장이 회보에 집필하게 되었다.
·후쿠시마현 아다치마치 한 말 나이마츠 하야마 유적의 발굴 조사에 대하고 보고가 있었다.
·특별 위원회의 향후의 스케줄에 대해서, 이하와 같이 결정되었다.
(1) 제1회 특별 위원회는 6월 10일(일)에 개최된다.
(2) 제1회 특별 위원회의 멤버는, 위원 취임을 승낙한 준비회 위원에게, 총괄 부회의 멤버가 되는 예정의 10명 정도의 위원을 가세하게 되었다.
(3) 특별 위원회 위원의 공모의□절은 6월말로 한다.
·특별 위원회의 시작까지의 사이에 긴급 과제가 생겼을 때에는, 토자와 위원장이 중심이 되어 대응하는 것이 승인되었다.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의 설치 요강
1.설치의 취지
 2000년 11월에 발각된, 이른바 「구석기 발굴 날조 사건」의 사실 관계를 해명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의혹과 불신을 불식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 열도의 인류 문화의 기원과 관계되기 전·중기 구석기시대 연구의 심화·발전을, 대학 전체계적 입장에서 기하기 위해, 일본 고고학 협회 회칙 제6조의 규정에 근거해, 특별 위원회를 마련한다.
2.명칭
 이 특별 위원회의 명칭을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라고 해, 필요에 따라서 「구석기 문제 특별위원회」라고 약칭을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3.위원의 위촉과 위원장의 선임
 특별 위원회 위원은 일본 고고학 협회 회장이 위촉 해, 위원장은 특별 위원회 위원의 호선으로 한다.
 아래와 같이 각부회의 위원의 보충등에 대해서는, 자천, 타추천을 포함할 수 있어 특별 위원회의 의논을 거치고 이것을 실시해, 협회 위원회에 그것을 보고해, 회장이 위촉 한다.
 덧붙여 이 특별 위원회는 과제의 성격상, 자연과학등 관련제과학의 협력이 불가결한 일로부터, 일본 고고학 협회원 이외의 연구자를 위원에 가세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4.특별 위원회의 조직
 특별 위원회는, 동위원회가 필요로 인정하는 조 사·연구의 과제에 대응하는 「총괄 부회」라고 복수의 「작업 부회」를 가지고 구성 하는 것으로 한다.
총괄 부회 및 각 작업 부회에는, 각각 1명의 대표자를 둔다.
총괄 부회는, 특별 위원회 위원장이 위촉 하는 위원과 각 작업 부회의 대표자를 가지고 구성 한다.
5.특별 위원회의 회의
 총괄 부회를 포함할 수 있었던 각 작업 부회는 필요에 따라서 회의를 가진다.
 특별 위원회의 전체 회의는 연 2회를 목표에 개최해, 활동의 경과나 성과를 총괄해, 회원 및 넓고 일반적으로 그것을 공개하는 것으로 한다.
6 사업 계획 연도
 본특별 위원회의 사업은, 당면 2001년(헤세이 13) 5월부터 2004년(헤세이 16) 4월까지의 3년으로 해, 그 연도 계획 종료시에 특별 위원회 개폐를 포함할 수 있어 재심 의논하는 것으로 한다.

■제1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총괄 부회의 개최(개요)
일시:2001년 6월 10일(일)오후 2시~4시 30분
장소:와세다 대학 문학부 제 1 회의실
·개회에 해당하고, 아마카스 켄 회장으로부터 인사가 있었다.
·토자와 미츠노리 준비회 위원장보다, 준비회의 활동의 총괄을 했다.
·본위원회 설치 요강에 근거해, 토자와 미츠노리씨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홋카이도·미야기·야마가타·이와테·사이타마·도쿄·후쿠시마 등 각지의 동향으로 대해서, 관계하는 위원으로부터 보고가 있었다.
·본위원회의 조직안에 대한 원안이 검토되어 총괄 부회아래에 이하와 같은 작업 부회를 설치하는 것을 결정했다.제1 작업 부회(유물 검증)· 제2 작업 부회(유적 검증)· 제3 작업 부회(검증 기술의 개발)· 제4 작업 부회(형식 연구)· 제5 작업 부회(연구 방법론의 연구)
·덧붙여 작업 부회에 새롭게 더해야 할 위원은 각부회에서 원안을 만들어, 위원장이 조정한다.
·위원장을 보좌하는 부위원장 2명을 두는 것이 승인되었다.부위원장에는, 코바야시 타츠오·하루나리수이두사람을 선출했다.
·작업 부회의 운영상의 사무 처리는 각부회에서 실시한다.
·2002년도 과학 연구비의 신청을 위해서, 각부회에서 연구과제를 제출하게 되었다.
·공모의 위원에 대해서는 6월말에□절, 7월 28일의 위원회의 의논을 거치고, 특별 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2001년 5월 19일의 제67회 총회에 대해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의 설치가 승인되었습니다.향후, 본위원회의 활동의 개요를 알리는 것에 합니다.덧붙여 홈페이지로의 게재는 가능한 한 신속히 실시할 생각입니다만, 회의록의 확정이나 원고의 작성 등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제2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총괄 부회의 개요
일시:2001년 6월 30일(토)·7월 1일(일)
장소:야마가타현 오바나자와시 공동 복지 시설
·6월 30일에 야마가타현 오바나자와시수원 3 유적을 현지 견학.그 후 숙소에서, 수원 3 유적, 홋카이도 소우신 부동비탈 유적 출토 자료의 검토를 실시한다.
·7월 1일은, 수원 3 유적 현지 견학의 총괄 및 출토 유물 관찰 결과의 총괄을 실시한다.
·미야기현 카미타카모리 유적의 검증 작업을 조기에 실현하기 위하여, 현 교육위원회등이라는 협의를 진행시킨다.
·후지무라 콜렉션의 카탈로그 만들기를 실시하기 위하여, 특별 위원회 제 1 작업 부회, 미야기현 고고학회,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라는 협의, 조정을 급한 것 진행한다.
·홋카이도 소우신 부동비탈 유적의 재발굴은 8월 하순에 실시의 예정.
· 각 작업 부회의 구성과 작업 스케줄의 확인.
·일본 고고학 협회 2001년도 모리오카 대회 개최시에, 각지의 검증 작업의 보고를 계획한다.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총괄 부회의 구성
위원장:토자와 미츠노리
부위원장:코바야시 타츠오·하루나리수이
위원:안비루 마사오·이나다 코우지·오다 시즈오·오노 아키라·코하타 히로시 키·키쿠치강일·키쿠치 토오루 남편·
사가와 마사토시·사토 히로유키·시부야 타카오·시라이시 히로유키·츠지 히데토·츠루마루 토시아키·하기와라 히로후미·
바바유남·마치다 히로시·마츠후지 카즈토·야지마국웅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각 작업 부회의 구성
(*는 부회장)
제1 작업 부회
(유물 검증)*오노 아키라·오누마 카츠히코·키쿠치강일·쿠보 히로시 사이와이·사토 히로유키·사토 료지·
사가와 마사토시·타케오카 토시키·츠루마루 토시아키·하루나리수이·불당시마 타다시·야마다 아키라홍
제2 작업 부회
(유적 검증)*시라이시 히로유키·아베상인·이나다 코우지·오오타케 켄쇼·키쿠치강일·키무라 히데아키·
코바야시 타츠오·사가와 마사토시·시부야 타카오·스와마순·츠지 히데토·토다 테츠야·
후지와라비 사토시·야마구치 타쿠야·야마다 아키라 히로시·야나기다 토시오
제3 작업 부회
(검증 기술개발)*야지마국 유우·오노 아키라·나카무라유극·후지타 히사시·마치다 히로시
제4 작업 부회
(형식 연구)*마츠후지 카즈토·이토 켄·코하타 히로시기·각장준이치·스나다 요시히로·타케하나화청·
나카가와화재·니시 아키라 히로시·하기와라 히로후미·후지나미계용·후지노차사·마병이치시
제5 작업 부회
(연구 방법 론 연구)*안비루 마사오·이시바시 타카오·우에다 신·오카야스 미츠히코·오리카사 아키라·사카이 타카시·사사키 카즈히로·시미즈종소·테시가와라창·히라쿠치 테츠오
 
■7월 7일~14일 제 2 작업 부회 위원 8명이, 각자수원 3 유적의 현지 검증을 실시한다.

■7월 18일 오노 아키라 제 1 작업 부회장이, 센다이로 향해 가, 미야기현 고고학회, 토호쿠 구석기 문화 연구소등과 함께, 후지무라 콜렉션의 확인과 자료화 작업의 협의를 실시한다.

■7월 19일 제 2 작업 부회 위원 11명이, 사이타마현 나가오네북 유적, 오지카 비탈 유적의 현지 검증을 실시한다.

■7월 27일 제 1회 위원장·부위원장·부회장 회의(어메이지 대학)
·6월말까지 응모가 있던 특별 위원회 위원 응모자의, 각 작업 부회에의 편성을 검토한다.

■7월 28일 일본 고고학 협회 7월 정례 위원회(어일본 고고학 협회 사무소)
·홋카이도 소우신 부동비탈 유적의 재발굴에 해당해, 협회 위원회에 파견 요청이 있어, 위원회로부터 다카하시 타다시승위원이, 특별 위원회로부터 시라이시 히로유키 위원·츠루마루 토시아키 위원이 더해지는 것을 승낙한다.

■8월 28·29일 제 2 작업 부회 위원 3명이, 홋카이도 소우신 부동비탈 유적의 현지 시찰을 실시한다.

■9월 12일 제 2회 위원장·부위원장·부회장 회의(어메이지 대학)
·미야기현 고고학회에서 카미타카모리 유적의 검증 발굴에 대한 협력 의뢰가 있었다.
· 각 작업 부회의 진척 상황의 보고 및 향후의 예정에 대해 협의했다.

