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kj의 버그(불편)에 의해, IE로, 투고의 사진을 볼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 님입니다.만약, IE로, 이 투고의 사진을 볼 수 없는 경우는, Firefox로, 봐 주세요.





2017년 5월 2일에, kj에 간, 「오이소(ooiso) 산책&음식」이라고 하는 투고의 사진이, kj의 버그(불편)에 의해, 모두,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때문, 재투고입니다.




이하의, 사진, 및, 투고문은, 기본적으로, 2017년 5월 2일에 간, 「오이소(ooiso) 산책&음식」이라고 하는 투고, 그대로의 물건이 되고 있습니다.따라서, 투고문은, 모두, 2017년 5월 2일의 투고를 전제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하, 오이소(ooiso) 산책 2(바로 위의 투고)로부터의 계속으로, 2017년 5월 2일에, kj에 간, 「오이소(ooiso) 산책&음식」이라고 하는 투고의, 재투고의 계속입니다.



사진 이하 7매(사진은, 차용물).하쿠슈 지로(shirasu jiro).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장신으로(신장은, 180 cm위(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신장에 관해서는, 175 cm에서 185 cm와 님 들인 설이 있어요가, 사진을 보는 한, 185 cm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핸섬한 남성이었습니다(덧붙여서,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아내인,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외모의 평가는, 「특히, 미남(핸섬)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보다...).




사진 이하 4매.젊은 무렵의, 하쿠슈 지로(shirasu jiro).













































1929년의, 여름의 무렵.교제중의, 하쿠슈 지로(shirasu jiro)( 오른쪽)와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왼쪽).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친가의, 별장의 하나로, 오이소(ooiso)의 별장(아마...)에서...당시 ,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27세,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19세.동년(1929년), 11월에,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와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결혼했습니다.



















































나이를 먹고 나서의,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로, 미야케 잇세이(Miyake Issei·Issey Miyake)(1938 년생.일본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fashion designer))의, 옷을 입는,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왼쪽).아마, 1978년경(당시 ,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76세).





















하쿠슈 지로(shirasu jiro)(1902 년생.1985년에 죽는다.제이차 세계대전 후, 요시다 시게루(yoshida shigeru)의 측근으로서 활약한 일로, 이름이 알려진(유명한), 일본의, 일반인.자세한 것은, 이하로 설명합니다)는, 1902년, 코베(kobe)(일본의 서부에 위치하는, 대도시) 교외에서, 일본의, 유복한 실업가(코베(kobe)의 무역상인.선조는, 사무라이(samurai)의 가계)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아버지로, 실업가(무역상인)의, 백주후미히라(shirasufumihira)는, 건축이 취미로, 하쿠슈(shirasu) 가의 저택을, 많이 세웠습니다.그 중에서도, 효고(hyogo) 현, 이타미(itami) 시(코베(kobe)의 북동부 교외·오사카의 북서부 교외)에 세운, 하쿠슈(shirasu) 가의, 본댁(메인(main)의 저택)은, 약 132,000평방 m(40,000평)의 부지를 가져, 부지내에는, 코로(Corot), 모네(Claude Monet), 마티즈(Henri Matisse), 피카소(Pablo Picasso) 등의 작품을 거둔 미술관등이 있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구제 제일 코베(kobe) 중학교( 후의, 효고(hyogo) 현립, 코베(kobe) 고교) 시대는, 미국의 Paige 등의, 고급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녀, 후의 자동차 좋아하는 편린을 보이고 있었던(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만년까지 계속 되어, Bentley, Bugatti type35, Porsche 등 , 수많은(많은), 명차·고급 자동차를 소유해, 애차로 하고 있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제일 코베(kobe) 중학교( 후의, 효고(hyogo) 현립, 코베(kobe) 고등학교)를 졸업 후, 영국의 켐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에 유학해, 서양 중세사, 인류학등을 배웠습니다.그 무렵, 하쿠슈 지로(shirasujiro)는, 자동차에 열중해, Bugatti나 Bentley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유학중에 알게 된 영국 귀족의 젊은이(일생의 친구가 된다)와 Bentley로, 유럽 대륙 여행을 하거나 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1925년, 켐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을 졸업, 1928년, 아버지의 경영한 회사가, 도산해, 일본에의 귀국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29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도쿄에서, 영문자 신문의 기자가 되었습니다.동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카고시마(kagoshima)(큐슈(kyusyu)(일본의 남부)의 남부에 위치하는 현)에 기원을 가지는 도쿄의 귀족(백작), 카바야마애보(kabayama aisuke)의 딸(아가씨), 마사코(masako)와 결혼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아버지, 백주후미히라(shirasu fumihira)는, 이 때, 이미, 자신의 회사가 도산하고 있었지만,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결혼 축하에, 자동차의, Lancia Lambda를,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와 마사코(masako)에 주었습니다(두 명은, 이 자동차로, 신혼 여행에 나갔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jiro)는, 그 후, 몇개의 회사의, 이사(고용되어 경영자)를 역임해, 비지니스맨(businessman)으로서 활약했습니다.이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해외로 향해 가는 것이 많아, 당시의, 재영국 일본 대사의, 요시다 시게루(yoshida shigeru)의 안면을 이득, 친교가 깊어졌습니다.또, 요즘,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근위문마 (konoe fumimaro)의 브레인(상담 상대·조언자)의 한 명으로서 행동했던(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근위문마 (konoe fumimaro)와는, 개인적인 친교도, 깊었다).


