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골씨
「병합전의 한국 교과서도 80년대의 한국 신문도 쭉 일본해 표기였다」
1907년의 대한제국의 교과서
1947년의 국사 교과서
1980년 8월 29일
옛 쿄토의벼슬아치 신문
왜 한국인은 착상으로 역사를 수정하려고 하는 거야?
일관성 없는 한국, 해도에 「일본해」모순 나타내 보이는 증거
https://www.yomiuri.co.jp/national/20190318-OYT1T50045/요미우리 신문 2019년 3월 18일
1993년의 한국 해도에 「일본해 /Japan Sea」의 표기.일관성이 없는 한국의 주장이 분명하게.
1993년에 간행된 「한국 동해안 남부」.한국어로 일본해와 표기되어 「JAPAN
SEA」라고 쓰여져 있다(선삼준교수 제공)
해상보안청은 정보교환이기 때문에 각국과 서로 해도를 서로 제공하고 있다.한국 정부의 국립 해양 조사원과도 가서 있어 한국제의 해도 등 약 200점을 보관.그것들을 조사하고 있는 시마네 대학의선삼력수이루는 의리나무 노부준교수(역사 지리학)가 이번 기재를 발견했다.
한국은 1992년에 유엔의 회의에서 일본해 호칭의 비판을 시작해 「 「토카이」는 2000년 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 등이라고 호소하고 있다.그런데 , 93년에 한국 정부가 간행한 해도 「한국 동해안 남부」에서는, 한국령의 울릉도 우르룬드 주변의 해역에 「토카이」라고 표기하는 한편, 오키 제도(시마네현)의 동쪽은 일본해의 한국어(뜻)이유에 가세해 영역의 「JAPAN SEA」라고 적고 있었다.
또, 77 연간행의 해도 「토카이급황해」 제4판에서는, 일본해의 해역에 「토카이」라고 적고 있지만, 괄호 쓰기로 「SEA OF JAPAN」라고 쓰여져 있었다.선삼준교수는 「이러한 해도는 한국의 주장에 정당성이 없고, 모순되고 있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니 지적.있다 정부 관계자도 「한국의 입장에 일관성이 없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호칭 문제에서는, 일본해를 단독 표기하고 있는 국제수로 기관(IHO)의 지침 개정을 한국이 요구해 그 시비를 논의하기 위해(때문에), IHO가 일본이나 한국 등에 비공식 협의의 개최를 요구.관계국에서 조정이 계속 되고 있다.
17 세기부터 고지도에서는 쭉 일본해 표기
17 세기 이전의 일본해는 지도에서 어떻게 표기되고 있었는지
일본해라고 하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7 세기 초두의 이탈리아인 선교사 마테오·리치에 의해서 작성된「고여(감색이야) 만국 전도(1602년)」라고 하는 세계 지도이다.
고여(감색이야) 만국 전도를 이용해 만들어진 지구의
17 세기부터 18 세기에 걸치고, 아시아대륙 북동부나 일본 열도의 형상이 올바르게 인식되어 있지 않았던 것도 있어, 이 해역에는 중국해(Sea
of China), 동양해(OrientalSea or Ocean), 조선해(Sea of Korea), 일본해(Seaof
Japan) 등 님 들인 명칭이 사용되고 있었다.
18 세기의 마지막으로부터 19 세기의 처음에 걸치고, 후란스인라페르즈, 영국인 블로우 톤, 러시아인 크루젠슈테룬등이 일본해 주변을 탐험해, 일본해의 형상과 연안의 지형이 밝혀졌다.이 시기 이후, 유럽에서 작성된 지도에서는「일본해」(Japan
Sea, Sea
ofJapan)의 명칭이 일반화해, 국제적으로 정착했다.
당시 , 일본은 에도 막부아래에서 쇄국 정책을 취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외국과의 접촉은 금지되고 있었다.쇄국 정책이 해제된 것은 1854년이기 때문에, 18 세기의 마지막으로부터 19 세기의 처음에 걸치고, 유럽 제국이 지도에 일본해의 명칭을 기재하게 된 것은, 일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또, 일본에는 고래보다 넓은 해역에 명칭을 붙이는 습관이 없었다.일본이 일본해의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보다 늦었다.
이상과 같이, 일본해라고 하는 명칭은 18 세기의 마지막으로부터 19 세기의 처음에 걸쳐 유럽에 있어 확립해, 그 후, 200년에 걸쳐서 안정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입니다.따라서, 20 세기 초두, 일본이 식민지 주의, 군국주의 정책의 관점으로부터 일본해라고 하는 명칭의 정착을 도모했다고 하는 한국등의 주장은 올바르지 않다는, 각 연구자의 견해입니다.거기서, 세계 각국의 고지도에 있어서의 일본해 부분의 표기를 기초로, 재차 일본해의 명칭의 정착 과정에 대해서, 이하에 검증해 갈 것입니다.
