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 의해 보호된 신라와 백제
[고구려는 야마토와 동맹인 백제를 부수고 신민인 신라를 지켰다]
여기서 391년 당시에 해당하는 고구려측 기록을 살펴보면
冬十月, 攻䧟百濟關彌城. 其城四面峭絶, 海水環繞, 王分軍七道, 攻撃二十日, 乃拔.
겨울 10월에 백제 (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91년)
겨울 10월에 백제 (關彌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그 성은 사면이 가파른 절벽으로 바닷물이 둘러싸고 있어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누어 20일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391년)
이렇게 서술 되어 있기 때문에 교차검증도 성공
덧붙여
도쿄대 사학과 교수 武田幸男도 百殘의 다음 문자는 東으로 파악하고 있다.
광개토대왕 비석 조차 이제 필사본이 발견되어 ^^
歪曲される以前の広開土大王碑文
高句麗によって保護された新羅と百済
[高句麗は大和と同盟である百済を壊して臣民である新羅を守った]
ここで 391年当時にあたる高句麗側記録をよく見れば
冬十月, 攻?百済関彌城. 其城四面?絶, 海水環繞, 王分軍七道, 攻?二十日, 乃抜.
冬 10月に百済 (関彌城)を攻撃して陷落させた.その聖恩四面が険しい絶壁で海水が取り囲んでいて王が軍事を七道で分けて 20日を攻撃して陷落させた.(三国史記高句麗本紀 391年)
冬 10月に百済 (関彌城)を攻撃して陷落させた.その聖恩四面が険しい絶壁で海水が取り囲んでいて王が軍事を七道で分けて 20日を攻撃して陷落させた.(三国史記高句麗本紀 391年)
こんなに序数ができているから交差検証も成功
付け加えて
東京大学史学科教授 武田幸男も 百残の次の文字は 東で把握している.
広開土大王碑石さえこれから筆写本が発見され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