■9월 23·24일 제 1 작업 부회가, 토호쿠 역사 박물관에 있고, 후지무라 콜렉션의 조사 및 카미타카모리 유적·바바 단상 A유적·자자라기 유적의 자료의 검토를 실시한다.

■제3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총괄 부회의 개요
일시:2001년 9월 29일(토)
장소:일본 고고학 협회 사무소
·후지무라 신이치 전 회원과의 면담 결과에 대해.
·카미타카모리 유적 검증 발굴 조사단에의 조사위원 및 지도·조언 위원의 파견에 대해 협의.
· 각 작업 부회의 진척 상황의 보고와 향후의 예정에 대해.
· 제1회 전체 회의 및 모리오카 대회시의 보고·전시에 대해 협의.
·2002년도 과학 연구비 보조금신청의 과제 정리에 대해.
 
■제1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전체 회의의 개요
일시:2001년 10월 6일(토)
장소:모리오카시민 문화 센터 회의실
·5월 이후의 특별 위원회의 활동 보고.
· 각 작업 부회의 활동 상황과 향후의 과제등에 대해 협의했다.
·후지무라 신이치 전 회원의 날조의 고백에 대해 보고되었다.
·날조 고백은 검증을 위한 1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해 또 고백의 유무에 관계없이, 앞으로도 필요한 학술적 검증을 계속하는 것을 확인했다.

■일본 고고학 협회 2001년도 모리오카 대회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보고
·지금까지 검증 작업을 실시해 온 소우신 부동비탈 유적·수원 3 유적·한 말 나이마츠 하야마 유적의 보고를 실시한다.
·5월 이후의 특별 위원회의 활동 보고.
·후지무라 신이치 전 회원의 날조의 고백에 대해 보고되었다.

