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를 자국 역사라고 왜곡하며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는데도 한국 외교통상부는 “조용한 외교”를 고집하며 중국의 역사왜곡을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입장이고 국내 강단사학계 또한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중국 중앙정부의 치밀한 가이드라인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중국 지방의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중앙정부가 수동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고 국사해체론을 들고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현 시점에서 김기협 계명대학 교수가 김원웅 열린우리당 의원을 포함한 여야의원 59명이 간도협약이 법적무효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김 교수는 프레시안 뉴스의 칼럼에서 “조선과 명나라의 건국 초기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을 두 나라 국경으로 보는 것은 상식이었다. 이 경계선은 고려시대보다 북쪽으로 확장된 것이었다. 몽고 정복 때까지 고려의 판도는 두만강에 미치지 못했고, 지금의 함경도 지역 대부분은 여진족의 영역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며칠 전 김원웅 의원이 보낸 뉴스레터에는 ‘간도협약의 원천적 무효 확인에 관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자랑스럽게 써 놓았다. 과연 대한민국 국회의 결의안이 1909년의 ‘도문강중한계무조관(圖們江中韓界務條款)’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되찾아야 할 우리 땅, 간도”라는 말에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하면서 “신라 통일 이래 한민족의 국가가 두만강 건너 간도지방에 지속적인 행정을 펼친 일이 없다. 두만강까지 국경을 넓힌 것도 조선왕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간도지방에 대규모로 이주해 조선문화를 지키는 사회를 이룬 것은 1870년대 이후의 일이다. 1880년대 이후 청나라 세력이 약화되는 상황 속에서 이 조선족사회 때문에 간도분쟁이 일어났으나 한일합방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간도협약으로 일단락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강압하에 이루어진 을사보호조약의 원천적 무효를 주장하고, 그 조약을 근거로 행해진 일본의 수탈에 배상을 청구하는 일이라면 성패는 차치하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을사보호조약에서 파생된 일체의 대외조약을 무효로 하자는 주장이라도 인정할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간도협약 하나를 문제삼으면서 그 이유로 “되찾아야 할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래 한민족의 국가가 두만강 너머 간도지방에 행정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을까? 과연 고려의 강역은 두만강에도 미치지 못했을까? 아마도 김 교수 뿐만 아니라 한국의 태만한 역사학자들... 그리고 사기역사(詐欺歷史)를 배워왔던 한국의 학생들은 고구려, 발해 이후 한민족의 역사에서 간도를 비롯한 만주지역을 통치한 적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어느 매국사학자는 중국 측의 주장을 지지하면서 고구려와 발해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자의 말대로라면 한강 이북의 영토도 역사적 경위나 법리적으로 한국 영토가 아니라는 논리가 된다.)

고구려사(高句麗史)와 고려사(高麗史)를 반으로 동강낸 일본 역사학의 사기꾼 이케우치[池內宏]의 의도대로 국내 역사학계는 만주지역을 고려의 영역에서 제외시켰다. 사서(史書)와 고지도에는 분명 신라와 고려의 북쪽 경계가 만주(滿州) 일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강단사학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이케우치[池內宏]가 한국 고대사와 중세사 무대를 한반도 중부로 축소시킨 내용을 진실로 믿고 잇는 것이다.

아래 지도의 좌편(고구려 천리장성)은 명나라에서 “변장”이라 불렀던 것이고, 아래 지도의 우편(고려 강역)은 청나라에서 1660년 “류조변”이라 불렀던 곳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고려의 행정구역 수는 584개이다. 그런데 조선의 행정구역 수는 324개에 불과하다.(신라는 450개로 나온다) 조선왕조와 일본인들이 고려사를 얼마나 갉아 먹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1) 고구려(高句麗) 천리장성도(千里長城圖)와 고려 강역

잘려나간 고구려사(高句麗史)와 고려사(高麗史)

 

 

이 지도는 보다시피 중국인들이 만든 지도이다. 위 지도는 압록강 하류와 요동반도 그리고 한반도 서해안이 보이는 지도이다.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고려 강역이 확실히 표시되어 있다. 지도 좌편을 보면 고구려 천리장성이 요하 건너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함을 볼 수 있다. (실재의 고구려 천리장성은 지도보다 더 왼쪽/고구려 천리장성은 “부여에서 해유리까지”) 사대모화사상 친일식민사관 강단사학자들의 고구려 강역도는 절대로 “요하”를 넘지 않고 있다. (나쁜 놈들!) 고려의 천리장성은 “압록강”에서 북쪽으로 시원하게 뻗어 고구려 장성에 연결되어 있다.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고려 강역이 “성문 이름”까지 표시되어 있다. 고려의 강역이 만주 일대를 전부 차지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고려의 행정구역 수가 584개요 조선의 행정구역 수가 324개인 이유가 확실히 표시되어 있다.

