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소개 Relationship

WORLD AFFAIRS

증언

Apocalypse Then

Newsweek

2000412일 호 P.24

나의 마을은 지옥이 되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실시한 잔학행위의

피해자들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론·모로(방콕 지국장)

지금부터33년전의196741일.구엔·밴·토이는 벌벌 하면서, 베트남 중부 후옌성의 논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 이 지역에서는 한국군이 대규모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었다.한국병은 농민을 힘으로 몰아내 남 베트남 정권의 지배하에 있던 연안부에 억지로 이주시키고 있었다.

이지만, 많은 마을사람은 이주를 싫어했다.토이의 빈스안마을을 포함한5카 마을로부터 되는 안린군의 농민도, 선조 대대의 토지를 버리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토이가 농사일을 계속하고 있으면, 갑자기 기관총의 총성과 수류탄의 폭발소리가 울렸다.소리가 난 것은 빈스안마을의 방위.토이는 당황해서 몸을 숨겨, 근처가 어두워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마을로 돌아온 토이가 본 것은, 몸의 털도다 개광경이었다.집은 흑 타가 되어, 적어도15인의 마을사람이 피바다에 넘어져 있었다.많은 사체는 총검으로 물러나 찢어지고 있었다고, 토이(71)은 말한다.

그 안에는, 토이의 아내와3인의 아이의 사체도 있었다.생후4일말의 아이는 모친에게 안긴 채로, 등을 관통해지고 있었다.4나이의 딸(아가씨) 디 M는 총탄을5발 받고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졌다.

토이는 사체를 가까운 방공호에 옮겨, 입구를 진흙으로 가렸다.여기가, 그대로 무덤이 되었다.토이도 다른 마을사람도, 「너무나 너무 슬퍼서」희생자를 이장할 생각으로는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무차별의 살륙】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되고 있던 것은1965~73년.이러한 잔학행위의 목적은, 베트남 중부의3성(빈딘, 쿠안가이, 후옌)으로부터 농민을 이주시키고 인구를 줄여, Vietcong(공산 게릴라)의 세력 신장을 저지하는 것에 있던 것 같다.

현지의 자치체 당국자에 의하면, 퇴거를 거부한 사람들은, 한국군의 손으로 조직적으로 참살되었다고 한다.게다가 희생자의 상당수는, 노인이나 여성, 아이였다.

역사의 어둠에 매장해 떠나지고 있던 학살의 사실에 다시 빛을 맞힐 수 있던 것은, 용기 있는 한국인 연구자, 구수존(쿠·스젼)이 간 조사의 덕분이다.그녀는 한국군에 의한 대량 학살의 상세를 기록한 베트남 정부의 문서를 발견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학살은 이유없는 무차별 살인이며, 많게는 Vietcong와의 전투를 하지 않은 시기의 사건이었다.

구엔·분·트아이(46)도 빈스안마을의 학살과 같은 무렵, 안린군의 다른 마을에서 위험하게 살해당해 걸쳤다.

당시13나이였던 트아이는, 한국군이 집에 가까워져 오는 것을 보자 마자 도망쳤다.가까이의 밭에 숨어 보고 있으면, 한국병은 마을의 집에 차례차례로 불붙여 모친과 조부모,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근처의 사람들에게 폭행을 더했다고 한다.

한국군은, 트아이의 가족을 포함한11인 정도의 마을사람에게 총검을 들이대고 방공호에 몰아넣었다.나머지의12인(정도)만큼은, 구멍의 밖에 처했다.다음의 순간, 무슨전 치우침도 없게 총성이 울려 퍼져, 수류탄의 폭발음이 공기를 찢었다.트아이는 순간에 머리를 숨겼다.

초연이 사라졌을 때, 벌써 한국군의 모습은 없었다.트아이는 서둘러 가족이 있던 장소에 갔다.

방공호의 전에는, 구멍 투성이가 된 피투성이의 시체가 줄지어 있었다.방공호가운데도, 누군가가 살아 있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트아이는 공포에 몰려 도망갔다.전쟁이 끝난 후도, 여기에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발견된 것은 고기토막만】

「모두,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우리에게 있어서, 집이나 토지나 논은 둘도 없는 것이다」.트아이는 그렇게 말해 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떠나는 것을 꺼린 인간은 모두 살해당했다.무리는 마을을 엄청에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잔학행위의 결과, 많은 사람들이 Vietcong의 진영에 참가했다.67년,16나이 때에 부친을 한국군에게 살해당한 부이·타인·체무도 그1인이다.