■「구석기 문제」의 검증은 어디로 나아갔는지
-일본 고고학 협회 2001년도 모리오카 대회로의 보고 전문-
2001년 10월 7일
전·중기 구석기 문제 조사 연구 특별 위원회 위원장 토자와 미츠노리
 특별 위원회, 위원장의 토자와입니다.우선 처음에, 매우 자주(잘) 계획되어 준비된 본대회의 스케줄안에, 이 특별 보고회를 끼어들어 , 대회 실행 위원회에, 몹시 폐를 끼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관계자의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답례를 신완성합니다.감사합니다.
검증을 향한 대학 전체계적 대처
 조속히, 보고에 들어갑니다.특별 위원회의 일반 경과 보고에 관해서는, 수중의 책자의 15 페이지 이하(홈 페이지에 게재가 끝난 상태)를 참조해 주시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설명을 생략 하겠습니다.
 단지, 이전의 특별 위원회의 활동을 포함할 수 있고, 작년말 이래의 이 문제에의 대처의 추이를 보면, 전국의 연구 단체, 연구자끼리, 한층 더 자치체나 관계 기관 등등, 상호의 사이로, 협력, 협조의 관계가 촉진되어 많은 장면에서 그 성과가 눈에 보인 것은, 몹시 기쁜 것이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극히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수의 단체나 관계 기관이, 공동 그리고, 혹은 협력하고 심포지엄을 열거나 지금까지 행해진 유적의 재발굴등에는, 실시 주체의 자치체의 요청에 따르고, 특별 위원회의 위원을 포함한, 많은 일본 고고학 협회원이 조사에 참가해, 협력했습니다.
 또 회원 여러분에 있어서는, 협회 위원회의 요청에 따르고, 활동 자금의 모금에 적극적으로 협력되어 270만엔 이상으로 오르는 갹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상, 개략을 신완성했습니다만, 특별 위원회 위원장으로서는, 모든 것을 병조생이라고, 깊게 경의를 겉(표)곳에서 있습니다.그와 동시에, 이번 사건으로 크게 신뢰를 잃은 일본 고고학의 신뢰를,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학회내의 결속, 관계 기관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더욱 더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면 통감하겠습니다.
검증 발굴의 결과와 과제
 다음에, 지금까지 행해진, 검증을 위한 재발굴조사에 대해 접해 두고 싶습니다.
 오늘은, 한 말 나이마츠 하야마, 수원 3, 소우신 부동비탈의 3 유적에 도착해 조사의 담당자로부터 직접 보고를 해 주셨습니다.그 내용은 반복하지 않습니다만, 오늘, 보고가 없었던 도쿄도 다마뉴타운 No.471-B유적, 그리고 사이타마현 치치부의 유적군의 재발굴을 수반하는 검증의 경과와 그 결과는, 저희들에게 귀중한 체험으로서 기억되어 또 재차, 고고학의 발굴 조사의 본연의 자세라고 하는 점에서도, 향후에 활용해야 할 반성의 소재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검증 조사의 결과 전체를 보면, 검증 발굴을 하나 진행하면, 그 만큼 의혹이 강해진다-알기 쉬운 표현을 사용하면, 「그레이」의 힘이 증가하는 일이 있어도, 「흰색」이 새롭게 더해지는 것은 전무였다고 하는 일예상을 웃도는 어려운 현실을 모르면 안 되었다고 하는 것이, 현상으로의 인식입니다.
 또, 특히 소견을 더한다면, 비록 얼마나 엄밀하게 재발굴이나 검증을 실시해도, 「크로」인가, 「흰색」인가, 를100% 실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은 아닐것인가 라고 하는 것을, 재차 경험하게 되었다고 하는 점도, 솔직하게 실감합니다.그 때문에(위해) 향후는 모든 가능인 수단을 활용하고, 목표를 짠 검증 작업을 실시해, 복합적·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시급하게 각 작업 부회등의 활동을 진행시키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작업 부회의 활동 상황
다음에, 작업 부회의 지금까지의 활동과 향후의 대처의 방향성에 대해서, 개요를 신완성합니다.
○ 제1 작업 부회(석와`□패리)는, 9월 22·23 양일, 미야기현 고고학회와 합동으로, 후지무라씨가 작년 단계에서 날조를 고백한 카미타카모리 유적의 석기(전시중)를 한층 더 엄밀하게 검증해, 그 기초 데이터에 근거해 다른 의혹 유적의 것과 비교 검증을 펼치고 있습니다.또, 같은 검증회에서, 후지무라 콜렉션, 및 자리 산란목, 바바 단상 A의 석기등을 검증해, 그것들에 많은 의혹의 점을 지적할 수 있다고 하는, 보도 발표를 한 것은, 주지대로입니다.이것에 대한, 정식적 보고는 향후로  알고 있습니다.
○ 제2 작업 부회(유적 검증)는, 지금까지 행해진 재발굴유적의 시찰이나 관찰을 독자적인 입장에서, 제삼자적으로 공정한 입장에서 실시해 왔습니다만, 그 리포트의 작성을 진행시키고 있는 단계입니다.그러한 의혹의 유적의 검증과 함께, 향후의 연구의 기초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있는 유적에 대한 재검토, 재평가를 향한 작업을 진행시키는 방향성도,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가 있습니다.
○ 제3 작업 부회(자연과학과의 제휴)는, 지금까지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자에게 의존해 온 것 같은 자연과학적 분석등을, 고고학이 주체적으로 구상 해, 검증 뿐만 아니라, 장래로 연결되는 연구의 기초를 만들기 위해, 관계 자연과학 관련 학회, 연구자라는 검토를 근처 시작하게 되어 있습니다.당면/`A새해도 이후의 연구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연구소비신청을 위한 프로젝트의 구상의 책정을 급한 것.
○ 제4 작업 부회(형식 학문적 검토)는, 지금까지의 특히 지금 문제의 전·중기 구석기의 형식 학문적 분석의 미비를 반성해, 넓은 시야에 떠난 방법론의 복구축과 당면, 의혹 석기의 검증을 위한 죠몽 시대의 것을 포함하는, 헤라장 석기의 분석을 진행시키고 있는 곳(중)입니다.
○ 제5 작업 부회(연구사·방법론)에서는, 전·중기 구석기를 포함하는, 일본의 구석기 연구의 연구사와 방법론의 정리와 총괄을 실시해,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된 연구 체제나 사회 상황등을 밝혀내기 위한, 몇개의 테마를 분담하고, 그 작업에 들어갔는데입니다만, 나중에 말하는 이번 긴급사태를 근거로 하고, 교과서나 학교등의 역사 교육의 혼란에 대응하는, 학회로서의 책임 있는 대응, 견해를 나타내기 위한 검토를, 시급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어제의 특별위원회에서, 각부회의 협력도 얻고, 그것에 임하기로 했습니다.
 이상이 각부회의 활동 상황의 개황 보고입니다만, 그 각각의 성과에 대해서는, 내년 봄의 일본 고고학 협회 총회에 대하고, 각부회로부터 상세한 보고가 이루어지게 될까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지무라 신이치 씨와의 면담의 경과와 내용
 그런데 다음에, 금년 5월 이래, 5회에 걸쳐서, 내가 후지무라 신이치씨와 면담을 거듭해 온 경위와 그 내용에 대해서, 그 개요를 보고하겠습니다.
 예째신완성합니다만, 후지무라씨는 현재도, 「심신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있는 병」으로, 국내의 모병원에 입원 요양중입니다.당사자의 인권·인격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에 관련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피해 보고하게 됩니다.또, 보도의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서, 오늘의 나의 보고 이상을 추구되는 것, 후지무라 씨와의 접근을 도모하는 일은, 인도상의 입장으로부터, 엄하게 삼가해지도록, 나부터 이 장소에서 강하게 요청해 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면담의 양태】
 나와 후지무라 씨와의 면담은, 5월 23일, 5월 30일, 7월 25일, 9월 13일, 9월 26일의 5회 행해졌습니다.면담 시간은 1시간내지 1 시간 반의 범위의 단시간이었습니다.면담에는 항상 주치의와 후지무라씨의 변호사가 입회해, 나부터도 후지무라씨에게 발언을 강요 하는것 같은 일은 없고, 특히 병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주치의의 조언과 지시를 받으면서, 세심의 주위를 기울이고 면담을 진행시켰습니다.그 때문에, 전체적으로, 후지무라씨의 자유로운 발언을, 이쪽에서 알아 듣는다고 하는 형태이며, 중요한 고백에 대해서, 이쪽에서 반문, 확인하면?`「일도 10분에 실시하지 않는 상태로 오늘까지 경과하고 있습니다.
【제1·2회 면담】
 제1회(5월 23일), 제2회(5월 30일)의 면담은, 작년말 이래의 학회등으로의 검증 활동의 경과나 상황을, 간결하게 설명한 이외에서는, 후지무라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들)물어, 그의 마음을 열게 해 나와의 면담의 하기 쉬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이 소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중으로, 후지무라씨는 학계나 사회, 거기에 함께 일을 해 온 동료들에게, 스스로 일으킨 것의 책임을 사과해 나(특별 위원회)의 조사에 협력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2회의 면담마다 명확하게 말했습니다.입회한 주치의도, 그것은 후지무라씨의 본심으로서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조언 을 하고 있습니다.
【제3회 면담】
 7월 25일의 제3회 면담은, 정확히 수원 3 유적의 재발굴의 결과가 조사단으로부터 발표된 직후의 일로 했다.나부터도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후, 노트를 손에 넣어 우선,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는 심경말했습니다.그리고, 수원 3으로의 날조의 증거를 인정한 후, 후지무라씨는 노트(혹은 메모)를 손에 넣으면서, 치치부의 유적에 도착하고, 고민의 표정으로, 날조를 보소보소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그러나 극도 의 긴장을 위해인가, 이쪽의 간단한 질문에도 대응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주치의의 조언도 있고, 그 이상의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후지무라 메모」】
 그 후, 8월 16 일자로, 주치의로부터, 「후지무라씨가 제3회 면담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유적명의 메모라고 해 건네받은 것」이라고 하는 취지의 설명아래에, 한 장의 자필의 메모가 보내져 왔습니다.이 메모는 다음 번의 면담(9월 13일) 때, 워드프로세서에 쳐 더 되고, 한층 더 수유적의 추가가 더해지고, 재차 직접, 후지무라 씨한테서 건네졌습니다.따라서 후지무라 메모라고 하는 것은, 형편 2건 있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제4회 면담】
 제4회(9월 13일)의 면담은, 전회의 면담때의 후반의 혼란을 재현하지 않게, 예째문서로 질문 사항을 후지무라씨에게 나타내 두고 나서, 간을 두어 순서대로 후지무라씨의 이야기를, 약간 시간을 들여 듣는 것이 좋다고 하는 주치의의 권고에 근거하고, 제 쪽으로 질문 사항을 10항목으로 정리해 그것을 직접 전하고, 질문 내용의 취지를 설명해, 그것에의 회답을 요청한다고 하는 목적의 면담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고, 서서히 끌어올릴 생각 , 후지무라씨로부터,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말해지고,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돌연, 당돌이라고 하는 느낌 중(안)에서, 1981년의 자자라기 유적이 말해졌습니다.10~15분 정도의 이야기를 일단 (들)물었습니다만, 지나친 일로, 나도 냉정함을 약간 잃어, 갈팡지팡했습니다만, 오늘 건네준 질문서에도 있으니까, 다음에 왔을 때, 정확하게 (듣)묻고 싶다고 하는 것으로, 그 날의 면담은 끝났습니다.
【제5회 면담】
 그리고, 현재까지 , 최종에 해당하는 제5회째의 면담은, 9월 26일에 행해졌습니다.오늘부터 거슬러 올라가 세어도 불과 11일전의, 극히 최근의 일이라고 하는 점을, 아무쪼록 기억해 주십시오.
 그 날은, 전회, 2주일전에 건네준 질문 사항의, 하나, 둘에 대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다고 하는 예측으로 갔습니다만, 후지무라씨는 자신이 만든 메모(문장)를 준비하고, 그것을 읽어 내린다고 하는 형태로, 꽤 장시간에 걸치고, 10항목 전체에 건너고, 내용의 정밀함과 거침은 있습니다만 설명을 실시했습니다.
【신문보도의 파문】
 정말로, 충격적으로 중대한 고백이었습니다.그 청취의 이 쪽편의 기록등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정확히, 오늘의 대회의 특별 보고회등의 준비를 위해 설정해 있던 9월 29일의 본특별 위원회 총괄 부회에, 이 중대한 고백의 내용을 보고해, 사후의 조치나, 대회로의 보고의 방법등을 도모하는 예정으로 있던 참, 9월 29일 조간으로의 스쿠프 보도가 흘러가 버렸습니다.
 특별 위원회로서는, 위원장명으로, 이러한 혼란을 야기하는 보도에 대해서, 극히 유감스럽다라는 긴급의 견해를, 보도 각사에, 당일 전달했습니다만, 그것을 전한 신문, 텔레비젼등은 나의 이목에는 전혀 멈추지 않았습니다.재차 유감의 뜻을, 오늘 여기서 표명 해 둡니다.
 예상대로, 보도를 받고, 전국의 관계 기관, 자치체, 그리고 지역 주민  여러분에게 대단한 혼란을 일으켜, 다대한 폐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특별 위원회에 대한 꾸중도 귀에 아플 정도(수록) 받았습니다.위원장으로서 정보 관리나 위원회 운영에 달콤함이 있던 것은 나의 책임이며, 회원 및 지금까지 협회의 검증 작업등에 전체 폭의 협력을 받은 전국의 관계 자치체등의 여러분에게 깊게 사과합니다.
날조 고백 유적명의 공표
 위원회로서는 이 사태를 근거로 해 후지무라씨 고백의 확인 작업이 불10분 날것까지, 정말로 본의 아니게, 이 대회 직전의 1 O월 5일까지, 각 도현 교육위원회, 발굴 주체자, 관계 자치체의 모두에게, 후지무라씨의 고백으로 어떠한 형태로 이름이 나온 유적명을, 협회 및 특별 위원회의 정식 문서로서 개별적으로 통지를 출?`오 연과도 병조생이라고 보고해 둡니다.
 여기서 재차, 고백이 있던 전유적명을 공표하겠습니다.
홋카이도:계 4 유적 소우신 부동비탈, 하 비만니시, 덴구바나, 비바우시
이와테현:계 2 유적 표주박구멍, 사와자키
미야기현:계 14 유적좌 산란목, 바바 단상 A, 타카모리, 카미타카모리,
나카지마산, 고산관 2, 아오바산 E, 사와구치,
야쿠라이산 No.39, 야쿠라이산 No.40, 안요우지 2,
오야치(II), 마에카와라앞, 카니사와 II
야마가타현:계 6 유적수원 3, 수원 6, 카미노 A, 야마야A, 우라야마, 카나자와산니즈츠미 2
후쿠시마현:계 2 유적 하라세카사하리, 한 말 나이마츠 하야마
군마현:계 3 유적 시모카와논이리사와, 아카미 고개, 나카야마토게
사이타마현:계 11 유적 오지카 사카, 나가오네, 나가오네북, 히노키입,
103프랑스, 나미키하, 음악당리, 중엽산?,
망간지, 테라오I, 테라오II
공표내용등에 대한 견해
 이상의 보고에 관계하고, 학계로서 또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지는, 특별 위원회 및 위원장의 견해를 부언 해 둡니다.
1.지금의 우리 나라의 법 체계의 아래에서 「자백은 즉증거가 되지 않는다」또 「의심스러운은 처벌하지 않고」라고 하는 상식이라고 하는지, 법의정신이 있습니다.이번, 특별 위원회로서 어쩔 수 없는 사정아래에 공표한 유적명은, 모두, 말하자면 자백에 머무르는 것으로, 학회로서 그것들을 확실한 증거로 해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해 두고 싶습니다.
2.그러한 인식에 선다면, 대학 전체계적으로 임하고 있는 검증은, 지금부터가 실전, 중대국면으로서 특별 위원회는 활동을 강화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미야기현 고고학회를 주체로 한 카미타카모리의 발굴은 당면의 큰 대처라고 파악합니다.운`·


所謂神の手事件について(来歴と学会の見解&対処)

藤村新一
来歴
1950年生まれ。仙台育英高等学校卒業後、東北電力子会社の東北計器工業へ就職。工員時代に考古資料に興味を持つようになり、1973年には「宮城県古川市馬場壇発見の文字瓦」(共著、『遮光器』7、pp.18〜21、みちのく考古学研究会)において線刻文字瓦を資料紹介した。翌1974年以降は、江合川流域の石器を中心とした踏査を始め、1975年にはこの時の仲間を主力とする石器文化談話会が結成され、石器探しの名人として活動した。仲間内では「ゴッドハンド(神の手)」の異名を馳せた。日本の旧石器時代史の争点であった前期・中期旧石器時代の遺跡を「発見」し、東北電力系の会社に勤務しながら1992年には民間の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設立に参加、1999年に会社を退職し、同研究所職員となる。同研究所は2000年8月には、NPO法人として認証(2004年1月解散)され、副理事長として活動した。

 

要点:藤村は「アマチュア考古学研究者」である。

 

藤村が、在籍していた学会である日本考古学協会について。

 

