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원래 백제땅 일컫는 말이었다”
최근 예군 묘지명이 발견 되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의 국호가 원래 백제 땅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국호 성립에 백제인들이 관여했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660년 백제 멸망 당시 의자왕과 당에 투항해 관리가 된 뒤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됐던 ‘예군’(禰/軍:613~678)이란 인물의 묘지명 문장에 새겨진 ‘일본’ 글자가 현재 일본의 국호가 아닌 백제의 다른 표현이라는 근거가 드러났다는 것이 뼈대다.
이런 주장을 꺼낸 이는 일본 고대사학계 권위자인 도노 하루유키 나라대 교수다.
기사 출처: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6435.html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 라고 명칭합니다.
일본이 백제의 후손이며 백제가 지금의 일본을 고대로 부터 이어온 증거가 많습니다.
癸未年八月日十 大王年 男弟王 在意柴沙加宮時 斯麻 念長壽 遺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 取白上銅二百旱 作此鏡
계미년8월10일 대왕년 남제왕 재의자사가궁시 사마 염장수 견개중비직예인금주리2인등 취백상동2백한 작차경
계미년 1) 8월10일 대왕2)의 시대에 男弟王3) 이 意柴沙加宮에 있을 때, 斯麻4)께서 (아우가) 오래사는것을 염원하여 보내노라. 開中費直 5)穢人 今州利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양질의 백동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도다.’
1) 503년
2) “계미년 8월, 日十大王의 시대에....” 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음
3) 남동생왕, 게이타이(繼體)천황으로 비정
4) 사마, 무령왕의 이름 (무령왕릉 지석에 나타남)
5) 개중비직 : 당시 일본의 권력서열 제2인자
즉 무령왕(사마)께서 왜왕(남동생)에게 장수를 염원하여 청동거울을 보낸 것
이 거울이 현재 일본의 국보
*일본의 고대 고분을 발굴하면 묘지 방식이 전형적인 백제 양식인 석실묘 형식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일본열도의 백제다리,백제촌,백제관,백제사
그리고 백제성씨 신찬성씨록(일본 왕족,귀족 족보책) 여기에는 일본 천황들이
백제왕,왕족들의 후손임이 기록되어 있음
* 왜倭 왕실에서 천황을 3번이나 교체시키며 정권의 실세였던 소가씨
이는 백제의 목만치 세력으로 밝혀짐 200년간 왜倭 왕실의 실세로 군림
* 백제 성왕의 셋째 왕자 임성태자는 당시 백제에서 성왕의 장남이 후에 위덕왕에 오르자
자신의 세력들과 함께 왜倭의 오키나와에 자리를 잡고 철광을 개발하고 세력을 넓혔다.
당시 임성태자는 타타라 성씨로 시작하여 현재는 오우치씨로 남아 있다.
오우치 가문의 시조는 임성태자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으며 임성태자의 보검과 관모가
오키나와 신사에 모셔지고 있다.
* 서기 663년 8월 백강전투(白江戰鬪)
왜倭 사이메이 천황은 660년 멸망한 백제의 부흥을 위하여 부흥군 귀실복신의 요청하에
2년간의 왜倭 국력을 소모하여 군사 2만7천명과 배 1000척, 군량미를 지원
이는 구당서에도 해당 지원군이 부흥군의 수장 부여풍의 군대로 기록되어 있으며
2년간의 왜倭 국력을 소모하며 멸망한 백제의 부흥을 위하여 사활을 걸었다는 증거
즉 당시 왜倭 왕실 자체가 백제세력 이었으며 왜倭는 백제의 담로국이란 것이 증명된다.
* 백제는 담로제를 통하여 백제의 지배권하에 있는 영토에 담로왕을 보내서 다스렸는데
일본에 고대 고분유물로 금동관이 출토 되었다 전형적인 백제가 담로왕에게 내리는 금동관 모양
(백제 왕실이 백제의 담로왕에게 하사한 금동관)
* 일본의 고분군등에서 백제의 담로왕으로 증명되는 금동관이 다수 출토
* 일본은 4세기까지 일본에 말馬이 없었으며 철기 생산 조차도 못하는 상황
백제는 철기생산과 기마병이 있었으며 뛰어난 항해기술과 선박축조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은 4세기 철제무기도 없었고 말馬 없었다. 백제의 왜倭 정복은 아주 간편
* 일본의 곳곳에 아직까지도 백제왕(담로왕)을 모시는 신사가 수십여개
백제왕(담로왕)의 전설이 남아 있는 백제 마을도 쿠슈와 오사카 지역에 분포
* 2001년 일본천황 아키히토 ” 나 아키히토는 무령왕의 후손이다 ” 기자 회견
일본이 백제의 후손이며 백제가 일본의 기원임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한국과 일본은 그 뿌리부터가 같은 형제인데 왜 일본을 한국을 부정하는가?
해당 게시물은 그저 한국이 일본 보다 우수하고 뛰어난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의 앙금은 잊고 한일 고대사의 진실을 받아 드리고
미래에는 형제처럼 지내기를 바란다 일본은 더이상 조상 (백제)를 외면하지 말라
日本は元々バックゼタング称える言葉だった
最近はいだね墓誌銘が発見されました.
今日日本の国号が元々百済地を称える言葉だったし, 国号成立に百済人たちが関与したという学説が申し立てられた. 660年百済滅亡当時椅子王と党に投降して管理になった後日本に使臣に派遣された ‘例だ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