17 세기 이전
고지도에 나타내지는 일본해
17 세기말까지의 일본해~여명의 시대~일본해는, 그것을 둘러싸는 주민에게는 옛부터 알려진 존재였지만, 그 형상이나 대안에 어떠한 사람이 살까는 그만큼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한반도와 일본과의 사이는 고래 왕래가 번성하고, 서로의 님 아이는 알려져 있었습니다만, 일본해를 어떻게 호칭할까의 공통 인식은 없었습니다.모두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넓은 해역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하지 않고, 화이사상에 근거하는 호칭인 「북해」, 「토카이」, 「남해」, 「사이카이」라고 하는 명칭을 이용하고, 한반도의 사람들은 일본해를 「토카이」, 일본의 사람들은 「북해」, 타타르족(타르타리아)의 사람들은 「남해」라고 통칭 하고 있었습니다.
16 세기가 되고, 서양인이 동아시아에까지 진출해 오게 되면, 그들은 바다에도 명칭을 붙여서 갔습니다.그러나, 일본해는 동아시아에서도 서양으로부터도 와도 먼 위치에 있어, 좀처럼 그 전모를 잡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전모를 모르면서 일본해를 뒤따른 명칭으로서는 「중국해」나 「동양해」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중국해」, 「동양해」는 일본해에만 도착한 명칭이 아니고, 그 주변의 바다인 동중국해나 북태평양과 함께 한 이름?`나, 무리하게 개별의 명칭과 할 경우에는 「소동양해」라고 명명했을 경우도 있습니다.이상과 같은 시대 배경은, 각국의 고지도의 표기를 검증하는 것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지도 1 「고여(감색이야) 만국 전도」
●지도 1(1602년)은,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명의 황제에 헌정 하기 위해서 편집한 「고여(감색이야) 만국 전도」입니다.이 지도는, 일본해 해역을 「일본해」라고 이름 붙인 현존 하는 최고의 지도이며, 토요사회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일본해의 명칭이 세계에 정착하려면 , 지금 당분간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지도 2 「ASIA CARTA DI CIASETE PIU
MODERNA」
제작 R.Dudley, 피렌체.
●지도 2(1646년)는, 일본해의 중앙부에 크고「일본 북양」, 북부에 작고「에조해」, 서부에 작고「조선해」, 츠가루해협에「에조 해협」이라고 이탈리아어로 표기하고 있습니다.일본 남해안의 태평양은 「중국해」입니다.「일본 북양」은 선교사등을 통해서 일본에서는 일본해를 「북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어 붙인 명칭이다고 생각됩니다만, 이것은, 당시 아직 1 해역에 1해명이라고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덧붙여 에조의 범위를 거대시 하고 있는 것부터도, 일본해의 형상이 파악되고 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 3 「ASIE」제작 Sanson
파리.
●지도 3(1650년)에서는, 「OCEANUS ORI=」까지는 일본해 부분에 쓰여져 계속의 「ENTALIS sive EOUS」는 일본의 태평양 측에 쓰여져 있습니다.또 북위 30도에서 10도 부근에는 태평양으로부터 인도양으로 걸치고, 크고 「OCEANUS ORIENTALIS sive OCEANUS INDICUS」라고, 3행에 걸쳐 조각에 기입되어 있습니다.「OCEANUS ORIENTALIS sive EOUS」라고 하는 라틴어의 의미는 「동양해 있다 있어는 토카이」, 「O C E A N U SORIENTALIS sive OCEANUS INDICUS」의 의미는, 「동양해 있다 있어는 인도양」입니다.그런데, 여기서 사용되는 「동양풍」이라고 하는 해양의 형용사는, 서양에서 본 동양의 바다를 가리키고 있어 한국 국내에서 사용된 명칭으로서의 「토카이」란 아무런 관계는 없습니다.
●지도 4 MER ORIENTALE OU DU JAPON
(1669년)
(동양해 있다 있어는 일본해)
「EAST ASIA」제작 P.Verbiest
벨기에.
●지도 4(1669년)에서는 일본해에 「MER ORENTALE ouDU JAPON」(동양해 있다 있어는 일본해)과 기입되어 있습니다.이 「MER ORIENTALE」도 한국어의 「토카이」의 역어에는 맞는 것이 아니고, 서구에서 본 동양의 바다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지도 5 「GREAT TARTARY」발행 Herman Moll
네델란드.