有限責任中間法人 日本考古学協会定款
 第1章 総則
(名称)
第1条 この法人は、有限責任中間法人日本考古学協会という。
(目的)
第2条 この法人は、考古学研究者が、自主・民主・平等・互恵・公開の原則にたって、考古学の発展を図ることを目的とする。
2 このため、考古学研究者の全国的組織として、社員間及び関係学会との協力・交流を推進し、積極的に研究条件を改善し、文化財保護など社会的責任の遂行に努力する。
(事業)
第3条 この法人は前条の目的を達成するために次の事業を行う。
 (1) 研究及び調査の実施
 (2) 学会誌、学術図書等の刊行
 (3) 研究発表¥会、学術講演会、シンポジウム等の開催
 (4) 文化財の保護に関する事業
 (5) 研究の奨励及び研究業績の表¥彰
 (6) 関連学術団体との連携及び協力 
 (7) 国際的な研究交流の推進
 (8) その他の事業
(事務所)
第4条 この法人は、主たる事務所を東京都江戸川区に置く。
(基金の総額)
第5条 この法人の基金の総額は、金25,418,902円とする。
(現物拠出)
第6条 設立に際して現物拠出する者、拠出の目的たる財産及びその価格は別紙現物拠出目録記載のとおりとする。
(基金の拠出者の権利に関する規定)
第7条 拠出された基金は、この法人の解散のときまで返還しない。
(基金返還の手続)
第8条 この法人の解散時の議決を経た後、理事会が決定したところに従って返還する。
(公告の方法)
第9条 この法人の公告は、事務所の掲示板に掲示する。

 第2章 会員
(種別)
第10条 この法人の会員は、次のとおりとする。
 (1) 正会員 考古学に関し学識経験を有する個人で、この法人の目的に賛同して入会した者 
 (2) 名誉会員 考古学について顕著な功績があり、又はこの法人の発展に寄与した個人もしくは団体で、理事会の推薦により総会で承認された者
2 正会員(以下「会員」という。)をもって法律上の社員とする。
(入会)
第11条 この法人の会員になろうとする者は、別に定める入会申¥込書を提出し、総会の承認を得なければならない。
2 名誉会員は理事会の推薦に基づき総会の議を経て定める。
(会員の義務)
第12条 会員は第2条の目的を達成するため努力し、会員としての活動の如何にかかわらず、総会の定める倫理綱領を遵守しなければならない。
2 会員はこの法人の目的を達成するため、別に定める会費を支払う義務を負う。
(資格の喪失)
第13条 会員は、次の事由によってその資格を喪失する。
 (1) 退会したとき
 (2) 死亡し、若しくは失踪宣告を受けたとき
 (3) 会費を3年以上滞納したとき
 (4) 除名されたとき
(退会)
第14条 会員が退会しようとするときは、退会届を会長に提出しなければならない。
(除名)
第15条 会員が次の各号の一に該当するときは、法律の規定に従って、除名することができる。
 (1) この法人の名誉又は信用を著しく傷つける行為のあったとき
 (2) この法人の目的に違反する行為のあったとき
 (3) その他正当の事由あるとき

(以下略)

 

要点:日本考古学協会はあくまで考古学の発展を図る事を目的にしているのであり、捏造事件が発覚したら、下記の通り色々調査等の対処を行い、その都度見解を発表¥している。


日本考古学協会の、藤村のした事に対する見解および対処

 

■上高森遺跡問題等についての委員会見解
2000年11月12日
日本考古学協会委員会
 日本考古学協会は、1948年に結成されたわが国の考古学研究者の全国組織で、自主・民主・平等・互恵・公開の原則にたって考古学の発展をはかることを目的として活動してきました。
 考古学は、遺跡の発掘調査によって確認された事実関係を基礎とする科学です。このたび明らかとなった藤村新一会員による上高森遺跡、総進不動坂遺跡の調査における考古学的事実の捏造は、考古学の基礎を自ら破壊するもので、研究者としての倫理が厳しく問われる行為です。日本考古学協会は、このような行為をなす者を出し、しかも研究者相互の批判によってこれを防ぐことができず、わが国の考古学の信頼を大きく傷つけたことに対し、深くお詫び致します。大地に残された過去の人間活動の痕跡の調査を通じて、列島の歴史をより豊かに描き出す上で、考古学が果たしてきた役割は高く国民に評価されてきましたが、その一方で、新発見こそが重要であるかのような誤解や誤った風潮を生み出していた恐れはなかったかどうか、また新たな発見をめぐって、資料の公開と多様な意見の研究者による相互批判が不十¥分ではなかったのか、本協会としても厳しく反省する必要があると受け止めています。協会として研究者倫理の徹底についても検討に取り組みたいと考えます。
 日本考古学協会委員会は、本日、考古学研究及び学界の社会的信用を著しく損なう結果を招き、本協会の名誉を傷つけた藤村新一会員の行為は到底容認できないものとして、会則に照らし、退会させることを決定しました。
 前期旧石器問題、いわゆる「原人遺跡」問題は、「新発見」の連続によって認知され、定説化されたように受け止められていますが、学界にはなお異論も多く、論争の渦中にあるというべきです。しかし一方、本協会が、わが国及び東アジアの人類史を考える上できわめて重大なこの問題に関して、必ずしも積極的に取り組んで学術的な検討を進めてきたとは言い難いとの指摘は、謙虚に受け止め、反省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これまで、本協会は、その時々の重要な課題について、学会をあげて集中的な調査を行い、例えば、弥生式土器文化総合研究特別委員会、洞穴遺跡調査特別委員会による弥生文化や縄文草創期文化の積極的解明などを、実施してきた歴史があります。本協会は、今回の事件によって疑念の生じた遺跡の検証を含めて前・中期旧石器遺跡の自由闊達な学術的検討が集中的に行われることの必要を認め、特別委員会(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検討特別委員会)を組織してこれに当たりたいと考えます。
 なお、「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に対しては、今回の事件に関する真摯な総括と真相を明らかにするための資料の公表¥を求めるとともに、未報告の過去の発掘調査結果について、早急に学術報告書を刊行するよう求めます。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設置に関する基本的考え方
日本考古学協会委員会
《経過》
 11月5日,マスコミによって暴¥露された,いわゆる「石器発掘捏造事件」は,考古学に対する社会的信頼を失墜させ,日本列島の人類文化の起源という歴史上の重大問題に関する学術研究上の不備を示すこととなった。
 日本考古学協会委員会は,この事態を深刻に受け止め,11月12日に緊急委員会を招集し,この問題への対応を協議した結果,このことは個別研究分野,あるいは関係機関や関係研究者だけの問題でなく,事実の解明とともに,考古学の負わされている社会的責務に鑑みて,日本考古学協会が中心となって全学界的に早急に取り組むべき課題であるとの共通認識に達した。
 この認識に基づいて,本委員会は見解を発表¥し,その中で,標記の特別委員会の設置準備をすすめることを言明した。委員会・事務局では,会長・副会長の指示の下,有志会員の意見を聴取するなどのことを含めて特別委員会設置に向けての準備をすすめてきた。その結果,下記のような基本方針で,特別委員会準備会を発足させたいとの結論に至った。
《特別委員会の目的》
 本委員会活動は,積極的に公開性と相互批判を進めるもので,学術的な公正さを堅持する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
 本特別委員会の任務は大きく分けて次の2点である。
(1)「捏造工作」の発覚で疑惑のもたれている,前・中期旧石器時代諸遺跡の事実認定調査を支援し,これに協力し,学会として必要な助言,調整を行うこと。
(2)前・中期旧石器時代研究の現状を整理・総括し,課題と研究の論点を明らかにし,日本列島の人類文化の初源に関する集中的な研究の進展に必要な方法論の確立と,研究および調査体制の整備を進める。
《特別委員会の組織と運営》
 本特別委員会は2001年5月に予¥定されている2001年度日本考古学協会第67回総会において設置の決議が行われ,正式に発足する運びとなるが,その組織は,日本考古学協会会員のみでなく,関連諸科学分野の研究者を委嘱するなど,100名規模の大型プロジェクトとなることが想定され,諸課題にそった複数のサブ・プロジェクトによって具体的な調査・研究が進められることになろう。
以上のような諸活動には,会員,会員外を含めた研究者が積極的に参加できる組織運営が必要である。
《特別委員会準備会の発足》
 今回の不祥事への対応は緊急を要する。しかし,日本考古学協会の規約に基づく特別委員会の設置は,上記の通り来春の総会決定を待たなければならない実情である。このため,日本考古学協会委員会では,それまでの間,実質的に特別委員会の目的につながる諸課題の基本的な解決方法を検討する。
《その他》
 協会委員会としては,各地域の研究団体,関連各分野の学会,文化庁をはじめ関係地方自治体の文化財行政機関等々に,特別委員会の活動への支援・協力を求め,必要な協議・要請を進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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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特別委員会準備会の概要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準備会の概要
 本特別委員会は、2001年5月の総会において設置の承認をはかるものであるが、緊急を要する課題に対応し、特別委員会の組織・活動内容を検討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日本考古学協会委員会の承認のもとに準備会を発足させた。
委員長:戸沢充則
委員:稲田孝司・佐川正敏・白石浩之・鶴丸俊明・萩原博文・馬場悠男春成秀爾・松藤和人・矢島國雄・町田洋・山中一郎
 
■第1回準備会
日時:2000年12月20日(水)午後2時〜6時
場所: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準備会設置に至る経緯、準備会委員の選任などについて説明があり、また12月5日の鎌田・梶原両会員との面談結果の報告があった。
・互選によって、準備会の委員長に戸沢充則氏を選出した。
・協会委員会原案の「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の設置に関する基本的考え方」について検討し、一部修正して承認した。
・東京都・埼玉県・宮城県などでの検証作業の進捗状況、東北日本の旧石器文化を語る会・宮城県考古学会の動向が報告された。
・藤村新一氏の関与した発掘調査に関して、各自治体・研究機関に対し、発掘調査の経過、当該遺跡の調査結果、検証・再調査などの計画の有無と考え方等の調査を依頼することを決定した。
・5月の総会で、前・中期旧石器問題のシンポジウムの開催を検討することにした。