사대모화사상 친일식민사관 강단사학자들의 매국책동을 민족과 역사의 이름으로 반드시 부수어야 한다. 위의 “류조변시의도”에 나타난 고구려 및 고려의 천리장성을 현대의 대륙지도에 다시 옮겨 보겠다.

 

 

현대의 대륙 지도에도 고려의 영토가 만주까지임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고려령(高麗嶺), 고려모(高麗貌) 라는 고려의 영토가 북만주(北滿州)에 표시되어 있다. 고려의 “철령위(鐵嶺衛)”가 한반도에 있는 강원도 철령이 아니라 요녕성의 철령임을 보여준다. 고려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가 한반도의 함경도 영흥이 아니라 길림성(吉林省) “쌍성(雙城)” 지방이라는 것이 나타난다. 별무반(別武班)을 창설한 윤관(尹瓘)이 여진(女眞)을 정벌한 지역인 선춘령(先春嶺)이 북만주의 “흥개호” 근처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대모화사상 친일식민사관 강단사학자들은 이 선춘령을 한반도의 함경도 북청 근처에 그려놓고 있다.)

이런 천하의 매국노 무리들이 어떻게 한국인일 수 있는가? 이런 천하의 패륜아 족속들을 어떻게 석사, 박사, 대학교수로 불러 줄 수 있는가? 조국도 역사도 팔아먹고 마는 저 오랑캐 족속들을 어떻게 같은 민족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저들의 패배주의 사상에 의한 자국 역사 파괴행위로 인해 중국인들이 마음놓고 “동북공정(東北工情)”을 기획했던 것이다. 천하에 죄질이 가장 나쁜 놈들!

프랑스는 나치스 세력에 부역한 자들을 모조리 처단하여 오늘의 위대한 프랑스를 건설했다. 프랑스는 자국의 민족정신을 팔아먹은 언론인, 학자들, 지식인들을 가장 가혹히 문책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이름으로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단군조선(檀君朝鮮)의 역사는 말살되었다. 나머지 남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마저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일본인들이 국내 사서(史書) 51종 20만권을 불태워 없애버렸다. 환국 3301년, 배달국 18대 1565년, 단군조선 47대 2096년은 그렇게 거세당했다. 그 미치광이들의 칼춤을 뚫고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의 규원사화(揆園史話),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箕古史)인 것이다. 저 패륜적인 사대모화사상 친일식민사관 강단사학자들은 규원사화(揆園史話), 환단고기(桓檀古記), 단기고사(檀箕古史)를 위서(僞書)라 주장하고 있다. 그 더러운 입으로 아직도 조상을 모독하는 극언을 일삼고 있다. 단군조선(檀君朝鮮)은 신화이고, 단군(檀君)은 곰의 생물학적 후손이고, 한국 역사의 시작은 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저들의 죄는 반드시 능지처참(凌遲處斬), 부관참시(剖棺斬屍)로 다스려야 한다.

(2) 고려의 대륙 9성(大陸九城)이 반도 9성(半島9城)으로 조작되었다.

[참고서적: 김영호의 “국사광복의 햇불”]

단제(丹薺)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고려사지리지(高麗史地理志)에 두만강 건너 700리 선춘령(先春嶺) 밑에 윤관(尹瓘)이 세운 정계비(定界碑) 가 있는데 9성의 위치가 왜 함흥평야로 내려오는가 ?“ 하며 “조선 역사상 1,000년 이래 제일 대사건” 이라고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草) 속에서 지적하고 있다. 물론 뒷날의 공양왕실록(恭讓王實錄)이나 세종실록(世宗實錄) 등에서 공험진(公險鎭)은 두만강 이북 간도성에 있는 선춘령이며 그곳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양왕(恭讓王) 4년에 올랑합(兀良哈)과 알도리(斡都里)족에 속하는 (兀 : 우뚝할 올, 斡 : 관리할 알) 여진인(女眞人)들이 래조(來朝)했을 때 그들의 말중에 “시중(侍中) 윤관 공이 우리 영토를 평정하시고 비를 세워 고려의 경계를 하시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들 부족은 윤관의 북벌(北伐) 당시 동만주 송화강 하류(北伐當時東滿洲松花江下流)쪽으로 쫓겨난 족속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정계비는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뜻이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는 “거양성 선춘령에 윤관의 입비처(立碑處)가 있고 비문에는 고려지경(高麗之境)이란 넉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선춘령에서 수빈강(愁濱江)을 건너가면(-> 수빈강(愁濱江) : 흥개호 인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 찾는중), 옛 성지(城址)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사적(日本史賊) 이케우치[池內宏]가 한국 역사를 축소, 왜곡하기 위해 9성이 두만강 이북에 있지 않고 함흥평야에 있다고 “날조”한 것을 국내의 이적사가(利敵史家)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추가해설} 국내 역사교과서에서 기술된 동북 9성(東北九城)의 위치.