하쿠슈 지로(shirasujiro)는, 1940년, 현재의 도쿄의 남서부 교외의, 낡은 농가(농민의 집)를 구입해, 피난(sokai) 했던(피난(sokai)이란, 전쟁중, 공습의 피해로부터 피하기 때문에(위해), 공습의 피해를 받아 쉬운, 대도시나 안도시(중 규모 정도의 인구의 도시)의 중심부를 떠나 교외나 시골에, 일시적으로 체재, 혹은, 일시적으로 이주하는 일로, 제2차 세계대전중, 공습의 피해가 컸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활발히, 행해졌습니다.비교적 유복한 층은, 교외나 시골에, 집을 구입해 이주하거나(원래 보유하고 있던) 교외나 시골의 별장에 체재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만, 서민은, (시골에서 대도시로 나와 있는 경우등은) 친가를 의지하는지, 혹은, 친척을 의지하는지, 학교 피난(학교 마다의 피난(sokai))에, 아이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가, 이와 같게, 빠른 시기에, 피난(sokai) 한 것은, 미국과 영국의 국력을 충분히 알고 있던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특권계급인,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징병을 회피해, 제이차 세계대전중은, 농업을 실시하면서 은둔생활을 보내는 한편, 요시다 시게루(yoshidashigeru)를 중심으로 하는 반전 그룹(전쟁 종결 공작 집단)에 참가하고 있던 님입니다.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1945년, (제이차 세계대전 직후의 내각인 히가시쿠니노미야(higashikuninomiya) 내각의 외무 대신으로 취임한) 요시다 시게루(yoshida shigeru)의 부탁에 의해, 종전 연락 중앙 사무국의 참여로 취임해, 제이차 세계대전 직후, 요시다 시게루(yoshida shigeru)의 측근으로서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와 유창한 영어로 서로 싸웠습니다.일본인이, 전반적으로, (패전과 미국과의 압도적인 국력의 차이를 보게 된 일에 의한다) 열등감이나 두려워해 등으로부터,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 및,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하) 일본에 진주 하고 온 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의 군인·병사에 대해서, 두려워해 위축 해, 얌전하고, 순종, 혹은, 비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시대에 두고,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Powers)의 모요인을 하고, 「온순하면 바구니 유일한 일본인(온순하지 않은 유일한 일본인)」이라고 말하게 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와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의 사이에 관해서는, 하쿠슈 지로(shirasu jiro)가, 천황으로부터의(Douglas MacArthur에 대한다) 선물(선물)을, Douglas MacArthur에 보냈을 때에, 「그쯤에서도 치라고 두어 줘」라고, 선물(선물)이, 아무렇게나 다루어진 때문, 격노하고, 「적어도, 일본왕(천황)으로부터의 선물을, 그쯤 둘거라고는, 무슨 일인가(어떻게 말할 생각인가)!」라고, Douglas MacArthur에 고함치고 선물(선물)을 가지고 돌아가려고, Douglas MacArthur를 당황하게 했다고 말하는 일화나,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의 민정 국장의, 코트니·휘트니(Courtney Whitney) 준장에게 영어가 능숙하다고 칭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하고, 「If you study a little harder, you will improve your English.(좀 더 공부하면, 당신도 영어가 능숙하게 된다)」라고, 옥스브리지(Oxbridge) 와의 영어로 대답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켐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 출신.미국에서도, 명문으로 여겨지는 대학군인 아이비리그(Ivy League)로조차 옥스브리지(Oxbridge)를 표본에 창립되었다.덧붙여서, 코트니·휘트니(Courtney Whitney) 준장은,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출신)라고 하는 일화등이 있어요.또,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유명한 발언에는, 「우리는, 전쟁에 졌지만, 노예가 된 것은 아니다」등이 있어요.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강화 회의(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평화 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 )을 체결한 회의)에 전권단 고문으로서 수행했습니다.이 때,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평화 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 )의 수락 연설의 초고(원고)를, 연합국군최고 사령관 총사령부(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Powers)의 양해를 얻은 다음 영문(영어)으로 써 온 외무성의 공무원을, 「강화 회의라는 것은, 전승국의 대표와 동등의 자격으로 출석할 수 있을 것.