■第2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準備会の概要
日時:2001年1月28日(日)午後2時〜5時
場所: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12月23・24日に行われたシンポジウム「第14回東北日本の旧石器文化を語る会」および1月21日に行われたシンポジウム「前期旧石器問題を考える」の報告があった。
・5月の総会のパネルディスカッションの内容について検討した。
・緊急措置として、藤村氏の関与した遺跡の出土資料、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にある藤村氏のコレクション・資料の第三者機関への移管を要請する。

■第3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準備会の概要
日時:2001年2月25日(日)午後1時〜5時
場所: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藤村氏の関与した発掘調査に関して、調査主体となった15の自治体・研究機関からの回答文書を回覧した。
・埼玉県の検証活動の進捗状況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大分県聖嶽洞穴の問題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山形県尾花沢市袖原3遺跡の検証のための発掘調査の調査検討委員会に、戸沢委員長・佐川委員が加わることを了承した。
・5月の総会における「公開討論会」の案が検討され、名称を「『旧石器発掘捏造問題』をいかに解決するか−日本の前・中期旧石器研究の現状と問題点−」とし、報告3本およびパネルディスカッションという構¥成を決定した。
・特別委員会には、大枠として学史の検討などの長期的課題と検証を中心にした短期的課題を軸に作業部会を設置すること。委員会の委員は一部が総務・総括的役割を担い、それ以外の委員は作業部会に入ることなどが検討された。
・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にある藤村氏のコレクション・資料については、厳重に保管して欲しい旨の依頼をしたことが報告され、今後の保管については、宮城県考古学会などとも相談しながら、準備会としての対応を考えることとなった。
 
■第4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準備会の概要
日時:2001年3月23日(金)午後2時30分〜5時30分
場所:明治大学大学会館4階博物館会議室
・準備会に先立ち、毎日新聞社で、宮城県上高森遺跡における藤村新一氏の「ねつ造行為」を撮影したビデオを閲覧した。
・3月14・15日に戸沢委員長・矢島委員が宮城県を訪れ、佐川委員とともに以下のような活動を行ったことが報告された。
(1)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にある藤村氏のコレクション・資料を一時的に封印した。
(2)4月14日(土)・15日(日)に東北歴史博物館で、準備会と東北日本の旧石器文化を語る会・宮城県考古学会との合同検討会を開催し、そこで今後の活動に関しても話し合うことで合意した。
・大分県聖嶽洞穴の問題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5月の総会におけるパネルディスカッションの司会およびパネラーの候補者を決定した。また、総会レジュメとは別に公開討論会の資料集を刊行することになった。
・5月11日に仙台で開催される応用地質学会東北支部主催のシンポジウムの発表¥者2名の推薦依頼があり、対応することになった。
・福島県安達町の一斗内松葉山遺跡の試掘確認調査を4月に実施するにあたって、調査指導委員会に協会から2名の委員の派遣依頼があり、対応することになった。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の設置要綱案を検討したが、継続審議となった。

■第5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準備会および
東北日本の旧石器文化を語る会・宮城県考古学会との合同検討会の概要
日時:2001年4月14日(土)午後1時〜5時30分
   4月15日(日)午前9時30分〜午後3時
場所:東北歴史博物館
出席者:(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戸沢充則・稲田孝司・佐川正敏・
白石浩之・萩原博文・春成秀爾・松藤和人・矢島國雄
(総務)小笠原好彦・谷川章雄
(東北日本の旧石器文化を語る会)加藤稔・菊池強一・熊谷常正・渋谷孝雄
(宮城県考古学会旧石器発掘「ねつ造」問題特別委員会準備会)辻秀人・荒井格・佐久間光平・佐々木和博・柳澤和明
(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鎌田俊昭
(東北大学総合学術博物館)柳田俊雄
欠席者:鶴丸俊明・馬場悠男・町田洋・山中一郎
・特別委員会準備会・東北日本の旧石器文化を語る会・宮城県考古学会のこれまでの活動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山形県尾花沢市袖原3遺跡・福島県安達町一斗内松葉山遺跡の発掘調査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藤村氏のコレクションを実見した(総点数約1300点)。
・上高森遺跡・座散乱木遺跡・馬場壇A遺跡・原セ笠張遺跡の出土資料を実見し、ガジリ・褐鉄鉱付着・摩滅・加熱痕など今後の検討が必要なものをピックアップした。
・出土資料の検討後、今後の方針等について意見交換が行われた。

■第6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準備会の概要
日時:2001年5月19日(土)午後2時30分〜4時30分
場所:駒澤大学大学会館2階2−1
・戸沢委員長より、特別委員会準備会のこれまでの活動を総括する見解が示され、その内容を含む文章を委員長が会報に執筆することになった。
・福島県安達町一斗内松葉山遺跡の発掘調査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特別委員会の今後のスケジュールについて、以下のように決定された。
(1)第1回特別委員会は6月10日(日)に開催される。
(2)第1回特別委員会のメンバーは、委員就任を承諾した準備会委員に、総括部会のメンバーとなる予¥定の10人程度の委員を加えることになった。
(3)特別委員会委員の公募の〆切は6月末とする。
・特別委員会の立ち上げまでの間で緊急課題が生じた時には、戸沢委員長が中心となって対応することが承認された。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の設置要綱
1.設置の趣旨
 2000年11月に発覚した、いわゆる「旧石器発掘捏造事件」の事実関係を解明し、この問題に対する社会的疑惑と不信を払拭するとともに、日本列島の人類文化の起源にかかわる前・中期旧石器時代研究の深化・発展を、全学界的立場で期するため、日本考古学協会会則第6条の規定に基づき、特別委員会を設ける。
2.名称
 この特別委員会の名称を「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とし、必要に応じて「旧石器問題特別委」と略称を用いることができるものとする。
3.委員の委嘱と委員長の選任
 特別委員会委員は日本考古学協会会長が委嘱し、委員長は特別委員会委員の互選とする。
 下記各部会の委員の補充等については、自薦、他薦をふくめて特別委員会の議を経てこれを行い、協会委員会にそれを報告し、会長が委嘱する。
 なお、この特別委員会は課題の性格上、自然科学等関連諸科学の協力が不可欠なことから、日本考古学協会員以外の研究者を委員に加えることができるものとする。
4.特別委員会の組織
 特別委員会は、同委員会が必要と認める調査・研究の課題に対応する「総括部会」と複数の「作業部会」をもって構¥成するものとする。
総括部会および各作業部会には、それぞれ1名の代表¥者をおく。
総括部会は、特別委員会委員長が委嘱する委員と各作業部会の代表¥者をもって構¥成する。
5.特別委員会の会議
 総括部会をふくめた各作業部会は必要に応じて会議をもつ。
 特別委員会の全体会議は年2回を目途に開催し、活動の経過や成果を総括し、会員および広く一般にそれを公開することとする。
6事業計画年度
 本特別委員会の事業は、当面2001年(平成13)5月から2004年(平成16)4月までの3ヶ年とし、その年度計画終了時に特別委員会改廃をふくめて再審議するものとする。

■第1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開催(概要)
日時:2001年6月10日(日)午後2時〜4時30分
場所:早稲田大学文学部第1会議室
・開会にあたって、甘粕健会長から挨拶があった。
・戸沢充則準備会委員長より、準備会の活動の総括が行われた。
・本委員会設置要綱に基づき、戸沢充則氏を委員長に選出した。
・北海道・宮城・山形・岩手・埼玉・東京・福島など各地の動向について、関係する委員から報告があった。
・本委員会の組織案についての原案が検討され、総括部会の下に以下のような作業部会を設置することを決定した。第1作業部会(遺物検証)・第2作業部会(遺跡検証)・第3作業部会(検証技術の開発)・第4作業部会(型式研究)・第5作業部会(研究方法論の研究)
・なお、作業部会に新たに加えるべき委員は各部会で原案を作り、委員長が調整する。
・委員長を補佐する副委員長2名を置くことが承認された。副委員長には、小林達雄・春成秀爾両氏を選出した。
・作業部会の運営上の事務処理は各部会で行う。
・2002年度科学研究費の申¥請のために、各部会で研究課題を提出することになった。
・公募の委員については6月末に〆切、7月28日の委員会の議を経て、特別委員会で決定することにした。
 2001年5月19日の第67回総会において「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の設置が承認されました。今後、本委員会の活動の概要をお知らせすることに致します。なお、ホームページへの掲載はできるだけ迅速に行うつもりですが、議事録の確定や原稿の作成などにある程度時間がかかることをご了承ください。


■第2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概要
日時:2001年6月30日(土)・7月1日(日)
場所:山形県尾花沢市共同福祉施設
・6月30日に山形県尾花沢市袖原3遺跡を現地見学。その後宿舎にて、袖原3遺跡、北海道総進不動坂遺跡出土資料の検討を行う。
・7月1日は、袖原3遺跡現地見学の総括ならびに出土遺物観察結果の総括を行う。
・宮城県上高森遺跡の検証作業を早期に実現すべく、県教育委員会等との協議を進める。
・藤村コレクションのカタログ作りを実施すべく、特別委員会第1作業部会、宮城県考古学会、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との協議、調整を急ぎ進める。
・北海道総進不動坂遺跡の再発掘は8月下旬に実施の予¥定。
・各作業部会の構¥成と作業スケジュールの確認。
・日本考古学協会2001年度盛岡大会開催時に、各地の検証作業の報告を計画する。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構¥成
委員長:戸沢充則
副委員長:小林達雄・春成秀爾
委員:安蒜政雄・稲田孝司・小田静夫・小野昭・小畑弘己・菊池強一・菊池徹夫・
佐川正敏・佐藤宏之・渋谷孝雄・白石浩之・辻秀人・鶴丸俊明・萩原博文・
馬場悠男・町田洋・松藤和人・矢島國雄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各作業部会の構¥成
(*は部会長)
第1作業部会
(遺物検証)*小野昭・大沼克彦・菊池強一・久保弘幸・佐藤宏之・佐藤良二・
佐川正敏・竹岡俊樹・鶴丸俊明・春成秀爾・御堂島正・山田晃弘
第2作業部会
(遺跡検証)*白石浩之・阿部祥人・稲田孝司・大竹憲昭・菊池強一・木村英明・
小林達雄・佐川正敏・渋谷孝雄・諏訪間順・辻秀人・戸田哲也・
藤原妃敏・山口卓也・山田晃弘・柳田俊雄
第3作業部会
(検証技術開発)*矢島國雄・小野昭・中村由克・藤田尚・町田洋
第4作業部会
(型式研究)*松藤和人・伊藤健・小畑弘己・角張淳一・砂田佳弘・竹花和晴・
中川和哉・西秋良宏・萩原博文・藤波啓容・藤野次史・麻柄一志
第5作業部会
(研究方法論研究)*安蒜政雄・石橋孝夫・植田真・岡安光彦・織笠昭・坂井隆・佐々木和博・清水宗昭・勅使河原彰・平口哲夫
 