●지도 5 (1682년)의 타르타리아도에는, 일본해에 「South Sea(남해)」라고 하는 명칭이 들어가 있습니다.또,
●지도 6 「L"ASIE」, 제작 N.de Fer 파리(1700년)
●지도 6 (1700년)의 「Mer Septentrionale de Japon」는 「일본 북해」를 의미합니다만, 이것은 지도 2의 「OCEANO BORIALE DEL GAPPONE」(일본 북양)과 같이, 아마 일본에서는 일본해를 「북해」라고 부르는 것을 분별해 붙일 수 있었던 명칭이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생각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예를 들면 외무성이 실시한 미 의회 도서관 소장의 지도 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17 세기의 지도 107점중, 7할 이상에 해당되는 80점이 일본해의 해역에 명칭을 붙이고 있지 않습니다.덧붙여서, 동 그림서관소장분으로는, 일본해에 「중국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명칭을 준 지도는 13점, 「동양해」라고 하는 명칭을 준 지도가 3점 있어요.
또, 프랑스의 3관(프랑스립 도서관, 프랑스방성 부속해군역사과 도서관, 프랑스립 고문서관)에서 외무성이 조사한 17 세기 발행의 지도에 있어서의 일본해 해역의 명칭은 아래와 같이 매우 다방면에 걸칩니다만, 「일본 북해」, 「서양해」가 「동양해」, 「중국해」에 그 다음에 많은 것이 눈에 띕니다.덧붙여 「조선해」는 거의 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프랑스 3관의 17 세기의 고지도 조사 결과)
「동양해」20 , 「중국해」 「동양해」병기 2
,
「중국해」10 , 「중국해」 「서양해」병기 2,
「일본 북해」7
, 「동양해」 「일본해」병기 1,
「서양해」7 , 「중국해」 「일본해」병기 1,
「일본해」5, 「조선해」1
, 그 외 4
즉, 한반도에서는 옛부터 반도의 동쪽의 바다를 「토카이」라고 부르고 있었다고 해도, 일본에서는 「북해」라고 부르고 있었고, 또 타타르족이 보면, 「남해」였습니다.자국에서 보고 「토카이」라고 하는 명칭은, 다른 나라에서 보면 「북해」이며, 「남해」이며, 「사이카이」이거나 하는 것에서 만나며, 이 시대에는 아무런 의견 일치를 가지는 명칭으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된 것은 없었습니다.
덧붙여 한국 국내에 있어서는, 한반도의 서쪽의 해역을 「사이카이」라고도 호칭하고 있어, 그러한 있다 나라를 기준으로 한 (분)편 모퉁이에 지나지 않고, 또, 그 나라에서 밖에 사용되어 있지 않은 「토카이(EAST
SEA)」라고 하는 명칭을 타국에도 꽉 누르려고 하는 태도는, 오늘도 아직 세계적 의견 일치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チェ・ソギョンさん
「併合前の韓国教科書も80年代の韓国新聞もずっと日本海表記だった」
1907年の大韓帝国の教科書
1947年の国史教科書
1980年8月29日
京郷新聞
何故韓国人は思いつきで歴史を修正しようとするの?