그 맑은 날의 원고를, 상대방과 상담한 후에, 상대측의 말로 쓰는 바보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꾸짖어 날려, 전문을 일본어에 의한 모필로 고쳐 쓰게 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외무성의 고문을 맡았습니다.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요시다 시게루(yoshida shigeru)의 퇴진 후는, 정계 진입을 바라는 소리도 있었습니다만, 정치로부터 인연을 잘라, 실업계로 돌아와, 수많은 요직을 역임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80세까지, Porsche를 타고 돌아다녀, 골프(golf)에 흥미를 느껴 또, 토요타(Toyota)의 고급 자동차, 소어러(Soarer)의 어드바이스(advice) 등도 가고 있었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1985년, 8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소어러(Soarer)에 관해서는, 이 투고를, 참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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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차용물.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아내,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1910 년생.1998년에 죽는다.주로, 일본의 전통 문화·전통 예술·전통 공예에 관련하는, 일본의, 여성, 수필가).사진은, 아마, 하쿠슈 지로(shirasu jiro)·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 부부가, 1940년에, 피난(sokai)을 위해 구입한, 도쿄의 남서부 교외의, 낡은 농가(농민의 집)에서, 촬영된 것입니다.하쿠슈(shirasu) 가는, 결국, 제이차 세계대전 후도, 이 집에 계속 살았습니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도,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도, 젊은 무렵, 산들, 호화를 하고 온 때문, 이미, 불필요하게 호화를 하는 일에, 흥미를 잃고 있던 님입니다.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1910년, 카고시마(kagoshima) 현(큐슈(kyusyu)(일본의 남부)의 남부에 위치하는 현)의, 사무라이(samurai)·군인계의, 귀족(백작)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일본의 전통 문화·전통 예술·전통 공예에, 폭이 넓고, 깊은 지식을 가지는, 취미인이었습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masako)는, 일본의 전통 문화에 관한, 폭이 넓은 취미를 가지는, 취미인의, 어머니(덧붙여서,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어머니도, 카고시마(kagoshima) 현의, 사무라이(samurai)·군인계의, 귀족(백작)의 가출몸의 여성입니다)의 영향등으로, 어릴 적·소녀의 무렵부터, 일본의 전통 문화(특히, 능(noh)에 대해), 강한 관심을 가져, 깊게 관련되고 있었습니다).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1924년부터 1928년에 걸치고(14세의 무렵부터 18세의 경에 걸치고), 미국에 유학하고 있었습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미국 유학 시대, 영어는, 2, 3개월로, 유창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학교의 성적은 우수하고, 스포츠(운동)를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인 일로부터(본인에 의하면, 「(스포츠(운동)는) 뭐든지 했다.뭐든지 했으므로, 뭐든지, 서툴렀다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보다...), 승마(horse riding), 테니스(tennis), 농구(basketball), 하키(field hockey) 등 , 다른 학교와 시합을 하면, 반드시, 선수로 된 님입니다.이와 같게, 하쿠슈 마사코(shirasumasako)는, 미국에서의, 학생 생활을, 즐기고 있던 님에도 보입니다만, 미국에서는, 열중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학생 생활은,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에 있어서 지루함 님입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보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미국 유학 시대에 대해서, 「미국 유학 시대에,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님생각이 든다.사춘기라고 말해지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그 님에 보낸 일이, 좋았던 것일까, 나빴던 것일까, 어느 쪽으로 해도, 인간은, 그렇게 간단하게 나뉘어 떨어지는 것은 아니면 지금은, 생각한다」라고 한 내용의 일을 쓰고 있습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선천적으로, 태평함 탓인지 , 미국 유학중, 향수병(homesickness)에는, 한번도 걸리지 않았지만, 일본의, 문물에는, 굶고 있어 일본으로부터, 잡지나 책이 닿았을 때는, 꾀병을 사용하고(병이 든 모습을 하고), 학교를, 쉬고(질질 끄는 휴일을 하고), 침대(bed)에서, 마음껏, 열중해서 읽은 님입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masako)의 자전보다...).



