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J·옵페르트 「금단의 나라·조선」(1880년 발행)
E·J·옵페르트 (Ernst Jacob Oppert, 1832~1903)(은)는 Pruisen의 무역상으로, 1866~68년에 세번 조선을 방문해 개항을 요구했지만, 「청나라의 허가없이 개국할 수 없다」라고 하는 이유로 결국,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영종도에서 총격전을 실시해, 사상자수명을 보내 끌어올렸다.
독일어판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은 1886년 발행이 되고 있지만, 왠지 영문판 (A Forbidden Land: Voyage to the Corea)이 빨리, 1880년에 런던과 뉴욕에서 나와 있다.신복용·장 또 영역은, 영문판으로부터의 번역이다.
본문
(p. 46) 서울대로는 중국의 일반적인 도시의 좁은 가로에서(보다)는 넓지만, 관청이나 양반의 주택이나 한층 더 말하면 왕궁마저도, 중국의 비교적 큰 도시에 있는 부유인 계층의 주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중국의 도시로 보여지는 다양한 색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큰 사원은, 서울에는 찾아낼 수 없다.가옥은 대부분 진흙으로 만들어진 단층집에서 초라하기 때문에, 서울이 조선과 같은 나라의 수도라고 하는 인상을 마치 주지 않는다.
(p. 52) 관리등은 재임 기간중에 주민에게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반면, 단지 착취를 통해서 납세금만을 징수하고 뒷돈을 모으는 것에 열중한다.그들은 모두 짧은 임기의 사이, 가능한 한 착취하지 않으면 불로 소득을 벌 수 없다고 생각한다.
(p. 59) 조선(정도)만큼 민족의 기원이나 역사에 관한 문헌이 불완전하고 부족한 나라도 드물다.학자연으로 한 조선-사람 가운데, 아무도 자신의 나라의 역사를 기술하려고 하거나 그것이 생기는 인물은 없는 것 같다.그들은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가가 남긴 기록이, 덧붙이는 것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p. 79) 조선은 과거에 체결하거나 동의 해 도미 가나조약도, 오늘로는 휴지에 지나지 않고, 또 잊을 수 있어 오래 되다.누구보다 조선-사람 자신이, 조약을 휴지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
(p. 113) 그들은 일본인보다 활기에 넘쳐 도전적인 태도를 보인다.하지만, 예법이 빠져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관습면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의 하층계급과 비교해도 품행이 뒤떨어진다.
(p. 116) 질병에 대한 조선-사람의 지식과 치료법은, 원시적인 단계를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킨다.조선의 의술은 중국에도 뒤떨어지기 위해, 의사들은 별로 존경되어 있지 않다.
(p. 117) 대체로 조선의 가옥은 근린 제국에 비해 몹시 초라한 인상을 주어 조선의 건축 님 식이 중국이나 일본의 수준에 이르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p. 123)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극히 대중화 하고 있는 연극이나 그 외의 공연과 같은 연예가, 조선에서는 전혀 없다.이것은 아마 부분적으로는, 조선 고유의 문학이나 문화가 결여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조선-사람의 문화적 수준은 낮고, 이러한 종류의 예능에는 감수성도 낳는 능력도 없다.
(p. 144) 조선-사람의 산업기술과 기량은, 아시아의 다른 민족에 비해 훨씬 뒤떨어지고 있다.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억압적인 정치체제에 기인한다.정부는 산업 발전에 무관심하고, 심하지는 지배층이 직접적으로 그것을 눌러 붙였다.이러한 정황은 조선의 산업 발전을 지지하는 토대로부터 이미 취약하고, 따라서 현재의 정치체제가 변하지 않으면, 어떠한 발전도 이룰 수 없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E・J・オッペルト『禁断の国・朝鮮』(1880年発行)
E・J・オッペルト (Ernst Jacob Oppert, 1832~1903) はプロイセンの貿易商で、1866〜68年に三度朝鮮を訪れ、開港を要求したが、「清国の許可なしに開国できない」という理由で結局、受け入れられなかった。永宗島で銃撃戦を行い、死傷者数名を出して引き上げた。
ドイツ語版 (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Korea) は1886年発行となっているが、なぜか英語版 (A Forbidden Land: Voyage to the Corea) の方が早く、1880年にロンドンとニューヨークで出ている。申福龍・張又永訳は、英語版からの翻訳である。
本文
(p. 46)ソウルの通りは中国の一般的な都市の狭い街路よりは広いが、官庁や両班の住宅やさらに言えば王宮さえも、中国の比較的大きな都市にある富裕な階層の住宅とは比較にならない。中国の都市に見られる多様な色相で華麗に装飾された大きな寺院は、ソウルには見出せない。家屋はたいてい泥で作られた平屋でみすぼらしいため、ソウルが朝鮮のような国の首都だという印象をまるで与えない。
(p. 52)官吏らは在任期間中に住民にほとんど関心を持たない反面、ただ搾取を通じて納税金ばかりを取り立て、裏金を貯め込むことに熱中する。彼らはみな短い任期の間、できるだけ搾取しなければ不労所得を稼げないと考える。
(p. 59)朝鮮ほど民族の起源や歴史に関する文献が不完全で不足な国も珍しい。学者然とした朝鮮-人のうち、誰も自分の国の歴史を記述しようとしたり、それができる人物はいないらしい。彼らは中国や日本の史家が残した記録が、付け加えることがない完全なものだと信じて疑わないようだ。
(p. 79)朝鮮は過去に締結したり同意したいかなる条約も、今日では紙くずに過ぎず、また忘れられて久しい。誰よりも朝鮮-人自身が、条約を紙くずのように考えている。
(p. 113)彼らは日本人よりも活気にあふれ、挑戦的な態度を見せる。だが、礼法が欠けているため、文化的な慣習面では中国や日本の下層階級と比べても品行が劣る。
(p. 116)疾病に対する朝鮮-人の知識と治療法は、原始的な段階を脱け出せずにいる。したがって、むしろ病気を悪化させる。朝鮮の医術は中国にも劣るため、医師たちはあまり尊敬されていない。
(p. 117)概して朝鮮の家屋は近隣諸国に比べてひどくみすぼらしい印象を与え、朝鮮の建築様式が中国や日本の水準に至るには大変な努力が必要だろう。
(p. 123)中国や日本ではきわめて大衆化している演劇やその他の公演のような演芸が、朝鮮ではまったく無い。これはおそらく部分的には、朝鮮固有の文学や文化が欠如していると思われる。朝鮮-人の文化的水準は低く、こうした種類の芸能には感受性も産み出す能力も無い。
(p. 144)朝鮮-人の産業技術と技量は、アジアの他の民族に比べてずっと劣っている。こうなった決定的な理由は、抑圧的な政治体制に起因する。政府は産業発展に無関心で、甚だしくは支配層が直接的にそれを押えつけた。こうした情況は朝鮮の産業発展を支える土台から既に脆弱で、したがって現在の政治体制が変わらなくては、いかなる発展も成し得ないことを立証し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