一貫性ない韓国、海図に「日本海」矛盾示す証拠
https://www.yomiuri.co.jp/national/20190318-OYT1T50045/読売新聞 2019年3月18日
1993年の韓国海図に「日本海/Japan Sea」の表記。一貫性の無い韓国の主張が明らかに。
1993年に刊行された「韓国東岸南部」。韓国語で日本海と表記され、「JAPAN
SEA」と書かれている(舩杉准教授提供)
韓国が日本海の呼称に「東海」の併記を求めている問題で、韓国政府が国際社会で東海を主張し始めた翌年に刊行した海図に日本海の呼称を使っていたことが専門家の調査でわかった。韓国の主張の矛盾を示す証拠となりそうだ。
海上保安庁は情報交換のため各国と相互に海図を提供し合っている。韓国政府の国立海洋調査院とも行っており、韓国製の海図など約200点を保管。それらを調査している島根大の舩杉力修ふなすぎりきのぶ准教授(歴史地理学)が今回の記載を発見した。
韓国は1992年に国連の会議で日本海呼称の批判を始め、「『東海』は2000年前から使われていた」などと訴えている。ところが、93年に韓国政府が刊行した海図「韓国東岸南部」では、韓国領の鬱陵島ウルルンド周辺の海域に「東海」と表記する一方、隠岐諸島(島根県)の東側は日本海の韓国語訳に加え、英訳の「JAPAN SEA」と記していた。
また、77年刊行の海図「東海及黄海」第4版では、日本海の海域に「東海」と記しているが、括弧書きで「SEA OF JAPAN」と書かれていた。舩杉准教授は「これらの海図は韓国の主張に正当性がなく、矛盾していることを裏付けている」と指摘。ある政府関係者も「韓国の立場に一貫性がないことを示す証拠といえる」と話す。
呼称問題では、日本海を単独表記している国際水路機関(IHO)の指針改訂を韓国が求め、その是非を議論するため、IHOが日本や韓国などに非公式協議の開催を要求。関係国で調整が続いている。
17世紀から古地図ではずっと日本海表記
17世紀以前の日本海は地図でどう表記されていたか
日本海という名称が初めて使われたのは、17世紀初頭のイタリア人宣教師マテオ・リッチによって作成された「坤輿(こんよ)万国全図(1602年)」という世界地図である。
坤輿(こんよ)万国全図を利用して作られた地球儀
17世紀から18世紀にかけて、アジア大陸北東部や日本列島の形状が正しく認識されていなかったこともあり、この海域には中国海(Sea
of China)、東洋海(OrientalSea or Ocean)、朝鮮海(Sea of Korea)、日本海(Seaof
Japan)など様々な名称が使われていた。
18世紀の終わりから19世紀の初めにかけて、フランス人ラペルーズ、英国人ブロートン、ロシア人クルーゼンシュテルンなどが日本海周辺を探検し、日本海の形状と沿岸の地形が明らかになった。この時期以降、ヨーロッパで作成された地図では「日本海」(Japan
Sea、Sea
ofJapan)の名称が一般化し、国際的に定着した。
当時、日本は江戸幕府の下で鎖国政策をとっており、基本的に外国との接触は禁止されていた。鎖国政策が解除されたのは1854年であるから、18世紀の終わりから19世紀の初めにかけて、ヨーロッパ諸国が地図に日本海の名称を記載するようになったことは、日本とは直接の関係がない。また、日本には古来より広い海域に名称をつける習慣がなかった。日本が日本海の名称を使用し始めたのはヨーロッパより遅かった。
以上のように、日本海という名称は18世紀の終わりから19世紀の初めにかけてヨーロッパにおいて確立し、その後、200年にわたって安定的に使用されてきたものです。したがって、20世紀初頭、日本が植民地主義、軍国主義政策の観点から日本海という名称の定着を図ったという韓国等の主張は正しくない、というのが各研究者の見解です。そこで、世界各国の古地図における日本海部分の表記をもとに、改めて日本海の名称の定着過程について、以下に検証していきます。
17世紀以前
古地図に表される日本海
17世紀末までの日本海〜黎明の時代〜日本海は、それを取り囲む住民には昔から知られた存在でしたが、その形状や対岸にどのような人が住むかはそれほど知られていませんでした。朝鮮半島と日本との間は古来往来が盛んで、お互いの様子は知られていましたが、日本海をどう呼称するかの共通認識はありませんでした。共に中国文明の影響を受け、広い海域に名前を付けるということはせず、華夷思想に基づく呼称である「北海」、「東海」、「南海」、「西海」という名称を用いて、朝鮮半島の人々は日本海を「東海」、日本の人々は「北海」、韃靼(タルタリア)の人々は「南海」と通称していました。
16世紀になって、西洋人が東アジアにまで進出してくるようになると、彼らは海にも名称をつけていきました。しかし、日本海は東アジアでも西洋からもっとも遠い位置にあり、なかなかその全貌がつかめなかったようです。全貌がわからないながらも日本海に付いた名称としては「中国海」や「東洋海」が多く使われました。「中国海」、「東洋海」は日本海だけについた名称ではなく、その周辺の海である東シナ海や北太平洋と一緒にした名前で、無理に個別の名称とするときには「小東洋海」と命名した場合もあります。以上のような時代背景は、各国の古地図の表記を検証することにより知ることができます。