이하 6는, 참고의 투고로, 당시의, 일본의, 소녀·젊은 여성취향의 잡지·문화등에 관련하는 투고입니다.


타케히사 무지(takehisa yumeji) 등 1→

 

/kr/board/exc_board_14/view/id/2444000?&sfl=membername&stx=jlemon


타케히사 무지(takehisa yumeji) 등 2→

/kr/board/exc_board_14/view/id/2443999?&sfl=membername&stx=jlemon



후키곡홍아(fukiya koji) 2→

/kr/board/exc_board_8/view/id/2398596/page/2?&sfl=membername&stx=jlemon


후키곡홍아(fukiya koji) 1→

/kr/board/exc_board_8/view/id/2398595/page/2?&sfl=membername&stx=jlemon



J-pop의 진화의 역사 1→

/kr/board/exc_board_14/view/id/2427150?&sfl=membername&stx=jlemon



J-pop의 진화의 역사 2→

/kr/board/exc_board_14/view/id/2427189?&sfl=membername&stx=jlemon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미국 유학중, 마음속에서는, 미국에 친숙해 질 수 없었다 님입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보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미국 유학중의 일에 대해서, 자전에 대하고, 「일본에 있는 동안은, 일본은, 그렇게, 좋은 나라이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는데 , 일본을 떠나면, 그 좋은 점이(일본의 좋은 점이), 눈에 띈(그 좋은 점을(일본의 좋은 점이), 알았다).특히, 예술의 면에 있어서는, 일본은, 미국이란, 비교가 되지 않을 수록, 고급이다고 하는 것이 알았지만, 막연히, 그렇게 생각해 받을 수 있어로, 아무것도, 사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라고 한 내용의 일을 쓰고 있습니다.


참고의 투고.



Galapagos 문화의 나라→

/kr/board/exc_board_14/view/id/22663/page/2?&sfl=membername&stx=jlemon





1924년, 18세에, 미국 유학으로부터 돌아온(다니고 있던 학교의 교장의 조치로, 빨리, 학교를 졸업시켜 받은 님입니다),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25세까지는, 결혼을 하지 않고, 놀이와 공부에 소비한다고 결정해 파티(party)에, 출석하는 일에, 항상 날마다(생활)를 보내고 있었던(옛 상류계급의, 파티(party)에, 출석하는 일에, 항상 날마다(생활)라고 말하는 것을, 현대의, 서민으로 적용시켜 보면, club(nightclub)로의, 밤놀이에, 항상 날마다(생활)라고 한 느낌이다고 생각하는 w).그 님, 나날의 생활속,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18세 때에, 당시 , 26세에 있던,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를 만나,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에, 한 눈 반했습니다(외모를, 한번 본 것만으로(본 순간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아마,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로부터,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에, 어프로치 해(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로부터,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를 유혹해), 만나고 나서, 머지 않아, 두 명은, 교제를 시작해 1929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가 27세,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19세 때에, 결혼했습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이 일에 대해서,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를 만난 일로), 25세까지, 노는 일도, 공부도(25세까지는, 놀이와 공부에 소비한다고 말할 계획이), 눈앞으로부터, 날아가 버렸다(사라져 버렸다).뭐니 뭐니해도, 18세의, 한 눈 반해(이성을, 외모를, 한번 본 것만으로(본 순간에), 좋아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은, 엄청났다(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사랑은, 맹목(Love is blind)라고 말하지만, 어쨌든, 젊은 여성은, 좋아하게 된 남성을 이상화해 보므로, 결혼하고 나서, 이런 작정은 아니었다고, 실망으로 하는 것이다.나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반한(좋아하게 된) 약점에서, 뭐든지 허락할 수가 있었다」라고 한 내용의 일을, 자전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와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부부의 사이는, 좋았다 님입니다.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에 의하면, 생애에 대하고,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와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싸움을 한 것은, 1회만으로, 그것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발언에 대해서, 화낸,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폭력을 기발한 물건으로, 하쿠슈 지로(shirasu jiro)가, 군인인,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조부의 욕과 같은 일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가 말했을 때에,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뺨을, 마음껏 두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는, 자신은, 카고시마(kagoshima) 현(큐슈(kyusyu)(일본의 남부)의 남부에 위치하는 현)의, 사무라이(samurai)의 집안 출신이다고 하는 일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고, 그 때(하쿠슈 지로(shirasu jiro)의, 뺨을, 마음껏 두드렸을 때),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에 질 생각은, 완전히, 하지 않았다 님입니다).



생애에 대하고,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와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싸움을 한 것은, 그 때, 1회만으로(그것도,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에, 일방적으로, 폭력을 기발한만), 싸움을 좋아하는,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가, 하쿠슈 지로(shirasu jiro)에,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와 싸움은 하지 않았다 님입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보다...).하쿠슈 지로(shirasu jiro)는, 여성을 상대에게 싸움을 하는 것은, 남자의 수치이다고 생각하고 있던 님입니다(하쿠슈 마사코(shirasu masako)의 자전보다...).



오이소(ooiso) 산책 4(바로 아래의 투고)에 계속 된다...