체무는 몇사람의 한국군이 안린군의 집에 침입하기 직전, 뒷문으로부터 탈출했다.한국병은70세가 연로한 부친을 잡고 방공호에 밀어넣자, 곧바로 수류탄을 처넣었다.체무는 해가 지고 나서 마을에 몰래 돌아와, 무너진 피난호를 파냈지만, 「고기토막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한다.

그리고 수주간, 구걸을 하면서 헤맨 체무는, 산악부에 틀어박여 있던 공산 게릴라에 참가할 결의를 굳혔다.「아버지를 죽인 놈등에 복수하고 싶었다.한국병이 마을에서 한 것을 본 이상,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구엔·고크·체우는83나이가 된 지금도, 미움을 잊지 않았다.67522일, 후옌성 호아돈군의 미트안마을에서 농업을 하고 있던 체우는, 우연히 친척이 있는 가까이의 마을에 나가 있었다.

거기에 전야, 한국군이 마을을 공격했다고 하는 통지가 도착했다.몹시 서둘러 돌아간 체우가 본 것은, 마을사람이 우물로부터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체를 돌아오고 있는 광경이었다.희생자 속에는, 임신중의 아내와4인의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면해 떨어뜨려 준다」】

학살을 숨어 보고 있던 노인의 이야기에서는, 한국병은 여성이나 아이를 우물에 떨어뜨려, 도움을 요구하는 소리를 무시하고 수류탄을 던졌다고 한다.체우는, 성토를 했을 뿐의 간단한 무덤에 가족의 사체를 매장했다.

「살해당한 것은 여자나 아이 뿐이다.공산주의자같은 걸로 있을 리가 없다」라고, 체우는 말한다.「한국인은 인간이 아니다.눈앞에 나타나면, 파면해 떨어뜨려 준다」

베트남에서 학살 행위를 범한 것은, 한국군 만이 아니다.안린군에서 해안 가에 북쪽을 향하면,68년에 미군 부대가500인 이상의 마을사람을 학살한 쿠안가이성 손미마을이 있다.

그런데도 전쟁체험을 가지는 후옌성의 마을사람의 사이에서는, 미국 병사의 평판은 반드시 나쁘지 않다.지방공무원의 팜·트·산(47)은66년의 테트( 구정월) 때, 미국 병사와 함께 놀거나 추잉껌이나 캔디를 받은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지만 미군은 이 해, 후옌으로부터 돌아와 대신하고 한국군이 왔다.그리고 「67년의 테트를 맞이할 때까지, 한국군은 살륙을 계속하고 있었다」라고, 산은 말한다.「한국병을 만나면, 죽어 만났다와 다름없었다」라고, 지금은 현지의 퇴역군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체무도 말한다.

안린군의 마을사람에 의하면, 한국군은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공포의적이었다.한국병은 잔인한 방식으로 여성을 강간하고 나서, 죽이는 케이스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잔학행위가 표면화되어 왔던 것에, 베트남 정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학살이 있던 것 자체는, 정부 수뇌도 알고 있다.하지만 베트남 당국은, 학살 사건의 보고서가 국내에서 발표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우호 관계에 있는 한국 정부는 물론, 베트남에 막대한 투자를 실시하고 있는 대우나 현대, 삼성이라고 하는 한국 재벌의 불흥을 사는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상보다 사죄의 말을】

한층 더 정부당국에는, 관광객으로서 베트남을 재방하는 한국의 전 병사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고 하는 생각도 있다.하지만, 한국군의 잔학행위를 눈앞으로 한 현지의 당국자는, 관광이나 경제발전을 위해서 진실을 숨겨서는 안되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의 공적인 해명이다.예를 들어 한국측으로부터 사죄나 죄를 인정하는 발언이 있으면, 양국의 정은 오히려 강해지면, 현지의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한국군은, 이 지역에 전에 없는 재액을 가져왔다.희생자는 총을 가질 수 없는 노인이나 여성, 아이들이다」라고, 후옌성이 있는 당국자는 말한다.「우리가 바라고 있는 것은, 물질적인 보상은 아니다.그것보다 공감과 우호의 자세를 나타내면 좋겠다.희생자가 과거를 잊을 수 있도록(듯이)」

한국군을 위해서 흘러간 죄없는 베트남인의 피의 양을 생각하면, 너무나 자그마한 요구일 것이다.