■7月7日〜14日 第2作業部会委員8名が、各自で袖原3遺跡の現地検証を行う。

■7月18日 小野昭第1作業部会長が、仙台に赴き、宮城県考古学会、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等とともに、藤村コレクションの確認と、資料化作業の打ち合わせを行う。

■7月19日 第2作業部会委員11名が、埼玉県長尾根北遺跡、小鹿坂遺跡の現地検証を行う。

■7月27日 第1回委員長・副委員長・部会長会議(於明治大学)
・6月末までに応募のあった特別委員会委員応募者の、各作業部会への編成を検討する。

■7月28日 日本考古学協会7月定例委員会(於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北海道総進不動坂遺跡の再発掘にあたり、協会委員会に派遣要請があり、委員会から高橋正勝委員が、特別委員会から白石浩之委員・鶴丸俊明委員が加わることを了承する。

■8月28・29日 第2作業部会委員3名が、北海道総進不動坂遺跡の現地視察を行う。

■9月12日 第2回委員長・副委員長・部会長会議(於明治大学)
・宮城県考古学会より上高森遺跡の検証発掘についての協力依頼があった。
・各作業部会の進捗状況の報告および今後の予¥定について協議した。

■9月23・24日 第1作業部会が、東北歴史博物館において、藤村コレクションの調査ならびに上高森遺跡・馬場壇A遺跡・座散乱木遺跡の資料の検討を行う。

■第3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概要
日時:2001年9月29日(土)
場所: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藤村新一元会員との面談結果について。
・上高森遺跡検証発掘調査団への調査委員ならびに指導・助言委員の派遣について協議。
・各作業部会の進捗状況の報告と今後の予¥定について。
・第1回全体会議および盛岡大会時の報告・展示について協議。
・2002年度科学研究費補助金申¥請の課題整理について。
 
■第1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全体会議の概要
日時:2001年10月6日(土)
場所:盛岡市民文化センター会議室
・5月以降の特別委員会の活動報告。
・各作業部会の活動状況と今後の課題等について協議した。
・藤村新一元会員の捏造の告白について報告された。
・捏造告白は検証のための一情報にすぎないと位置づけ、また告白の有無にかかわらず、今後とも必要な学術的検証を続けることを確認した。

■日本考古学協会2001年度盛岡大会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報告
・これまで検証作業を実施してきた総進不動坂遺跡・袖原3遺跡・一斗内松葉山遺跡の報告を行う。
・5月以降の特別委員会の活動報告。
・藤村新一元会員の捏造の告白について報告された。