 


大磯(ooiso)散歩3




kjのバグ(不具合)により、IEで、投稿の写真が見られない現象が生ずる様です。もし、IEで、この投稿の写真が見られない場合は、Firefoxで、ご覧下さい。





2017年5月2日に、kjに行った、「大磯(ooiso)散歩&食べ物」と言う投稿の写真が、kjのバグ(不具合)により、全て、見られなくなってしまった為、再投稿です。




以下の、写真、及び、投稿文は、基本的に、2017年5月2日に行った、「大磯(ooiso)散歩&食べ物」と言う投稿、そのままの物となっています。したがって、投稿文は、全て、2017年5月2日の投稿を前提に書かれています。



以下、大磯(ooiso)散歩2(すぐ上の投稿)からの続きで、2017年5月2日に、kjに行った、「大磯(ooiso)散歩&食べ物」と言う投稿の、再投稿の続きです。



写真以下7枚(写真は、借り物)。白州 次郎(shirasu jiro)。白州 次郎(shirasu jiro)は、長身で(身長は、180cm位(白州 次郎(shirasu jiro)の身長に関しては、175cmから185cmと様々な説がありますが、写真を見る限り、185cmと言う事はないと思います))、ハンサムな男性でした(ちなみに、白州 次郎(shirasu jiro)の妻である、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白州 次郎(shirasu jiro)の外貌の評価は、「特に、美男(ハンサム)と言う訳ではない」(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




写真以下4枚。若い頃の、白州 次郎(shirasu jiro)。













































1929年の、夏の頃。交際中の、白州 次郎(shirasu jiro)(右)と、白州 正子(shirasu masako)(左)。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実家の、別荘の一つで、大磯(ooiso)の別荘(おそらく。。。)にて。。。当時、白州 次郎(shirasu jiro)は、27歳、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19歳。同年(1929年)、11月に、白州 次郎(shirasu jiro)と、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結婚しました。



















































年を取ってからの、白州 次郎(shirasu jiro)で、三宅 一生(Miyake Issei・Issey Miyake)(1938年生まれ。日本の、世界的に有名な、ファッションデザイナー(fashion designer))の、服を着る、白州 次郎(shirasu jiro)(左)。おそらく、1978年頃(当時、白州 次郎(shirasu jiro)は、76歳)。





















白州 次郎(shirasu jiro)(1902年生まれ。1985年に亡くなる。第二次世界大戦後、吉田 茂(yoshida shigeru)の側近として活躍した事で、名が知られる(有名な)、日本の、一般人。詳しくは、以下で説明します)は、1902年、神戸(kobe)(日本の西部に位置する、大都市)郊外で、日本の、裕福な実業家(神戸(kobe)の貿易商人。先祖は、侍(samurai)の家系)の家に生まれ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の父で、実業家(貿易商人)の、白洲 文平(shirasu fumihira)は、建築が趣味で、白州(shirasu)家の邸宅を、たくさん建てました。中でも、兵庫(hyogo)県、伊丹(itami)市(神戸(kobe)の北東部郊外・大阪の北西部郊外)に建てた、白州(shirasu)家の、本邸(メイン(main)の邸宅)は、約132,000平方m(40,000坪)の敷地を有し、敷地内には、コロー(Corot)、モネ(Claude Monet)、マティス(Henri Matisse)、ピカソ(Pablo Picasso)等の作品を収めた美術館等があり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旧制第一神戸(kobe)中学校(後の、兵庫(hyogo)県立、神戸(kobe)高校)時代は、アメリカのPaige 等の、高級自動車を乗り回し、後の自動車好きの片鱗を見せてい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の車好きは晩年まで続き、Bentley、Bugatti type35、Porsche 等、数々の(たくさんの)、名車・高級自動車を所有し、愛車としてい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第一神戸(kobe)中学校(後の、兵庫(hyogo)県立、神戸(kobe)高校)を卒業後、イギリスのケンブリッジ大学(University of Cambridge)に留学し、西洋中世史、人類学等を学びました。その頃、白州 次郎(shirasu jiro)は、自動車に熱中し、BugattiやBentleyを乗り回してい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留学中に知り合ったイギリス貴族の若者(一生の親友となる)と、Bentleyで、ヨーロッパ大陸旅行をしたりし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1925年、ケンブリッジ大学(University of Cambridge)を卒業、1928年、父の経営した会社が、倒産し、日本への帰国を余儀なくされました。



