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국과 동〔어 시〕국(트우테이코크)이 합체 했다는 중국측이 인식한 것은 당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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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당서와 신당서의 병칭」동부지역 무사전안에는, 일본 열도에 도착해 「야마토국전」과「일본전」의 2개가 병립하고 있어, 「권 199상렬전 제 149 카미히가시미개 민족」에게는,
「일본국자 야마토국지별종야이기국재일변 고 이일본위명혹왈 야마토국자오기명불아개위일본혹운일본구소국병 야마토국지지」라고 있어, 야마토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고쳤는지,원래 오구니에서 만난 일본이 야마토국의 땅을 병합 했다고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송대 초두의 「태평어람」에도 그대로 두 개의 나라인 취지가 인계되고 있다.이것에 대해서는, 편찬 과정의 영향이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에 있어서의 통설이다.이론도 존재하고 있고, 예를 들면,삼공장은 「일본」의 국호 성립후의 최초의 견당사인702년의 파견 시에는 국호 변경의 이유에 대해 일본측에서도 불명하게 되어 있어 견당사가 당측에 이유를 설명할 수 할 수 없었던 가능성을 지적한다.오오바수는, 이것을 단순한 편찬 과정의 미스는 아니고 「야마토국전」과「일본전」의 사이의 야마토국(일본) 관련 기사의 중절 기간에는,백촌강의 싸움및임신의 난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중국 측에는, 임신의 난을 가지고 「야마토국(천지정권)」가 쓰러져 「일본(하늘 무가정치권)」가 성립했다고 하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어, 결론이 나오지 않은 채로 기술된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나로서는,원래 오구니에서 만난 일본이 야마토국의 땅을 병합 했다고 기술한 것은,야마토국과 동〔어 시〕국이 합체 한 것을 당대에 처음으로 중국이 인식한 것이라고 하는 설을 취하고 싶다.
즉
일본=동〔어 시〕국(트우테이코크)
이다.
여기서, 카미타케 동정은, 다소의 싸움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진무 덴노는 데릴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종모양의 청동기가 소멸한 이유는, 종모양의 청동기(지모신:대지의 풍양을 제사 지낸다)에 대해서, 당시 , 기후 한랭화에 의해 홍수가 빈발해 환호 집락이 붕괴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후이다고 하는 생각이 퍼져, 야마토의 문화인 청동제의 거울(태양신:천공신)을 제사 지내게 되었기 때문에라고 생각한다.
倭国と東〔魚是〕国(トウテイコク)が合体したとの中国側が認識したのは唐代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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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旧唐書』東夷伝の中には、日本列島について「倭国伝」と「日本国伝」の2つが並立しており、「巻199上 列傳第149上 東夷」には、
「日本國者 倭國之別種也 以其國在日邊 故以日本爲名 或曰 倭國自惡其名不雅 改爲日本 或云 日本舊小國 併倭國之地」とあり、倭国が国号を日本に改めたか、もともと小国であった日本が倭国の地を併合したと記述されている。
そして、宋代初頭の『太平御覧』にもそのまま二つの国である旨が引き継がれている。これについては、編纂過程の影響であると考えるのが日本における通説である。異論も存在していて、例えば、森公章は「日本」の国号成立後の最初の遣唐使であった702年の派遣の際には国号変更の理由について日本側でも不明になっており、遣唐使が唐側に理由を説明することが出来なかった可能性を指摘する。大庭脩は、これを単なる編纂過程のミスではなく「倭国伝」と「日本国伝」の間の倭国(日本)関連記事の中絶期間には、白村江の戦い及び壬申の乱が含まれており、当時の中国側には、壬申の乱をもって「倭国(天智政権)」が倒されて「日本国(天武政権)」が成立したという見解が存在しており、結論が出されないままに記述された可能性があると指摘している。
ぼくとしては、もともと小国であった日本が倭国の地を併合したと記述したのは、倭国と東〔魚是〕国が合体したことを唐代に初めて中国が認識したものという説を取りたい。
つまり
日本=東〔魚是〕国(トウテイコク)
である。
ここで、神武東征は、多少の戦いはあったものの基本的には神武天皇は婿養子となったのである。
銅鐸が消滅した理由は、銅鐸(地母神:大地の豊穣を祭る)に対して、当時、気候寒冷化により洪水が頻発して環濠集落が崩壊し、この世を支配しているのは天候であるという考えが広まり、倭の文化である銅鏡(太陽神:天空神)を祭るようになったためと考え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