■「旧石器問題」の検証はどこまで進んだか
−日本考古学協会2001年度盛岡大会での報告全文−
2001年10月7日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委員長 戸沢充則
 特別委員会、委員長の戸沢です。まずはじめに、非常によく計画され、準備された本大会のスケジュールの中に、この特別報告会を割り込ませていただき、大会実行委員会に、大変ご迷惑をおかけしたことと思います。関係者の皆様に心からお礼を申¥しあげ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検証に向けた全学界的取り組み
 早速、報告に入ります。特別委員会の一般経過報告に関しましては、お手元の冊子の15頁以下(ホームページに掲載済み)を参照していただくことにして、ここでは説明を省略させていただきます。
 ただ、この間の特別委員会の活動をふくめて、昨年末以来のこの問題への取り組みの推移をみますと、全国の研究団体、研究者同士、さらに自治体や関係機関等々、相互の間で、協力、協調の関係が促進され、多くの場面でその成果が目に見えたことは、大変喜ばしいことであり、問題の正しい解決のためには、きわめて大事なことと考えます。
 複数の団体や関係機関が、共同で、あるいは協力してシンポジウムを開いたり、今まで行われた遺跡の再発掘などには、実施主体の自治体の要請に応じて、特別委員会の委員を含む、多くの日本考古学協会員が調査に参画し、協力いたしました。
 また会員諸氏においては、協会委員会の呼びかけに応じて、活動資金の募金に積極的に協力され、270万円以上に上る醵金をいただいております。
 以上、概略を申¥しあげましたが、特別委員会委員長としては、すべてを併わせて、深く敬意を表¥すところであります。と同時に、今回の事件で大きく信頼を失した日本考古学の信頼を、一日も早く回復するためには、こうした学会内の結束、関係機関との緊密な協力関係を、ますます強化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痛感いたします。
検証発掘の結果と課題
 次に、これまで行われた、検証のための再発掘調査についてふれ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
 本日は、一斗内松葉山、袖原3、総進不動坂の3遺跡について調査の担当者から直接報告をしていただきました。その内容は繰り返しませんが、今日、報告のなかった東京都多摩ニュータウンNo.471-B遺跡、そして埼玉県秩父の遺跡群の再発掘を伴う検証の経過とその結果は、私達に貴重な体験として記憶され、また改めて、考古学の発掘調査のあり方という点でも、今後に生かすべき反省の素材を提供したものと思います。
 これらの検証調査の結果全体をみれば、検証発掘を一つ進めれば、それだけ疑惑が強まるーわかりやすい表¥現を使えば、「グレー」の強さが増えることがあっても、「シロ」が新たに加わることは皆無であったという一予¥想を上回る厳しい現実を知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というのが、現状での認識です。
 また、特に所見を加えるならば、たとえどんなに厳密に再発掘や検証を行っても、「クロ」か、「シロ」か、を100%実証することは、ほとんど不可能¥ではないかということを、改めて経験することになったという点も、率直に実感します。そのために今後はあらゆる可能¥な手段を活用して、目標をしぼった検証作業を行い、複合的・総合的に判断できるよう、早急に各作業部会等の活動を進めたいと考えます。
作業部会の活動状況
次に、作業部会のいままでの活動と、今後の取り組みの方向性について、概要を申¥しあげます。
○第1作業部会(石器検証)は、9月22・23両日、宮城県考古学会と合同で、藤村氏が昨年段階で捏造を告白した上高森遺跡の石器(展示中)をさらに厳密に検証し、その基礎データに基づいて他の疑惑遺跡のものと比較検証を拡げています。また、同じ検証会で、藤村コレクション、および座散乱木、馬場壇Aの石器などを検証し、それらに多くの疑惑の点が指摘できるという、報道発表¥をしたことは、周知の通りです。これについての、正式な報告は今後のことと承知しています。
○第2作業部会(遺跡検証)は、今までに行われた再発掘遺跡の視察や観察を独自の立場で、第三者的に公正な立場で行ってきましたが、そのレポートの作成を進めている段階です。そうした疑惑の遺跡の検証と並んで、今後の研究の基礎につながる可能¥性のある遺跡についての再検討、再評価に向けた作業を進める方向性も、具体的な検討に入っています。
○第3作業部会(自然科学との連携)は、いままで自然科学分野の研究者に依存してきたような自然科学的分析などを、考古学が主体的に構¥想し、検証のみならず、将来につながる研究の基礎を作るため、関係自然科学関連学会、研究者との検討を近くはじめることになっています。当面、明年度以降の研究基盤を確保するための科研費申¥請のためのプロジェクトの構¥想の策定を急ぎます。
○第4作業部会(型式学的検討)は、いままでの特にいま問題の前・中期旧石器の型式学的分析の不備を反省し、広い視野にたった方法論の再構¥築と、当面、疑惑石器の検証のための縄文時代のものをふくむ、ヘラ状石器の分析を進めているところです。
○第5作業部会(研究史・方法論)では、前・中期旧石器をふくむ、日本の旧石器研究の研究史と方法論の整理と総括を行い、今回の事件の背景となった研究体制や社会状況などを洗い出すための、いくつかのテーマを分担して、その作業に入ったところですが、あとで述べる今回の緊急事態を踏まえて、教科書や学校などの歴史教育の混乱に対応する、学会としての責任ある対応、見解を示すための検討を、早急に進めることとして、昨日の特別委で、各部会の協力も得て、そのことに取り組むことにいたしました。
 以上が各部会の活動状況の概況報告ですが、そのそれぞれの成果については、来春の日本考古学協会総会において、各部会から詳細な報告がなされることになろうかと考えています。
藤村新一氏との面談の経過と内容
 さて次に、今年5月以来、5回にわたって、私が藤村新一氏と面談を重ねてきた経緯とその内容について、その概要を報告いたします。
 予¥め申¥しあげますが、藤村氏は現在も、「心身のバランスを崩すある病気」で、国内の某病院に入院加療中であります。当人の人権・人格を守るために、そのことに関わる内容については避けて報告することになります。また、報道の皆さんが、そのことについて、今日の私の報告以上のことを追求されること、藤村氏との接近をはかるようなことは、人道上の立場から、厳につつしまれるよう、私からこの場で強く要請しておきたいと存じます。
【面談の様態】
 私と藤村氏との面談は、5月23日、5月30日、7月25日、9月13日、9月26日の5回行われました。面談時間は1時間ないし1時間半の範囲の短時間でした。面談には常に主治医と藤村氏の弁護士が立会い、私からも藤村氏に発言を強要するようなことはなく、特に病状の変化については、主治医の助言と指示を受けながら、細心の注意を払って面談を進めました。そのため、全体として、藤村氏の自由な発言を、こちらで聞き取るという形であり、重要な告白について、こちらで反問、確認するということも十¥分に行わない状態で今日まで経過しています。
【第1・2回面談】
 第1回(5月23日)、第2回(5月30日)の面談は、昨年末以来の学会等での検証活動の経過や状況を、簡潔に説明した以外では、藤村氏の話を中心に聞き、彼の心を開かせ、私との面談のしやすい雰囲気を作ることに、ほとんどの時間が費やされ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ありません。
 しかしその中で、藤村氏は学界や社会、それに一緒に仕事をしてきた仲間たちに、自ら起こしたことの責任を詫び、私(特別委員会)の調査に協力したいということを、2回の面談のたびに明確に述べました。立ち会った主治医も、それは藤村氏の本心として受けとってもいいと思うという助言をされています。
【第3回面談】
 7月25日の第3回面談は、ちょうど袖原3遺跡の再発掘の結果が調査団から発表¥された直後のことでした。私からもその結果を具体的に説明した後、ノートを手にしてまず、すべてを話したいという心境をるる述べました。そして、袖原3での捏造の証拠を認めた後、藤村氏はノート(あるいはメモ)を手にしながら、秩父の遺跡について、苦悶の表¥情で、捏造をボソ¥ボソ¥と話し始めたのです。しかし極度の緊張のためか、こちらの簡単な質問にも対応できぬ状態になったため、主治医の助言もあって、それ以上の話は進められなくなったのです。
【いわゆる「藤村メモ」】
 その後、8月16日付で、主治医から、「藤村氏が第3回面談で話したかった遺跡名のメモだといって渡されたもの」という趣旨の説明の下に、一枚の手書きのメモが送られてきました。このメモは次回の面談(9月13日)のとき、ワープロに打ちなおされて、さらに数遺跡の追加が加わって、改めて直接、藤村氏から手渡されました。したがって藤村メモというのは、都合2件あ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
【第4回面談】
 第4回(9月13日)の面談は、前回の面談の際の後半の混乱を再現しないよう、予¥め文書で質問事項を藤村氏に示しておいてから、間をおいて逐次藤村氏の話を、やや時間をかけて聞いた方がよいという主治医の勧告に基づいて、私の方で質問事項を10項目にまとめ、それを直接手渡して、質問内容の趣旨を説明し、それへの回答を要請するという目的の面談でした。
 その目的を達して、早々に引き上げるつもりのところ、藤村氏の方から、今日お話したいことがあるといわれて、私にとってはまことに突然、唐突という感じの中で、1981年の座散乱木遺跡のことが語られたのです。10〜15分ほどの話を一応聞きましたが、あまりのことに、私も冷静さを若干失い、ドギマギしましたが、今日渡した質問書にもあるから、次にきたとき、正確に聞きたいということで、その日の面談は終わりました。
【第5回面談】
 そして、現在までのところ、最終にあたる第5回目の面談は、9月26日に行われました。今日からさかのぼって数えてもわずか11日前の、ごく最近のことだという点を、どうぞご記憶ください。
 その日は、前回、2週間前に渡した質問事項の、一つ、二つについて話を聞ければよいという予¥測で行ったのですが、藤村氏は自分の作ったメモ(文章)を用意して、それを読み上げるという形で、かなり長時間に渡って、10項目全体に渡って、内容の精粗はありますが説明を行いました。
【新聞報道の波紋】
 まことに、衝撃的で重大な告白でした。その聞き取りのこちら側の記録等もある程度整理して、ちょうど、今日の大会の特別報告会等の準備のため設定していた9月29日の本特別委員会総括部会に、この重大な告白の内容を報告し、事後の措置や、大会での報告の仕方などをはかる予¥定でいたところ、9月29日朝刊でのスクープ報道が流されてしまいました。
 特別委員会としては、委員長名で、こうした混乱を巻き起こす報道に対して、きわめて遺憾であるとの緊急の見解を、報道各社に、即日配信したのですが、そのことを伝えた新聞、テレビ等は私の耳目には全くとまりませんでした。改めて遺憾の意を、今日ここで表¥明しておきます。
 予¥想通り、報道をうけて、全国の関係機関、自治体、そして地域住民の皆さんに大変な混乱を引き起こし、多大な迷惑や怒りを引き起こしました。特別委員会に対するお叱りも耳に痛いほど承りました。委員長として、情報管理や委員会運営に甘さがあったことは私の責任であり、会員および今まで協会の検証作業等に全幅のご協力をいただいた全国の関係自治体等の皆様に深くお詫びします。
捏造告白遺跡名の公表¥
 委員会としてはこの事態をふまえ、藤村氏告白の確認作業が不十¥分なままで、まことに不本意ながら、この大会直前の1O月5日までに、各道県教育委員会、発掘主体者、関係自治体のすべてに、藤村氏の告白で何らかの形で名が出た遺跡名を、協会および特別委員会の正式文書として、個別に通知を出したことも併わせてご報告しておきます。
 ここで改めて、告白のあった全遺跡名を公表¥いたします。
北海道:計4遺跡総進不動坂、下美蔓西、天狗鼻、美葉牛
岩手県:計2遺跡ひょうたん穴、沢崎
宮城県:計14遺跡座散乱木、馬場壇A、高森、上高森、
中島山、高山館2、青葉山E、沢口、
薬莱山No.39、薬莱山No.40、安養寺2、
大谷地(II)、前河原前、蟹沢II
山形県:計6遺跡袖原3、袖原6、上ミ野A、山屋A、浦山、金沢山新堤2
福島県:計2遺跡原セ笠張、一斗内松葉山
群馬県:計3遺跡下川田入沢、赤見峠、中山峠
埼玉県:計11遺跡小鹿坂、長尾根、長尾根北、桧木入、
十¥三仏、並木下、音楽堂裏、中葉山?、
万願寺、寺尾I、寺尾II
公表¥内容等についての見解
 以上の報告に関係して、学界として、また研究者として、最も重要と思われる、特別委員会および委員長の見解を付言しておきます。
1.今のわが国の法体系のもとで「自白は即証拠にならない」また「疑わしきは罰せず」という常識というか、法の精神があります。今回、特別委員会としてやむをえない事情の下に公表¥した遺跡名は、すべて、いわば自白にとどまるもので、学会として、それらを確実な証拠として提示できるものでないことを確認しておきたいと思います。
2.そのような認識に立つならば、全学界的に取り組んでいる検証は、これからが本番、正念場として、特別委員会は活動を強化したいと考えます。宮城県考古学会を主体とした上高森の発掘は当面の大きな取り組みだと捉えます。会員の積極的な参画と支援を心からお願いするところです。なお、この際、報道機関においても、協会の意とするところを理解され、冷静な取材、報道を通じて、ご協力くださるよう強く要望します。
3.最後に付け加えますが、今日にいたるまでのさまざまな形での検証作業に、特にお名前はあげませんが、今までの前・中期旧石器の発掘に藤村氏と共にもっとも深くかかわった方々から、これまで、学会、その他の検証作業に必要な資料の提供などの点で積極的、献身的ともいえる協力を受けていることを、特にここで申¥しあげておきます。
 以下は、私の個人的な感想としてお聞き流しいただいて結構¥ですが、藤村氏もまた、人間同士の関係で、私にとっては検証作業の大切な協力者だったと思っています。
 考古学は、あるいは考古学研究者は、人類数百万年の歴史の研究を通じて、明日のよりよい人類史を展望し、その新しい時代に一つの指針を与える学問的責務を持っています。
 今回の未曾¥有の学問的危機をはらんだ問題を、みんなで一体となって、社会にも認知される正しい解決をはかり、この事件の反省をバネに21世紀への日本考古学存立の基盤を確固にすることを強く訴えて、私の報告を終わります。

■第4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概要
日時:2001年11月8日(日)
場所:宮城県築館町ホテルグランドプラザ浦島
・会議に先立ち、上高森遺跡の検証発掘の状況を現地見学した。
・盛岡大会およびこの間の自治体・関係機関・マスコミとの対応についての経過報告があった。
・上高森遺跡の検証発掘の状況報告と調査団の総括的な見解に対する意見交換が行われ、調査団の見解を基本的に了承した。
・座散乱木遺跡の発掘計画について、文化庁との協議のいきさつ、および協会が発掘調査を行うことについて持ち回り審議による委員会の承認を得たことが報告された。
・発掘調査の予¥算については、科学研究費の特別研究促進費を申¥請し、検証に関わる調査を来年4月末から約1ヶ月間、補足調査を夏休みに行うように準備をすすめ、調査団の編成案を総括部会で審議することになった。
・各部会長から今後の活動予¥定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2002年度協会総会では、5月26日の午後に検証発掘の報告および各作業部会の報告をもとにしたシンポジウムを行う案が了承された。
・総会の前後約2〜3週間の期間で、明治大学考古学博物館において、前・中期旧石器問題関連資料の特別展示を、協会と明治大学の共催で開催するという案がだされ了承された(なお、この特別展示は、その後、諸般の事情により中止になった)。
・藤村氏が捏造を告白した遺跡に関して、関係自治体にその扱いについてアンケートを行うことが承認された。