1929年、白州 次郎(shirasu jiro)は、東京で、英字新聞の記者となりました。同年、白州 次郎(shirasu jiro)は、鹿児島(kagoshima)(九州(kyusyu)(日本の南部)の南部に位置する県)に起源を持つ東京の貴族(伯爵)、樺山 愛輔(kabayama aisuke)の娘、正子(masako)と、結婚し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の父、白洲 文平(shirasu fumihira)は、この時、既に、自分の会社が倒産していたが、白州 次郎(shirasu jiro)の結婚祝いに、自動車の、Lancia Lambdaを、白州 次郎(shirasu jiro)と正子(masako)に贈りました(二人は、この自動車で、新婚旅行に出かけ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その後、いくつかの会社の、取締役(雇われ経営者)を歴任し、ビジネスマン(businessman)として活躍しました。この間、白州 次郎(shirasu jiro)は、海外に赴く事が多く、当時の、在イギリス日本大使の、吉田 茂(yoshida shigeru)の面識を得、親交を深めました。また、この頃、白州 次郎(shirasu jiro)は、近衞 文麿 (konoe fumimaro)のブレーン(相談相手・助言者)の一人として行動し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近衞 文麿 (konoe fumimaro)とは、個人的な親交も、深かった)。


白州 次郎(shirasu jiro)は、1940年、現在の東京の南西部郊外の、古い農家(農民の家)を購入し、疎開(sokai)しました(疎開(sokai)とは、戦争中、空襲の被害から逃れる為、空襲の被害を受け易い、大都市や中都市(中規模程度の人口の都市)の中心部を離れ、郊外や田舎に、一時的に滞在、若しくは、一時的に移り住む事で、第2次世界大戦中、空襲の被害が大きかった、日本とヨーロッパでは、盛んに、行われました。比較的裕福な層は、郊外や田舎に、家を購入して移り住んだり、(元々保有していた)郊外や田舎の別荘に滞在する事が可能でしたが、庶民は、(田舎から大都市に出て来ている場合等は)実家を頼るか、若しくは、親戚を頼るか、学校疎開(学校毎の疎開(sokai))に、子供を送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が、この様に、早い時期に、疎開(sokai)したのは、アメリカとイギリスの国力を十分に分かっていた為と思われます。特権階級であっ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徴兵を回避し、第二次世界大戦中は、農業を行いながら隠遁生活を送る一方、吉田 茂(yoshida shigeru)を中心とする反戦グループ(戦争終結工作集団)に加わっていた様です。


白州 次郎(shirasu jiro)は、1945年、(第二次世界大戦直後の内閣である東久邇宮(higashikuninomiya)内閣の外務大臣に就任した)吉田 茂(yoshida shigeru)の頼みにより、終戦連絡中央事務局の参与に就任し、第二次世界大戦直後、吉田 茂(yoshida shigeru)の側近として、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と、流暢な英語で渡り合いました。日本人が、全般的に、(敗戦と、アメリカとの圧倒的な国力の差を見せつけられた事による)劣等感や怖れ等から、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及び、(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の下)日本に進駐して来たアメリカ軍を中心とする連合国の軍人・兵士に対して、怖れ、萎縮し、大人しく、従順、若しくは、卑屈な態度をとっていた時代において、白州 次郎(shirasu jiro)は、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の某要人をして、「従順ならざる唯一の日本人(従順ではない唯一の日本人)」と言わしめ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と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の間に関しては、白州 次郎(shirasu jiro)が、天皇からの(Douglas MacArthurに対する)プレゼント(贈り物)を、Douglas MacArthurに届けた際に、「その辺にでも置ておいてくれ」と、プレゼント(贈り物)が、ぞんざいに扱われた為、激怒して、「仮にも、天皇陛下(天皇)からの贈り物を、その辺に置けとは、何事か(どう言うつもりか)!」と、Douglas MacArthurに怒鳴りつけ、プレゼント(贈り物)を持ち帰ろうとして、Douglas MacArthurを慌てさせたと言う逸話や、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の民政局長の、コートニー・ホイットニー(Courtney Whitney)准将に英語が上手いと褒められたことに対して、「If you study a little harder, you will improve your English.(もう少し勉強すれば、あなたも英語が上手になる)」と、オックスブリッジ(Oxbridge)訛りの英語で返答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ケンブリッジ大学(University of Cambridge)出身。アメリカでも、名門とされる大学群であるアイビーリーグ(Ivy League)ですらオックスブリッジ(Oxbridge)を手本に創立された。ちなみに、コートニー・ホイットニー(Courtney Whitney)准将は、George Washington University出身)と言う逸話等があります。ま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の有名な発言には、「我々は、戦争に負けたが、奴隷になったのではない」等があります。白州 次郎(shirasu jiro)は、1951年、サンフランシスコ(San Francisco)講和会議(サンフランシスコ(San Francisco)平和条約(Treaty of Peace with Japan )を締結した会議)に全権団顧問として随行しました。この際、白州 次郎(shirasu jiro)は、サンフランシスコ(San Francisco)平和条約(Treaty of Peace with Japan )の受諾演説の草稿(原稿)を、連合国軍最高司令官総司令部(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の了解を得た上で英文(英語)で書いてきた外務省の役人を、「講和会議というものは、戦勝国の代表と同等の資格で出席できるはず。その晴れの日の原稿を、相手方と相談した上に、相手側の言葉で書く馬鹿がどこにいるか!」と叱り飛ばし、全文を日本語による毛筆で書き直させ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1952年から1954年まで、外務省の顧問を務めました。