 


韓国軍がベトナムで行った残虐行為

WORLD AFFAIRS

証言

Apocalypse Then

Newsweek

2000412日号 P.24

私の村は地獄になった

韓国軍がベトナムで行った残虐行為の

被害者たちが真実を語りはじめた

ロン・モロー(バンコク支局長)

今から33年前の196741日。グエン・バン・トイはびくびくしながら、ベトナム中部フーイェン省の水田で働いていた。

当時、この地域では韓国軍が大規模な作戦を進めていた。韓国兵は農民を力ずくで追い立て、南ベトナム政権の支配下にあった沿岸部に無理やり移住させていた。

だが、多くの村人は移住を嫌がった。トイのビンスアン村を含む5カ村からなるアンリン郡の農民も、先祖代々の土地を捨てるのは気が進まなかった。

トイが農作業を続けていると、いきなり機関銃の銃声と手榴弾の爆発音が響いた。音がしたのはビンスアン村の方角。トイはあわてて身を隠し、あたりが暗くなるまで動かなかった。

村に戻ったトイが目にしたのは、身の毛もよだつ光景だった。家は黒焦げになり、少なくとも15人の村人が血の海に倒れていた。多くの遺体は銃剣で腹を切り裂かれていたと、トイ(71)は言う。

そのなかには、トイの妻と3人の子供の遺体もあった。生後4日の末の子は母親に抱かれたまま、背中を撃ち抜かれていた。4歳の娘ディエムは銃弾を5発受けていたが、奇跡的に命をとりとめた。

トイは遺体を近くの防空壕に運び、入り口を泥で覆った。ここが、そのまま墓になった。トイも他の村人も、「あまりに悲しすぎて」犠牲者を改葬する気にはなれなかったからだ。

【理由なき無差別の殺戮】

韓国軍がベトナムに派兵されていたのは196573年。こうした残虐行為のねらいは、ベトナム中部の3省(ビンディン、クアンガイ、フーイェン)から農民を移住させて人口を減らし、ベトコン(共産ゲリラ)の勢力伸張を阻止することにあったようだ。

現地の自治体当局者によると、立ち退きを拒否した人々は、韓国軍の手で組織的に惨殺されたという。しかも犠牲者の多くは、老人や女性、子供だった。

歴史の闇に葬り去られていた虐殺の事実に再び光が当てられたのは、勇気ある韓国人研究者、具秀ジョン(ク・スジョン)が行った調査のおかげだ。彼女は韓国軍による大量虐殺の詳細を記録したベトナム政府の文書を発見した。

生存者の証言によると、虐殺は理由なき無差別殺人であり、多くはベトコンとの戦闘が行われていない時期の出来事だった。

グエン・フン・トアイ(46)もビンスアン村の虐殺と同じころ、アンリン郡の別の村で危うく殺されかけた。

当時13歳だったトアイは、韓国軍が家に近づいて来るのを見てすぐに逃げた。近くの畑に隠れて見ていると、韓国兵は村の家に次々と火をつけ、母親と祖父母、弟と妹、そして近所の人々に暴行を加えたという。

韓国軍は、トアイの家族を含む11人ほどの村人に銃剣を突きつけ、防空壕に追い込んだ。残りの12人ほどは、穴の外に立たされた。次の瞬間、何の前ぶれもなく銃声がとどろき、手榴弾の爆発音が空気を引き裂いた。トアイはとっさに頭を隠した。

硝煙が消えたとき、すでに韓国軍の姿はなかった。トアイは急いで家族がいた場所へ行った。

防空壕の前には、穴だらけになった血まみれの死体が並んでいた。防空壕の中も、誰かが生きている気配はまったくなかった。トアイは恐怖に駆られて逃げ出した。戦争が終わった後も、ここへ戻ることはできなかったという。

【見つかったのは肉片だけ】

「みんな、村を離れたくなかった。私たちにとって、家や土地や水田はかけがえのないものだ」。トアイはそう言って泣きだした。「でも、立ち去るのを渋った人間はみんな殺された。連中は村をめちゃくちゃに破壊してしまった」