■第5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概要
日時:2001年12月25日(火)
場所: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座散乱木遺跡の発掘調査計画について審議が行われ、次のような方針に沿って、今後文化庁はじめ関係機関と調整した上で進めていくことを確認した。
・文化庁・地方自治体等の関係機関との緊密な協力関係を前提に、日本考古学協会と地域研究団体の研究者等を中心にした調査体制を確立し、当該遺跡の学術的真実を明らかにするための発掘調査を含む検証調査を実施する。
・発掘は当面、藤村氏の告白等に関する検証を目的として、2002年4月から5月にかけての日程で実施する。あわせてこれまでの出土資料・調査記録類などの詳細な点検も行う。
・調査指導委員会と調査団を併設する体制をとり、調査指導委員会は、日本考古学協会、地元研究団体が推薦する委員の他、関係機関、特に文化庁、宮城県、岩出山町の関係者が参画することを考慮する。
・調査団は地元の研究者を核として構¥成するが、全国の研究者、大学等諸研究機関の研究者、院生などの積極的な参加協力を求める。また、自然科学分野(特に地形、地質、土壌学等を含む)の研究者を調査指導委員会および調査団に加える。
・上記をサポートするための事務局体制の強化を考慮する。その場合、地元自治体の協力を十¥分受けられるようにする。
・委員からは、計画段階から関係機関と緊密な連絡を取る必要があること、調査指導委員会と調査団は、今回は特に日本考古学協会の責任体制を示す構¥成を考え、その点について、地元研究者との相互理解をはかる努力をすることなどの意見が出された。
・1月中旬を目途に調査指導委員会、調査団の人選を進めることとなった。

■第6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拡大総括部会の概要
日時:2002年3月24日(日)
場所:日本考古学協会事務所
・会議に先立ち、座散乱木遺跡発掘調査問題を検討するため、科研メンバーを加えた拡大会議とすることが了承された。
・前回の総括部会以降に行われた部会長会議、および座散乱木遺跡の発掘調査に関わる経過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以下のような座散乱木遺跡発掘調査の計画案が説明され、了承された。
(1)調査指導委員会を設置し、委員長は戸沢充則特別委員会委員長、副委員長は委員の互選とする。
(2)調査指導委員会の下に調査団を置き、団長は小林達雄特別委員会副委員長、副団長は佐川正敏特別委員会委員・矢島國雄同委員とし、調査員は特別委員会・宮城県考古学会・宮城県教育委員会等から派遣する。また、調査にあたっては、文化庁記念物課、過去の調査関係者から協力を得る。
(3)調査期間は4月下旬から約1ヶ月半とする。
(4)調査は過去の発掘調査の検証を第一の目的とするが、遺跡全体の内容の評価のために未調査部分へ調査区を拡張する。
(5)関連分野の協力を得て、自然科学分析を実施する。
・2002年度総会における特別委員会報告の基本的な考え方、および各部会の活動経過および総会における特別委員会報告の概要、総会における特別委員会報告の予¥稿集の体裁、刊行スケジュール、総会時の特別委員会のスケジュールが提案され了承された。
・捏造事件の関係者の説明責任をめぐって議論が行われ、委員長・副委員長で協議することが了承された。
・今後、日本考古学協会に「倫理綱領」を制定するかどうかをめぐって、議論が行われ、この件については、協会委員会の議論をまつことになった。
・岩手県ひょうたん穴遺跡・金取遺跡をめぐる状況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第2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全体会議の概要
日時:2002年5月24日(金)午後1時〜5時
場所:東京都立大学人文学部棟地下1階大会議室

・第1回全体会議(盛岡大会)以後の特別委員会の活動について、総括的な報告があった。
・進行中の座散乱木遺跡の発掘調査について、小林団長、佐川・矢島副団長より経過および直前までの調査結果について報告があった。
・26日の特別委員会報告として行う、各作業部会の中間総括について、各作業部会長から報告が行われ、翌日の報告内容等について確認した。
・特別委員会の今後の活動とその進め方等について若干の意見交換を行った。
 
■第7回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部会の概要
日時:2002年5月26日(日)午前10時〜12時
場所:東京都立大学人文学部棟1階134演習室
・前日の全体会議を受け、報告内容等の最終確認を行った。
・終了後の記者会見、および会長声明等に関して協議した。
 
■日本考古学協会第68回総会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報告
・2000年11月の発掘捏造発覚以来の日本考古学協会の、この問題に対する取り組みの報告を行う。
・埼玉県の検証作業結果報告・上高森遺跡の検証発掘調査報告ならびに、発掘調査中の座散乱木遺跡の経過報告を行う。
・各作業部会による、検証調査の中間報告を行う。
・2001年度の特別委員会活動の総括を行う。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総括報告
−日本考古学協会第68回総会「旧石器問題特別委報告」での口頭発表¥全文−
2002年5月26日
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委員長 戸沢充則
はじめに
 これより、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以下、特別委)の2001年度活動報告に関するまとめを行います。
 いうまでもなく、この報告は、一年有余にわたる特別委委員55名の共同作業の結果によるものであり、その点で、終始献身的な努力を惜しまれなかった委員諸氏に委員長として、心からの感謝と敬意を表¥します。
 それと同時に、本特別委の活動を物心両面で支援された日本考古学協会の全会員、さらに、具体的な調査活動のそれぞれの局面で、多大のご協力とご理解を賜った地域住民の皆さん、関係自治体や行政機関、また関連学会の関係者等に、この場を借りて厚くお礼申¥し上げます。
 未曾¥有の事件で、我々の活動も試行錯誤の繰り返し、幾多の紆余曲折がありましたが、今日、この一年の総括の中で、全学界員、関係諸機関が、互いの信頼関係のもとで、一致して取り組む体制を持つことができた、ということを確認できるのを、委員長としては、最も大きな喜びとするところであります。みなさん、本当にご協力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1.検証調査の内容について
 この一年間の、特別委を中心として行われた活動は、旧石器発掘捏造という疑惑について、その事実関係を明らかにするという、いわば「検証調査」に、活動の重点がおかれてきました。
 その経過、あるいは結果につきましては、この前に行われた3件の検証発掘の報告、そして特別委各作業部会の報告、そして、このたび公刊された『日本考古学協会前・中期旧石器問題調査研究特別委員会報告(II)』(予¥稿集)掲載の資料によって、その詳細を知っていただけるものと思います。かなり膨大で多岐にわたる報告内容のうち、いくつかのポイントになる点を、以下、要約し、若干の説明を加えます。
(1)遺跡の検証発掘
 このことについては、今までに、福島県一斗内松葉山、山形県袖原3、埼玉県秩父の遺跡群、北海道総進不動坂、宮城県上高森、同座散乱木の6ヶ所で実施されています。座散乱木のように、調査継続中のものもありますが、すでに報告書が発表¥されている遺跡については、前・中期旧石器遺跡としての評価といいますか、最終判断といいますか、その点の見解は、その表¥現にそれぞれニュアンスの違いはありますが、特別委第2作業部会が述べておりますように、それらの検証発掘の結果では、確実な前・中期旧石器時代の遺物や遺構¥は全く発見されず、捏造の痕跡のみが明瞭に認められた、というのが厳然たる結果であります。
 藤村新一氏が関与して発掘された遺跡は33遺跡(文化庁調べ)といわれています。そのうち検証発掘が実施されたのは、全体の中の一部に過ぎませんが、その多くは、今までの研究の中で重要な位置付けをされてきた遺跡であること、特に藤村氏告白のあった遺跡で、捏造が実証されたという点を加えれば、今までの検証発掘の結果は、決定的に重大なものと受け取るべきものだと理解します。
(2)石器の検証調査
 本特別委の第1作業部会、および関係の機関・個人(調査担当者等)が調査の対象とした資料は、藤村氏の告白したものを主に28遺跡、検討した石器は、その当該遺跡出土のほとんど全資料にあたる1,100点以上にのぼります。この数字も藤村氏関与の資料の全部には当たりませんが、いわゆる「重要遺跡」といわれたものの多くを含んでいます。
 その結果、検証された遺跡単位の資料群の中には、どの遺跡の例でも非常に高い割合で、正常な出土状態の遺物にはありえない不自然な傷などがついた石器が含まれていることが明らかとなりました。その点についての評価の表¥現は、それぞれの調査者によって違いがありますが、総じていえば、第1作業部会が示したように、「検討した資料は学問的資料としての要件を根本的に欠くといわざるを得ないと判断される結果」というものでした。
 これに加えて、第4作業部会が行った前・中期旧石器の指標とされてきた3種の石器と縄文時代の石器との型式学的な比較研究では、まだ中間報告とはいえ、量の多少を問わず、いずれも東北地方の縄文時代の石器の中に類品を見出すことが可能¥という結論を示している点も、重要な検証の視点といえます。
なお、第1作業部会が実践した石器検証の基準は、他の機関等による検証にも適用され、すべての石器の検証は、同一基準で実施されましたが、これは今後、旧石器、縄文、それ以降の時代の遺跡発掘現場等で活用されるべきマニュアルのひとつとされても良いと考えられます。
(3)藤村氏捏造行動の検証
 第5作業部会は古い記録、メモ、証言などの情報を収集して、1970年代前半からの長期にわたる藤村氏の捏造行為があった可能¥性を指摘しました。それに加えて本予¥稿集に収録した東北旧石器文化研究所による同じ方法でのレポートでは、遺跡の発掘現場における不審な行動を調査参加者などの証言を加えて捏造の状況証拠として示し、さらに栗島氏のレポートは秩父の遺跡での、いわば藤村氏の驚くべき巧妙な捏造の手口を、記録等に基づいて再現しました。
 これらの報告は、現在では、現場で実際には実証できない状況証拠というべきものですが、憶測とか、推測という以上の、相当に真実性を持った証言として受け止めてよいと思っております。
2.検証調査にもとづく判断
 特別委が、昨年5月の総会時に、「向後1ヵ年を目途に、一定の判断を示すことが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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