白州 次郎(shirasu jiro)は、吉田 茂(yoshida shigeru)の退陣後は、政界入りを望む声もありましたが、政治から縁を切り、実業界に戻り、数々の要職を歴任し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80歳まで、Porscheを乗り回し、ゴルフ(golf)に興じ、また、トヨタ(Toyota)の高級自動車、ソアラ(Soarer)のアドバイス(advice)等も行ってい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は、1985年、83歳で亡くなりました。

ソアラ(Soarer)に関しては、この投稿を、参照して下さい→

/kr/board/exc_board_24/view/id/2444097?&sfl=membername&stx=jlemon








写真は借り物。白州 次郎(shirasu jiro)の妻、白州 正子(shirasu masako)(1910年生まれ。1998年に亡くなる。主に、日本の伝統文化・伝統芸術・伝統工芸に関連する、日本の、女性、随筆家)。写真は、おそらく、白州 次郎(shirasu jiro)・白州 正子(shirasu masako)夫妻が、1940年に、疎開(sokai)の為に購入した、東京の南西部郊外の、古い農家(農民の家)で、撮影された物です。白州(shirasu)家は、結局、第二次世界大戦後も、この家に住み続けました。白州 次郎(shirasu jiro)も、白州 正子(shirasu masako)も、若い頃、散々、贅沢をして来た為、既に、不必要に贅沢をする事に、興味を失っていた様です。




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1910年、鹿児島(kagoshima)県(九州(kyusyu)(日本の南部)の南部に位置する県)の、侍(samurai)・軍人系の、貴族(伯爵)の家に生まれまし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日本の伝統文化・伝統芸術・伝統工芸に、幅が広く、深い知識を持つ、趣味人でし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日本の伝統文化に関する、幅が広い趣味を持つ、趣味人の、母(ちなみに、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母も、鹿児島(kagoshima)県の、侍(samurai)・軍人系の、貴族(伯爵)の家出身の女性です)の影響等で、幼い頃・少女の頃から、日本の伝統文化(特に、能(noh)に対し)、強い関心を持ち、深く関わっていました)。




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1924年から1928年にかけて(14歳の頃から18歳の頃にかけて)、アメリカに留学していまし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アメリカ留学時代、英語は、2、3か月で、流暢に、話せるようになり、学校の成績は優秀で、スポーツ(運動)が好きで、活発な性格であった事から(本人によれば、「(スポーツ(運動)は)何でもした。何でもしたので、何でも、下手であっ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乗馬(horse riding)、テニス(tennis)、バスケットボール(basketball)、ホッケー(field hockey)等、他の学校と試合をすれば、必ず、選手にされた様です。この様に、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アメリカでの、学生生活を、楽しんでいた様にも見えますが、アメリカでは、夢中になれる物がなかったので、アメリカでの学生生活は、白州 正子(shirasu masako)にとって退屈であった様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アメリカ留学時代について、「アメリカ留学時代に、得た物は、何もなかった様な気がする。思春期と言われる、人生の大切な時期を、その様に過ごした事が、良かったのか、悪かったのか、どちらにしても、人間は、そう簡単に割り切れる物ではないと、今では、思っている」と言った内容の事を書いていま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生まれつき、呑気であったせいか、アメリカ留学中、ホームシック(homesickness)には、一度もかからなかったが、日本の、文物には、飢えており、日本から、雑誌や本が届いた時は、仮病を使って(病気になった振りをして)、学校を、休んで(ずる休みをして)、ベッド(bed)で、心ゆくまで、夢中になって読んだ様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