こうした残虐行為の結果、多くの人々がベトコンの陣営に加わった。67年、16歳のときに父親を韓国軍に殺されたブイ・タイン・チャムもその1人だ。

チャムは数人の韓国軍がアンリン郡の家に押し入る直前、裏口から脱出した。韓国兵は70歳の年老いた父親を捕らえ、防空壕に押し込むと、すぐに手榴弾を投げ入れた。チャムは日が暮れてから村にこっそり戻り、崩れた避難壕を掘り返したが、「肉片しか見つからなかった」という。

それから数週間、物ごいをしながらさまよったチャムは、山岳部にこもっていた共産ゲリラに加わる決意を固めた。「父を殺した奴らに復讐したかった。韓国兵が村でやったことを見た以上、そうせずにはいられなかった」

グエン・ゴク・チャウは83歳になった今も、憎しみを忘れていない。67522日、フーイェン省ホアドン郡のミトゥアン村で農業をしていたチャウは、たまたま親戚のいる近くの村に出かけていた。

そこへ前夜、韓国軍が村を攻撃したという知らせが届いた。大急ぎで帰ったチャウが目にしたのは、村人が井戸からバラバラになった遺体を引き揚げている光景だった。犠牲者のなかには、妊娠中の妻と4人の子供も含まれていた。

【「首を切り落としてやる」】

虐殺を隠れて見ていた老人の話では、韓国兵は女性や子供を井戸に落とし、助けを求める声を無視して手榴弾を投げ込んだという。チャウは、盛り土をしただけの簡単な墓に家族の遺体を葬った。

「殺されたのは女や子供ばかりだ。共産主義者なんかであるわけがない」と、チャウは言う。「韓国人は人間じゃない。目の前に現れたら、首を切り落としてやる」

ベトナムで虐殺行為を犯したのは、韓国軍だけではない。アンリン郡から海岸沿いに北へ向かえば、68年に米軍部隊が500人以上の村人を虐殺したクアンガイ省ソンミ村がある。

それでも戦争体験をもつフーイェン省の村人の間では、米兵の評判は必ずしも悪くない。地方公務員のファム・トゥ・サン(47)は66年のテト(旧正月)のとき、米兵と一緒に遊んだりチューインガムやキャンディーをもらったことを今も覚えている。

だが米軍はこの年、フーイェンから引き揚げ、代わって韓国軍がやって来た。それから「67年のテトを迎えるまで、韓国軍は殺戮を続けていた」と、サンは語る。「韓国兵に会ったら、死に出会ったも同然だった」と、今は地元の退役軍人会の会長を務めているチャムも言う。

アンリン郡の村人によれば、韓国軍はとりわけ女性にとって恐怖の的だった。韓国兵は残忍なやり方で女性をレイプしてから、殺すケースが多かったからだ。

こうした残虐行為が明るみに出てきたことに、ベトナム政府は神経をとがらせている。

虐殺があったこと自体は、政府首脳も承知している。だがベトナム当局は、虐殺事件の報告書が国内で発表されることは望んでいない。友好関係にある韓国政府はもちろん、ベトナムに莫大な投資を行っている大宇や現代、三星といった韓国財閥の不興を買うことを心配しているからだ。

【補償より謝罪の言葉を】

さらに政府当局には、観光客としてベトナムを再訪する韓国の元兵士が増えている状況に水を差したくないという思いもある。だが、韓国軍の残虐行為を目の当たりにした地元の当局者は、観光や経済発展のために真実を隠すべきではないと考えている。

地元が望んでいるのは、韓国政府の公的な釈明だ。たとえば韓国側から謝罪や罪を認める発言があれば、両国の絆はむしろ強まると、地元の人々は考えている。

「韓国軍は、この地域にかつてない災厄をもたらした。犠牲者は銃を持てない老人や女性、子供たちだ」と、フーイェン省のある当局者は言う。「私たちが望んでいるのは、物質的な補償ではない。それよりも共感と友好の姿勢を示してほしい。犠牲者が過去を忘れられるように」

韓国軍のために流された罪なきベトナム人の血の量を考えれば、なんとささやかな要求だ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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