일본의 역사 도적놈 이케우치[池內宏]에 의해 조작된 위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국내의 사서(史書)와 중국 고지도(古地圖) 등에 의하면 동북 9성(東北九城)은 두만강 북쪽에 있어야 한다.

 

 

 

일본 역사학의 사기꾼 이케우치[池內宏]가 두만강 북쪽 7백리 홍개호 인근에 있던 윤관(尹瓘)이 쌓은 동북 9성의 위치를 함흥평야에 있다고 조작한 내용을 광복 후 60년이 지나도록 친일식민사관 매국사학자들이 답습하여 조작된 역사를 국사 교과서에서 지금까지 교육하고 있다.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

만주 일대를 다스렸던 실제 고려의 강역을 한반도 중남부로 축소시킨 일본 역사학의 사기꾼 이케우치[池內宏]나 그 자의 수하에서 충실히 교육받아 광복 이후 철저하게 한국 역사를 망가뜨린 이병도(李丙燾), 신석호(申奭鎬)나 그들의 제자들로 역시 우리 조상들의 활동 무대를 형편없이 축소시킨 김철준(金哲埈), 이용범(李龍範), 이기백(李基白) 등은 모두 공통적으로 역사학 도적놈들이다.

상기 지도 노란선은 송령산맥 - 철령위 - 화주 - 고려모 - 선춘령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려의 강역은 과연 어디까지 였는가?

선춘령(先春嶺)의 고려 비석 -> 고려 경계는 두만강 북쪽 700리

▒ 척경입비도(拓境立碑圖) [고려대학 박물관 소장]

 

1107년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 등이 총지휘하는 고려의 17만 대군이 수차례의 치열한 전투 끝에 여진족(女眞族)을 물리치고 국경을 넓혀 그곳에 육성을 쌓았으며, 마침내 선춘령(先春嶺)에 “고려지경(高麗之境)” 네 글자가 새겨진 비를 세움으로써 경계를 삼은 사실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선춘령(先春嶺)의 위치는 어디일까? 다음의 고지도를 보자.

 

 

 

선춘령(先春嶺)의 비석은 두만강의 북쪽에 있습니다..

현재의 지도로 보자. 지금 현재 선춘령(先春嶺)의 비석은 어디에 있을까?

 

 

 

 

 

1900년초 일본이 작성한 “통감부 임시 간도 파출소 기요” 극비보고서에는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있다.

”중국 연길국자가 서쪽 1리반 지점에 있는 포이하통하 강물에서 커다란 석비를 발견 하였는데 비문의 대부분은 알아 볼 수 없고 남은 20여자의 글자 중 다행히 무자년이라는 기록을 알 수 있다”

”무자년은 고려 예종(睿宗) 3년으로 윤관이 비를 세운 해와 일치한다.”

지금의 그 비석은 중국에 의해 사라져 버렸다.

”고려지경(高麗之境)” 4글자가 씌여져 있었던 그 비석을 꼭 찾아 보고 싶다.

(3) 고려의 동북쪽 경계는 함경남도가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 밖이었다.

지금까지는 고려의 동북 경계는 함경남도 정도로 배워 왔으나 고려사와 고지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임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사 권46에 의하면 서북쪽은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춘령에 대해서는 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및 규장각 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위쪽 원안에 선춘령(지금은 윤관비로 표기)이 있으며 아래 원이 두만강 표시이다. 서북쪽 압록강을 현재의 압록강으로 볼수 있지만, 만주원류고 신라항목과 고려사 137권 철령위 및 고려사 42권에 동령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리웠음을 밝히고 있다. 고려 강역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해설; 허성정 국사광복 국민운동본부 이사장

출처 : http://www.baedalguk.com/  


高麗の北方領土は南満洲一帯を含ん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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