以下6つは、参考の投稿で、当時の、日本の、少女・若い女性向けの雑誌・文化等に関連する投稿です。


竹久 夢二(takehisa yumeji)等1→

/kr/board/exc_board_14/view/id/2444000?&sfl=membername&stx=jlemon


竹久 夢二(takehisa yumeji)等2→

/kr/board/exc_board_14/view/id/2443999?&sfl=membername&stx=jlemon



蕗谷 虹児(fukiya koji)2→

/kr/board/exc_board_8/view/id/2398596/page/2?&sfl=membername&stx=jlemon


蕗谷 虹児(fukiya koji)1→

/kr/board/exc_board_8/view/id/2398595/page/2?&sfl=membername&stx=jlemon



J-popの進化の歴史1→

/kr/board/exc_board_14/view/id/2427150?&sfl=membername&stx=jlemon



J-popの進化の歴史2→

/kr/board/exc_board_14/view/id/2427189?&sfl=membername&stx=jlemon







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アメリカ留学中、心の底からは、アメリカに馴染めなかった様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アメリカ留学中の事について、自伝において、「日本にいる間は、日本は、それ程、良い国であるとは思えなかったのに、日本を離れると、その良さが(日本の良さが)、目に付いた(その良さが(日本の良さが)、分かった)。特に、芸術の面においては、日本は、アメリカとは、比較にならない程、高級であると言う事が分かったが、漠然と、そう思っていただけで、何も、本当の事が、解っている訳ではなかった」と言った内容の事を書いています。


参考の投稿。



Galapagos文化の国→

/kr/board/exc_board_14/view/id/22663/page/2?&sfl=membername&stx=jlemon





1924年、18歳で、アメリカ留学から帰って来た(通っていた学校の校長の計らいで、早目に、学校を卒業させて貰った様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25歳までは、結婚をしないで、遊びと勉強に費やすと決め、パーティー(party)に、出席する事に、明け暮れる日々(生活)を送っていました(昔の上流階級の、パーティー(party)に、出席する事に、明け暮れる日々(生活)と言うのを、現代の、庶民で当てはめて見ると、club(nightclub)での、夜遊びに、明け暮れる日々(生活)と言った感じであると思いますw)。その様な、日々の生活の中、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18歳の時に、当時、26歳であった、白州 次郎(shirasu jiro)に出会い、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白州 次郎(shirasu jiro)に、一目惚れしました(外貌を、一目見ただけで(見た瞬間に)、好きになりました)。おそらく、白州 正子(shirasu masako)から、白州 次郎(shirasu jiro)に、アプローチし(白州 正子(shirasu masako)から、白州 次郎(shirasu jiro)を誘惑し)、出会ってから、間もなく、二人は、交際を始め、1929年、白州 次郎(shirasu jiro)が27歳、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19歳の時に、結婚しまし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この事について、「(白州 次郎(shirasu jiro)に出会った事で)、25歳まで、遊ぶ事も、勉強も(25歳までは、遊びと勉強に費やすと言う計画が)、目の前から、吹き飛んでしまった(消えてしまった)。何と言っても、18歳の、一目惚れ(異性を、外貌を、一目見ただけで(見た瞬間に)、好きになる事)なのだから、当てにならない事は、おびただしかった(全く、当てにならなかった)。恋は、盲目(Love is blind)と言うが、とにかく、若い女性は、好きになった男性を理想化して見るので、結婚してから、こんなつもりではなかったと、がっかりとする物である。私も、例外ではなかったが、惚れた(好きになった)弱みで、何でも許す事が出来た」と言った内容の事を、自伝で書いています。




白州 次郎(shirasu jiro)と、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夫婦の仲は、良かった様です。



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によれば、生涯において、白州 次郎(shirasu jiro)と、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喧嘩をしたのは、一回だけで、それも、白州 次郎(shirasu jiro)の発言に対して、怒っ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白州 次郎(shirasu jiro)に対して、一方的に、暴力を振るった物で、白州 次郎(shirasu jiro)が、軍人であった、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祖父の悪口のような事を、白州 次郎(shirasu jiro)が言った際に、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白州 次郎(shirasu jiro)の、頬を、思い切り叩いたと言う物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は、自分は、鹿児島(kagoshima)県(九州(kyusyu)(日本の南部)の南部に位置する県)の、侍(samurai)の家柄出身であると言う事を、強く意識していて、その時(白州 次郎(shirasu jiro)の、頬を、思い切り叩いた時)、白州 次郎(shirasu jiro)に負ける気は、全く、しなかった様です)。



生涯において、白州 次郎(shirasu jiro)と、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喧嘩をしたのは、その時、一回だけで(それも、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白州 次郎(shirasu jiro)に、一方的に、暴力を振るっただけ)、喧嘩が好きな、白州 正子(shirasu masako)が、白州 次郎(shirasu jiro)に、いくら喧嘩を仕掛けても、白州 次郎(shirasu jiro)は、白州 正子(shirasu masako)と喧嘩はしなかった様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白州 次郎(shirasu jiro)は、女性を相手に喧嘩をするのは、男の恥であると考えていた様です(白州 正子(shirasu masako)の自伝より。。。)。



大磯(ooiso)散歩4(すぐ下の投稿)へ続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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