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쟁으로 유효 대책을 잡히지 않았던 것이 최대의 요인에서는.
일본때는 사전통고(명을 공격하기 때문에 길을 빌려 주어라)나 소시로부터의 사전 정보가 있어, 사절에 군사 연습을 보여 공갈에 가까운 일을 보여져 개전 확실히도 관련되지 않고 동서에서 견해가 분열 방위 정책을 잡히지 않았다.
청때는 광해군의 정책을 부정하기 위해 모처럼 준비해 있던 방위 정책을 파기, 청을 도발과 상궤를 벗어난 행동을 찰떡을 만들 때 묻히는 가루쇄 된다.
당시의 조선의 정책은 기술, 장비, 군사의 련도는 커녕 국력조차 패전 이유의 지엽말절이 되는 것은 국력, 기술 이전의 문제로 개전전에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라의 의사 통일을 할 수 있어 착실한 방위 정책을 취하고 있으면 사실의 1개월 가지지 않고 수도 함락은 적어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朝鮮が日本と清に勝てなかった理由
党争で有効対策が取れなかった事が最大の要因では。
日本の時は事前通告(明を攻めるから道を貸せ)や宗氏からの事前情報が有り、使節に軍事演習を見せ恫喝に近い事を見せられ開戦確実にも関わらず東西で見解が割れ防衛政策が取れなかった。
清の時は光海君の政策を否定する為にせっかく準備していた防衛政策を破棄、清を挑発と常軌を逸した行動を取り粉砕される。
当時の朝鮮の政策は技術、装備、兵の練度はおろか国力でさえ敗戦理由の枝葉末節になるのでは…国力、技術以前の問題で開戦前に敗れている気がします。
国の意思統一が出来、真面な防衛政策を取っていれば史実の一ヶ月持たずに首都陥落は少なくとも無かったと思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