●地図1「坤輿(こんよ)万国全図」
●地図1(1602年)は、イタリア宣教師マテオ・リッチが明の皇帝に献呈するために編集した「坤輿(こんよ)万国全図」です。この地図は、日本海海域を「日本海」と名付けた現存する最古の地図であり、東洋社会の世界観に大きな影響を与えるものでした。しかし、日本海の名称が世界に定着するには、今しばらく時間がかかることになります。
●地図2「ASIA CARTA DI CIASETE PIU
MODERNA」
製作R.Dudley、フィレンツェ。
●地図2(1646年)は、日本海の中央部に大きく「日本北洋」、北部に小さく「蝦夷海」、西部に小さく「朝鮮海」、津軽海峡に「蝦夷海峡」とイタリア語で表記しています。日本南岸の太平洋は「中国海」です。「日本北洋」は宣教師などを通じ、日本では日本海を「北海」と呼ぶことを知っていて付けた名称であると思われますが、これは、当時まだ1海域に1海名という考えがなかったことを物語るものです。なお、蝦夷の範囲を巨大視していることからも、日本海の形状がつかめていないことがわかります。
●地図3「ASIE」 製作Sanson
パリ。
●地図3(1650年)では、「OCEANUS ORI=」までは日本海部分に書かれ、続きの「ENTALIS sive EOUS」は日本の太平洋側に書かれています。また北緯30度から10度付近には太平洋からインド洋にかけて、大きく「OCEANUS ORIENTALIS sive OCEANUS INDICUS」と、3 行にわたり切れ切れに記入されています。「OCEANUS ORIENTALIS sive EOUS」というラテン語の意味は「東洋海あるいは東海」、「O C E A N U SORIENTALIS sive OCEANUS INDICUS」の意味は、「東洋海あるいはインド洋」です。ところで、ここで使用される「オリエンタル」という海洋の形容詞は、西洋から見た東洋の海のことを指しており、韓国国内で使用された名称としての「東海」とはなんら関係はありません。
●地図4 MER ORIENTALE OU DU JAPON
(1669年)
(東洋海あるいは日本海)
「EAST ASIA」 製作P.Verbiest
ベルギー。
●地図4(1669年)では日本海に「MER ORENTALE ouDU JAPON」(東洋海あるいは日本海)と記入されています。この「MER ORIENTALE」も韓国語の「東海」の訳語にはあたるものではなく、西欧から見た東洋の海という意味です。
●地図5「GREAT TARTARY」 発行Herman Moll
オランダ。
●地図5 (1682年)のタルタリア図には、日本海に「South Sea(南海)」という名称が入っています。また、
●地図6「L"ASIE」、製作N.de Ferパリ(1700年)
●地図6 (1700年)の「Mer Septentrionale de Japon」は「日本北海」を意味しますが、これは地図2の「OCEANO BORIALE DEL GAPPONE」(日本北洋)と同様、おそらく日本では日本海を「北海」と呼ぶことをわきまえて付けられた名称であると思われます。
以上のことからわかるように、未だ日本海海域の形状がよくわからなかった17世紀頃には、西欧から見た地理的な位置関係に根ざした名称や日本海に接する各国からの方角を示した名称など複数の名称が使用されていたことがわかります。
このような考え方を裏付けるものとして、例えば外務省が実施した米議会図書館所蔵の地図調査の結果によると、17世紀の地図107点中、7割以上に当たる80点が日本海の海域に名称を付けていません。ちなみに、同図書館所蔵分では、日本海に「中国海」と解釈できる名称を与えた地図は13点、「東洋海」という名称を与えた地図が3点あります。
また、フランスの3館(仏国立図書館、仏国防省付属海軍歴史課図書館、仏国立古文書館)で外務省が調査した17世紀発行の地図における日本海海域の名称は下記のとおり非常に多岐にわたりますが、「日本北海」、「西洋海」が「東洋海」、「中国海」についで多いのが目立ちます。なお、「朝鮮海」はほとんど出現していません。
(フランス3館の17世紀の古地図調査結果)
「東洋海」20 、「中国海」「東洋海」併記2
、
「中国海」10 、「中国海」「西洋海」併記2、
「日本北海」7
、「東洋海」「日本海」併記1、
「西洋海」7 、「中国海」「日本海」併記1、
「日本海」5、「朝鮮海」1
、その他4
つまり、朝鮮半島では古くから半島の東側の海を「東海」と呼んでいたとしても、日本では「北海」と呼んでいましたし、また韃靼からみれば、「南海」でした。自国からみて「東海」という名称は、ほかの国からみれば「北海」であり、「南海」であり、「西海」であったりするのであって、この時代には何らコンセンサスを有する名称として世界的に認められたものはなかったのです。
なお、韓国国内においては、朝鮮半島の西側の海域を「西海」とも呼称しており、そのようなある国を基準とした方角にすぎず、また、その国でしか使用されていない「東海(EAST
SEA)」という名称を他国にも押し付けようとする態度は、今日もなお世界的コンセンサスを得る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